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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3화 (73/741)

73화

첫 만남이 어땠는지, 언제였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처음 만났던 순간은 사소했고 또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래 대부분의 만남이란 그런 것이고, 그것이 스쳐가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이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전생의 도진에게 있어 '대장장이'란 닉네임을 쓰던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너무 잘 맞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살아온 세월의 겹침이다.

때문에 결코 같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부분이 부딪치고 또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대장장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도진과 너무나 잘 맞았다.

그래서 그토록 쉽게 친해졌고 거의 매일을 함께 시간을 보냈음에도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를, 도진은 이제 알 것 같았다.

'나와 비슷했구나.'

전생에서 도진은 사고로 불구가 되었다.

아무리 재활 치료를 해도 왼쪽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방에 처박혀 버렸다.

대장장이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그 불치병이 방 바깥으로 나가는 것마저 허락지 않았다.

감당하기 힘든 불행으로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이었기에 그토록 잘 맞았던 것이다.

작은 다름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마찰 속에 서로 둥글어져 갈등을 겪을 일이 없었다.

만약 남녀였다면 천생연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사이가 좋았다.

실제로 함께 게임을 하던 시절 커플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다.

…그런 정도의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개인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서로 잘 맞는 만큼 개인사에 대해 묻는 건 암묵적으로 지양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현실에 대해 말하는 걸 꺼려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피했었다.

때문에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현실에 관한 부분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대장장이가 사라졌을 때 도진은 더욱 허무함을 느꼈다.

그토록 친했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

그저 접속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허무하게 인연이 끊어져 버렸으니까.

한데 그때 그렇게 사라졌던 친구가, 끊겼던 인연이 이렇게 신비하게 이어졌다.

'…그랬었구나.'

접속이 점점 뜸해졌던 건 증상이 심각해졌기 때문에.

이윽고 완전히 끊겼던 건 결국, 삼음지체의 냉기가 친구의 숨을 완전히 얼려 버렸기 때문에.

서로의 암묵적인 약속을 끝까지 지켰기에, 친구는 마지막까지 현실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먼저 가 버렸다.

그리고 그랬다는 것은.

-스승님. 그 아이가 받고 있는 치료는 제대로 된 것일까요?

도진의 질문에 위지혁은 아니, 하고 단번에 부정했다.

-삼음지체는 내가 살던 시대에도 화타에 비견될 정도의 의술을 가진 신의(神醫)나 타인을 환골탈태 시킬 수 있을 만큼 입신지경(入神之境)에 이른 고수가 아니고서야 어찌할 수 없는 체질이었다. 지금 시대의 의술이나 무공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삼음지체를 그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이라 할 정도로 현대 의학은 이쪽 분야에 관한 지식과 기술이 뒤떨어져 있었다.

원인은 가장 근본적인 부분, '내공'에 관한 연구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현대 과학으로도 명확하게 내공을 규명하지 못했으니 그 내공으로 인하여 발현한 여러 체질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무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환골탈태'가 여전히 소설 속의 허구로 여겨질 정도로 고대 무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공이 뒤떨어진 현대에서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꾸는 환골탈태를, 그것도 타인에게 시켜줄 수 있을 만큼의 경지에 이른 무인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정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럼 저들이 하는 치료란 건 뭘까요.

-억지로 생을 늘리고 있을 뿐인 처치다.

삼음지체는 강성한 음기가 체내의 혈도를 얼려 나가 이윽고 내부가 완전히 얼어 죽게 되는 체질이다.

그러니까 언뜻 생각하면 강한 양기를 띠는 내공, 열양지기를 주입하여 그 냉기를 억누른다면 괜찮을 듯 보인다.

최소한 완치할 순 없어도 진행을 막을 순 있을 것 같다.

-허나 그건 삼음지체에 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하는 착각이지.

냉기는 신외지물(身外之物), 그러니까 별도의 것이 아니다.

삼음지체를 타고난 인간 본연의 것, 더 나아가 그 자신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단순히 냉기를 몰아내봐야 당장의 화만 모면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본인을 더욱 망칠 뿐이다.

-냉기는 그 자신의 것인데 상극인 양기를 주입하면 몸만 점점 더 상하는 것이지. 차가워졌던 혈도가 뜨거워지고 다시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혈도가 상한다. 간단한 과학 상식이었다.

결국 지금 하는 치료는 결과가 결코 변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곧 찾아올 죽음을 억지로 유예하는 것에 불과했다.

상극인 양기에 혈도가, 몸이 점점 더 상해 이윽고 어느 쪽으로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곳을 떠난 태양권가의 무인들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가 명백한 증거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벽진의 희생을, 친구 우서진의 불치병을 이용해 기만하고 또 이득을 취하는 그 행태가.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하게 드는 생각은 이렇게 기적처럼 다시 만난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태양권가의 역겨운 수작을 엎어 버리고 우서진의 목숨을 갉아 먹고 있는 불치병을 낫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연달아 나타나 이윽고 모든 것을 가려 버리는 듯했다.

태양권가의 무인들이 행하는 '연명치료'조차 멈추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현대에서 삼음지체를 치료할 수단은 없었다.

하다못해 제대로 된 연명치료법조차 없다.

때문에 우벽진은 어쩌면 알면서도 태양권가와 거래를 했을지도 모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 아직은 일개 학생일 뿐인 도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와주고 싶다는 말조차 함부로 꺼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한다.

현생의 도진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스승님.

-오냐, 제자야.

-도와주고 싶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그 어떤 고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럼에도 일개 학생인 도진은 도와주고 싶다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도진이, 위지혁은 너무나 기꺼웠다.

-그래, 그래야지.

천마란 그런 존재여야만 한다.

그리고 천마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존재다.

이 현대에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삼음지체를 치료할 수 없었지만 오직 단 한 명.

-도진아. 너는 삼음지체를 치료할 수 있다.

* * * *

도진은 조용히 우벽진의 공방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벚꽃길의 벤치에 앉아 있던 소담을 만났다.

"잘 됐어?"

소담의 물음에 도진은 웃으며 응, 하고 답했다.

먼저 가라는 말에 소담은 이유를 묻지 않고 떠났다.

그리고 이곳에서 기다리다 간단히 잘 됐어, 하고 물었고 도진은 그저 응, 하고 답했다.

아직은 완전히 좁히지 못한 거리. 지금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울타리였다.

조금씩 조금씩, 언젠가는 터놓고 서로의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밥 먹을까?"

"응!"

그러니까 지금은 이 정도가 좋았다.

함께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도진은 연신극기공을 수련하는 대신 침대에 누웠다.

다름 아닌 심상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왔느냐."

"네, 스승님."

"바로 시작해도 되겠느냐?"

도진은 씨익 웃었다.

"얼마든지요."

위지혁도 웃었다.

"좋다."

도진이 심상세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그 뒤에 위지혁이 섰다.

"천마심공을 전력으로 운기해라."

"예."

위지혁의 말에 따라 도진은 천마기를 일깨웠다.

단전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천마기가 도진의 자극에 따라 일어나 포효하며 혈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앞을 막는 모든 것을 찢어 발길 기세의 천마기는 도진의 의지라는 목줄 하나만이 통제하는 괴물이었다.

"제어하고 있는 천마기를 완전히 놓아 버리면 된다."

그 목줄을, 위지혁은 놓으라 말했다.

그리고 도진은 망설임없이 스승의 말에 따랐다.

쿠웅-!

"……!"

목줄이 사라진 괴물이 날뛰기 시작했다.

심공의 경로조차 따르지 않은 채 괴물은 도진의 몸속을 미친듯이 질주했다.

이윽고 그 괴물은, 도진의 내부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퍼걱!

가부좌를 튼 도진의 몸이 작게 한 번 들썩였다.

그리고 내부가 곤죽이 된 도진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심상세계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

"다시 해야겠구나."

"네."

외부가 아닌, 내부가 폭발해 완전히 곤죽이 되어 버리는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위지혁은 다시를 말했고 도진 또한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퍼걱!

회귀하여 처음 그 친구를 떠올렸을 때 도진은 생각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퍼걱!

다시 만나봐야 할까.

만나면 어떡하지?

지금 만나도 그때처럼 다시 지낼 수 있을까?

안 될 것 같았다.

퍼걱!

모든 것이 되돌아갔지만 도진은 되돌아가지 못했다.

이런 도진이 다시 한 번 '완벽하게' 그때의 인연을 되풀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퍼걱!

그렇다면 아예 만나지 않는 건 어떨까?

어차피 3년도 가지 못해 끊어질 인연이었으니까.

퍼걱!

하지만 그건 도망치는 것이었다.

다시 살며 천마의 후계자가 된 도진은 그것이 어떤 일이 되었든 외면하거나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은 만나자고 생각했다.

만난 뒤에 판단할 일이라고 임시로 결론을 내렸었다.

퍼걱!

한데, 재회는 전혀 생각지 못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인터넷이 아닌 현실에서.

그리고 그 친구는, 확정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죽음을 역겨운 자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퍼걱!

도진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결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도진에겐 있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연신극기공은 환골탈태나 다름없는 공능을 발휘한다. 근본부터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타인에게 시전하는 것으로 타인의 체질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지."

"체질의 정도에 따라 요구하는 경지가 달라진다. 다행스럽게도 삼음지체는 그 요구하는 수준이 높지 않으며 시간을 들여 바꿀 수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상한선이 내려간다. 이에 따라 삼음지체를 치료하기 위해 너에게 요구되는 것은 천마심공의 4성이다."

"너는 천마심공의 4성에 올라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도진은 망설임없이 천마심공의 4성에 오르기로 했다.

그 4성의 경지로 심공을 강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수련이었다.

본래 경지를 강제로 끌어올린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딱 하나 예외가 바로 3성에서 4성으로 올라가는 단계였다.

4성은 폭증한 천마기가 수행자의 제어를 벗어나기 위해 날뛰려드는 단계.

그러므로 일부러 천마기를 폭주시킴으로써 인위적으로 4성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위험한 일이었다. 웬만한 천재라도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일.

그러나 도진은 그것을 연습할 수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심상세계 덕분이다.

허나 그렇게 성공한다 해도 여전히 디메리트는 있었다.

안 그래도 천마기의 제어가 힘든 게 4성이다.

한데 억지로 천마기를 폭주시켜 4성에 오르니 더욱 심공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진은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 아이의 몸은 한계에 가깝다. 조금 더 지나면 4성의 연신극기공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 게다."

도진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의 사귐은 전생에서 이미 할 만큼 했으니까.

이렇게 된 거, 이번 생에서는 현실에서 인연을 쌓아 보기로 했다.

전생과 달리 도진의 세계는 방 안이 아닌 세상 전체였다.

그리고 이제, 도진의 친구 또한 그렇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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