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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5화 (65/741)
  • 65화

    무기를 주문하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어느새 5시가 넘어 있었다.

    "같이 저녁 먹을까?"

    "응."

    약간 이른 시간이었지만 도진과 소담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만찬을 포함한 입학식에서 이것저것 먹긴 했고 수강 신청을 하면서도 주전부리를 챙겼지만 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고 하기엔 뭐했으니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한 것이었다.

    "근데 3일만에 칼을 만들 수 있는 건 줄은 몰랐어."

    "응, 그러게. 나도 칼 만드는 데엔 한 달 넘게 걸리는 게 보통이 아닐까 했는데."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다름 아닌 오늘 주문한 칼에 대해서였다.

    우벽진은 목요일 오후에 칼을 찾으러 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따지고 보면 3일 만에 칼이 완성된다는 소리였다.

    대장장이, 공방, 명인 등의 단어를 생각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케바케라고 하네."

    케바케.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소리다.

    도진이 검색해보니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실제로 3일만에 만드는 것도 가능한 듯한 글들이 몇몇 보였다.

    '하긴. 요샌 장비도 기술도 좋아졌으니까.'

    실제로 완전 수작업에 명품을 만드는 데엔 한 달은 물론이요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상황과 요건에 따라선 심지어 하루 만에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장비가 일한다는 말이 있듯 현대 문명의 이기를 더하면 제작 기간이 폭발적으로 단축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주문한 물건은 명품까진 아닐 테니 3일이면 가능한 모양이지, 하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럼 내일 보자."

    "응. 내일 봐."

    식사 후 도진은 소담과 헤어져 남자 기숙사로 향했다.

    비어 있는 저녁 시간은 온전히 수련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이었다.

    도진은 기숙사 내에 마련 되어 있는 헬스장이나 조금 떨어진 별관에 마련된 훈련장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 들어섰다.

    "후우……."

    길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도진은 천마기를 끌어올렸다.

    두웅-!

    거칠게 요동치며 단전에 깃들어 있던 천마기가 혈도를 따라 내달린다.

    보통은 운동 능력을 상승시키고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그 천마기를, 도진은 역으로 몸에 부하를 거는 데 이용했다.

    그그긍-!

    마치 온몸에 쇳덩이를 찬 듯 몸이 무거워진다.

    심지어 호흡마저 자유롭지 않아 물 속에 들어온 것만 같다.

    단순히 몸을 힘들게 하는 걸 넘어 내부 장기에마저 부담을 가한 것이다.

    그 상태로 도진은 '완공(緩功)'을 시작했다.

    완공이란 말 그대로 느리게 수련하는 것을 뜻한다.

    영상을 몇 배로 느리게 재생한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임으로써 자세를 완벽하게 가다듬으면서 곱씹는 데 의의가 있다.

    이 과정에서 육체 단련 또한 병행한다.

    도진은 여기에 하나 더, 본래는 단련할 수 없는 '육체 내부의 단련'마저 병행했다.

    일반적으로 몸 속은 단련할 수 없기에 무림에서는 치명적임에도 막을 수 없는 약점으로 여겨졌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부러졌다 붙은 뼈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피부 또한 단련함으로써 질기고 단단한 근육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심장, 폐, 위 등의 장기는 결코 단련할 수 없다.

    때문에 격산타우(隔山打牛),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등의 수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겉을 완벽하게 막아도 그 방어를 무시하고 내부에 타격을 주는 수법에는 속수무책이니까.

    이것은 그 수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진만은 여기서 예외가 된다.

    바로 위지혁에게 전수받은, 지금 수행 중인 천마 고유의 '연신공(鍊身功)' 덕분이다.

    천마신공 내에 포함된 연신공은 흉포한 천마기를 활용하여 육체 내부마저 단련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신체 내부를 파괴하는 내가중수법마저도 무력화하는 것이다.

    신비가 깃든 진무마저 넘어서는 신공(神功)다운 효능이다.

    이 연신공은 현대 무림을 살아가야 하는 도진에게 특히 중요했는데, 일정 경지 이상에 도달할 경우 무려 총마저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먼 이야기지만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에서 무림인이 총 등의 현대 화기에 당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을 초월한 힘을 내는 무림인이라 해도 결국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니까.

    때문에 한국의 흑도에서마저 불법적으로 권총 등을 밀수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비록 대물저격총 등의 말도 안 되는 무기는 막을 수 없다 해도 눈 먼 총탄에 당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신공은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신공이었다.

    도진은 천마심공의 3성이 완숙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이 연신공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슬슬 버피 등의 단련으로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게 힘들어졌을 즈음 이룬 쾌거였다.

    연신공에 입문하면서부터 도진은 더 이상 힘들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억지로 한계에 도달할 필요가 없어졌다.

    천마기를 이용하여 대번에 그것이 가능해졌으니까.

    여기에 연신공의 효율을 극한까지 높여주는 '연신극기공(鍊身克己功)'을 병행함으로써 육체의 외부와 내부를 천마에 어울리는 형태로 바꿔나가고 있었다.

    대성을 이루면 천마군림을 자유자재로 시전할 수 있게 된다고 위지혁은 말해 주었다.

    대물저격총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호언장담은 덤이다.

    그 대성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살짝은 조바심을 내게 만들었지만 도진은 거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리며 묵묵히 오늘의 수행을 마쳤다.

    무공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수행이다.

    털퍽!

    수행이 끝나고 천마기를 거두는 순간 도진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엎어졌다.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한계까지 모든 것을 소모한 것이었다.

    -수고했다.

    -예, 스승님.

    말조차 하지 못해 심상으로 답했다.

    15분이 지나서야 겨우 흐느적거리면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샤워를 하며 조금 더 회복한 뒤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세 마리 세트 주세요."

    그리고 홀로 치킨 세 마리 세트를 시켜 먹었다.

    양념, 치즈, 간장의 호화로운 구성이었다.

    심지어 100% 다릿살 순살이다.

    여기에 양념감자까지.

    그렇게 혼자 만찬을 즐기고 있으니 밤 늦게 저녁을 먹던 다른 학생들이 적대적인 시선으로 수군거렸다.

    "저 새끼 처먹는 거 봐라."

    "저걸 저렇게 먹는다고?"

    "제대로 먹을 돈이 없는갑지."

    낄낄거리며 악담을 퍼붓는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식단이었다.

    본래 상승의 경지를 노리는 무인일수록 철저하게 식단 관리를 해야 한다.

    현대의 음식들은 하나 같이 내공의 길인 혈도(穴道)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혈도가 도로라면 맵고, 짜고, 화기(火氣) 가득한 현대 음식들은 그 도로를 막는 온갖 장애물들이다.

    내공의 운용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라고 했을 때 혈도가 불순물로 인해 막힘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는 굳이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몸을 단련하고 일반인의 수 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무림인은 그만큼이나 많은 에너지를 보충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온 것이 그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한 '퓨어 푸드(Pure food)'인데, 불순물을 제거하고 영양소는 풍부하게, 그러면서 맛도 보장하는 퓨어 푸드는 당연히 일반 음식들보다 몇 배나 비쌌다.

    당장 퓨어 푸드라는 이름을 붙일 수조차 없는, 그러나 최소한의 효과는 있는 불스 버거만 해도 일반 버거의 1.5배는 비쌀 정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무인들은 이 퓨어 푸드를 포기했다.

    단전을 형성하고 일정 경지에 이르면 내공 수련으로 그 불순물을 어느 정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막히고 좁아진 혈도를 완전히 복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성장기에 풀만 먹으며 몸을 안 만들 수도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다.

    악담을 퍼붓는 학생들의 말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도진이 먹는 것은 그 혈도에 치명적인 달고 짠 치킨이었으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숭무고 학생이 먹기엔 너무나 비상식적인 음식이었다.

    그걸 자제도 못하고, 혹은 돈이 없어 먹는다고 낮잡아 보고 조롱하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의 시선과 조롱에.

    도진은 그저 피식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우월감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의 그런 생각이 모조리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무공을 익힌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험담을 하는 놈들의 생각이 맞다.

    그러나 도진은 그 '일반적'이라는 단어와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천마의 후계자요 진무마저 굽어보는 천마신공을 익힌 무인이다.

    음식에 포함된 불순물? 그런 건 제트 엔진을 단 불도저보다 흉포한 천마기에 의해 흔적도 남지 않고 분쇄돼 몸 밖으로 배출된다.

    맛과 영양은 풍족하게 챙기면서 불순물은 전혀 남지 않으니 도진이 걱정할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하니 일체형 변기가 수압이 약해 큰 볼일조차 제대로 흘려내지 못하고 막혀 버리는 것마냥 연약한 심법 때문에 먹고 싶은 것조차 마음 놓고 먹지 못하고 그저 도진을 험담할 뿐인 놈들의 이야기에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부러워서 이 악물고 중얼거리는 모양새니 오히려 웃음이 날 수밖에.

    "개역겹네 진…… 흡."

    물론, 모든 걸 그냥 넘기진 않았다.

    동네 미친개가 짖는 것이 진지하게 화낼 일은 아니라지만 기분 나쁜 건 나쁜 것이니까.

    선을 좀 넘는다 싶으면 지그시 노려보며 살생부, 데스 노트에 얼굴과 이름을 꼼꼼히 입력해 두었다.

    그러면 호랑이를 마주한 하룻강아지마냥 꼬리를 깨갱, 하고 내리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고선 허세를 부려 또 한 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데스 노트를 대규모 업데이트하며 만족스런 식사를 마친 도진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수천만 원짜리 침대는 과연 구름 위에 누운 듯한 안락감을 선사했다.

    '아, 좋다.'

    쉬는 것 또한 수련이다.

    극한으로 몰아붙인 도진의 몸은 풍족한 식사를 통해 공급된 영양소를 받아들여 회복하면서 더 탄탄해지고 있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게 아닌 몸을 '진화시키는' 것이었기에 수련 후 많이 먹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었다.

    무인이기에 소화불량이나 역류성 식도염 등의 질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도 좋다.

    이렇게 회복과 진화를 할 동안 심상세계에서 위지혁, 장호와의 수련을 하고 또 새벽에 일어나 수련을 하는 것이다.

    그 진화하는 몸의 변화를 느끼며 도진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했다.

    '보자…….'

    당장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

    수강 신청·정정 기간이라 신청한 과목들이 '맛보기 수업'을 하는데 거기에 참석해 볼 생각이다.

    숭무고의 '클라스'가 있으니 실망스런 수준은 아닐 테지만 혹시라도 맞지 않거나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과목을 바꿔야 하니까.

    '아, 그렇지.'

    시간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자 곧 오성아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소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오성아와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화요일과 수요일이 여유로운 편이니 내일 한 번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 또한 직장인인데 주말에 전화를 거는 건 미안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목요일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벽진의 공방을 찾아가 완성된 칼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검이 나올까.'

    절세의 명검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런 것은 나중에 경지에 이르면 얼마든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어차피 지금 도진의 수준에서 절세의 명검은 과분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건 그것이 도진이 가지게 될 '첫 번째 검'이었으니까.

    무엇이든 첫 번째라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심지어 그 첫 번째 검이 무인의 평생 지기를 만든다는 명성을 지닌 우벽진의 검이니 더더욱 그러하다.

    천마기와 효아에 어울리는 검.

    그런 검이라면 볼 것도 없이 한 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인 검일 것이다.

    '기대되네.'

    마치 선물받을 것을 알고 있는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도진은 눈을 감았다.

    내일은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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