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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8화 (78/741)

78화

일요일.

보통의 회사원들에겐 휴일이었지만 어제는 물론이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태양금속의 본부장 대리 강민구였다.

야망이 있는 그는 요즘 들어 유독 열심히, 그리고 또 즐겁게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는데 그가 원하던 자리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본부장.

본격적으로 태양권가의 간부를 노릴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그 자리가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휴일을 마다하고 공을 들였던 일이, 명장 우벽진을 태양금속에 종속시키는 일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은 확정되었고 오직 하나,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때문에 강민구는 우벽진의 '노예 계약'을 착착 진행할 계획을 짜며 즐겁게 주말을 보낼 생각이었고 토요일은 실제로 그러했는데…….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네.

오늘 아침 온 문자 한 통이 그의 기분을 완전히 잡쳐 버렸다.

하늘에 둥실둥실 떠 있던 기분이 똥물에 처박혀 버렸다.

부들부들.

꽉 쥔 주먹이 통제에서 벗어나 미친듯이 떨렸다.

'영감쟁이가 미쳐 버렸나?'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성질 같아선 뭐든 던지고 때려 부숴 버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해 온, '체면치레'의 연습과 실행이 헛되지 않았던 덕분에 속에서 그 감정을 삭일 수 있었다.

삭이며, 생각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생겼나? 그럴 리가?'

우벽진이 제발로 태양금속의 노예가 되길 자청했던 건 태양권가 이외엔 손자를 연명시켜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갑자기, 그것도 겨우 문자 한 통으로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수족들을 불렀다.

"예, 본부장 대리님."

다름 아닌 우벽진의 감시 역할을 겸하던 종수와 영곤, 그리고 정태였다.

"요즘 영감 주변에 무슨 일 없었냐?"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손자가 밖으로 나왔다가 쓰러져서 한 번 더 치료했던 것 말고는……."

"관련없어 보이는 것도 괜찮으니까 특이사항 있었으면 뭐든 말해 봐."

강민구의 말에 영곤이 입을 열었다.

"건방진 놈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올해 숭무고 수석을 차지한 놈이었는데 사업 얘기 중에 쳐들어와서는 난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종수 형님이 괜히 소란 일으켜서 좋을 게 없다고 하셔서 밖으로 나와 감시만 했는데 이놈이 밤 늦게서야 나오더군요."

"밤 늦게서야 나왔다고? 왜?"

"그놈이 난리를 친 이유가 영감이 칼을 불량으로 줘서였는데 그걸 결국 제대로 된 놈으로 받아간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시발."

강민구의 떨리는 손이 이마를 짚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정말로 화만 돋구는,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영곤아."

"예, 본부장 대리님."

심상치 않은 기세에 영곤이 눈치를 보았다.

"너는 시발 내가, 내가 머리를 바꾸라고 했지? 생각을 좀 하란 말이다, 생각을. 이 시발, 니가 보기에 그게 지금 상황에 맞는 이야기 같냐?"

"…아닙니다."

뭐가 됐든 말해 보라고 해서 말한 건데 오히려 안 좋은 소리만 들었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눈앞의 대상은 그 불만을 표출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영곤은 그 불만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수석이라고 해 봐야 이제 고딩이 된 새낀데 그 새끼가 한 수 가지고 있다고 해 봐야 그게 무공이겠지 의술이겠냐?"

그래도 꼴에 기침원을 운영하는 태양권가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고 강민구는 나름 관련 공부를 좀 했었다.

그렇게 공부한 지식에 따르면 기 치료에는 무공과 관련 지식이 필요하지만 무공에는 그런 치료에 관한 지식이 필요치 않았다.

"심지어 그 새끼 제대로 무공 익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며? 그거 배울 시간이나 있었겠냐? 응? 영곤아."

"……."

영곤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불만과 별개로 강민구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종수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강민구와 달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날 대장간에서 보았던 '양아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는 건 그야말로 낭비라 판단한 것이다.

설령 기적처럼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그 경박한 성격으로 지금껏 알리지 않았을 리도 없고 말이다.

"…혹시 그놈 스승이 나선 건 아닐까요?"

조용히 있던 정태가 말했다.

시선이 모이자 정태가 말을 이었다.

"그놈은 몰라도 그놈 스승은 그런 능력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강민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옛날도 아니고 그런 인간이 있었으면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우벽진이 찾아내지 못했을 리도 없고."

과거 '무림 르네상스' 시절에는 '심산유곡에 은거하던 신비인'이 있을 수 있었지만 요새는 그럴 수가 없다.

심지어 '무림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인이라고?

그 정도면 국가가 나서서 찾아다녔을 것이다.

"영감한테 가 봐."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강민구가 말했다.

"가서 왜 갱신을 안하겠다는 건지 들어 봐."

"알겠습니다."

종수는 여러 말 하지 않고 본부장 대리실을 나와 사제들과 함께 바로 우벽진의 공방으로 향했다.

"영감님!"

영곤이 대번에, 기세 좋게 문을 열어젖히고 공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세 사람이 당황했다.

"뭐야?"

너저분했던 공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이사라도 갈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된 공방 안에 앉아 있던 우벽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세 사람은 또 한 번 당황했다.

평소 구부정하고, 지저분하고, 심지어 무기력하기까지 했던 우벽진이 아니었다.

머리와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옷 또한 정갈하게 갖춰 입었다.

그렇게 변모한 우벽진에게서 그들 세 사람이 감히 함부로 입을 열 수조차 없게 만드는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하러 왔나? 손님인가?"

"아, 아닙니다."

입이 딱 붙어 버린 영곤과 정태 대신 종수가 겨우 말했다. 그런 종수를 내려다보며 우벽진이 내뱉었다.

"그러면? 여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들이지 않는 내 공방이야. 나가."

종수는 흑도 소속이었을 만큼 덩치는 물론 키도 크다.

한데 지금 허리를 편, 기세를 발하는 우벽진은 그런 종수를 압도할 만큼 컸다.

'여, 영감이 원래 이렇게 컸었나?'

종수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억눌려 있던 영곤이 소리쳤다.

"이런 씨발! 영감!"

스으으-

순간 공간이 얼어붙은 듯 했다.

"……!!"

우벽진의 기세가 대번에 흉포해졌고 그 눈동자가 맹수처럼 영곤을 노려 보았던 탓이었다.

"다시 한 번 지껄여 보게나."

영곤은 억지로 눈깔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 보았으나 감히 다시 한 번 입을 열지 못했다.

힘을 준 눈 또한 얼마 버티지 못하고 깔아야 했고 시선 또한 피하고 말았다.

꼴에 흑도였던 영곤은 '가오' 때문에라도 버티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가오가 육체를 지배하는' 수준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확실히 내가 조용히 살긴 했어. 이딴 흑도 찌꺼기 새끼들한테 얕보이고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벽진은 망치를 들어 올렸다. 머리는 물론이요 손잡이까지 통짜 쇠로 된, 무시무시한 망치였다.

그 망치를 보는 순간 종수는 눈앞의 대장장이가 누구인지를 비로소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 자주 했던 게 너희 같은 흑도 찌꺼기 새끼들 찾아오면 대가리를 깨 버리는 거였지. 요즘 말로는 뚝배기라고 하던가?"

옛날. 무림 르네상스 시절에 망치를 휘두르며 무림을 뒤흔들었던 대장장이가 한 명 있었다.

대장장이로서의 능력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대단한 무위를 자랑하며 협박, 혹은 납치를 시도하던 흑도들의 머리통을 부숴 놓았던 무시무시한 고수.

무림에서는 그를 '맹호추(猛虎鎚)'라 불렀다.

흑도 골통 부수기를 전문으로 했던 그 맹호추가 물었다.

"뚝배기 한 번 깨져 볼래, 꺼질래?"

사회에서는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허나, 무림에서 '정당한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 된다.

"…가 보겠습니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얌전히 꼬리를 말고 공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벽진이 명장으로서 명성을 날릴 때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의 재현이었다.

그렇게 과거의 모습을 되찾은 우벽진은 세 사람이 나가자 웃으며 몸을 돌렸다.

거기에, 건강을 되찾은 우서진이 서 있었다.

"준비는 다 했니, 서진아."

아까의 면모를 전혀 떠올릴 수 없는 부드러운 얼굴로 묻는 할아버지에게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그럼 가자꾸나."

세 사람이 쫓겨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벽진의 공방과 협소 주택은 비게 되었다.

그리고 속보가 떴다.

-속보!) 명장 우벽진, '명성공방'에 합류!!

* * * *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무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공방 중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대략 다섯 곳 정도의 이름이 나온다.

한데 여기서 묻는 대상을 무림인으로 한정하면 압도적으로 한 곳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명성공방'이었다.

명성공방.

명장 우벽진의 아들 우명진이 아내 서은주와 함께 공동 대표로 있는 무림 전문 공방이다.

명성공방은 두 개의 라인이 대표적인데, 하나가 우명진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대량 생산하는 양질의 무구이고 다른 하나가 우명진이 직접 만드는 명품 라인이다.

대량 생산하는 무구들의 품질도 한 손에 꼽힐 만한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지금의 명성을 만든 원동력은 다름 아닌 우명진의 '핸드 메이드'였다.

홀로, 직접 만들기에 소량 생산이며 무엇 하나 똑같은 게 없는 무구들.

한데 그 무구들이 명장 우벽진의 아들답게 압도적이어서 출시된다는 소문만으로도 명성공방의 주가가 오를 정도로 그 파급력과 무인들 사이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심지어 고수들 사이에서도 열렬한 명성 추종자들을 뜻하는 '광명성'이란 단어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명성공방에 지금껏 따로 활동하던 명장 우벽진이 합류한다는 기사가 떴으니 업계가 떠들썩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태풍처럼 요동치는 업계.

그리고 그 태풍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우벽진의 가족들 사이에서도 요동치고 있었다.

"……."

아들과 아들, 그리고 부모와 아들. 마주한 삼대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태풍처럼 몰아치는 격렬한 감정이 있었다.

선한 인상이지만 그 우람한 근육만큼 단단하며 강단 있는 우명진.

명성공방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업체로 키워낸 카리스마 있는 CEO 서은주.

외부에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던 두 사람은 봄바람에 머리카락을 살랑이며 웃는, 건강한 아들의 모습에 결국 차오르는 눈물을 막아내지 못했다.

"서진아!"

애끓는 감정을 담아 외치며 먼저 달린 것은 서은주였다.

달려와 껴안는 서은주를, 엄마를 서진은 마주 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과 아들, 우벽진과 우명진은 지금 다 말하지 못할 감정들을 그저 시선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몰아치는 감정의 태풍이 지나가고 우명진은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대체 누가 서진이를 치료해 주었습니까?"

우벽진은 웃었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저도 모르게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을 한 것이었다.

"지존(至尊)을 만났지. 미래의 지존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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