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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6화 (66/741)

66화

아침.

도진은 새벽 단련을 마치고 샤워를 했다.

소담과 함께 산 새 욕실 용품들이 나란히 배열된 것이 보기 좋았다.

샤워 후엔 안내 책자를 참조하여 최신형 드럼 세탁기를 돌려 보았다.

'차라리 건조기까지 일체형이면 더 편했을 거 같기도 한데…….'

세탁기와 건조기가 일체형이면 빨래 코스가 다 끝난 후 건조까지 할 수 있어 한 큐에 빨래가 끝이 난다.

하지만 기숙사에 배치된 건 세탁기와 건조기가 따로라 빨래를 한 번 건조기로 옮겨야만 했다.

피식-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더니.'

스스로 했던 생각에 도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그 말대로였다.

검색해 봤는데 이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의 최저가는 무려 630만원이었다.

각각 전문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일체형보다 특화된 기능이 있다는 것이니 방금의 생각은 그야말로 욕심이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했던 집안일들이 버릇이 되어 그렇게 청소와 빨래까지 끝낸 도진은 가방을 챙기고 기숙사를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니 남산의 시원한 바람에 벚꽃이 그림처럼 날리고 있었다.

숭무고 기숙사의 명물 '4월의 벚꽃길'의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벚꽃길의 장관을 배경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여신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소담이다.

벚꽃길을 배경으로 두고 기다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비현실적인 미모를 뽐내던 소담은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는 도진을 대번에 발견하고선 활짝 웃었다.

"와……."

"……."

지나가던 학생들 대부분이 넋을 놓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따사롭게 내리는 햇빛 같은 소담의 미모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시선을 빨아들인다.

"안녕."

"응, 안녕!"

그 시선들은 곧 소담과 친근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진에 이르러서는 강렬한 질투가 되었다.

본래부터 도진을 싫어하던 학생들은 그 질투가 증오가 되었고.

"…존나 부럽다 시발."

"분홍색 똥 좀 빨리 치웠으면 좋겠다."

도진을 싫어하지 않는 학생들은 그저 봄의 벚꽃마저 꼴뵈기 싫었다.

그런 학생들의 시선과 말, 그리고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도진은 소담과 함께 벚꽃길을 걸었다.

항상 그랬지만 오늘의 소담은 어쩐지 더 밝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기분 좋아 보이네."

"응? 응. 벚꽃 이쁘잖아. 같이 걸으니까 좋다."

"하하. 그렇네."

아무래도 여자애라 그런지 이런 걸 좋아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도 웃었다.

두 사람은 길게 이어진 벚꽃길을 지나 본청 옆 별관으로 향했다.

다름 아닌 집행부실로 가는 것이다.

똑똑.

"응, 들어와."

노크하니 언제나처럼 한유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언제나처럼 한유아가 민지서와 함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

"응응, 어서와.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알아서 들러 주고 정말 착해."

두 사람이 집행부실에 온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집행부원이니까.

부르지 않아도 이렇게 얼굴을 비추러 온 것이었다.

한유아는 그게 마음에 들어서 활짝 웃었다.

이쪽은 태양처럼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웃음이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해서 왔어요."

"응응, 괜찮아. 폭룡도 없고 검봉도 없지만 뭐 원래 일은 대부분 나랑 지서가 했으니까 익숙해."

"…그러셨군요."

은근슬쩍 한유아가 폭룡과 검봉을 깐 것 같다.

전문용어로 디스.

'아니, 잠깐만.'

여기서 문득 도진이 생각했다.

현재 집행부의 1학년은 나랑 소담이뿐인데 앞으로 나랑 소담이가 선배가 하던 일을 다 맡아야 하나, 하고.

경험이 좋고 배움도 좋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선배. 집행부원이 총 몇 명이죠?"

"3학년 선배들은 이제 관여하지 않으니까 2학년은 나랑 지서랑 폭룡이랑 검봉이랑 네 명. 1학년은 현재 너랑 소담이 이렇게 두 명. 총 여섯 명이네."

"……."

적다. 그것도 엄청.

안내 책자에 따르면 잘 나가는 동아리의 경우 부원이 백 명이 넘었다.

동아리의 경우 숭무고만이 아니라 숭무영재고의 학생들까지 함께 하니 가능한 인원수인데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집행부의 인원이 단 여섯 명이라는 거다.

학교의 온갖 일을 주관하는 부가 이렇게 인원이 적어서 될 일인가.

심지어 두 명은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원으로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도진의 기색을 읽은 한유아가 아하하, 웃었다.

"걱정 안해도 돼. 우리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사령탑이니까. 실제로 움직일 사람들은 따로 있으니 생각보다 할 만해. 회사 하나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게 어려운 건데 말이죠.'

그래도 사회 생활을 해 본 도진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짐작만큼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1학년 부원은 몇 명 더 뽑을 거니까."

"아, 그런가요."

하지만 걱정은 생각보다 빨리 해소되었다.

'그렇지.'

생각해보니 이제 겨우 입학식 다음날이다.

동아리에 가입할 학생들을 뽑는 건 보통 오늘부터 시작이고 집행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원은 보충될 예정이다.

다만.

'누가 들어오려나…….'

다른 곳이 아닌 '숭무고의 집행부'에는 숭무고 학생들만이 입부할 수 있다.

그리고 숭무고의 학생이라면 높은 확률로 도진에게 적대적이다.

다른 의미로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진이었다.

'뭐, 그것도 다 경험이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수인계부터 해서 본격적인 활동은 부원 모집이 끝나면 할 예정이야. 그러니까 이번 주는 편히 지내도 돼."

"알겠습니다. 그럼 인사하러 들리는 정도로만 할게요."

"어휴, 정말 이쁜 말만 골라서 하네. 그래, 그럼 매일 얼굴이나 보자."

오늘의 집행부 방문은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여유롭게 학교 산책을 했다.

대학교나 다름없는 숭무고 캠퍼스 내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숭무영재고 학생이었다.

숭무고 학생들과 달리 그들 대부분은 함께 걷는 도진과 소담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내왔다.

그 미모를 지니고 이 시대에 무림출도를 실현한 소담에게, 그리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도진에게 보내는 동경의 시선이었다.

그들은 각종 장학 제도나 특기생으로, 혹은 피 터지게 수련하여 숭무영재고에 입학한 학생들이기에 순수하게 도진과 소담을 동경하고 또 부러워하는 것이다.

소수의 도진을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이 있긴 했으나 이쪽을 신경쓸 만큼 도진의 자존감이 낮지 않았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학생들이 많네."

"응, 그러게."

사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 연도에 입학하는 학생이 169명밖에 되지 않으니 학교가 휑하고 널널하진 않을까 하는.

하지만 얕은 생각이었다.

숭무고의 캠퍼스는 이천여 명에 달하는 숭무영재고 학생들과 공유하는 공간이었기에.

다수의 부지가 수련장 등의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걸 감안하면 캠퍼스 내 인구 밀도는 생각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도진과 소담이 함께 들을 '검공 입문'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어……."

"사람 많네……."

"응, 그렇네."

두 사람이 신청한 검공 입문 과목은 '검리지(劍理地)' 내에 있는 이론관의 강의실이 배정되었다.

숭무고 캠퍼스는 보통 '지(地)'를 붙여 구역을 구분했다. 그러니까 검리지는 캠퍼스 내에 검을 주로 쓰는 학생들을 위한 구역이다.

중요한 건, 검공 입문은 수업 이름처럼 검의 기초에 대해 공부하고 실습하는 과목이었기에 도진과 소담은 강의실이 꽤 휑하지 않을까 했는데 완전히 반대였다.

마치 극장처럼 넓은 강의실 내에는 83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수월했던 수강 신청이었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 수업은 숭무영재고와 함께 듣기 때문이었다.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수업은 함께 듣지만 수강 신청 인원의 배정은 숭무고와 숭무영재고가 별개였기에 도진과 소담의 수강 신청은 널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숭무영재고는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초는 중요하다. 그리고 숭무영재고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있어 숭무교의 교사를 맡고 있는 '고수'에게 배우는 기초 이론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완전 기초도 아니고 숭무영재고의 수준에 맞춘 기초일 테니 더더욱.

신입생이니 기초부터 밟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1학년 때엔 심화 과목보다 기초 과목의 학생들이 더 많았다.

그 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진과 소담은 맨 앞자리로 향했다.

비어 있는 자리가 맨 앞 줄과 두 번째 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명문고라도 이런 건 다르지 않구나.'

내심 웃으며 도진은 소담과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았다.

교수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자리.

보통은 꺼려하는 그 자리에 서슴없이 앉은 건 이번 생에서 도진이 모범생이 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은근한, 그러나 무수한 시선들을 뒤통수로 받으며 담당 교수가 오길 기다렸다.

한데 담당 교수보다 먼저 들어온 학생이 있었으니 도진도 안면이 있는 학생이었다.

'오.'

"…까득."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가는 그는 다름 아닌 금오 그룹의 장남, 금준혁이었다.

입학식에서 도진에게 수작을 걸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도진 때문에 음식으로 샤워를 하며 개망신을 당했던 그 금준혁.

당시에는 현명하게(?) 대처를 하여 작은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금준혁의 안에선 세계 대전만큼이나 크고 명확한 상처를 남긴 일이었다.

그러니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갈며 반응하는 것이고.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죽일 듯이 노려보고 또 이를 갈았지만 덤벼들진 못했다.

최소한의 머리가 있는 만큼 덤벼봐야 또 한 번의 개망신만 당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함께 수업에 들어온 명목은 친구, 실제론 똘마니인 세 명과 함께 덤벼봐야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까지 똑똑한 금준혁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얌전히 도진의 건너편, 우측 맨 앞 자리에 친구들과 앉았다.

'두고 보자. 금방 역전해서…….'

가운데가 통로로 되어 있는데 왼쪽엔 도진과 소담, 우측에는 금준혁과 똘마니들이 앉은 모양새다.

그 상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교수가 들어왔다.

무림인답게 큰 키와 탄탄한 몸을 지닌, 그러나 동시에 지적인 인상이 강하게 남는 그는 다름 아닌 삼재인 정도수였다.

삼재인(三才人) 정도수.

이번 숭무고 입학 시험을 제안하고 총 지휘를 맡았던 무인으로, 그 별호처럼 세 가지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 세 가지에 검과 학문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번에 검공 입문이란 과목을 맡은 그는 학생들을 보며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검공 입문 과목을 지도하게 된 정도수입니다. 서로에게 큰 결실이 되는 한 학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정도수에게 학생들이 박수를 보냈다.

"첫 시간이고 아직 정정 기간인만큼 본격적인 수업을 할 수는 없고…… 가벼운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는 건 어떨까 싶군요.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간 꽉 채우진 않을 테니까요."

하하하-

분위기가 좋다.

삼재에 들어가진 않지만 정도수는 분위기를 이끌 줄 알고 입담 또한 좋았던 것이다.

그런 정도수가, 마치 기습처럼 금준혁에게로 시선을 향하며 물었다.

"학생은 만병지왕(萬兵之王)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버버.

기습을 당한 금준혁의 입술이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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