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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83화 (83/741)
  • 83화

    "자! 그럼 조립해 보자!"

    수납장의 조립을 시작했다.

    우선은 가장 간단한 기초 조립부터다.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따라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부분이라 최대한 동생들이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선에서 도진과 상미가 도와 주었다.

    서랍장을 만들고 보강해야 할 부분에 들어가는 나사를 드라이버로 조이니 뼈대와 함께 구성품들이 완성되었다.

    혈육이라 그런지 유진이와 호진이의 손재주도 나쁘지 않아 시간은 좀 걸렸지만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완성된 구성품들을 뼈대에 합치는 작업과, 선택 사항으로 있는 상판 등 자재의 가공이다.

    가공을 하지 않아도 기능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카탈로그처럼 '멋드러진' 형태로 완성되지 않기에 반드시 해 주어야 하는 작업.

    여기가 드디어 도진의 동반자, 백설이 나서야 할 때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칼과 톱은 용도가 다르며 목재의 가공에 특화된 건 두말할 것도 없이 톱이다.

    칼로 나무를 '써는' 것은 비효율적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의 이야기였다.

    천마심공의 4성에 이른 도진은 물건에 내기(內氣), 내공을 싣는 게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다.

    검기(劍氣)를 사용하진 못해도 무기의 내구도를 강화하고 검의 절삭력을 높이는 것은 가능한 수준이다.

    내기가 실려 절삭력이 강화된 검은 톱 이상으로 수월하게 나무를 썰 수 있다.

    심지어 여기서 사용할 검이 무려 명장 우벽진의 걸작 백설이다.

    스르릉-

    무광 블랙의 검집에서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세가인의 피부처럼, 혹은 아무도 밟지 않은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얀 검신은 아름다우면서도 시리도록 날카로웠다.

    백설의 검날은 내공을 싣지 않아도 나무를 단번에 베어 버릴 만큼 날카롭다.

    여기에 도진의 천마기를 더하면 나무로 만든 자재는 아예 두부처럼 자르는 게 가능해진다.

    톱으로 써는 것보다 훨씬 깔끔한 가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절세의 명검을 얻었는데 그 명검의 첫 사용이 목재를 자르는 거라니, 용도가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도진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도진에게 있어 백설은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반려'였다.

    이 반려를 오직 무공을 구사하는 데만, 사람을 베는 데만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상 또한 함께 할 '검이 아닌 반려'였으니 이렇게 동생들의 서랍장을 만드는 데 함께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형! 칼이네?!"

    "새로 생긴 거야?"

    도진이 백설을 뽑아들자 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하루종일 차고 다녔는데 뽑아든 지금에서야 알아차린 모습이다.

    백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도진에게 동화되어 있었던 탓이다.

    하하 웃으며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청 대단한 분한테 선물 받았지."

    "대단하다아."

    "만져봐도 돼?"

    "칼날은 위험하니까 이렇게 만져 봐."

    검대에서 칼집을 풀고 백설을 다시 거기에 넣어 동생들에게 건네 주었다.

    동생들은 몇 번이고 조심스레 칼을 쓰다듬어 보다 다시 도진에게 내밀었다.

    "진짜 대단하다, 형."

    "맞아!"

    "좋아. 그럼 형이 더 대단한 거 보여 줄게."

    도진이 기분 좋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선 휴대폰을 꺼내 상미에게 내밀었다.

    "사진 좀 찍어줄래? 동영상도."

    "아, 네!"

    사진과 동영상은 다른 게 아니라 SNS에 올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요즘 SNS 댓글의 매력을 느낀 도진이었기에 백설의 데뷔 또한 올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케이. 그러면……."

    도진은 호흡을 고르며 조심스레 천마기를 일깨웠다.

    두웅-!

    잠들어 있던 천마기가 자극에 고개를 쳐든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도진의 통제를 거부하려 드는 난폭한 기세.

    도진은 그것을 우서진을 치료하며 진일보한 깨달음으로 세밀하게 조절하며 백설에 내기를 흘려 넣었다.

    사아아아-

    마치 눈발이 흩날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백설의 예기가 강화되었다.

    그 상태의 백설을 도진은 설명서에 따라 목재에 대고 선을 그렸다.

    본래는 펜 등으로 미리 선을 그려야 했지만 도진은 그러지 않아도 선명하게 목재에 눈으로 선을 그릴 수 있었기에 바로 작업을 한 것이다.

    스슷-

    마치 속삭이는 듯 부드러운 절삭음과 함께 목재의 끝이 잘려 나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단면은 깔끔했으며 유려한 곡선이 그려졌다.

    짝짝짝짝!!

    동생들이 물개 박수를 쳐 흥을 돋워준 덕에 도진의 목재 가공 작업은 일필휘지로 휘둘러진 백설에 깔끔하게 끝이 났다.

    "잘 찍혔어?"

    "네!"

    목재 가공이 끝나고 다가가니 필생의 역작을 찍은 듯한 기색의 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찍으신 사진이랑 동영상 저한테도 보내주시면 안 돼요?"

    "응? 상관은 없는데 왜?"

    "그냥 갖고 싶어서요."

    "그래. 보내 줄게."

    도진은 굳이 캐묻지 않고 상미에게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을 메신저로 보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뭘, 감사까지야."

    휴대폰을 돌려받은 뒤 수납장을 완성했다.

    "와아아아아!!"

    카탈로그와 완벽히 똑같은 완성품에 동생들이 또 한 번 환호성을 내질렀다.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리액션이 좋으니 일한 보람이 200%라 도진 또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 그럼 들여 놓자."

    "응!!"

    각자의 방에 완성된 수납 선반을 놓아 주었다.

    내친 김에 가구도 다시 한 번 어울리도록 재배치해 주고 낡은 선반과 수납장은 거실로 빼내 배치했다.

    이사갈 땐 버려야겠지만 지금은 거실 한 켠을 차지한 박스에 보관한 물건들을 꺼내 수납하는 데 쓴 것이다.

    "고마워, 오빠!"

    "나도 고마워, 형!"

    정리가 끝나자 동생들이 꾸뻑 배꼽 인사를 한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수납장을 다 만들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같이 저녁 먹자."

    "네, 오빠."

    도진과 상미, 거기에 동생들까지 네 명이서 저녁을 먹었다.

    상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걸치고 주도적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보고 있자니 완전히 주방의 주인 같다는 생각이 드는 도진이었다.

    '아침 식사 도우미를 한다더니 많이 배웠나 보네.'

    보호소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쌀 씻는 법도 모르던 아이였는데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식사는 말할 것도 없이 화기애애했다.

    아이들에게 먼저 사과하고 진심으로 다가간 상미는 정말로 누나처럼, 혹은 엄마처럼 동생들과 친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도진은 상미와 함께 동적산을 올랐다.

    동생들을 두고 굳이 둘이서만 오른 건 다름 아닌 무공 때문이었다.

    "여기서 수련하는 거야?"

    "네. 오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니까 마음 놓고 수련할 수 있거든요."

    동적산은 딱히 등산로랄 게 없고 달동네 사람들이 굳이 오를 일도 없을 만큼 이렇다 할 게 없는 산이어서 상미의 말대로 수련하기에 딱이었다.

    그런 특성 때문에 본래 강치환 패거리 같은 양아치들의 아지트가 생겼던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양아치들도 싹 쓸려 나갔고 말이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말하는 상미에게서 과거의 상처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외면하거나 묻은 게 아니다.

    한 번 부러졌다 붙은 뼈처럼 더 단단해진 게 느껴졌기에 웃은 것이다.

    상미가 싹 정리를 한 건지 공터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쉴 수 있도록 평상도 놓여 있었다.

    "수련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고?"

    "네. 꿈속에서 사부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시거든요."

    "그렇구나. 어느 정도나 익혔어?"

    "얼마 전에 3성에 올랐어요."

    "헐."

    -허허…….

    도진의 입에서 절로 헐 소리가 나왔고 위지혁마저 허허 웃었다.

    3성.

    말이 3성이지 한천검공 같은 극상승의 무공에 입문한지 채 세 달도 되지 않아 도달한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턱이 빠질 일이었다.

    도진이야 위지혁과 장호라는 희대의 고수를 스승으로 모시며 심상세계까지 있었기에 급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상미는 몽련의 술 말고는 이렇다 할 '치트키'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상미의 천재성, 그리고 노력이 합쳐져 만들어낸 놀라운 성취였다.

    -이 정도나 성취를 보이다니 놀랍구나.

    처음 상미를 거두라 했을 때 위지혁은 상미가 '대단한 무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위지혁은 평이하게 대단한 무재라고 했지만 사실 이건 아주 엄청난 일이었다.

    당시의 위지혁에게 있어 상미는 냉정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 평가는 지극히 객관적이었는데, '역대 최강의 천마'였던 위지혁이 지극히 객관적으로 평가해 대단한 무재라 한 것이다.

    웬만해선 천재라 하지도 않았을 불합리할 정도의 천재였던 위지혁이 말한 대단한 무재는 숭무고의 천재들을 범재로 전락시킬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때문에 위지혁은 마교에서도 수위로 꼽히는 한천검공을 상미에게 전수하라 한 것이었는데 그 성취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놀랍다.

    -네가 정말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어 주나 보구나.

    -그런가요.

    아무리 무재가 대단하다 해도 '죽도록' 달리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성취를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의 성취는 도진과 숭무고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상미에게 강력하고도 꾸준한 동기 부여를 해주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단하네."

    도진은 그런 상미에게 웃으며 순수하게 감탄의 칭찬을 해 주었다.

    상미의 성취가 워낙 대단하고 재능도 있다보니 특별히 무공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위지혁의 조언을 도진이 읊어주는 정도로 충분했고 밤까지 그저 상미의 수련을 지켜봐 주었다.

    본래 남의 수련을 지켜보는 건 칼을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심각한 금기였지만 둘은 남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해가 떨어져 통금 시간이 가까워지자 버스 정류장까지 상미를 바래다주게 되었다.

    함께 걷는 상미는 한 손에 검은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오늘 수납 선반을 만들며 입었던 낡은 옷과 쓰레기들이었다.

    옷은 크게 더럽혀지지 않았지만 키와 함께 덩치도 커진 도진에게는 이제 맞지 않는 옷이라 이번 기회에 버리기로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종량제 봉투가 떨어져 우선 검은 봉투에 넣었는데 상미가 그것을 가져가 버리겠다고 말하며 챙겼다.

    "내가 버려도 되는데."

    "아니에요. 제가 가져갈게요."

    도진은 나온 김에 슈퍼에 가서 종량제 봉투를 사 자신이 버리겠다 했는데 상미가 한사코 자신이 버리겠다고 해서 바로 정류장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밤하늘 아래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도진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이랑은 어떻게 됐어?"

    그 사람. 상미의 혈육이다.

    혈육이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

    조심스레 묻는 도진에게 상미는 미소지었다.

    "친권 상실 선고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조정 기간인데 그 사람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합칠 의사가 없으니까 조정 기간만 끝나면 남남이 되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상미의 미소에는 그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도진은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고 말았다.

    어머니는 도망갔고 아버지마저 남이 되면 이 세상에서 상미는 혼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그래서, 도진은 상미의 손을 잡았다.

    커다래진 상미의 눈을 보며 도진은 씨익 웃었다.

    "나중에 말이야, 나는 아주 커다란 집을 지으려고 해.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집을. 니 방도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같이 살자. 알겠지?"

    "……네!"

    상미는 만발한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면서 상미는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

    떠나는 상미는 검은 봉투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도진의 낡은 옷이 든 그 봉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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