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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9화 (69/741)
  • 69화

    오성아와의 미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저녁 8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도진은 바로 수련을 하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휴대폰을 들었다.

    '음,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해달라고 했지.'

    계약을 했기에 SNS 활동을 해야 한다.

    오성아는 최소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활동을 해달라고 했으니 당장 오늘부터 버릇을 들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조건은 없고 그저 사진 하나에 짧은 문장 하나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으니 활동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

    도진은 우선 공개된 다른 계정을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전생을 포함해 도진은 단 한 번도 SNS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없었으니 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계정에 업로드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둘러본 것이었다.

    사진 하나에 짧은 문장 하나.

    일상, 혹은 특별한 순간을 말 그대로 한 장의 사진처럼 기록한다는 느낌.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정말로 어렵지 않다.

    '그러면…….'

    도진은 자신의 계정으로 돌아온 뒤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았는데 어떤 걸 올릴지가 고민이었던 것이다.

    '오케이.'

    잠시간 그렇게 고민하다 도진은 전면 통유리에 시선을 주었다.

    통유리를 통해 비친 기숙사 바깥의 벚꽃길 야경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찍고 바로 업로드하니 이번엔 어떤 문구를 적을지가 고민이었다.

    '으음…….'

    안하면 몰라도 일단 했으면 최소한 스스로 만족할 만큼은 공을 들여야 하는 성격인지라 이 짧은 문장을 적는 데 사진을 찍는 것의 두 배는 넘는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기숙사 배경이 너무 좋음.

    …그렇게 완성된 문구가 이 정도인 건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숙제'를 끝낸 도진은 휴대폰을 두고 수련을 시작했다.

    오늘의 수련은 어제와 같이 연신극기공이다.

    초기에 현실의 수련이 매일 한계를 넘어서는 체력 단련으로 채워졌듯 연신극기공을 할 수 있게 되면서는 매일이 연신극기공이었다.

    육체 내외에 부하를 걸고 한계를 넘어설 때까지 완공을 반복한다.

    고등 무리를 포함한 수련은 어차피 심상 세계에서 할 수 있다.

    오히려 그쪽이 주변 신경쓰지 않고 죽지도 않으니 온갖 것들을 다 할 수 있어 더 좋다.

    현실에서는 그 무리를 받아들이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기초 공사'에 매진하는 것이 도진의 수련이었다.

    호흡은 물론 신진대사마저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이 수련은 도진의 육체를 거듭 진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도진의 육체는 결코 상품(上品)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평범보다 조금 나은 정도.

    천마신공 같은 무공을 익히기엔 부족하다는 말을 넘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나을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이 연신극기공이다.

    절대적인 수로 보면 세계에는 천재가 무수히 많다. 위지혁이 살던 시대에는 '천무지체(天武之體)' 같은 말도 안 되는, 요즘 시대식으로 하면 치트쳐서 만든 수준의 육체를 지닌 천재마저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천마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위지혁이 도진을 후계자로 선택했던 것. 바로 '심지'다.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천마가 되기 위해 요구하는 심지를 갖추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무소용이었다.

    때문에 천마신공은 심지를 지녔으나 육체를 타고나지 못한 후계자들을 위한 수단을 갖추어야만 했고 그것이 바로 연신극기공인 것이다.

    이 연신극기공이 도진의 육체를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황폐했던 대지를 갈아엎고 새로이 다지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육체 단련을 '기초 공사'라 했을 때 도진의 육체에 행해지는 기초 공사의 규모는 단순한 주택 정도가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마저도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차라리 도시 규모라 해야 할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위지혁의 천마신공의 입문이라 할 수 있는 '천마 군림'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보이지도 않는, 시작하는 것조차 부담되어 짓눌릴 것만 같은 그 고행을 도진은 오히려 기분 좋게 감당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호흡조차 할 수 없는 물 속에서 쇳덩이를 차고 허우적거리는 것만큼이나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그 괴로움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 괴로움으로 인하여 발전하고 있음을,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에 주목하고 기뻐했다.

    그것이 바로 도진이 천마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태도요, 심지였다.

    위지혁이 그렇게 역대 최고의 천마가 될 후계자를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음? 벌써?

    위지혁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두웅-!

    '……!'

    도진은 갑작스레 격렬해진 천마기의 기세에 피를 뿜을 뻔 했다.

    연신극기공으로 인해 가해지던 부담이 급격히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온순히, 도진의 의지에 충실히 따르던 천마기가 돌연 목줄을 잡아뜯을 듯 고개를 쳐든 느낌이었다.

    만약 한계를 거듭 넘어서는 고행으로 인해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입을 열고 말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피를 토하며 내부에 상처를 입고 말았을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이건…….'

    도진은 연신극기공을 멈추고 날뛰려 드는 천마기를 제어하는 데 집중했다.

    천마기의 '반란'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온전히 제어에 집중하자 금방 다스릴 수 있었다.

    그렇게 천마기의 제어가 끝나자 도진은 심상세계의 스승을 찾았다.

    -스승님.

    -오냐.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갑작스런, 위험했던 순간이었지만 도진도 위지혁도 담담했다.

    이것이 '예견되었던 위기'였기 때문이다.

    -벌써 4성이라니, 상당히 빠르구나 제자야.

    방금의 위기는 다름 아닌 천마심공의 4성을 앞두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천마심공의 4성.

    그것은 천마기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온다.

    말인즉슨, 3성까지는 완벽한 제어가 가능했던 천마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통제를 벗어날 위기를 안게 되는 단계였다.

    자그마했던 강아지가 대형견이어서 급격히 성장하는 것과도 닮았다.

    천마심공의 연공에 있어 가장 위기가 되는 단계이기도 했다.

    도진은 방금 완숙에 이르렀던 천마심공의 3성이 4성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위기를 겪은 것이다.

    -말했듯, 선택은 너의 몫이다.

    여기에 이른 도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천마심공을 억누르고 경지 자체를 높여 4성의 천마기마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뒤에 천마심공을 다시 수련하는 것이다.

    천마심공을 제어하지 못해 일어나는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이대로 천마심공의 4성에 도달하여 제어를 벗어나기 위해 반항하는 천마기를 제어하는 수련을 병행하는 것이다.

    심공의 주인을 공격하려 드는 천마기까지 제어하며 연신극기공을 수련해야 하니 수행이 더욱 어려워진다.

    도진의 성격상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겠지만 현실까지 고려하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도진이 있는 곳이 숭무고이고, 이곳에서는 계속 무공을 써야 하니 말이다.

    몸 속에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을 안고 있는 꼴인데 이런 상태로 적진 한복판을 종횡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4성에서 5성에 이르기 위해선 최소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위지혁은 말했다.

    그나마도 심상세계에서의 수련을 감안한 시간이었다.

    '음.'

    눈앞에 두 갈래길이 펼쳐졌다.

    결국은 합쳐지겠지만 합쳐지기까지의 풍경이 달라진다.

    그러나 도진은 지금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4성의 앞에서 고민해 보겠습니다.

    4성에 가까워졌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4성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주일 뒤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반 년 뒤에 오를 수도 있을 만큼 천마심공의 경지를 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되어서 고민하기로 한 뒤 다시 연신극기공의 수련에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간간이 천마기가 통제를 벗어나려 들 수도 있으니 그것까지 고려하여 수련해야만 한다.

    물론, 도진은 그것마저 수련이라 생각했기에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 * * *

    다음날.

    수련을 마치고 샤워 후 기숙사를 나오니 소담이 그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응, 안녕."

    어제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걷는다.

    언제나와 같은 일상.

    "……."

    한데 도진은 어째 소담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럴 땐 머뭇거리기보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는 도진이 물었다.

    "왜 그래, 소담아. 무슨 일 있어?"

    "으응, 아니야."

    소담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넘어갈 만큼 도진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소담아."

    진지한 목소리에 소담이 움찔했다.

    "…응?"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줘. 숨겨두지 말고."

    그렇게까지 말해 버리니 소담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너, SNS 만들었더라."

    "응? 너도 SNS 해?"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도진이 물었다.

    어제 SNS 계정을 만들었다는 걸 안다는 것은 소담이 SNS를 하고 있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소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뉴스에 나왔거든."

    "엥?"

    아니 내가 SNS 만든 게 무슨 큰일이라고 뉴스까지 나와?

    그렇게 생각한 도진이었으나 소담의 휴대폰에는 정말 그게 기사로 나와 있었다.

    -숭무고 42기 수석, 오성의 SNS 여신과 팔로우!

    -숭무고의 수석, 오성의 품으로?

    기사들을 확인해 보니 도진이 오성과 인연을 맺었다는 내용들이었다.

    알고보니 오성아는 'SNS 여신'으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 미모에 성격, 능력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보다 더 대단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오성의 직계였구나.'

    오성의 회장인 오군성의 아들이자 후계자, 오주형 오성 부회장의 2녀가 다름 아닌 오성아였던 것이다.

    재벌 3세가 눈부신 미모를 가지고 왕성하게 SNS로 소통하고 있으니 SNS 여신으로 통하며 엄청난 수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새로이 계정을 만든 도진이 서로 팔로우 상태인 게 알려지며 기사까지 난 것이었다.

    둘이 팔로우한 것만으로도 꽤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스폰서 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그런 관계가 될 거라는 예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아,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그 언니 설득으로 계약하게 된 거야?"

    소담의 물음에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스폰서 계약은 안 할 거라고 못 박아뒀어. 이건 그냥 알바 같은 거야."

    도진은 어제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무얼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동등한 관계로서의, 종속되지 않는 비즈니스 관계임을 확실히 말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담의 그 미묘한 분위기는 풀리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걸로는 풀릴 수가 없는, 이미 늦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이의 처음을 빼앗겼어.'

    소담의 분위기가 달랐던 건 도진이 처음으로 만든 SNS 계정의 첫 팔로우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진이 그랬듯 그녀 또한 SNS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만약 한다면, 그녀는 어제 노래방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서로의 처음이 되기를 바랐다.

    한데 그것을 '불여우 언니'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걸 기사로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걸 진지한 눈빛을 보내는 도진에게 이실직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한 단계 건너뛰고 말했다.

    "나도 SNS 계정 만들래."

    "응? 너 계정 없어?"

    "응.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랬구나. 그럼 점심 시간에 같이 만들까?"

    "응!"

    첫 팔로우는 놓쳤지만 함께 계정을 만들 수 있게 됐으니 아쉽지만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새로운 SNS 여신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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