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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9화 (79/741)

79화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았던 강민구의 하루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벽진의 일방적인 문자 통보 이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보냈던 세 수족은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왔다.

"…맹호추가 돌아왔습니다."

그 셋을 강민구가 그저 힐난하지 못했던 건 잊고 있던, 종수의 입에서 나온 그 별호 때문이었다.

맹호추.

무림 르네상스 시절 이름을 날렸던, 소위 말하는 '1세대 무인' 중에서 고수로 꼽히는 무인의 별호였다.

무려 '사자군'과 동일한 시대에 활동하고 또 이름을 날렸던 무인 말이다.

그 맹호추가 망치를 들고 뚝배기를 깨 버리려 했으니 별 도리가 없었을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들끓는 감정을 식힐 순 없었다.

"이 시발 영감쟁이가 진짜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의식적으로 지양하던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는 강민구.

그가 원하던 답이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 속보로 TV에서 흘러나왔다.

-속보!) 명장 우벽진, '명성공방'에 합류!!

"이런 개……!!"

원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어 버렸다는 것을, 이 시점에서 강민구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태양금속이 한순간에 벼락 부자가 되어 덩치를 불리기 시작한 '졸부'라면 명성공방은 20년간 명성과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 '광명성'이라는 탄탄한 지지층까지 갖춘 명문가였다.

그 지지층을 바탕으로 무림세가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니지만 양쪽에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태양권가마저 함부로 할 수 없는 곳.

…그리고 우벽진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곳.

강민구는 이 시점에서 우벽진이 태도를 바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았구나!!'

강민구가 맹호추를, 명장 우벽진을 철저하게 을로 부릴 수 있었던 건 태양권가만이 손자의 병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무기로 강민구는 살살, 그러나 철저하게 우벽진만을 옭아매기 위하여 요 2년간 수작을 부려왔던 것이고.

우벽진은 혹여 아들 부부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우려하여 명성공방과 철저하게 분리되려 했고 강민구 또한 그것을 원했기에 명성공방은 이번 일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었다.

한데 갑자기 우벽진이 속보를 시작으로 기사가 쏟아질 만큼 화려하게 명성공방으로 넘어갔으니 갑작스런 이변의 이유를 명성공방에서 우서진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서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정말로 그걸 치료할 방법이 있었다고?'

태양권가의 무인들은 말했다.

이건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치료할 수 없을 거라고.

한데 믿을 수 없게도 그 방법이 나온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우벽진이 갑자기 뻗대는 것을, 손자 때문에 소원해졌던 아들에게로 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것이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 울컥울컥 치솟았고, 곧 현실이 되었다.

다음날 공급되어야 할 티어의 재료가 오지 않았다.

강민구는 불안으로 떨리는 손으로 우벽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라리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있었다.

하지만 우벽진은 신호가 몇 번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뭔가?

"…명장님, 오늘 보내주셔야 할 티어의 재료가 오지 않았습니다만."

-아, 그거? 바빠서 못 했어.

"뭐, 뭐요?"

-바빠서 못 했다고. 보채지 말고 기다려. 시간 되면 해 줄 테니까.

덜덜덜!

휴대폰을 든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너무 어이없고 뻔뻔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오늘 오전까지 보내줘야 할 재료를 시간 되면 해 준다니요!"

-사람이 바쁘면 좀 늦을 수도 있는 거지. 뭐 애새끼처럼 보채고 있어? 바쁘니까 끊어!

"며, 명장! 이런 씨발!!!"

뻐억!

강민구가 힘껏 던진 휴대폰이 벽에 날아가 박살이 났다.

콰장창!!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한 강민구가 미친놈처럼 날뛰어 본부장 대리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허억, 허억."

체력이 아니라 정신 쪽의 문제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겨우 진정한 강민구였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엉? 바쁘다니까? 내가 좀 요새 바뻐. 되는 대로 해줄게. 뭐? 계약? 늦으면 안 된다는 조항 그딴 건 없잖아.

마치 강민구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우벽진은 오히려 연락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속을 아주 뒤집어 놓았다.

이제와서 알게 되었는데, 계약은 구멍투성이였다.

강민구의 잘못이었지만 꼭 강민구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졸부'였던 태양금속은 대기업의 계열사이기에 돌아가는 것이지 사실은 주먹구구식이었다.

태생부터가 태양권가의 장남이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세운 회사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래서 밑바닥이던 강민구가 본부장 대리라는 요상한 직함을 달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본부장 대리를 달고 아직은 어설펐던 강민구가 주관했던 계약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고 우벽진은 그것을 강민구가 아주 돌아 버리도록 잘 이용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 같은 게 있으니 그에 관한 소송을 걸려면 걸 수도 있었지만 강민구나 태양금속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었다.

그들에겐 켕기는 게 너무 많았으니까.

일단 티어의 탄생과 그 원류가 우벽진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반토막날 일이었다.

…애초에 그 티어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망할 판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 우벽진이 재료를 다 납품한다 해도 계약 갱신을 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강민구는 드디어 '본부장'에게 불려간 것이었고.

"…부르셨습니까, 본부장님."

본부장실에 들어간 강민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앞에,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은 본부장이 앉아 있었다.

고개를 삐딱하게 젖힌 그 본부장은, 놀랍게도 숭무고 교복을 입고 있었다.

다름 아닌 태양권가의 장남이자 숭무고의 입학생 중 한 명이 태양금속의 본부장이었던 것이다.

이제 17세가 되어 무림인으로서 무림특별법에 따라 성인이 되었지만 세간의 시선도 있고 해서 일단은 본부장의 직함을 단 그였다.

말만 본부장이지 사실상 태양금속의 주인.

그런 주인 앞에서 강민구는 아예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이제 겨우 열일곱이다.

그러나 그 열일곱은 태양권가의 장남이자 가문의 무공에 최적화된 열양지기를 타고난 천재 중의 천재였다.

일반인보다 더 학생과 성인의 차이가 큰 무림이었지만 당연히 예외는 있다.

바로 눈앞의 천재처럼 말이다.

신분으로도 감히 댈 수 없는 인물인데 심지어 무력으로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떄문에 강민구는 그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왜 무릎을 꿇어, 민구야. 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

강민구는 고개 숙인 채 대답하지 못했다.

본부장은 여전히 의자에 몸을 묻은 채 말했다.

"그래, 명성공방이 찾은 방법이 뭔지는 아직 못 찾았고?"

"…예, 그렇습니다."

강민구는 필사적으로 우벽진이, 명성공방이 찾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허나 도무지 그것이 무엇인지 단서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오케이. 그러면 일단 그거 찾는 쪽으로 인력 다 돌려."

"예, 알겠습니다."

본부장의 말에 강민구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좋아. 그럼 나가 봐."

"알겠습니다."

본부장실을 나온 강민구는 필사적으로 우벽진과 명성공방에 관한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무언가 하나라도 공을 세워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리뿐 아니라 그의 목숨까지도 위험했으니까.

하지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캐 보아도 무엇 하나 나오는 게 없었다.

마치 모든 게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쇼인 것처럼.

도무지 나오는 게 없어서 그날 공방을 출입했던, 집안조차 별 볼 일 없는 일개 학생의 SNS까지 뒤져 보았다.

하지만 그 SNS에 올라온, 우벽진에게서 받아낸 칼로 나무나 썰고 있는 사진을 보고선 애꿎은 책상만 미친듯이 내리쳐야 했다.

…그게 정답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시점에서 강민구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말이다.

* * * *

우서진을 치료했던 그날 밤.

"태양금속에 관해서…… 말인가."

우서진이 잠들고 공방에 마주 앉은 도진의 말에 우벽진은 읊조렸다.

태양금속에 관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벽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네가 치료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네."

과한 보물은 목숨을 앗아간다.

무협 소설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절세의 무공비급, 혹은 보물을 힘없는 자가 가졌다가 목숨과 함께 강탈당하는 그 이야기는 차라리 클리셰라 해야 할 만큼 뻔하고 흔했다.

삼음지체를 치료한 도진의 능력은 그런 일을 일으킬 만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승천하지 못한 잠룡인 도진에게는 그 보물로 인해 일어날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아직은 부족했다.

안좋은 소문이 몇 개나 들러붙어 있는 태양권가와 얽히게 될 일이니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가족까지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공방에 방문할 때 굳이 문을 걷어차고 양아치를 연기했던 건 그를 위한 포석이었다.

"처음에 생각한 건 칼이었어요."

치료를 위해서는 일단 오늘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뒤로도 한두 달에 한 번씩 체질을 바꾸기 위한 치료를 해야 했다.

그 만남과 치료를 위한 명분으로 생각한 것이 칼이었다.

명장 우벽진에게 칼을 받아낸다는 명분으로 오늘 치료를 하고 다음 방문들은 칼을 관리받는다는 명분을 보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한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죠."

생각지도 못한 변수, 그러나 지극히 좋은 변수가 발생하여 우서진이 더 이상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설마 도진이 오늘 하루만에 삼음지체를 치료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벽진과 당분간 접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더 이상 도진에게 시선을 주지 않을 테고.

"저는 일단 그렇게 생각하는데 명장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번에 개입한 목적을 도진은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우벽진에게는 이제 시작일 터.

도진은 그것을 물었고 우벽진은 '맹호추'로서 씨익 웃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일단은…… 아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야."

"아들이라면…… 명성공방!"

명성공방.

전생에는 인연이 없었지만 모를 수 없는 곳이었고 이번에는 우벽진에 관한 정보를 찾으면서 그 위상을 제대로 느낀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본 글 중 하나가 '명장 우벽진이랑 명성공방이랑 퓨전하면 먼치킨 아님?'이란 댓글이었는데…….

"그래. 아들에게 가 볼 생각이야."

"설마…… 합치시는 건가요?"

도진의 물음에 우벽진은 세월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 내 아집과 욕심 때문에 많은 것이 어긋났었지. 이번 기회에 만나서 바로잡아 보려고 해."

그것은 곡해할 여지가 없는 긍정의 대답이었다.

두근두근!

도진의 심장이 뛰었다.

마치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과 대립하던 라이벌이 힘을 합치는 장면을 본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기대 때문이었다.

명장 우벽진과 명성공방이 힘을 합친다.

그리고 그 힘은 우벽진으로 인해 탄생한 '티어'를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게 된 태양금속으로 향할 것이다.

이제부터 도진이 지극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가 펼쳐질 테니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기대로 미소 짓는 도진에게, 우벽진이 한 자루의 검을 내밀었다.

"이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명검(名劍)이었다.

그것도 보통 명검이 아닌, 명장 우벽진이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일 것이 분명한 절세보검.

도진이 그러하듯 검 또한 지극히 특별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처럼 아우라를 내뿜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 검을 내밀며 우벽진이 말했다.

"자네에게 줄 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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