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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6화 (36/741)

36화

오군성이 도진을 타고난 사냥꾼이라 평한 건 사냥'만' 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냥이 지극히 효율적이고 또 말 그대로 노련했기 때문이었다.

치고 빠질 때를 알고 약점을 찌를 줄 안다.

그리고 그 사냥감을 정함에 있어 '우두머리'를 노릴 줄도 알았다.

무리 안에는 필연적으로 중심이 되는 우두머리가 있다.

도진은 1순위로 그 우두머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학생을 노렸다.

우두머리는 숫자로는 똑같은 1이지만 그 여파는 결코 1이 아니었다.

무리가 뭉치고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중심을 잡고 컨트롤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다못해 중심이 있기라도 해야 결속력이 단단해진다.

한데 그렇게 해 줄 인물이 사라지면 무리는 허무하게 와해되고 만다.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 버리기도 한다.

식사 시간에 연합한 무리들을 유심히 봐 둔 도진은 이를 노리고 중심으로 보이는 학생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마주치면 우선해서 리타이어시키려 했다.

오군성은 학생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진 않았으나 그 연륜만으로도 도진이 의도했던 바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그래서 더욱 도진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이런 도진의 행동은 소담과 우정한이 합류한 뒤부터 더욱 가속되었고, 이내 남은 학생들은 구심점이 없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도진과 한 조가 되었던, 다섯 명의 학생이 나머지 학생들을 강제로 묶고 있던 그룹이 있었다.

그 다섯 중 네 명이 리타이어 당하니 이 그룹은 대번에 산산조각나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된 개개인은 결코 배틀로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상황이 진행되었기에, 이 시점에서 오대용이 생존해 있는 건 충분히 주목을 받을 만했다.

오대용은 현재 시험을 치르고 있는 1조에서 가장 큰 연합의 중심인 학생이다.

이런 오대용은 도진 연합의 제거 대상 1순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초반에 도진 연합과 마주치지 않았던 운도 작용했지만 그 이상으로 판을 읽고 대처할 줄 아는 인재가 곁에 있었던 것이 더욱 컸다.

주정아.

오성의 1차 협력사 중 가장 유명한 성운의 3세다.

성운은 오군성의 오랜 친우인 주대운이 회장으로 있는 기업으로, 두 사람의 친분이 깊은 만큼 집안끼리의 관계도 깊은 편이었다.

오군성은 주정아에 대해 차라리 내 손녀였으면 자리를 물려줄 생각으로 가르쳤을 거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실제 주정아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만 먹었으면 후기지수 자리를 노려볼 수 있을 만큼 무공이 강했고 지혜도 깊었다.

한데 그러지 않은 건, 어릴 적부터 함께 해 온 친구인 오대용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세간에는 오대용이 금수저 물고 세상 편히 사는 헐렁한 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놈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처음 만났을 때 순진하게 웃는 얼굴이 기억에 남았다.

집안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국 아무런 기대를 받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비뚤어지지 않았다.

절망하고 포기했지만 나쁜 길로 들어서진 않았단 말이다.

그래서 이끌어주고 싶었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은 파밍보다 우선 세력을 키워야 해."

주정아는 빠르게 오대용과 합류하는 데 성공하고 가장 먼저 그렇게 말했다.

전략적으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녀의 소꿉친구는 설명을 듣지 않고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항상 그렇듯 현명한 그녀가 올바른 판단을 내렸을 거라 믿어준 것이었다.

최대한 안전한 루트를 짜서 다니며 생존자를 만나면 연합을 가리지 않고 우선 끌어들이려 했다.

그렇게 덩치를 불렸기에 우정한과 서소담을 한 번씩 마주쳤지만 한 명의 희생으로 넘길 수 있었다.

"역시……."

어차피 모두가 적이 될 배틀로얄.

그러므로 가장 취약한 지금 최대한 수를 줄여 놓으려 들지도 모른다는 예측대로 도진 연합이 움직였다.

"…그러니까 지금쯤 너희 연합은 벌써 절반 이상이 탈락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일단은 무조건 뭉쳐서 태세를 정비할 때까지는 함께 해야 돼. 어차피 우리끼리 지금 싸울 것도 아니잖아. 파밍한 건 공평하게 나누면 되고."

주정아는 최악의 경우 절반이 당했을 거라는 가정 하에 더 신중하게 움직였다.

파밍이 더디고 불만도 나왔지만 결코 인원을 나누지 않고 뭉쳐 다녔고 그 덕분에 이탈자들이 있었음에도 열 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습격에서 살아남았던 소규모 무리의 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파밍을 안하고 계속 사냥을 다닌다고?"

"그렇더라고. 아예 오늘 끝낼 기세였어."

'정말로 그러려는 걸까? 위험 부담이 높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 두었던 그림이 삐걱인다. 퍼즐에서 놓친 부분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진 연합이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에서 음식을 포장해 왔다는 것이었는데 치명적이게도 그녀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었다.

오군성과 마찬가지로 살아온 환경에 의한 선입관, 그리고 아직은 어린 나이에서 오는 경험의 부족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모두 모아야 해."

"왜?"

"어떻게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제 저쪽은 셋이서 같이 다니면서 무조건 수를 줄이려 들 거야. 일정 이상 수가 줄어 버리면 이쪽이 지게 돼. 그러니까 무조건 우리 수를 늘려야 해."

중앙 호수에서 한 번 파밍을 했다는 정보는 입수했다.

그러니 적어도 오늘 하루종일은 날뛸 수 있을 것이다.

그 셋에게 당하지 않을 만큼의 수를 확보하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지 못하면 승산이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만 있다면 이쪽이 유리하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이 내용을 설명했다.

주정아는 충분히 납득할 만큼의 설명을 했고 학생들이 모두 여기에 따라줄 거라 생각했다.

"우린 됐어."

……하지만 아니었다.

정보를 전해 주었던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함께 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왜. 주정아는 그렇게 물었다.

학생들이 답했다.

"어차피 이번 판은 망했잖아. 여기서 힘 뺄 바에야 두 번째 판을 노리는 게 나을 거 같아."

관문 시험과 마찬가지로 배틀로얄에서도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특성상 말 그대로 운 없게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예상치 못하게 최악의 상황에서 1조에 배치된 걸로도 모자라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 한 데 배치되었다.

여기서 허우적거려 못난 모습을 보여줄 바에야 두 번째 기회에 걸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

주정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패배자 근성이다. 두 번째 판은 애초에 최고점을 받을 수 없다는 패널티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기가 꺾인 학생들은 이번 판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나서는,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있었다.

"개소리하지 마."

"……뭐?"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것은 놀랍게도 오대용이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먼저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매사에 낭창낭창하기로 유명했던 오대용.

그 오대용이 지금 이글거리는 눈으로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병신같이 포기하면 두 번째 판이라고 해서 제대로 점수를 줄 것 같아? 애초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

두 번째 기회는 첫 번째와 같지 않다. 인원수 제한도 없고 좀 더 빡빡하며, 뒤가 없는 학생들이 모조리 참가한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기회에서 합격점을 얻는 학생은 채 열 명이 되지 못했다.

오대용이 그것을 자각시켜주자 학생들이 머뭇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그래도 어쨌든 절반 이하로 참가자가 줄어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눈앞에는 연합의 중심이 될 오대용도 있었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주정아까지 있다.

이 연합에 끼어서 제몫을 해낸다면, 앞서의 모습들을 만회할 수 있다면 차라리 이쪽이 더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은 그런 판단을 내렸고 그렇게 도진 연합에 대항하기 위한 스물두 명의 연합이 탄생한 것이었다.

주정아는 평소와 다른 모습의 오대용을 보며 남몰래 쓰게 웃었다.

'그렇게 유아 언니가 좋은 거야?'

평소 이토록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시피 한 오대용이었다.

주정아는 그 이유가 한유아에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

도진을 꺾으면 좀 더 관심을 보여주겠다던 약속. 그것이 오대용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주정아는 자신은 오대용을 이렇게 의욕적으로 만들지 못했음에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감정을 묻어두고 이렇게 의욕적인 오대용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였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전력은 무조건 우리가 앞서고 있어. 흩어지거나 방심하지만 않으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거지."

다만 사람이 24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을 순 없고 주도권이 저쪽에 있기에 힘든 것이다.

"무조건 버티는 것도 방법이야. 하지만 그래선 허무하게 탈락하는 사람이 늘겠지."

배틀로얄의 영역은 하루가 지날수록 줄어들어 결국은 중앙 호수만이 남게 된다.

거기까지 가면 중앙 호수에 떨어지는 작은 상자의 '승리의 증표'를 획득한 사람이 1등이 된다.

디딜 땅이 없는 호수에서 쟁탈전을 벌이니 승부를 내지 않을 수 없다.

한데 거기까지 가지도 않을 거다.

도진 연합 측에서 빈틈을 노려 하나둘씩 수를 줄이면 그렇게 탈락하는 학생들은 불만을 가지고 사기도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주정아는 단기 결전을 택했다.

최소한의 파밍만을 하고 구석에 모여서 체력을 회복하고 식량을 한끼에 모두 소모해 버렸다.

그렇게 컨디션을 끌어올린 뒤, 도진 연합을 포위해 버린 것이다.

여기서 활약해야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 다른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했다.

"…어쩐지 한 명도 안 보이더라니, 이걸 노린 거였구나."

도진은 상대가 뭉쳐서 버틸 경우 결국은 파밍 싸움을 겸한 장기전이 될 거라 예상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 경계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저쪽에서 모든 것이 걸린 한 방 승부를 걸어온 것이었다.

최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먹고 쉰 티가 난다.

지금껏 돌아다녔던 도진 연합과 비슷한 정도까지 체력을 회복한 듯 보였다.

거기에 이쪽은 세 명 저쪽은 스물두 명.

심지어 모두 무기를 지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자 주력으로 익힌 무공에 적합한 무기를 들고 있는데, 이는 '맨몸' 안에 학생이 선택한 무기 하나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권각술을 익힌 학생과 무기술을 익힌 학생 사이의 최소한의 형평성을 위해서였다.

전력차는 압도적이다.

'머리 쓸 줄 아는 애가 있구나.'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이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한데 대번에 상황이 반전되어 버렸다.

오대용 연합 쪽에 꽤 머리 좋은 애가 있었구나 하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대용 곁에 있는 여학생일 거라고 대번에 짚어냈다.

훤칠한 키에 신중한 인상의 여학생이다.

척 봐도 보통이 아닌 실력이었고 무엇보다 도진 연합을 둘러싼 학생들의 '시선의 중심'이 바로 그 여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좋은 건 당연히 우두머리를 치는 것이다.

도진은 소담과 우정한에게 시선을 보낸 뒤 망설이지 않고 땅을 박차며 폭발적인 기세로 그 여학생, 주정아를 향해 쇄도했다.

가능하다면 주정아를 리타이어시킨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머리'를 흔들어 포위망을 흩트린 뒤 빠져나갈 의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했다.

'음?'

도진을 노려보고 있던 오대용이 망설이지 않고 도진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그 사이 주정아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소담과 우정한을 둘러싸고 협공에 들어가 버렸다.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도진은 약간 흔들리며 오대용과 부딪쳤다.

3성을 향해 가는 무흔잠영은 오대용의 정직한 공격을 대번에 읽어냈다.

퍼엉!

'……!'

그러나 그것이 승리로 이어지진 못했는데, 오대용의 주먹이 생각 이상으로 묵직했기 때문이다.

'내공이 생각 이상이야.'

좋은 집안의 지원을 받아 내공을 쌓아왔기에 도진의 두 배는 될 법한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내공 사이에도 격차가 있었기에 대등한 힘싸움이 되었지 천마기가 아니었다면 압도적으로 밀렸을 것이다.

거기에.

파팍!

도진을 공격하는 오대용의 보법, 그리고 초식들이 생각보다 더 기본기가 탄탄했다.

오대용에게서 도진으로 이어지는 시선은 정직하다.

그러나 힘이 깃들어 있고 빨라서 제대로 대응해야만 했다.

팍!

힘 있게 내딛는 디딤발에서 시작하는 발경의 묘리가 깃든 주먹이 도진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 뒤가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절묘한 위치를 밟아 피하기가 애매했고 워낙 강력해 카운터를 노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도진도 마주 발경의 기세를 담아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내공과 내공, 주먹과 주먹의 순수한 격돌.

거기서 어느 쪽도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도진은 손해를 보았다.

'합류해야 하는데…….'

소담과 우정한이 악전고투를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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