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70화 (70/741)

70화

조금 이른 시간에 나온 도진은 소담과 함께 오늘도 집행부실에 들렀다.

똑똑.

"응, 들어와."

'음?'

언제나와 같은 말인데 어쩐지 또 느낌이 다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파이어를 닮은 그 눈동자가 조금 차갑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100% 무슨 일이 있는 얼굴이라 그렇게 물으니 한유아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응, 하고 답했다.

"썸타던 애가 바람을 폈거든."

"…네? 선배 남자 친구 있었어요?"

놀라운 이야기였기에 그렇게 물으니 한유아의 눈이 더욱 차가워졌다.

"아니. 이래봬도 모태 솔로거든?"

"…자랑이 아닌 거 같은데요."

"됐고. 친추나 받아."

"무슨 친추요?"

"SNS. 팔로우 걸었으니까 받으면 돼."

대화의 맥락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러나 어쨌든 도진은 한유아의 말대로 SNS 앱을 실행해 한유아의 계정으로 온 팔로우 신청을 받아 마주 팔로우했다.

그러면서 알게 됐는데, 도진의 팔로워가 어느새 300명을 넘어 있었고 어제 올린 글의 한줄 댓글은 그 이상으로 달려 있었다.

-기숙사 배경이 너무 좋음 ㅋㅋㅋㅋㅋㅋ AI 입니까, 휴먼?

-팩트인데 너무 팩트라 팩트 과다 같읍니다..

-이런 거 말고 오성아 여신님 사진 올려주세요.

조금 생소한 느낌이었다.

도진은 조금 내성적이었지만 관심받는 건 좋아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런지 겨우 사진 하나와 짧은 글 하나에 달린 갖가지 댓글들이 꽤 기분 좋게 다가왔다.

"그럼 수업 들어가 볼게요."

"그래. 모르는 사람이랑 덥석덥석 맞팔하지 말고."

"아하하. 네."

속 편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나가는 도진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유아는 어휴,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된 일이긴 한데…….'

그녀가 잔뜩 침을 발라둔 도진에게 오성아가 본격적으로 접근해서 수작을 걸었다.

나름의 정보망을 통해 스폰서 계약을 맺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그것은 지극히 좋은 일이었으나 어쨌든 끈이 연결되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폰서 계약은 거절했으면서 SNS 계정까지 만들어서 팔로우를 하는 건 또 뭐야.

그런 불만을 품은 한유아였으나 체면과 이미지가 있는데 유치하게 그런 걸 따지고 들 수는 없으니 불만을 해소할 데가 없었다.

'이쪽도 거리를 좁히긴 해야 하는데…….'

업계 최고라는 오성의 스폰서 계약마저 거절했으니 한유아 개인적으로 어떻게 스폰을 넣어 봐야 성과를 거두긴 힘들 듯했다.

'이렇게 되면 사이 좋은 선배와 후배 구도로 가야 하나?'

인재를 낚기 위한 한유아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

오늘도 집행부실에서는 특별히 할 게 없었기에 오늘 수업에 배정된 강의실을 찾아갔다.

오늘의 오전 수업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두 개였다.

십팔반무예의 이해와 실전 무공의 기초.

역시나 기초 과목이었기에 수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숭무고 이름값을 하는지 담당 교수들의 첫인상은 물론이고 기세 또한 범상치 않았기에 도진은 따로 정정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특기할 만한 부분이라면 그 두 과목이 금준혁과 겹친다는 것, 그리고 또 걸그룹의 세 명과도 겹친다는 것이었다.

금준혁은 마주칠 때마다 도진을 노려보았지만 감히 시비를 걸지는 못했고 걸그룹의 세 명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바쁘겠지.'

어제 여유가 있을 때 잠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본래는 이은지까지 네 사람으로 데뷔했던 걸그룹 '레드슈'는 3인조로 개편 후 컴백하여 나름 주목을 받고 있었다.

멤버 전원이 숭무영재고도 아닌 숭무고에 합격했으니 이슈를 원하는 곳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을 받은 덕분이다.

노래나 멤버 개개인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점이지만 그건 차차 쌓아 나가야 하는 거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출연 빈도를 늘리는 게 최고이니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와, 존나 이기적이네;; 얼굴, 몸매, 무공 다 타고 났네..

-소진이 존예보스ㅠㅠ

댓글도 남녀 가릴 것 없이 호의적이라 이대로 인지도를 쌓은 뒤 좋은 노래 하나만 빵 터뜨리면 될 것처럼 보였다.

그 인지도를 쌓기 위해 연예게 활동에 매진해야 하니 기껏 합격한 숭무고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렇게 학점을 따기 편한 기초 과목들을 신청했을 테고 말이다.

누가 보면 차라리 숭무고를 열심히 다니는 게 낫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개인이 원하는 건 다른 법이다.

하물며 세 사람의 재능은 턱걸이로 숭무고에 합격은 했지만 그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찬 수준.

그러니 꿈을 위해 올인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도진은 혼자서 오지랖을 부려 보았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진은 소담과 함께 기숙사 공용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소담의 SNS 계정을 만들고 서로 팔로우, '맞팔'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팔로우 안 할 거야?"

소담의 물음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한유아와도 맞팔을 해서인지 주목도가 더욱 올라간 듯 팔로워가 천 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유아 또한 오성아 못지 않은 SNS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진은 오직 오성아와 한유아, 그리고 지금 계정을 만든 소담과만 맞팔을 했다.

"맞팔이란 건 아무하고나 하는 게 아니잖아."

"…응, 그렇지."

도진의 대답에 소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기분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소담은 첫 글로 도진과 함께 나란히 앉아 수저를 든 채 찍은 셀카 사진을 올렸다.

도진이 숟가락, 소담이 젓가락을 들고 있었는데 한 화면에 담기 위해 어깨가 닿아 밀착한 모습이었다.

여기에 다른 구도로 함께 찍은 건 도진의 두 번째 글로 업로드 되었다.

-함께 먹는 점심이 맛있음.

반응은 꽤 신속하고도 격렬했다.

-내가 일등이다!

-와! 무림출도녀!

-? 필터도 안 썼는데 왤케 예쁨?

-아니 잠깐만. 왜 옆에 김도진이 있음?

소담의 사진에 도진이 함께 있는 것으로 댓글이 활활 타올랐고 그것은 곧 도진의 두 번째 글로 옮겨 붙었다.

-오성아님에 이어서 한유아님을 팔로우하더니 이번엔 무림출도녀임?

-아니 양심이 있어야지;;;

-부러워하지 마라. 부러우면 지는 거다.

-시** 졌어! 졌다고! 이미 존** 철저하게 져 버렸다고 ****

-무림출도녀랑 같이 먹으면 개밥도 맛있을듯;;

-그건 원래 맛있는데.

-? 뭐요?

도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었다.

숭무고의 더럽고 끈적한 질투가 아니었기에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사람들이 SNS에 빠지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가 되자 도진의 기분이 더욱 좋아져 마치 날아갈 듯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함께 걷던 소담이 물었다.

평소에도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던 긍정적인 분위기의 도진이었으나 오늘은 전에 없이 들뜬 모습이었다.

도진은 그를 빤히 바라보는 소담의 예쁜 눈동자를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칼 받으러 가야 할 시간이잖아."

"아, 그렇구나."

소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명장이 칼을 찾으러 오라고 했던 게 바로 오늘 오후였다.

식사가 끝나고 캠퍼스를 함께 걷는 중에도 계속 기분이 좋더니 바로 그 칼을 받을 생각에 들떠 있었던 것이었다.

'애 같네.'

마치 선물을 받기로 한 날의 아이와 같은 모습에 소담은 문득 도진이 귀여워졌다.

그동안은 스스로가 말하던 것처럼 '아빠' 같은 믿음직하고 듬직한 모습만 보여주더니 이렇게 남자 아이 같은 면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갈래?"

"응."

두 사람은 함께 공방 거리로 향했다.

명장 우벽진의 공방은 공방 거리의 초입에 있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내부는 처음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방치된 온갖 무구들이 전시된 그대로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그 전시대를 지나 들어가니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우벽진이 보였다.

"명장님."

"……."

작게 부르니 우벽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은, 처음 보았던 날보다 훨씬 무기력하고 어두워서 좋았던 기분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잠깐 기다려."

우벽진이 일어나 비척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직사각형의 길쭉한 상자를 가져와 도진에게 건넸다.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도진을 위해 만들어진 칼이 담겨 있었다.

-음…….

척 봐도 고급 재료를 활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체 길이에 비해 조금 긴 손잡이는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귀중한 것이 분명한 가죽으로 꼼꼼하게 마감되어 있었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칼날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수수해 보이지만 좋은 재료들을 썼기에 심심하다기보단 깊은 맛이 있다.

분명히 비싼 검이다.

그러나.

'…느낌이 오지 않아.'

도진의 특징 중 하나는 관심을 가진 대상에 관해 인터넷으로 공들여 검색해 자료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명장 우벽진이 만든 무구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 본 순간 바로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저 잘 만든 무기가 아니라 그것을 쓸 단 한 명의 무인만을 위해 '예술품을 깎아 내는' 것이 우벽진이었기 때문에.

우벽진이 대한민국의 명장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한데 지금 도진은 상자에 보관되어 있던 검을 직접 손에 쥐었음에도 그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저 조금 좋은 검, 아니 차라리 '그냥 비싼 검'이라 해야 할 만큼이나 와닿는 것이 없었다.

'무기 주문권으론 그런 걸 느낄 수준의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명장 우벽진이 만들었다 뿐이지 세간에 알려진 수준의 '명검'은 아니어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

실망스럽다. 솔직히 많은 기대를 했으니까.

그러나 거기에 관해 불만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절세의 명검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고.

무기 주문권으로 얻을 수 있는 무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감안하자고.

그래서 도진은 실망을 감추고 웃었다.

"한 번 테스트해 봐도 될까요?"

"……."

우벽진은 대답없이 몸을 돌려 버렸다.

그것이 무언의 긍정에 가까웠기에 도진은 가죽 검집이 담긴 상자를 내려놓고 검을 쥐었다.

그리고 천마기를 일깨웠다.

두웅-!

잔잔하던 도진의 안에 숨어 있던 천마기가 이를 드러낸다.

요즘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장간 안을 가득 채우는 흉포한 존재감은 이윽고 도진이 손에 쥔 검으로 모여들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기세가 날카롭게 압축되고 또 압축된다.

그것은 마치 결코 담아둘 수 없는 폭발을 담아둔 것만 같아 위태롭고 또 위협적이다.

이것을 단번에 분출하는 것이 바로 천마검공 효아다.

도진이 상상했던 대로라면 우벽진이 만든 검은 그 효아에 완벽하게 동화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욕심이었다면, 최소한 어우러지기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쩌적-!

"……!"

조금 떨어져 있던 소담의 눈이 커졌다.

"……."

크게 일어났던 도진의 기세 또한 낮게 가라앉았다.

오른손에 들었던 검의 칼날에.

크게 금이 가 버렸다.

스윽-

도진은 조용히 검을 내렸다.

폭발할 것만 같던 기세는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롯이 검에서 도진에게로 옮겨 깃들었고, 그 기세가 깊이 담긴 눈이 우벽진의 등으로 향했다.

명장의 등을 보며, 도진은 말했다.

"이 검, 불량이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