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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84화 (84/741)

84화

상미를 바래다 준 도진은 종량제 봉투를 사 집에 둔 뒤에 상미가 수련했던 그 공터에서 연신극기공을 수련했다.

소담을 포함한 숭무고 천재들이 노력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도진은 열심히 헤엄쳐야만 했다.

도진은 천재가 아니었으니까.

허나 재능보다 더 대단한 인연이 닿았기에 그것을 불평하지 않고 매일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의 수련을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도진은 지지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천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게 생각함에도 회귀한 도진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멈출 바에는 좋아하는 것을 믿고 전력을 다해 즐기면서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때문에 온몸에 쇳덩이를 매달고 호흡조차 할 수 없는 물 속에서 끊임없이 정확한 동작을 수행해야 하는 수준의 가혹한 수련을 네 시간가량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더 몸의 내외로 가해지는 부담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한 발 더 정상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그렇게 하루에 한 걸음씩이라도 더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도진은 얼마든지 힘을 낼 수 있었다.

-수고했다.

대자로 뻗은 채 15분을 쉰 뒤 도진은 몸을 일으켰다.

몸은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움직이는 게 또 일상의 수련이 된다.

최고의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에 정신과 몸이 동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진짜 무림'에서는 최선의 컨디션이 아닐 때 싸우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니 평상시 이런 수련을 해두면 좋다.

육체의 회복력과 지구력, 정신력의 단련 또한 따라오니 어쨌든 '올바른 방식으로 육체와 정신을 괴롭히는' 것은 모두 좋은 수련이다.

터덜터덜 걷지 않고 최대한 자세를 신경쓰며 바르게 걸어 집으로 돌아온 도진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집을 나섰다.

11시가 넘은 늦은 밤에 다시 나가는 건 다른 목적이 아니다.

"어? 도진아."

"어머니."

바로 어머니를 마중 나간 것이었다.

서정원이 오늘은 택시를 타고 집에 왔기에 기다릴 것 없이 문월동의 초입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설마 계속 기다린 거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묻는 어머니에게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천천히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이렇게 딱 마주쳤네요."

도진은 어머니의 곁에 서서 왔던 길을 함께 되돌아갔다.

"오늘 아침에 왔어?"

"네."

"혹시 상미 봤니?"

"네. 집에 오니까 설거지 하고 있더라구요."

"니 동생들도 돌봐주고 애가 정말 참하더라."

"그러게요."

서정원은 자연스레 아들의 팔짱을 꼈다.

그렇게 팔짱을 낀 채 걸으며 모자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주말에는 일찍 오니까 나도 얼굴을 보거든. 얼마나 싹싹하고 애들이 좋아하던지……."

"그랬군요."

어머니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근하고 상미는 오후에나 온다.

그러니까 시간이 맞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어머니가 상미를 아시는 거지 생각했던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면 오늘은 일찍부터 상미가 와 있어서 도진도 마주쳤던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또 맞장구치면서 도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가파른 길.

역시 여러모로 좋지 않은 위험한 환경이다.

그나마 '큰길'이라고 할 만한 동네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돼서 낫지만 어머니가 밤늦게 다니시기에 위험한 건 매한가지란 판단을 했다.

'최대한 빨리 이사가야겠어.'

전생에서 어머니가 무슨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모든 사건이 전생대로 흘러갈 거란 보장은 없다.

길어도 4개월 이내에 최소한 전세로라도 이사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도진은 어머니와 함께 귀가했다.

언제나처럼 동생들은 잠들어 있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새벽에 일어나 아침 단련을 하는 아이들은 자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서정원은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조용히, 조심스레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오곤 했다.

"아들은 오늘도 거실에서 잘 거야?"

호진이의 방을 나온 어머니의 물음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뭐 서너 시간만 자고 또 수련할 거니까요."

"오늘 정도는 푹 자도 될 텐데……."

"어머니, 저 이미 고수잖아요. 고수들은 오히려 많이 자는 게 고문이에요. 서너 시간만 자도 평범한 사람들 아홉 시간 자는 정도라구요."

일부러 도진은 더 과장되게, 자랑하듯 말했다.

이렇게 해야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어머니."

"응?"

"이거 시간날 때 보세요."

이부자리를 펴고 다가온 도진이 건넨 것은 작은 USB였다.

"USB?"

"네. 이번 입학식을 찍은 거예요."

USB는 다름 아닌 도진이 한유아에게 부탁하여 찍은 자신의 입학식 영상이 담긴 것이었다.

"입학식?"

"네. 제가 주인공인 입학식 영상이니까 시간 나실 때 아버지랑 보시면 좋을 거 같아서 특별히 찍어달라고 했어요. 집행부 특권을 좀 썼죠."

일이 바빠서, 빚을 갚기 위해서,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의 입학식을 포기하고 일을 나가셨다는 걸 도진은 알았다.

그러니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진은 그런 부모님을 위하여 이렇게 입학식 영상을 준비했다.

도진보다 더 입학식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참석하고 싶으셨을 텐데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아플 정도로 안타까워하셨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성에 서정원이, 도진의 어머니가 미소지었다.

"지금 보고 싶어졌는데."

"네. 그럼 세팅할게요."

어머니의 말에 도진이 즉시 움직였다.

USB를 다시 건네받아 한 켠의 TV에 꽂았다.

TV는 새로 장만한 물건이다.

중소 기업의 제품이라 제법 크고 여러 기능이 내장되어 있음에도 저렴한 편이라 아버지의 보너스로 샀던 물건.

USB 포트 또한 달려 있어 바로 재생할 수 있었다.

"잘 찍었네. 정말로 방송 보는 것 같아."

"전문가들이 와서 찍더라구요."

"역시 숭무고라 그런지 다르네."

서정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식에 집중했다.

어머니의 옆 얼굴을 보며 도진은 그것을 바로 알아채고 자신도 영상을 보았다.

실제로 방송국에서 오래 일한 베테랑들이 전담해서 찍은 영상이라 그런지 프로의 솜씨가 느껴진다.

도진을 주인공으로 잡되 주변의 상황까지 확실하게 담아냈다.

-…무도(武道)의 무한한 길을 당당하게 걸어나갈 것을 선서합니다.

심지어 선서하며 기세를 일으켜 식장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도진의 모습까지도 선명하게 담아냄으로써 어머니에게 벅찬 미소를 짓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도진도 미소지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찍은 사람들 마주친다면 뭐라도 해드려야겠네.'

영상은 도진의 생각 이상으로, 300% 마음에 들었다.

입학식을 생생하게 담아내되 도진에게로 몰리던 적의는 담기지 않았기에 200%가 아니라 300%다.

'최선의 상황'이 아니었기에 도진은 부모님이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게 이번만큼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참석하셨으면, 아들에게로 향하는 그 적의를 알게 되고 말았을 테니까.

그것은 평생에 남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이것이 차선,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한 번뿐인 아들의 입학식이 생생한 영상으로나마 남아서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다.

거기엔 부모님의 마음이 상할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아 좋다.

직접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졸업식으로 채워 드릴 생각이다.

그때엔 아무런 걱정 없이, 걸리는 것 없이 참석할 수 있게 환경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졸업식의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때엔, 그 누구도 도진을 업신여기지 못할 테니까.

학교란 사회의 축소판.

그러니까 졸업식 때의 도진은 학교에서 또한 군림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보여 드릴 모습은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 * * *

다음날 아침.

도진은 새벽 수련을 마치고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으로 배를 채웠다.

일부러 알람까지 맞춰 일찍 일어나 차려 주셨다는 걸 알았기에 도진은 더 맛있게 싹싹 밥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또 어머니가 다려 주어 온기가 남은 교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잘 다녀와. 우리 아들."

몸이 가벼웠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로 향했다.

천마심공의 4성은 내공을 끌어올릴 때마다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강해진 내공이 육체를 넘어선 힘을 낼 수 있게도 해 주었다.

-4성을 넘어서야 진짜 천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스승 위지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도진은 그 '진짜 천마기'가 무엇인지를 4성에 이르고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3성까지의 천마기는 말 잘 듣는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의 나약한 내공도 아니고 무려 '천마기(天魔氣)'가 애완동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모름지기 천마가 구사하는 내공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러니까 진짜는 초입을 넘어선 시기인 4성을 지나 5성에 입문하고부터다.

4성부터 천마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사용자마저 물어뜯는 말 그대로 괴물 같은 기세.

그런 천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5성부터 본격적으로 천마신공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괴물 같은 내공이 실리기에 천마신공 또한 범접할 수 없는 신위(神威)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진은 졸업식 전까지 5성의 완숙에 도달하는 걸 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6성을 바라보는 5성이라면 숭무고에서 군림할 수 있으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너라면 2년 안에 5성을 넘어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본래 3성까지의 천마기만 해도 억누르기는 커녕 두려워서 벌벌 떨다 피를 토하고 죽는 놈들이 부지기수인 게 천마심공이었다.

그것도 천재랍시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이 말이다.

한데 도진은 그런 천마기의 3성까지를 어처구니없게도 '애완동물'에 비유할 만큼 천마에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두려워하기보다 걸어나가는 게 먼저인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누구보다 천마에 어울리는, 자신보다 어울린다고 생각해 버릴 만큼 애정이 생겨 버린 제자라면 입문 2년만에 5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위지혁은 생각했다.

그렇게 자랑스런 제자는 날뛰는 천마기의 목줄을 쥐고 날듯이 학교에 도착해 며느리 삼으면 참 좋을 듯한 꾸냥을 만났다.

"안녕."

"응, 안녕."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도진은 벚꽃길에서 소담을 만났다.

하루를 보지 못했는데 그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둘은 함께 걸었다.

본래 마음이 가까운 사이란 그런 것이다.

하루 떨어져 있었다고 해서 어색함이 생기지 않는다.

말없이 함께 걷는다고 해서 또 어색한 침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말없이 걸을 때 그 관계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렇기에 누가봐도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였다.

자연스레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어 두 사람은 식당에 마주 앉았다.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소담이 물었다.

"어제 집에 갔었지? SNS에서 봤어."

"응. 영상 봤구나."

자기 전 SNS에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 했었는데 소담이 벌써 그것을 봤던 모양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래서 여상스레 고개를 끄덕였는데.

"근데 사진 찍어준 여자애는 누구야? 못 들어 본 목소리였는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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