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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8화 (68/741)

68화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은 굳이 분류하자면 '비즈니스 레스토랑'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홀 외에도 방음이 완벽한 프라이빗룸이 2층에 있어 식사와 함께 업무까지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었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오성아 덕분에 분위기도 좋았다.

"저도 입학식에 갔었는데, 선서하는 도진 학생이 꽤 인상 깊었어요."

"아하하. 그랬나요?"

도진은 몰랐지만 그날 입학식엔 오성아도 있었다.

오성 그룹 관계자이자 신입생의 혈연관계로 참석했던 것이다.

오성아의 목소리는 톤이 높아 활달하면서도 템포가 잔잔하고 부드러워 듣는 사람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또한 타고난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임을 도진은 짐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호감이 갔다.

노력하여 극대화한 장점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을 도진은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랬기에, 식사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갈 분위기에서 도진은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아,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는 오성아를 보며 도진은 말했다.

"다른 건 협의할 수 있겠지만 죄송하게도 '스폰서 계약'은 할 수 없어요."

"음……. 스폰서 계약만큼은 하실 수 없다는 건가요?"

"네."

스폰서 계약은 말 그대로 '계약'이다.

후원자, 혹은 단체와 후원을 받는 무인 사이의 계약.

그렇기에 법적으로도 강제성을 띠며 서로에게 의무와 권리가 발생한다.

주고받는 관계이기에 불공정 계약이 아닌 이상 서로에게 이득이 되며, 특히나 오성 정도 되면 심지어 '은총'이라고까지 불리는 그 스폰서 계약을 지금 도진은 하지 않겠다 선언한 것이었다.

"혹시 오성 말고 다른 곳과 이미 스폰서 계약을 맺으신 건가요?"

"아뇨, 어떤 곳과도 맺지 않았어요."

그럴 것이다.

이번 년도 숭무고 수석 김도진은 오성의 회장이 찜했다고 이미 소문이 났으니까.

숭무고 수석 정도 되면 여기저기서 일찍이 스폰서 제안이 오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여지껏 도진에게 접촉한 것이 오성아뿐이었던 것은 사자군 오군성이 도진을 이미 점찍었다는 게 널리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인재 욕심이 강한 오성은 본래부터 될성부른 떡잎의 후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나 그것이 회장 오군성이 찜한 인재라면 아예 경쟁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걸 그동안의 사례로 증명해 보였다.

때문에 무조건 영입해야 할 만큼의 인재가 아니라면 경쟁자들은 오군성이 찜한 인재는 배제하는 게 보통이었고 경쟁자조차 되지 못할 기업들은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김도진은 어떤 곳의 스폰도 받지 않았을 텐데 그 유명한 '오성의 은총'을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못박아 버렸다.

때문에 오성아는 의외라 생각하며 물었다.

"혹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음, 간단한 이유예요. 스폰서 계약이라는 건 말 그대로 계약으로 저와 오성이 묶이는 거잖아요.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갑을 관계에서 제가 '을'이 되는 거구요."

"그건……."

"오성의 스폰서 계약 표준은 졸업 후 5년을 오성에서 일하는 거였죠."

그것은 '의무'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오히려 '권리'로 통하는 조항이었다.

무림 관련 사업을 하는 세계적인 대기업 오성에서 확정적으로 5년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의무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도진에게는 아니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일 년 일 년이 참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좋은 경험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경험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 더 필요해요."

그렇게 말하는 도진의 모습은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는 남 밑에서 일하기보다는 제가 주인이 되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스폰서 계약은 하지 않으려구요. 대신."

도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성과 '동등한 관계'에서의 계약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요."

"아……."

오성아의 체리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원하는 표정을 포커 페이스로 유지하는 것 또한 특기인 것이 그녀라는 면에서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으며, 그 이례적인 상황을 부를 만큼 오성아의 눈에 비치는 도진은 특별했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른 곳도 아닌 숭무고 수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란 말이다.

심지어 흙수저.

한데 그런 고등학생이 말하는 포부가 결코 치기로 보이지 않았다.

남 밑에서 일하기보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오성에 입사하는 것보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

심지어, 그녀에게 있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오성과 동등한 관계에서의 계약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조차 허세가 아니었다.

그 말이 진심이며 결코 허세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세가, 지금 눈앞의 학생에게는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오성아의 표정을 무너뜨렸다.

제국의 주인인 오군성이 도진을 '잠룡'이라 불렀던 것으로 인해 도진의 별호는 현재 잠룡으로 굳어가는 분위기였다.

그 별호가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오성아는 하고 말았다.

눈앞의 학생은 '아기 사자'가 아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승천해 버릴 용이었다.

"이걸 미리 말씀드려야 스폰서 계약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먼저 말씀드렸어요. 오성아 컨설턴트님 정도 되시면 시간은 금이잖아요?"

연하의 용에게 홀려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해 속으로 피식 웃는 것으로 감정을 가다듬은 뒤 오성아는 말했다.

"배려 감사해요.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폰서 계약시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서 설명은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얼마든지요."

도진의 수락 하에 오성아는 참고 서류를 내밀며 스폰서 계약 시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특유의 듣기 좋은 목소리와 톤으로 설명해 주었다.

계약 기간 동안 오성에서 제공하는 사택, 신축 아파트 단지에 입주할 수 있는데 전세도 아니고 월세도 아니며 보증금조차 없이 월 5만원의 관리비만 내면 된다.

그것이 4인 가족이 살기에 충분한 방 4개의 신축 아파트라는 걸 생각하면 압도적인 혜택이다.

심지어 차량도 한 대 지급되며 금전적인 지원은 아예 연봉 개념이라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오성의 직원처럼 대우해 주는데 해야 할 일이라곤 열심히 무공을 익히는 것뿐이며 졸업 후 직장 또한 보장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은총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듣고도 도진은 웃으며 그저 고개를 저었다.

매력적이며, 안주하고 싶은 혜택들이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기엔 도진이 보고 있는 미래가 너무 멀고 또 높았다.

미래, 그리고 자신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보이는 태도에 오성아 또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안목을 믿기에 스폰서 계약에 대한 부분은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두 번째 제안을 했다.

"동등한 계약이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하셨죠?"

"네."

"그럼 그쪽으로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건가요?"

"SNS 활동을 해주셨으면 해요."

"어…… SNS요?"

"네. 아실지 모르겠지만 오성에서는 SNS 마케팅에도 공을 들이고 있거든요."

도진은 SNS를 전혀 하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그녀의 말처럼 오성은 SNS 마케팅에 꽤 공을 들였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기에 도진 학생이 참여해 주셨으면 해요."

오성아의 설명에 따르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런 제약 없이 딱 하나, 며칠에 한 번 정도씩 꾸준하게만 SNS 활동을 해주면 되었다.

이를테면 점심 식사 사진을 찍어 올리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으니 정말로 쉬운 일이다.

"그 계정으로 저희가 몇 가지 PPL을 요청할 텐데 솔직하게 리뷰를 올려주시면 돼요."

SNS를 통한 PPL은 SNS를 하지 않는 도진에게도 아주 익숙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무림의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주로 수입을 얻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음…… 알겠어요."

오성아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검토한 결과 괜찮다 생각했기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SNS란 건 익숙하지 않았지만 또래가 모두 하는 것이니 이참에 입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건 '건당 계약'의 개념이고 광고이지만 정말로 솔직하게 평가를 내리면 되는 일이니 걸리는 게 전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썼다.

당장은 SNS 활동을 어느 정도 하여 광고를 위한 것이 아닌 일상 계정으로서의 이력을 쌓아야 했다.

"좋아요. 그럼 계정부터 만들어 볼까요?"

"어, 여기서요?"

"네! 저랑 팔로우도 해야죠."

그리하여 도진은 바로 앱을 내려받아 계정을 만들고 첫 번째로 오성아와 이웃 관계가 되었다.

거기까지 하고서야 미팅이 끝났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아! SNS에서는 자주 봤으면 좋겠네요."

"아하하. 네. 안녕히 가세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던 오성아는 몸을 돌려 회사로 향했다.

특기할 부분이라면 그녀가 향하는 곳이 오성 재단이 아닌, 오성 그룹 본사라는 것이었다.

사원증을 통하여 본사의 특별한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녀가 대면하게 된 것은 오성 그룹의 주인, 사자군 오군성이었다.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회장님."

오성아는 놀랍게도 오군성에게 직접 보고를 하러 온 것이다.

"그래."

나른하게 몸을 기댄, 그러나 사자로서의 기세가 강렬하게 묻어나는 오군성을 앞에 두고도 오성아는 침착하게 오늘 계약에 대해 보고했다.

빠짐없이, 그러나 요점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보고하는 오성아의 말을 다 들은 오군성은 만족스레 웃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동등한 관계'라……."

주제를 모르고 주워담는 말이었다면 언짢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도진이 어떤 인물인지 직접 보아 아는 오군성이었고, 그가 신뢰할 만하다 생각하는 오성아의 안목으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였기에 만족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좋아. 여기서부터 시작하도록."

관계란 대번에 깊어질수록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다름 아니다.

오래, 그리고 단단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기초부터 쌓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오군성은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인재를 감복시키는 것 또한 오군성에게 있어선 특별한 재미였고.

때문에 스폰서 계약은 아니어도 오래 지속될 관계를 만든 오성아의 성과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가 봐."

깊숙이 허리를 숙여 보인 뒤 오성아는 회장실을 나왔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그제서야 그녀는 퇴근을 했다.

하지만 일과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그녀는 회사 내에 마련된 체력 단련실에서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운동과 무공 수련까지 하고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아."

조금은 늘어지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그녀는 운동화를 벗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고생 많으셨어요."

"네에."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집이었기에 흐느적거리며 들어온 그녀는 곧 동생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생의 얼굴이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엉망이었기에, 오성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대용이 너…… 얼굴이 왜 그래?"

"…신경 꺼."

삐딱하게 맬을 내뱉으며 그녀를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간 것은, 다름 아닌 오대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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