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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2화 (72/741)
  • 72화

    우벽진과 함께 2층으로 올라온 무인들은 양기가 강한 무인들답게 덩치가 크고 험상궂었다.

    그들은 방 안에 있는 도진과 소담을 보고서는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소담을 흘끗거리는 것이 도진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이, 이건."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치료는 우리 문파의 비전(秘傳)이라 절대로 외부인에게 드러나선 안 된다고. 까먹었습니까?"

    "아, 아니야. 아니야."

    우벽진은 손자뻘의 젊은 무인들에게 쩔쩔매기 바빴다. '명장'이란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의 우벽진이 다급히 도진과 소담에게 말했다.

    "치, 치료를 해야 하니 당장 나가주게. 카, 칼은 내 다시 만들어 줄 테니 지금 당장!"

    소매를 잡아끄는 우벽진을 보며 도진은 잠시 고민했다.

    여러가지 선택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턱 너머의 무인들은 금방 소담을 알아보았고 도진 또한 알아본 기색이었다.

    험상궂은 얼굴에 꽤 다혈질로 보이는 그들이 함부로 말을 주워 담지 않은 것은 숭무고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이 다름 아닌 수석과 차석으로 유명한 도진과 소담이기 때문이다.

    '…….'

    "가자."

    결론을 내린 도진은 소담의 손목을 잡고 방을 나왔다.

    소담은 아무 말 없이 도진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도진과 소담이 떠나는 걸 지켜본 뒤에야 우벽진은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세 명의 무인 중 한 명이 웃통을 벗고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며 그의 손자, 서진의 단전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아악! 아아아아악!!"

    서진이 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내질렀다.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고 상상도 못할 고통에 그저 몸을 떨 수밖에 없다.

    마치 끔찍한 고문을 받는 것만 같은 모습.

    그러나 이것이 바로 '치료'였다.

    현대에서 '음양(陰陽)'은 하나의 커다란 분야로 자리잡았을 만큼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양기가 강하면 성격적으로는 다혈질이 될 확률이 높고 몸은 단단하고 튼튼해진다거나 하는 등의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정도로 깊게 말이다.

    이런 연구는 당연히 무공과 관련해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음기가 강하여 무공을 익히는 데 지장이 있을 경우 강력한 양강지기를 이용하여 체질을 바꾸면 해소할 수 있다는 이론 등이다.

    손자가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한 불치병으로 인해 서서히 얼어 죽게 될 상황에 처하자 우벽진은 그 '양강지기'에 주목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많은 걸 희생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게 이 치료였다.

    태양권가(太陽權家).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무림 가문으로 대기업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태양 그룹을 소유한 재벌 가문이기도 했다.

    세 명의 무인은 태양권가에서 나온 무인으로, 강력한 양강지기를 이용하여 일종의 기(氣) 치료를 서진에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깃든 내공으로 몸을 내부에서부터 얼리고 있는 음기를 녹인다.

    몸 내부에서 음기를 양기로 녹이는 그것은, 이를 테면 얼음을 불로 녹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그것이 혈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서진이 느낄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다.

    파르르-

    꽉 쥔 우벽진의 주먹이 떨렸다.

    손바닥이 굳은살로 덮여 있지 않았다면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뚝뚝 흘러 내렸을 것이다.

    우벽진은 그저 그렇게, 피조차 흘릴 수 없는 주먹을 쥔 채 고통스러워하는 손자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우."

    30분 가량이 지나자 서진을 치료하던 덩치 큰 남자가 긴 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땀에 절은 서진은 어느새 기절해 축 늘어져 있었다.

    차라리 그렇게 기절해서 다행이라고, 다행이라고 우벽진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벽진은 손자의 옷을 정리하고 이불을 덮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밖에서 세 명의 태양권가 무인이 삐딱하게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바로 어제 치료했는데 왜 또 쓰러졌습니까?"

    서진을 치료한 무인 대신 다른 한 명이 물었다.

    우벽진은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말했다.

    "…바깥으로 나왔었네."

    "뭐요!"

    바로 버럭,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분명히 말했잖습니까! 바깥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그거 하나 똑바로 못 지킵니까?!"

    손가락질까지 하며 소리치는 무인에게, 우벽진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본래 우벽진은 그리 물렁한 사람이 아니었다.

    성격에 맞지 않으면 칼같이 끊어 버렸고 작은 모욕도 가벼이 넘어가지 않는, 그야말로 불 같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며 그 뾰족했던 성격이 세월에 연마되어 어느 정도 둥글어졌다지만 본성이 바뀌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벽진이 이 새파란 무인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건, 이들이 바로 손자를 치료해 줄 무인들이기 때문이다.

    "영감님, 알잖아요? 치료가 그냥 되는 게 아니에요. 시팔, 우리가 내공을 잃어가면서 하는 게 치료야. 그렇게 치료를 해야 되는데 하루종일 여깄으면서 손자 하나 관리를 못 해요?"

    그냥 두면 이대로 흥분하여 계속 소리쳤을 무인을, 오늘 서진을 치료했던 무인이 말렸다.

    "영곤아."

    "아, 죄송합니다. 사형. 미안하게 됐습니다, 영감님. 알잖아요. 내가 말버릇이 좀 나빠서."

    "…괜찮아."

    우벽진은 태양권가와 거래를 했다.

    그 거래 때문에 태양권가 무인들이 서진을 치료해 주는데 이 치료를 하면 소량이라곤 하지만 내공을 영구히 잃게 된다고 했다.

    "미안합니다, 영감님. 사제에겐 제가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벽진은 이 무례한 무인들에게도 고개를 숙이고 그 무례를 그저 감내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이번 일에 대해선 따로 청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시게."

    "그리고 아시겠지만 다음달이 계약 갱신이 있는 달입니다."

    "…그래, 알고 있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시게."

    사제를 '말리는 척' 했던 무인과 나머지 두 사람의 무인이 떠났다.

    우벽진은 그 무인들을 현관문까지 따라가 배웅했다.

    "……."

    만약 자신의 일이었다면 우벽진은 결코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마주 소리치며 망치를 휘두르면 휘둘렀지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손자의 일이었기에.

    손자의 일이었기에 우벽진은 이토록 모욕을 감내하고 또 절대로 숙이지 않았을 허리마저 숙였다.

    평생, 스스로가 가진 자부심을 넘어설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으로 인정받았던 기술이 밑바탕이 된 자부심이었다.

    억만금조차 눈에 차지 않았고 명성조차 자부심의 곁다리에 불과하다 여겼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혈연(血緣) 앞에 너무나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거친 손가락을 움켜쥐던 손자의 그 작은 손이 차가워졌을 때 우벽진은 심장이 차가워졌고 이윽고 손자의 온몸이 차가워졌을 땐 태양처럼 찬란하던 자부심조차 그 빛을 잃었다.

    -제가 그래서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역사에 남을 명검을 만들 수 있으면 뭐하나.

    죽어가는 손자를 살릴 수 없는데.

    -서진아. 서진아…….

    그래서 우벽진은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부심을 버렸다.

    허리를 숙이고, 그 허리 위에 쌓이는 모욕감을 감당했다.

    그래서라도 손자를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그저 하나 감당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치료를 받는 손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겨내야 한다. 서진아…….'

    숨쉬기조차 버거운 열기로 가득한 방 안.

    우벽진은 턱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닦으며 손자의 얼굴을 거친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 * * *

    우벽진의 집을 나와 공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며 태양권가의 무인들 중 영곤이 말했다.

    "그런데 형님. 내공 안 아까우십니까?"

    무인에게 있어 내공이란 목숨같은 재산으로 통한다.

    한데 영곤의 사형인 종수는 그런 내공을 소량이라곤 하지만 잃게 되는 치료역을 스스로 자청했다.

    종수는 영곤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대신 몸에 좋은 거 받잖냐."

    "하지만 당장은 힘들고 손해잖습니까."

    "임마.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남들 다 안 하려고 드는 걸 내가 먼저 나서서 하니까 위엣분들이 좋게 봐주시잖아. 장기적으로 보면 큰 이득이란 말이지."

    "아! 그렇군요."

    "세상은 길게 봐야 되는 거야."

    "역시 사형이십니다."

    "한데 사형. 쟤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지금껏 침묵하던 다른 한 명이 물었다.

    종수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말했다.

    "임마. 말 조심해."

    "아무도 없잖습니까."

    "그래도 임마. 바깥에선 그 얘기 꺼내지 마라."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끝내며 우벽진의 공방을 떠났다.

    그리고 구석에서 도진이,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떠난 줄 알았던 도진이 세 사람의 무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장호에게 전수받은 무흔잠영을 이용한 은신법(隱身法)이었다.

    점과 점을 잇는 것에서 시작하는 무흔잠영의 묘리를 은신에 더하면 이렇게 은신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암살자였던 장호의 무공의 기초이니 사실은 체술보다 이쪽이 본래의 활용법에 가깝다.

    그렇게 무흔잠영을 최대로 활용하여 은신한 채 집 안에서의 일과 세 사람의 대화까지 들은 도진의 눈동자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심상세계에서 위지혁이 물었다.

    -도와주고 싶은 것이냐.

    -예.

    도진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흐음. 측은지심이냐?

    위지혁과 장호는 그것이 도진이 가진 도기(道器)로서의 성격으로 인한 것이라 보았다.

    어려움에 처한, 딱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

    위지혁은 그것이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좋다고 여겼다.

    천마는 하늘을 믿지 않고 스스로 심판하는 자들의 수장이다.

    패악을 심판하는 자. 그 안에는 딱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측은지심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한데 도진의 대답은 그런 예상을 포함하면서도 조금 더 나아간 곳에 있었다.

    -삼음지체였던 그 아이, '대장장이'였습니다.

    -대장장이?

    -예. 위 스승님과 장 스승님은 3년 정도 지난 시점부터 바깥을 보실 수 있게 되셨다고 하셨지요.

    -그랬지.

    -그러시면 '대장장이콜드'라는 아이디를, 기억하십니까?

    -대장장이콜드? 그거라면……!

    -예, 맞습니다.

    전생.

    도진은 열아홉에 처음으로 '친구'를 만났다.

    현실이 아닌 인터넷에서.

    당시의 도진은 불구가 되어 집 안에 처박힌 채 지내던 시절이었고 인터넷에 골몰해 있었다.

    그곳은 절뚝거리며 다니지 않아도 되는 세계였으니까.

    거기서 우연히 만나 서로 죽이 맞아 매일을 함께 했던 한 명이 있었으니 전생에서 유일하게 친구라 할 만한 인연이었다.

    그 친구의 권유로 함께 했던 게임이 에픽 사가.

    그리고 그 에픽 사가에서 친구의 닉네임이 바로 '대장장이콜드'였다.

    다름 아닌 우서진의 방 모니터 안에 있던 게임 캐릭터의 이름.

    그러니까.

    -그 아이……. 제 친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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