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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0화 (50/741)

50화

카페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온 도진은 우선 소담이 머물고 있다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그 고시원은 문월동과 인접한 동네의, 보증금도 받지 않을 만큼 낡은 고시원이었지만 그래도 내부는 깨끗한 편이라고 한 달 가량 살았던 소담이 말해 주었다.

물론 깨끗한 편이라는 걸 제외하면 단점밖에 없는 곳이었다.

좁고, 소음 방지 안 되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에 추가 요금을 내야 겨우 먹을 만한 아침과 저녁이 배식으로 나오는 정도.

"넌 생긴 것만 보면 어디 화려한 아파트 꼭대기 펜트 하우스에 살아야 할 거 같은데 의외로 불만 없이 지내고 있구나?"

"헤헤."

칭찬인 걸 아는지 헤헤 웃는다.

그게 또 귀엽다.

"들어가 봐도 돼?"

"아니. 남녀가 확실하게 구분 돼 있어서 여자들 공간엔 남자가 들어가면 안 돼. 걸리면 바로 퇴실이야. 내가."

"그렇구나."

2층이 남자 전용이고 3층이 여자 전용이라고 한다.

각층은 금녀, 금남의 구역이다.

"그래서, 뭐 부족한 건 없고? 칫솔이나 치약, 잠옷 같은 건?"

"어휴, 무슨 아빠야? 걱정 안해도 돼."

정말로 무슨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에 소담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도진은 극구 사양하는 소담의 모습에 결국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알았어. 그럼 여기 서 봐."

"어? 왜?"

소담은 도진이 팔목을 잡고 이끄는 대로 일단 걸어서 가리키는 곳에 섰다.

고시원을 배경으로 두게 되는 자리다.

"자, 여기서 이렇게 고시원이 나오게 해서 아침저녁으로 나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는 거야. 알겠지?"

"……뭐?"

'이게 무슨 소리지?'라는 말을 얼굴로 표현하며 소담이 되물었다.

도진이 그 표정을 하는 소담에게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인증 사진을 보내라는 거야."

"뭐어?"

소담이 완전히 어이가 없는 얼굴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도진은 쓰읍, 하며 엄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어제부터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아? 겨우 이 정도도 못 해 줘?"

"…네, 아빠."

켕기는 게 있던 소담은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게 또 귀여워 도진은 일부러 만들었던 엄한 표정이 모래처럼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농담이고, 내가 내일 오전에 올 테니까 그때부터 같이 찾아 보자."

마음 같아선 지금부터 같이 방법을 찾아 보고 싶지만 늦은 밤에 어디서 같이 밤 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일 아침 일찍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사람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 때 혼자 있어서 좋을 게 없다.

그렇게 힘들 때 누군가 같이 있어주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법이다.

같은 남자였다면 우리집에서 같이 자자고 권유라도 했을 텐데 소담은 여자 아이니까 그렇게까지 하진 못했다.

띠링-!

-인증 사진이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담이 정말 고시원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그것도 귀엽게 브이자를 그린 셀카를 보내 주었기에 도진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잠들어 심상세계에서의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수련을 끝내고 눈을 떠야 할 때쯤 위지혁이 말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체력 단련은 최소한만 하고 그 아이를 도와주는 데 집중해라."

"어? 그래도 되나요?"

"그래. 몸만 키우는 게 수련이 아니다. 삶이란 그 자체가 수련이지."

조금은 선문답 같은 말.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진리가 어려 있었다.

"매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며 궁구하는 것. 그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으며 너의 영혼은 물론 무공에도 자양분이 되어 줄 게다."

"네, 스승님."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기에 도진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래, 도진이 배우는 것은 무공이며 무도(武道)다.

단순한 살인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몸짓에 도(道)를 깃들이는 것.

삶을 궁구하는 것 또한 도이니 당장의 수련에 집착하지 말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그 또한 수련이 될 것이니.

단순한 무리(武理)가 아닌 삶의 깨달음을 한 자락 얻은 듯한 느낌에 기뻐하며 도진은 상쾌하게 눈을 떴다.

아직은 이른 아침.

그러나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차렸다.

"드세요, 아버지."

다름 아닌 출근하실 아버지를 위한 밥상이었다.

"니가 차린 거야?"

"좀 배웠죠."

하루 건너 뛰어 당직을 서지 않고 귀가했던 김서우는 무려 아들이 차려준 밥상에도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마음의 창이라 할 수 있는 눈동자에는 고스란히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내가 어제 저녁 만들었던 찌개를 데우고 몇 가지 반찬을 내놓았다.

도진이 직접 한 거라곤 계란프라이가 전부였지만, 자신을 위해 아들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밥상을 차려 주었다는 것 자체가 김서우에게 있어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쁜 첫경험이었다.

함께 있되 다가갈 수 없는 자리로 가 버린 것만 같았던 아들이, 어느새 곁에 서 있음을 김서우는 느꼈다.

"다녀오세요, 아버지."

"그래."

이른 봄.

김서우는 너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그 뒤로 도진은 가볍게 단련을 마치고 동생들을 학교로 보냈으며 집안 정리를 마치고 외출하겠다는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남긴 뒤 소담이 머물고 있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응, 앞에 나와 있어."

-응. 씻고 내려 갈게. 15분 정도 걸릴 것 같아.

고시원 앞에서 잠시 기다리니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담이 내려왔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나온 듯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는데 그야말로 '쌩얼'임에도, 아니 꾸미지 않았기에 더더욱 여신이 강림한 듯한 비주얼이다.

입고 있는 청바지와 셔츠는 분명히 보세일 텐데 100만원에 팔아도 팔릴 명품으로 보인다.

얼마 없던 행인들이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넋이 나간 얼굴로 흘끔거리다 억지로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머리 말리고 와도 됐는데."

"괜찮아. 저절로 마르니까. 헤헤, 사실은 드라이어도 공용이라서."

귀엽게 고백하는 소담의 모습에 도진은 웃었다.

"아침은 먹었어?"

"응. 여기가 일찍부터 아침을 먹을 수 있거든. 그래서 아침 먹고 수련했어."

"그럼 배고프겠네. 뭐 좀 먹으러 갈까?"

"아니, 괜찮아."

"어허. 아빠가 사줄 거니까 먹고 싶은 거나 말해."

"어? 그래도 돼?"

"수석은 용돈도 나오잖아.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말해도 돼."

놀랍게도 숭무고 수석에게는 장학금과는 별도로 '품위유지비'가 나온다.

이게 또 상당한 수준이라 도진에게 큰 도움이 될 예정이다.

무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뭐, 그걸 아직 받진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 없다시피 했기에 도진에게는 아직 포상금이 남아 있어서 소담을 든든히 먹여줄 여유가 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함께 간 곳은 다름 아닌 분식집이다.

가게는 허름하지만 인심이 넉넉한 곳이라 만 원으로 두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떡볶이와 튀김, 순대까지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난 뒤 열심히 소담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들을 찾아 보았다.

가장 먼저 뒤적인 건 숭무고 공식 홈페이지였다.

숭무영재고만큼은 아니지만 숭무고에도 몇 가지 장학 제도가 있었기에 꼼꼼히 살펴봤다.

예상대로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소담은 서류 부분에서 활용이 불가능함을 확인했다.

다만 두어 가지 정도는 안내 문구만으론 모호한 부분이 있어 담당처에 전화를 해 봤지만.

-예. 증빙 서류를 필히 제출하셔야만 합니다.

친절함, 그리고 인텔리함이 가득 담긴 부드러운 목소리는 단호하게 그렇게 모호했던 부분을 확인해 줌으로써 그 '혹시나'를 '역시나'로 만들었다.

'역시 이쪽으론 안 되나.'

아무래도 국가와 연관된 부분도 있고 여러모로 관심이 집중된 숭무고다 보니 특히 서류 절차가 까다롭고 깐깐했다.

은행권의 장학금 대출은 당연히 안 되고 같은 선상에서 국가 지원 제도 쪽도 불가능.

'어렵네…….'

미성년자의 권한은 그리도 좁았다.

"일단 우리집에 가자."

"너희 집에?"

"응. 지금 아무도 없으니까 부담없이 와도 돼."

"응."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듯했는데 분식집에 너무 오래 머무를 순 없었기에 일단 도진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달동네의 허름한 집이지만 도진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소담 또한 마찬가지.

무림인인 만큼 가파른 길을 거침없이 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음?'

한데 그 집앞에 낯선 사람이 있었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몸매를 자랑하는 미녀였다.

밝은 톤의 세미 정장 차림이었는데, 타이트 스커트와 그 아래로 쭉 뻗은 긴 다리를 부각시키는 검은 스타킹이 특히나 시선을 잡아끈다.

도진은 그 모습이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만든 모습이라는 걸 바로 알아 보았다.

몸매와 미모를 타고 난 사람이다.

그것을 무공을 통하여 갈고닦아 극대화했고 복장으로 더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하이힐을 신고 있음에도 어디 한 군데 균형이 무너진 부분이 없다.

그 균형 잡히고 탄탄한 몸매는 무공에 많은, 그리고 꾸준한 시간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복장 또한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단순한 세미 정장 차림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특히 남자라면 결코 호감을 보이지 않을 수 없도록 신경 쓴 것이 여기저기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제법이구나, 저 아이.

무공 수위 자체는 평범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스킬'이 보통이 아니었다.

도진이 이걸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지금 심상세계에서 말하는 장호에게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보자마자 수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도록 장호가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현재 도진의 수련은 무공을 위지혁이 담당하고 있다면 그 외 전반적인 광범위한 지식을 장호가 가르치는 형태였다.

'누구지?'

그렇게 정보를 읽어낸 도진은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저런 사람이 왜 자신의 집앞을 서성이고 있나 의아해 했는데.

"아!"

시선이 맞는 순간 다름 아닌 자신에게 볼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의문의 미녀가 또각또각, 경계를 가지지 않을 속도로 다가왔다.

은은하고 좋은 향기가 미소와 함께 닿았다.

"안녕하세요, 김도진 학생. 그리고…… 서소담 학생이시군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간다.

소담은 왠지 모르게 경계하는 기색이다.

그런 도진과 소담의 대응에 의문의 미녀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두 장, 도진과 소담에게 각각 건넸다.

"오성 장학 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성아 컨설턴트입니다. 김도진 학생에게 스폰서 제안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잠시 괜찮으실까요?"

스폰서 제안.

혹시나 했던 단어가 나왔다.

주목받는 무림의 인재는 관련 기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재능 있는 무림학교의 학생은 귀중한 미래의 사원이 될 수 있었기에 될성 부른 떡잎을 선점하기 위해 미리 러브콜을 보내는 기업이 늘었고 이것이 '스폰서 문화'로 정착한 것이었다.

숭무고 수석을 차지한 만큼 최소 한두 군데는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대로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음…….'

"그 제안은 저에게만 해당되는 건가요?"

"네. 제가 맡은 업무는 김도진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네요. 저희 재단은 일인 일컨설턴트가 원칙이거든요."

듣기 좋은 목소리의 내용은 도진은 물론 소담까지 배려한 전문적인 단어 선택이다.

"그러시구나."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죄송한데, 저희가 지금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이야기는 다음에 들을 수 없을까요?"

"음,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숭무고 입시 전반 제도와 관련한 컨설팅 업무도 겸하고 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그쪽으로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함께 할 수 없을까요?"

축객령이라 생각했는지 의문의 미녀, 오성아가 다시 말했다.

실제로 도진은 스폰서와 관련해 미리 생각해 둔 바가 있었기에 할 말이 없어 괜찮다 말하려다, 문득 짚이는 부분이 있어 다시 눈을 마주했다.

"잠깐만요. 누구시라구요?"

"오성아 컨설턴트입니다."

"그리고 숭무고 관련 컨설턴트도 겸업하신다구요?"

"네. 혹시 그 부분에 관해 상담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네. 혹시 장학 제도에 관해서도 잘 알고 계신가요?"

오성아는 커리어 우먼의 전문성이 멋지게 묻어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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