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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9화 (59/741)

59화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내고,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나온 도진에게 서정원이 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건.'

도진은 어머니가 건넨 그 봉투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래 전, 그러니까 무림 중학교의 기숙사를 다니게 되면서부터 받았던 '용돈 봉투'다.

전생을 포함하여 20년 가까이나 되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있던 그것이 지금 다시 도진에게 건네진 것이다.

도진의 시선을 마주하며 서정원은 웃었다.

"용돈 받을 때 됐잖아."

"…그렇, 네요."

두 달에 한 번. 도진은 집에 들러 용돈을 받았었다.

70만원.

그 나이 또래에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기실 생활비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리 많은 돈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것보다 적은 돈을 받는 학생을 도진은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다.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힘겹게 마련한 돈이라는 걸 그때도 알고는 있었으니까.

다만 이렇게밖에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 자체는 몇 번이고 원망했었다.

집이 망하지만 않았다면.

조금 더 풍족했다면.

그때의 그 생각들이 떠오르니 그럴 리가 없는데 봉투가 무거워진 것만 같다.

도진은 알고 있었다.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아버지가 내리 당직을 서면서 받은 보너스.

그리고 어머니가 어떻게든 아낀 생활비를 보태 만들어진 돈이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봉투였다.

그런 봉투를 그저 소모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현실을 원망할 시간에 도진은 피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렇기에, 도진은 지금의 새로운 삶이 감사했다.

후회란 늦었기에 후회(後悔)인 것이다.

한데 다시 살게 된 도진에게는 그것이 후회가 아니었다.

새로운 삶을 후회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한계에 치달을 때까지 쉼없이 달릴 수 있도록 해 주며 그 한계에 이르러서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갈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

회귀하여 그런 삶을 살았기에 도진은 쓴웃음 대신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 봉투를 다시 어머니에게로 밀 수 있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너 내일 입학이잖아. 엄마랑 아빠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받아도 돼. 안 받으면 서운해 할 거야."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다림질과는 달랐기에 도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제가 장학증서 보여드렸죠?"

"응, 보여줬지."

그 장학 증서는 비무 우승패와 함께 거실에 장식되어 있다.

서정원이 사 온 장식장 안에 말이다.

"거기서 용돈 나온다고 해도 쓸 데도 많잖아."

비무 우승자에겐 장학금과는 별도로 용돈, 그러니까 품위유지비라는 게 나온다.

허나 그건 정말로 별칭처럼 용돈이 아니다.

무림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학비는 일반학교보다 훨씬 크다.

예체능계가 그러하듯 무림학교 또한 돈 들어갈 곳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고등반에 올라가면서 진검(眞劍) 등 자기 무공에 맞는 실제 무기를 주문하는 것부터가 돈이다.

싸구려라 해도 수십만 원, 비싼 건 수천만 원까지도 들어간다.

오히려 이렇게 돈 들어갈 곳이 많기 때문에 별도로 나오는 돈을 크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용돈'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서정원은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을 통해 좀 더 부풀려진 내용으로 듣게 되었다.

때문에 무리해서 70만 원이 아닌 100만 원을 봉투에 넣었다.

잘난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했으면 싶어서.

그 '잘난 아들' 도진이 씨익 웃었다.

"어머니. 이거 보세요."

그러면서 손 위에 든 것은 다름 아닌 숭무고 집행부를 상징하는 배지였다.

"이게 숭무고 성적 우수자만 들어갈 수 있는 집행부의 상징이거든요. 그 유명한 집행부요."

"거기 들어간 거야?"

"네."

"어머, 어머!"

서정원의 눈이 커졌다.

숭무고 집행부.

그 유명한 금화의 영애가 소속되면서 대중에게도 유명해진 곳이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입학하는 숭무고에서도 손꼽히는 학생들이 입부한다는 곳.

다름 아닌 그곳에 들어갔다는 말을 아들이 한 것이다.

"여기에 입부하면 또 따로 장학금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용돈은 안 주셔도 돼요."

"그래도……."

"정말로 괜찮아요. 어머니, 고등반 무림인은 성인으로 대우받잖아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무림학교 고등반부터는 무림특별법에 의해 법적으로도 성인으로 분류된다.

당장 무기 소지 허가증이 고등반 학생에게 나오는 것부터가 그 특별법에 근거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좋은 아들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좋은 아들이 아니었던 만큼 이제부터는 좋은 아들이 되고 싶어서요. 이제 어른이 되어서 철 좀 들었다고 자부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첫 걸음으로 이제 용돈을 받는 건 졸업하고 오히려 용돈을 드릴 수 있게 해보려구요."

사실은 번지르르한 말이다.

정말로 열일곱에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현실은 서른 다섯이 넘어서야, 다시 살게 되면서야 겨우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만큼, 그만큼 늦은 만큼 꼭 지키고 싶었다.

"한 번 믿어주시지 않을래요?"

* * * *

날이 밝았다.

언제나와 같은 아침.

그러나 도진에게 있어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아침이었다.

새벽 단련을 마치고 샤워를 한 도진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새로운 교복, 숭무고의 교복을 입었다.

여전히 '칼각'이 살아 있는 숭무고의 교복을 입으니 어쩐지 정말로 특별한 기분이 든다.

짐은 이미 기숙사에 다 옮겨 두었기에 달리 챙길 게 없어 간단히 가방 하나만 들었다.

"밥 먹자, 얘들아."

오늘 아침은 일찍 일어난 어머니표 아침밥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알겠지?"

"응!"

"형아도 당당하게!"

"하하하! 그래. 화이팅!"

유쾌하게 동생들을 보내고 도진이 버스에 올랐다.

삐빅-

버스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는 도진에게로 미리 타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스쳐갔다.

崇武.

등에 새겨진 그 두 글자가 학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연예인들을 수없이 배출한 예고의 대표 연예인 못지 않은 인지도가 그 두 글자에는 깃들어 있었다.

하물며 그 두 글자를 새긴 교복을 입은 게 다름 아닌 달동네 문월동 출신이었으니 동경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삐빅-

"와……."

여기에 한 번 보는 순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미모가 더해진다면 스쳐가는 게 아니라 아예 못박히고 만다.

서소담.

그녀가 오늘도 필연처럼 도진과 같은 버스를 탄 것이다.

"안녕."

"응, 안녕."

마치 또 다른 태양이 뜬 것처럼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소담은 도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함께 앉은 두 사람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소담이 합류함으로써 그 유명한 '숭무고의 수석과 차석'이라는 그림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선이 도진에게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전생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시선의 집중.

그것은 과연 연예인이 무대 위에서의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한다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었다.

버스에서의 관심으로도 이 정도이니 말이다.

'욕심나네.'

그러니 욕심이 났다.

좀 더, 더 크게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기분 좋은 흥분에 감싸인 채 도진은 숭무고에 도착했다.

그리고 소담과 함께 내리는 순간, 더 많은 시선이 도진에게로 집중되었다.

'아.'

그 시선은 버스에서와는 다른 성질의 시선이었다.

일부는 동경이었지만 다수는 다름 아닌 질투와 시기, 이유없는 분노와 증오였다.

"쯧."

"버스타고 오는 거 봐라."

그것은 실체가 없으나 분명한 중압감을 가진 시선들이다.

다수의 부정적인 감정을 담은 시선은 실체가 없으나 사람을 짓누르는 무게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게에도 도진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정도 무게에 짓눌릴 도진이 아니었기에.

여우들이 이를 드러낸다 해서 호랑이가 겁먹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도진은, 그리고 소담은 오히려 그런 시선들을 들러리로 만들면서 당당하게 숭무고의 정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정문을 통과한 두 사람은 입학식이 진행되는 숭무관(崇武館)이 아닌 본청 옆 별관으로 향했다.

똑똑-

"응, 들어와."

꿀처럼 짙은 매력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집행부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유아가 집행부실의 주인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민지서가 비서처럼 서 있다.

"안녕하세요, 선배."

"안녕하세요."

"응. 일찍 왔네."

"일찍 오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래, 착하다. 일찍 들어오는 남편이 사랑받는 법이지."

'굳이 따지면 이건 밤새고 들어온 거 아닌가……?'

소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입학식은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그러나 도진과 소담은 평범하게 오전 8시까지 학교에 왔는데, 다름 아닌 집행부 소속으로서의 업무를 하기 위해서였다.

도진은 한유아의 농담을 가볍게 흘려 버리고서는 집행부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유아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다른 선배들은요?"

졸업반인 3학년 선배들은 둘째치고 현역이자 중심이 되어야 할 2학년 선배가 한유아와 민지서 둘 뿐일 리는 없었기에 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한유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유명한 검봉은 폐관 수련 때문에 언제 나올지 미지수. 그리고 폭룡도 집중 수련이 덜 끝나서 일주일 뒤에나 출석 예정. 그래서 파릇한 신입인 너희가 동원된 거야."

"아, 그랬군요."

무림학교 고등반은 말은 고등학교지만 사실 대학교처럼 운영된다.

애초에 배운 무공도, 환경도 다른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교육이 맞을 리가 없다.

때문에 고등반 학생들은 대학교처럼 여러가지 수업들 중에서 원하는 수업을 골라 각자 시간표를 짜는 게 기본이었다.

여기에 오전이든 오후든 일반 학문 수업을 전공 수업마냥 필수적으로 몇 학점 이상 넣어야 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이를테면 외부와의 모든 접점을 단절하고 무공 수련에만 올인하는 폐관 수련 같은 사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출석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후 그 폐관 수련의 성과만 입증하면 된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입학식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3학년들, 그리고 2학년들 중 다수가 참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검봉과 폭룡이 포함된 것이고.

"그러므로 오늘 입학식 관련 집행부의 일은 나랑 여기 지서, 그리고 너희가 하게 될 거야."

"그,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할 수 있을까요?"

소담이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묻는다.

거기에 한유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다 할 거니까. 너희는 따라다니면서 배우기만 하면 돼."

"아…… 그렇군요."

그럴 거면 왜 불렀나 싶기도 했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소담은 일부러 경험을 쌓게 해 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생각대로였다.

"장비 점검 완료 됐나요?"

"예."

"좋아요. 그럼 리허설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겨우 입학식'이라기엔 준비가 너무 거창했다.

마치 세계적인 스타의 콘서트를 준비한다면 이런 느낌을 받을까 싶을 정도의 행사 준비.

그리고 실제로도 숭무고의 입학식은 그 정도의 의미가 있었다.

169명의 신입생들.

그 신입생들의 입학식을 보기 위해 참석하는 학부모와 관련자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여기서 또 하나 놀라운 점은, 그 입학식 준비를 지휘하는 게 다름 아닌 한유아라는 것이다.

이런 데에서부터 집행부가 과연 웬만한 학생들은 앉혀줘도 못할 자리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압도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러나 도진은 오히려 흥미로운 시선으로 한유아를 지켜보다 묻는 것이었다.

"선배. 혹시 집행부원 특권을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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