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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3화 (43/741)

43화

숭무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무림고다.

학생들의 수준, 그리고 교사들의 수준을 칼같이 줄 세울 수 없음에도 이렇게 숭무고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으로 인정받는 건 후원의 규모, 그리고 학생들의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 1위의 기업인 금화를 필두로 하여 막대한 규모의 후원을 받는 숭무고.

그리고 그런 숭무고에 다니는,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집안의 인재들.

그러니까 숭무고는 쉽게 말해 귀족학교를 넘어 '왕실학교'라 부르는 것마저 어색하지 않은 학교란 말이다.

무공만이 아닌 자금, 배경까지 갖춰 다른 명문을 압도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 된 것이다.

그래서였다.

학생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어울리지 않는 학생을 불순물로 취급하면서 배척하는 건.

우정한, 서소담, 그리고 김도진까지 그들의 울타리 밖에 있던,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출신 성분을 배척하고 그들끼리의 결속력을 다졌던 이유.

이미 후기지수로 불리며 소림 속가 제자라는 위명에도 불구하고 우정한은 은근한, 그러나 명백한 배척을 당했다.

서소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본래 서소담과 같은 아이는 둘 중 하나였다. 무리의 추앙을 받거나 혹은 배척당하거나.

그 출신이 불분명한 소담은 후자였다.

그리고 도진이다.

관문 시험에서 주목을 받으며 그 출신과 과거가 드러났다.

가난한 집안의,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저급한 학교에서도 낙제생.

와아아아-!

비무대에 오르는 도진을 일반 대중은 환영해 주었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차가운 눈으로 보는 이유다.

도진은 그 시선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명백한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정면에도 도진을 적대하는 시선이 있다.

"……."

강정민.

도진을 인정하지 못한다 말했던, 비무의 첫 번째 상대.

비무 전의 소개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고 두 번째 본 시험에서 1등을 한 학생이란 것까지 알게 되었다.

손꼽히는 명문 무림학교인 성원중학교 출신으로 집안 또한 오랜 역사로 이름 높은 무가(武家)라고 한다.

우정한과 서소담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은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도진과 강정민의 시선이 부딪쳤다.

"긴말은 필요없다고 했지? 동감이야."

강정민이 기세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강정민은 눈앞의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닥 중의 바닥을 기는 학교의 낙제생이었다고 했다.

한데 정말로 무슨 소설처럼,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스승을 잘 만나 갑자기 실력이 상승했다고 한다.

그 무공을 믿고 설치는 게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났다.

그러니까 보여줄 생각이었다.

'진짜 무공'이란 것을.

터엉!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동시에 강정민이 땅을 박찼다.

마치 공간을 접는 것처럼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데 상체는 일절 흔들리지 않는다.

상승의 보법(步法)임을, 진무(眞武)임을 대번에 깨닫게 만드는 움직임이다.

쾅!

달리던 기세를 그대로 담아 진각을 밟고 주먹을 내뻗는다.

일견 단순한 정권 지르기.

그러나 이 또한 아는 만큼 보이는 극상승의 일초(一招)다.

진각을 밟은 순간의 거리. 도진은 닿지 않으나 강정민은 닿을 수 있는, 정권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최적의 거리였다.

강정민은 도진보다 키가 크고 팔다리도 긴 편이다.

자신의 신체를 완벽히 재단함과 동시에 도진의 신체 또한 재단하여 그 거리를 잡아낸 것이었다.

주먹을 내뻗는 것으로 끝나는 공격도 아니다.

도진의 대응에 따라 최적의 초식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힘의 배분, 시선의 처리, 심지어 발끝의 각도마저 철저하게 계산한 일권.

누가 듣는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만한 재주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에 무술이 아닌 무공이며 무술가가 아닌 무림인이다.

그리고 이것을 찰나에, 연속으로 해내야 하기에 천재적인 머리와 함께 천부적인 육체를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며 그 두 가지를 가지고도 뼈를 깎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도진은 강정민에게서부터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선을 이었다.

투로를 읽어냈으니 반격을 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품으로 파고들어 반격하는 대신 우로 크게 한 걸음 물러났다.

정권이 빗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빈틈이 되지 않았다.

후웅!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던 것처럼 고스란히 힘을 좌로 트는 허리를 거쳐 휘두르는 왼팔에 담았다.

자연스레 상황에 맞는 다른 초식으로 연계한 것이다.

정권보다 더욱 빠른 왼팔의 휘두름. 도진은 왼팔을 듦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왼팔을 받치는 것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콰앙!!

살과 살, 뼈와 뼈가 부딪쳤다고는 믿기 힘든 굉음이 터져나온다.

초식에 깃든 내공까지 격돌했기에 나오는 소리였다.

도진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그에 비해 강정민은 제자리에서 자세를 가다듬는 모습이어서 대비되었다.

"좋은 무공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정직하게 시간을 쌓아야만 하는 내공은 속일 수 없지."

도진을 쫓아가는 대신 고요히 서서 강정민은 말한다.

그 말대로였다.

운이 좋아 상승의 무공을 익히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명확한 한계가 있으니 다름 아닌 내공의 문제였다.

정직하게 시간을 쌓아야만 늘릴 수 있는 내공은 무림인으로서의 세월을 증명하는 것과도 같다.

때문에 내공의 양은 도진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다.

심상세계로 사고를 가속한다 하여도 절대적인 시간을 늘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성실하게 연마한 초식의 숙련도 또한 속일 수 없어."

콰앙!

콰아앙!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생활 속에 무공이 녹아 있었던 강정민의 내공은 도진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내공이 깃든 피와 땀이 어린 완숙한 초식 또한 빈틈이 없었다.

때문에 부딪칠 때마다 도진은 크게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잘한다!!"

"강정민!!"

비무를 지켜보던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도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학생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분위기가 그랬다.

이는 입학하면 더욱 심해질 것이다.

도진의 전생.

문월중의 낙제생.

결코 고등반에 진학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구제불능.

그랬던 놈이 건방지게 고등반에 터억 붙어 버렸다.

멸시당했고 괴롭힘당했다.

숭무고는 문월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문이지만 학생들이 부대끼는 작은 사회라는 면에선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차별은 더욱 극명하다.

전생의 고등학교 생활과 비슷한 학교 생활이 되어 버릴 게 불보듯 뻔하다.

도진은, 결코 그런 학교 생활을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보여주기로 했다.

두웅!

"……?!"

담담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도진을 몰아붙이던 강정민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에 우뚝 멈춰서더니 거리를 벌렸다.

'뭐…… 야?'

형편없이 밀리던 도진에게서 무언가 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맹수가 눈을 뜬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눈앞의 도진이…… 풍기던 기세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

"도대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강정민에게 도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안. 특훈의 성과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워밍업을 하느라."

흉포하고 거대한, 그러나 철저하게 이성적인 기세가 도진에게 어린다.

그것은 바로 3성에 이른 천마심공이다.

억누르고 있다 목줄을 푸는 것과 같았던 천마기의 활용이 특훈 덕분에 한 차원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천마기는 관문 시험에서처럼 이성을 잃은 짐승이 되어 날뛰지 않는다.

그 흉포하고도 거대한 힘이 온전히 도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미쳐 날뛰기만 하던 천마기는 목줄이 풀렸음에도 사방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도진에게 어려 있다.

그것이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두고 언제라도 목줄을 물어뜯기 위해 근육을 수축시킨 호랑이와도 같아서 강정민을 압박하는 것이다.

무인은 무(武)로써 말한다.

숭무고에 입학하여 받게 될 차별에 대한 도진의 해법이었다.

도진에게는 다른 학생들과 같은 돈도, 배경도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은, 그 이상으로 찬란한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무공이다.

무(武)가 금(金), 그리고 권(權)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시대.

그렇기에 도진은 무로써 차별을 부숴 버릴 것이다.

전생에서 우정한이 이윽고 후기지수로서 인정받은 것처럼.

서소담이 비봉으로 찬란하게 빛났던 것처럼.

도진 또한 무로써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무인으로 우뚝 설 생각이었다.

그 첫걸음이 바로 눈앞의 강정민이다.

"너, 생각보다 제대로 된 놈이더라."

"…갑자기 무슨 소리지?"

뜬금없는 도진의 말에 강정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매일 정직하게, 온 힘을 다해서 무공을 수련했을 거야. 그렇지?"

"……."

그랬다.

강정민은 무공이 좋았고, 좋았기 때문에 스스로 최선을 다해 매일을 수련으로 채웠다.

무인의 무공에는 그것이 고스란히 어리는 법이다.

그 쌓인 시간의 결과는 무공에 분명하게 어려 있었고 그것을 주먹을 맞댄 도진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다.

강정민이 도진을 인정하지 못한다 말했던 건 다른 학생들과 달리 단순한 차별이나 심술이 아니었다.

도진이 노력없이 얻은 힘에 취해 날뛴다 생각했기 때문에.

재능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상승의 무공을 수련하여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설펐기에 그 무공에 비해 도진의 깊이는 얕았다.

재능이 있었음에도 노력하지 않아 낙제생이었던 것처럼.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보물을 얻었음에도 그 나태함을 버리지 못했다 생각했기에 강정민은 도진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도진은 보여줄 생각이었다.

네가 잘못 보았다고.

쿠웅!

묵직한 한 걸음과 함께 사냥감을 노리던 호랑이가 덮쳐든다.

강렬하고도 빠른 쇄도.

강정민은 극한까지 긴장하여 감각을 깨웠다. 그 감각을 모두 동원하여 도진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주먹을 내뻗었다.

발경의 묘리가 깃든, 카운터를 노리는 정권.

상대의 움직임과 힘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야만 하는 어려운 수법이었지만 찬란한 재능으로 어려서부터 피땀 흘려 무공을 연마했던 강정민은 그 수법을 완벽하게 구사해냈다.

하지만.

'……어?'

그 카운터가 거짓말처럼 빗나갔다.

아니.

'빗겨졌다.'

목줄을 물어뜯을 듯한 기세가 그대로 실려있던 도진의 주먹은 '정권'이 아니었다.

강정민의 카운터를 유도하기 위한 허초(虛招), 미끼였던 것이다.

무흔잠영의 체술 중 그 성격이 다른, 먼저 공격하여 상대의 허점을 만들어내는 '찬(鑽)'.

신비가 어린 초식은 주먹이 맞닿는 순간 허상처럼, 갈대처럼 강정민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역이용하여 그것을 빗겨냄과 동시에 자세마저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강정민이 준비했던 모든 다음 수법마저 무력화시키며.

당하고 나서야 강정민은 그런 수법임을 깨달았다.

이미 치명적으로 늦어 있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힘임에도 통제권을 잃었고, 통제권을 잃은 힘은 정해진 선로를 완전히 이탈해 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두웅-!

뻗었던 오른손이 아닌 숨겨두었던 왼손이 팔이 튕겨 나가며 중심이 무너져 앞으로 쏠린 강정민의 가슴팍을 두드린다.

단단한 근육을 뚫고 내부를 진탕시키는 경력(勁力)이 내공의 보호를 뚫고 강정민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너는…….'

쓰러지기 전 강정민과 도진의 시선이 마주한다.

'어때?'

도진이 눈으로 묻는다.

내공에서는 분명히 자신이 앞선다.

그럼에도 패배했다.

그 이유는, 도진의 한 수가 강정민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배운 무공의 고하가 아니다.

단순히 신비가 어린 진무가 강정민의 무공을 넘어선 것이 아니다.

한 수에 담긴 도진의 피와 땀이 서린 노력이, 은연중 도진을 경시했던 강정민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렇기에 강정민은 쓰러지기 전 눈으로 말했다.

'너는, 인정받을 만한 무인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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