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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3화 (33/741)

33화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 습격 사건.

그것은 그러니까 상상도 하기 힘든 스케일의 '몰래카메라'였다.

학생들 모르게 치러진 시험.

군용 헬기를 동원하여 미사일을 쏜 것부터가 바로 그 시험의 시작이었다.

미사일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소리와 충격만 요란한 '공포탄'이었고 애초에 선체에 맞지도 않았다.

일부러 바다에 쏜 미사일이 터짐과 동시에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에 탑재되어 있는 자세 제어 시스템을 이용, 크루즈를 타이밍에 맞춰 흔듦으로써 피격당한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비상 경보음과 붉은 경고등을 요란하게 작동시켰다.

학생들은 거센 요동과 경보음, 그리고 경고등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습격이 진짜라 믿게 되었다.

이렇게 패닉에 빠지려는 상황에서 창을 깨고 복면인, 사실은 3학년 졸업반 학생들이 일부 교사들과 함께 난입해 버리니 이때부터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가진 학생은 거의 남지 않았다.

실제 날붙이를 이용하여 실전에 가까운 격전을 벌였고 피까지 튀었다.

아직은 중학생인 응시생들이 혼란 속에서 그것을 구분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온실 속 화초'였던 좋은 집안의 자제들이라면 더더욱.

생전 처음 겪는 목숨이 위협받는 밤바다 위에서의 극한 상황.

대부분의 학생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지금 구명정을 댄 뭍에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엉망이 된 채 널브러진 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랬기에, 그 사이에서 이질적이라 해야 할 만큼 깔끔한 모습의 도진과 소담이 돋보이고 있었다.

"자네들은 이게 시험이란 걸 진작 눈치챘던 모양이야?"

가장 먼저 복면을 벗고 응시생들을 맞이해 주었던 교사의 말에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확신한 건 구명정에 타려던 때였습니다. 그 전까진 의심만 하고 있었죠."

"호오, 어떤 점이 의심스러웠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과연 숭무고 응시생들을 태운 크루즈를 군용 헬기까지 동원해 대규모로 습격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하고요."

그랬다.

대한민국은 어찌되었든 객관적으로 손꼽히는 국력(國力)을 가진 나라다.

그중에서도 치안은 어떤 강대국이나 선진국보다도 좋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이런 나라에서 이런 규모의 테러가, 그것도 숭무고 응시생들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도진은 의심한 것이다.

그 덕분에 좀 더 넓은 시야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제 친구 덕분에 좀 더 침착할 수 있었구요."

그렇게 말하며 도진은 소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빈말이나 포장이 아니었다. 정말로 도진은 소담 덕분에 더욱 침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균형을 잡기 힘들 정도로 배가 흔들리고 창이 깨지며 날붙이를 든 복면인들이 들이닥치는 상황.

그러나 소담은 그 아수라장이 마치 제자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 낯선 모습이 도진의 가슴을 차게 식히고 또 가라앉혔다.

'…소담이의 내력은 결국 밝혀진 게 없었어.'

1년 뒤 겨울. 서소담이 비극적으로 죽었음에도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무림출도하여 숭무고에 수석으로 합격, 후기지수로 화려한 1년을 보냈음에도 그렇게 서소담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위장이었다고는 해도 작정하고 벌인 테러 상황에서 침착한 것을 넘어 마치 그것이 일상이었던 건 아닐까 싶은 인상을 주었던 소담이 도진은 지금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되짚어보니 도진은 소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마치 모니터 너머로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지면 찾을 길이 없는 그런 관계처럼.

"제법이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했는데 그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다니."

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진에게 계속하라는 시선을 보냈다.

도진은 떠올랐던 생각을 우선은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확신했던 건 교수님들에 비해 습격자들의 수가 월등했고 학생들은 패닉에 빠져 있었는데도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랬다.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에 있던 교사들은 다 합쳐도 서른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인솔을 위해 함께 온 무인들까지 합쳐도 마흔 명이 조금 넘는 정도.

당장 식당에 있던 건 다섯 명 남짓이었고.

그렇게 교사와 무인들이 흩어져 있던 상황에서 합류를 해야 했고 탈출을 위해 구명정이 있는 구역까지 이동을 해야 했다.

지키는 쪽이 습격하는 쪽보다 불리한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물며 그것이 수적으로 확연한 열세임에야 더더욱.

더욱 최악이었던 건 지켜야 하는 학생들이 패닉에 빠져 있어 대열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단 거다.

그런 상황에서 236명의 학생들 중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었다.

마치 위협은 하되 실제로 해를 끼치진 않는 귀신의 집처럼.

여기서 도진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 이건 시험이 아닐까 하고.

"쐐기를 박은 건 여기 한유아 선배가 납치당할 뻔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유아는 후기지수다.

그 나이 또래를 넘어서는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습격자의 밧줄에 너무 무기력하게 붙잡혔고 심지어 끌려가면서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않았다.

밧줄에 양팔이 묶여도 쓸 수 있는 수단은 몇 개나 됐을 텐데 말이다.

찰나였지만 도진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랬기에 망설임없이 밧줄의 끝자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어 한유아와 시선을 마주했을 때 확신은 확정이 되었다.

그 푸른 눈동자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의외'였으니까.

납치당할 상황에서 보일 감정이 결코 아니었다.

이어 의외는 흥미로 바뀌었고 어디 해보라는 듯 한유아는 몸을 튕겨 밧줄에 탄력을 만들었고 도진은 복면인에게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드러난 복면인의 눈에 담긴 감정은 당황이었다.

이게 아닌데.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도진의 발차기에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바다로 도피하는 걸 택한 것이었다.

이쯤 되니 폭발음과 바닷물이 높이 치솟는 아비규환을 연출하는 상황에서도 '픽션'임을 아는 도진이 당황할 일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허, 정말 대단하구만."

교사, 이번 시험을 제안하고 총 지휘를 맡았던 삼재인(三才人) 정도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도착할 때까지 이것이 시험을 위해 연출된 상황이라는 걸 깨달을 학생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를 테면 지극히 어려운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것이다.

정답을 알고 보면 답이 극명히 드러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도진이 말한 것들은 한 걸음 물러서서 침착하게 살피면 눈치챌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현장에 휩쓸린 상황에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물며 그 스케일이 스케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군용 헬기에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을 손상시켜가면서까지 연극을 벌일 거라는 생각이 과연 쉽게 들겠는가.

그래서 평가 기준을 빡빡하게 잡지 않고 난리 속에서 얼마나 침착하게 움직일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대표적으로 우정한이 고점을 받았다.

우정한은 도진이나 소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두 사람과 함께 했다.

최대한 다른 학생들을 돕기까지 하면서.

한데 그런 우정한 이상으로 눈에 띄는 학생이 '세 명'이나 나왔다.

김도진, 서소담.

그리고 나지윤.

남자치곤 긴 머리에 여리여리한 몸이 특징인 학생이었다.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게 나지윤이었어.'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확인했다.

나지윤은 첫 습격에 이미 연출된 상황이라는 걸 꿰뚫어 보았다.

심지어 그가 보고 있던 CCTV에 슬쩍 다 안다는 시선을 주었을 땐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순간 압도될 뻔 했다.

중간에 휘청이던 건 아마 굳이 구명정까지 가지 않고 일부러, 자연스럽게 붙잡혀 시험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정도수가 보기에 나지윤은 무림인임에도 불구하고 '육체 노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각본대로 가기보다 일부러 붙잡혀 상황을 알리는 것으로 조기 리타이어와 함께 큰 점수도 챙기려 했을 터.

'뭐, 그건 김도진 때문에 의도치 않게 실패했지만 말이지.'

어쨌든 정도수는 내심 흡족해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있어 재능 있는 후기지수를 보는 건 언제나 기꺼운 일이었으니까.

"…이건 도가 지나친 게 아닙니까?"

"음?"

문득 들려온 항의에 정도수는 그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여기저기 구르고 바닷물까지 뒤집어써 엉망이 된,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남학생이었다.

'…낙제생이로군.'

기억력이 좋은 정도수는 그 학생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먼저 구명정에 타겠다고 다른 학생들을 밀치며, 통제에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학생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최하점을 넘어 마이너스였다.

정도수는 그런 탐탁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물었다.

"무엇이 도가 지나친 거지?"

남학생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위협받을 상황을 만드는 걸 시험이라 포장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감정에 북받쳐 외치는데 말은 청산유수가 아니었다.

그 감정조차 제대로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도수는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정말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었나?"

"……예?"

남학생이 멈칫했다.

정도수는 돌연 시선을 도진에게로 향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갑작스런 물음. 그러나 도진은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실질적으로 응시생을 위험하게 만들 요소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침착하게 행동하기만 했다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되었을 테죠. 어디까지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점수를 따기 위해 입바른 말을 한 게 아니라 도진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졸업하여 진짜 무림을 살아가게 되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번 시험은 시험이 아니라 오히려 돈주고도 하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라 할 수 있었다.

남학생은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 상황마저 무림 업계의 선배들, 그리고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너무 안일했다.

이 자리의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고 자신했다.

숭무고의 관문 시험과 본 시험의 큰 틀은 몇 년이나 유지되고 있었고 그만큼 많은 사전 정보와 자료들이 있었으니까.

맞춤 과외를 받았고 전문 플래너의 변수를 고려한 계획까지 머리에 철저하게 때려박았다.

여기에 쓴 돈만 해도 최소가 수천만이었다.

그걸 바탕으로 응시하면 세부적인 것들이 바뀌어도 얼마든지 맞춰서 대응할 수 있다 여긴 것이다.

한데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안일하고 미흡했는지 백사장에 널브러진 지금 학생들은 뼈저리게 체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길게 체감할 여유를 정도수는 주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미리 나눠둔 조에 따라 1조부터 본 시험을 시작하겠다."

"예?"

"지, 지금부터요?"

"그럼 또 밥까지 든든하게 먹고 샤워까지 하고 말끔한 상태로 시험을 치를 거라 생각했나? 그래서야 서바이벌이자 배틀로얄인 본 시험의 취지를 살릴 수 없지 않나?"

"……."

처음으로 치러졌던 본 시험은 그랬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투박한 배틀로얄이 금화도에서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게임마냥 공략과 팁이 나돌면서 본질에서는 멀어진 시험이 되었다.

물론 숭무고에서도 어느 정도는 의도한 바였다.

무림인 본연의 대처 능력만이 아닌 말 그대로 '무림 사회에서의 생존력'을 볼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것도 너무 고착화 되어선 곤란했다.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 바로 이번 시험이었다.

아수라장을 헤쳐 나와 피폐하고 짐 하나 없는 바로 이 상태로 배틀로얄에 돌입하는 것.

그것을 의도했고 정도수는 자비없이 본 시험에 첫 번째 조로 뽑힌 '운 없는' 응시생들을 몰아 넣었다.

그 안에는 도진과 소담, 우정한과 오대용의 연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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