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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7화 (47/741)
  • 47화

    그것은 특훈이 중반 즈음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었다.

    "어떠냐. 이대로라면 비무에서 그 아이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몇 번이고 죽다 살아나길 반복하고 결국 정신력이 다해 널브러져 쉬던 도진은 스승 위지혁의 물음에 고민하다 답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약한 소리를 하는 건 좋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안 될 일에 만용을 부리는 것 또한 좋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도진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담과 우정한에 자신을 비교해 보았고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위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았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비무까지 그 아이들의 경지를 따라잡는 건 어려운 일이다."

    도진은 부족한 재능을 한계를 거듭 넘어서는, 목숨을 건 특훈을 통하여 극복하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절벽을 맨몸으로 굴러떨어지길 반복하면서 거기서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수없이 죽어가며 터득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련.

    심상세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천마군림의 수련을 가미함으로써 초상승의 무리를 때려박아 그 하위의 무리가 저절로 따라오도록 만드는 방식을 취했다.

    이것은 위지혁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그 자신이 하늘에 이른 무인이기에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 지름길로 도진을 이끌어 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맨땅의 헤딩이 아니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수련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한계는 있었다.

    우정한과 소담은 천재들 사이에서도 천재라 부를 만한, 군계일학의 독보적인 천재들이다.

    그런 천재들이 어려서부터 쌓아온 시간을 도진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따라잡을 순 없는 것이다.

    도진이 한계를 넘는 것처럼 이 천재들 또한 피와 땀을 흘리며 무공이란 산을 올랐고 지금도 오르고 있으니까.

    수련을 통해 성장할수록 도진은 소담과 우정한, 그리고 자신 사이에 얇지만 아득한 격차가 있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단 한 걸음의 경지. 그러나 그 한 걸음이 아득했다.

    하지만 도진은 그것이 아득하다 해서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목표는 명확했고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은 일은 더더욱 명확하다.

    그저 바라볼 시간에 이를 악물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 할 뿐.

    그렇기에 위지혁은 웃으며 말한 것이다.

    "무술이란 본래 힘이 부족한 인간이 더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이 도(道)의 영역에 이르러 무공(武功)이 된 것이지."

    "즉, 아직 부족한 네가 그 아이들을 이길 수 있는 수단 또한 무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절초(絶招)'다.

    "절초……."

    "그렇다. 가진 힘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공이 아니더냐. 그 무공 사이에서도 뛰어난 것을 절초라 한다."

    사실, 지금껏 도진은 무흔잠영을 제외하고서는 '초식'이라 할 만한 것을 배우지 못했다.

    도진이 일반적인 무인에 그치지 않고 하늘 너머를 목표로 할 수 있도록 위지혁이 상상도 못할 규모의 '기초 공사'부터 착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실 지금 도진이 보여주는 것은 그 기초 공사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만약 평범한 방식으로 무공을 익히도록 했다면 도진은 몇 배나 더 강했을 것이다.

    세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재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심지만큼은 천마에 어울리는 도진은 천마심공에 입문했을 것이고 심상세계에서 위지혁과 장호의 지도 아래 대번에 고수가 되었을 터.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것은 '땅을 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계가 극명한, 부족한 재능의 한계에 그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일 뿐.

    조그마한 땅에 초라한 초가집을 짓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위지혁이, 장호가, 그리고 도진이 목표로 하는 하늘에 오르기 위한 '나는 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진은 빠르게 기는 법 대신 처음이 조금 느리고 힘들지만 나는 법을 배웠다.

    '기술'이 아닌 '깨달음'을 위주로 한 수련.

    그 깨달음 덕분에, 육체에 구애받지 않는 심상세계에서의 수련이었기에 빠르게 경지를 높일 수는 있었다.

    허나 '기술이 아닌 깨달음'이었기에 그것이 고스란히 전투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물며 실질적으로 무공을 배운 기간이 짧고 '재능의 벽'에 갇혀 있는 육체가 깨달음을 온전히 감당하기도 힘들었고.

    지금의 '기초 공사'가 끝나면 도진은 그 재능과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시간의 여유가 충분했다면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았을 터.

    허나 도진은 '지금' 수석을 차지하기 위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위지혁은 도진을 위하여 그 절초를 하나 만들어냈다.

    지금의 도진이 사용할 수 있는 절초를.

    "나라면 파천(破天)이라 하겠다만……."

    실제로 위지혁은 심상세계의 하늘을 무너뜨려 보였다.

    천마군림으로 세상과 동화하고 마음의 검을 일으켜 하늘을 부숴 버렸다.

    "너에겐 아직 무리일 듯하니 '효아(哮牙)'라 하면 어울리겠구나."

    천마검공 효아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우정한의 '반공(反供)', 소담의 '선로'와 함께 도진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

    그것으로 도진은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가능하면 '자신의 힘'으로 우승을 거머쥐고 싶었다.

    한데 그 힘이 부족해 '무공빨'로 이긴 게 도진은 조금 아쉬웠다.

    다만 그것이 욕심임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집착하진 않았다.

    무공빨이라 하지만 그 또한 노력이 있었기에 입을 수 있었던 혜택이었으니까.

    지금은 그저 기뻐하기로 했다.

    "승자, 김도진!"

    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자신에게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환호에 도진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과거엔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환호의 중심에 있는 경험은 그토록 특별했다.

    그 특별함을 만끽하고서, 도진은 비무대 바깥으로 튕겨나간 소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소담은 웃으며 도진의 손을 잡아 주었다.

    미련이 남지 않은 후련한 얼굴이었다.

    그 장면이 또 한 번의 함성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게 만들었다.

    아마 온갖 매체의 메인에 걸릴 사진이 될 것이었다.

    "폐회식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비무가 끝나고 폐회식이 진행되었다.

    여기엔 입상한 학생들에게 상장과 부상 등을 수여하는 표창식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승한 도진과 준우승한 소담, 그리고 3위가 된 우정한이 주역이었다.

    "우승! 김도진."

    짝짝짝짝짝!!

    박수가 퍼져 나간다.

    무대의 중심에서 도진은 우승패와 갖가지 부상을 받았다.

    전액장학금을 수여받았고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영약 세트도 받았다.

    영약 세트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 영양제의 연장 선상에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는데, 다름 아닌 오성의 무림 사업 부문에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을 만큼 그 효력이 입증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세 번 꾸준히 복용하며 심법 수련을 하면 미미하지만 정말로 내공 증진 효과를 볼 수 있으니 내공이 약점인 도진에겐 특히 요긴했다.

    사족이지만, 이 상품은 이번 입학 시험의 스폰서 중 하나였던 오성의 PPL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상 중 최고는 '무기 주문권'이었다.

    무기 주문권. 무림맹, 그리고 숭무고와 협력 관계에 있는 장인(匠人)에게 딱 한 번 맞춤 무기를 주문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 세상엔 장인,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명인들이 있다.

    극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로도 아직 넘볼 수 없는 영역의 '신기(神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장장이들.

    이들을 존경의 의미를 담아 장인, 혹은 마에스트로라 부르는 것이다.

    다름 아닌 이들에게 맞춤 제작을 주문할 수 있는 권리였으니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품이었다.

    '잘 됐어.'

    안 그래도 고등반에 오르게 되면 무공에 맞는 무기를 주문제작하여야만 했다.

    고등반에 오르면 연습용이 아닌 날붙이를 사용할 수 있게 자격증이 나오는데 그에 필요한 무기는 학생이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는 그에 필요한 비용 등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숭무고는 '왕실학교'라 그런지 그 부분에 대한 지원이 없었다.

    여기에 드는 돈 또한 부담이었는데 이렇게 부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얻은 표창식이 끝나고 숭무고 입학 축제도 완전히 막을 내렸다.

    "입학식은 다음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진행되니 늦지 않게 참석하도록."

    일정을 안내받고 도진은 소담에게로 다가갔다.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 이야기는 내일 하자."

    그러나 소담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은 기쁜 날이잖아. 그러니까 우중충한 이야기는 내일 하고, 오늘은 수석을 차지한 걸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기뻐하는 게 먼저라고 나는 생각해."

    "…응, 그렇네."

    소담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아들의 비무를 부모님은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그러나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기에 비무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빚이 있음에도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모두 이런 부모님의 희생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아들로서 지금은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는 게 먼저다.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내일 전화할게. 그러니까 지금은 빨리 가 봐."

    "…알겠어."

    소담은 언제나처럼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미소의 배웅을 받으며 도진은 버스를 탔다.

    살면서 처음으로 타보는 번호의 버스였다.

    휴대폰의 검색을 통하여 찾아낸 그 버스를 타고 도진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김서우, 아버지가 근무하는 회사였다.

    "아버지, 혹시 지금 잠시 나오실 수 있나요?"

    -무슨 일 있니?

    "네. 놀라운 일이요."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에 김서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온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 내미는 것을 받아드는 순간, 내기에서 패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 42회 숭무고 용봉 비무회 우승패.

    생전 처음으로 아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기에 내심 불안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아들은, 김서우의 아들은 정말로 숭무고의 수석을 차지해 버린 것이었다.

    "…잘했다. 도진아."

    멋진 말을 해주고 싶은데 나오는 말이 그것뿐이었다.

    이런 면에선 정말로 아들과 다르지 않았다.

    도진도 그저 씨익 웃으며 네, 라고 답했으니까.

    "…재촉하지 않을게요. 천천히라도 약속, 지키실 거죠?"

    "그래."

    김서우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약속을 바로 오늘부터 지켰다.

    늦은 밤. 아내와 함께 귀가한 것이다.

    "아버지?"

    "약속 지키라면서. 그래서 지켰지."

    사실은 이제부터 비수기였다.

    고등반 입학 시즌이 김서우가 근무하는 무림인들의 훈련을 서포트하는 회사의 가장 바쁜 성수기, 피크였고 그런 만큼 이 시기가 지나면 비수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일에, 그것도 두 번 정도 당직을 빠지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이렇게 쉽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약속을 지킨 아버지의 모습에 도진은 웃었다.

    도진의 우승패를 눈을 빛내며 보물 다루듯 만지던 동생들은 지금 잠들어 있지만 그래도 아침엔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서정원이 일하는 한식집이 주인의 사정으로 하루 문을 닫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내일이 휴일이 된 덕분이었다.

    도진은 어머니에게도 우승패, 그리고 장학 증서 등을 한가득 안겨 드렸다.

    "다음엔 집문서라도 안겨 드릴 수 있도록 해볼게요."

    "…응. 우리 아들이 사주는 집 기대하고 있을게."

    그것은 결코 뜬구름 잡듯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도진은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서른 다섯까지 결코 끌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안에, 도진은 동생들이 그토록 원하던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고 커다란 리트리버도 키울 수 있는 마당 딸린 이층집으로 이사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너머 도진이 목표로 하는 더 많은 것들을 이룰 때까지, 이렇게 부모님과 동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할 것이다.

    * * * *

    모처럼 도진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아침 식사를 하게 됐다.

    동생들이 수저와 물컵을 옮기고 도진이 밥을 펐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아버지가 반찬을 놓고.

    얼마만인지 모를, 그리고 도진에게는 수십 년만의 가족이 모두 함께 하는 아침 식사였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특별함은, 그 어떤 문장가라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껏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홀로 식은밥을 억지로 넘기던 기억.

    좁은 집 전체에 진득하게 눌어붙어 있던 절망.

    그 기억들이 밝은 식탁을 눈에 담는 순간 스러져 간다.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졌던 기억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없어진 미래다.

    찾아올 불행이 있다면 이제 모두 때려부술 것이며 그러기 위한 힘을 도진은 쌓아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식탁에 깃드는 건 햇살과 함께 희망뿐이다.

    "오늘도 훈련이니?"

    "네."

    식사 후 어머니, 서정원의 물음에 나갈 채비를 마친 도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천재가 아닌 도진은 게으름 부릴 수 없었으니까.

    다만 오늘은 달리 할 일도 있었다.

    '언제 연락이 올까.'

    다름 아닌 소담을 만나는 것이었다.

    어제는 하지 못했던, 소담이 담아두고 있던 이야기.

    그것을 듣기 위해 소담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연락을 받으면 나갈 수 있도록 훈련의 강도를 조절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결국 밤이 늦도록 소담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도진의 친구 소담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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