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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2화 (32/741)

32화

"안녕."

"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한유아의 인사를 도진은 담담하게 받았다.

그저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태도. 그것이 한유아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이 담담한 얼굴을 놀라게 해주고 싶은데.

그리고 동시에 그런 짓궂은 생각을 하는 한유아였다.

"그새 친구가 한 명 늘었네. 안녕."

"예, 안녕하십니까. 보살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우정한, 그리고 소담과도 인사를 나눈 한유아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도진과 잡담을 이어나갔다.

그런 한유아의 모습을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오대용은 질투를 활활 불태웠다.

'김도진…….'

자신과는 겨우 인사만 나누더니 김도진과는 아예 은근슬쩍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발산되는 기세를, 도진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아, 그런 건가.'

왜 안면도 없던 애가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했더니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진짜 구미호 같은 선배네.'

슬쩍 시선을 보내니 아무렇지 않게 눈을 마주하며 사람을 홀리는 미소를 짓는다.

다 알고 있다는 시선을 보냈는데 능청스럽게 그러는 것이다.

덕분에 오대용의 눈에서는 아예 레이저가 나올 지경이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다정하게 눈빛을 주고 받는 것처럼 보이니까.

"집행부에서는 두 분만 오신 건가요?"

"일단 여기는 그렇네. 나머지는 금화도에서 세팅중일 거야."

"그렇군요."

도진은 오대용을 신경쓰지 않고 은근슬쩍 정보를 수집해 볼 요량으로 한유아와 대화를 나눴다.

"도착하면 조부터 나누겠네요."

"그래야겠지? 236명이 한꺼번에 배틀로얄을 할 정도로 섬이 크진 않으니까."

다만 그다지 영양가는 없었는데, 한유아는 알아도 상관없는 정보와 알려주면 안 되는 정보를 철저하게 분리해 대답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호의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

그것만 새삼 확인했다.

그리고 남학생들의 적대감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게 함께 있을수록 손해였다.

안 그래도 원서를 내러 간 날 도진과 한유아가 손을 섞었던 게 소문이 났었는데 오늘 이렇게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더욱 주목을 끌 수밖에.

그렇게 도진의 테이블이 식당 내의 주목을 끌어모으고 있을 때였다.

"……어?"

우연찮게 식당의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던 학생 하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흘렸다.

"왜 그래?"

"저거……."

달빛이 약해 어슴푸레한 밤하늘을 날아 가까워지는 헬기가 한 대 있었다.

타타타타타-!!

거리가 가까워지며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가 두꺼운 창을 뚫고 학생들의 귀를 때렸다.

그즈음엔 모두의 시선이 창밖의 헬기로 향하게 됐다.

"뭐야?"

"어? 군용이잖아?"

집안이 그쪽 업계였던 학생 하나가 헬기가 군용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

얼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군용 헬기가, 미사일을 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학생들의 이해가 상황을 바로 따라가지 못했다.

"모두 엎드려!!"

식당에 있던 교사의 내공을 담은 벼락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콰아아아아앙!!

크래들 오브 블루 웨일의 거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와장창창!

콰당탕!

"꺄아아아아악!!"

테이블이 엎어지고 학생들이 나뒹굴었다.

웨에에에에에엥!!

이어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고 경보가 터져 나오며 혼란이 가중되었다.

"으아아악!"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상치도 못했던 상황. 그리고 그것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치달았다.

콰장창!

남아있던 창들이 깨지며 검은 복면인들이 난입했다.

"웬놈이냐!!"

식당으로 뛰어들어온 교사들이 그 복면인들을 막아서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다.

"정신차려라!!"

"중앙으로 모여라!!"

내공을 담아 귀를 후려치듯 외치는 교사들 쪽으로 학생들이 모였다.

패닉에 빠져 네발짐승마냥 기는 학생들마저 있었다.

"하, 하이잭인가?"

"모, 몸값을 노리려고 납치하려는 걸지도."

"설마 그 무림인 납치범들인가?"

"히이이익!!"

무림인이라고, 엘리트라고, 상류층 자재랍시고 거들먹거렸지만 그래봐야 아직은 중학생.

갑작스런 '테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그래도 다른 학생들보다 두 배는 더 살았던 도진은 침착하게 소담과 우정한, 심지어 짐까지 챙겨 무리에 합류한 뒤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하이재킹.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이곳에는 무려 한유아까지 귀하신 몸들이 가득하다.

그것이 돈을 목적으로 한 납치이든, 혹은 상상도 못할 음모나 단체가 얽힌 것이든 테러 시도의 확률이 제로는 아니었다.

채채챙!

"웬 놈들이냐!!"

반원형으로 포진해 학생들을 지키며 교사들이 난입한 복면인들을 몰아친다.

다른 곳도 아닌 숭무고의 교사진인 만큼 출중한 실력으로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계속해서 난입하여 쓰러뜨려도 수가 줄지를 않았다.

결국 철탑거권 석호필이 교사 몇 명과 함께 뒤로 빠져 나와 학생들에게 말했다.

"선두의 구명정까지 길을 뚫을 것이다. 구명정을 타고 금화도로 탈출할 테니 뒤쳐지지 마라."

"구, 구명정이요?"

"그래. 제트 엔진이 장착된 모델로 알고 있다. 이 배로는 놈들을 따돌릴 수 없으니 구명정을 타야 따돌릴 수 있다."

알고보니 지금 이 배 주위를 테러 집단이 배로 포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교사들이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수에서 열세이니 중과부적이다.

이러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기습을 당하면 교사들은 몰라도 학생들은 순식간에 위험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모험을 해야 했다.

"우리들이 철저하게 지킬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소용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따라와라."

"무리야!"

"나, 난 못 해!"

일부 학생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선 고개를 붕붕 저었다.

날붙이가 번쩍이고 피가 튀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림에서는 스스로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법이다. 누구도 너희의 목숨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그러나 석호필은 그렇게 말하고선 단호히 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교사들의 움직임과 위치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바로 작전을 실행하려는 것이었다.

"달려라!!"

석호필을 선두로 하여 교사들이 쐐기 형태로 포위를 뚫고 나아갔다.

학생들이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허겁지겁 뒤따랐고, 양옆과 뒤를 또 교사들이 받쳤다.

도진과 소담, 그리고 우정한도 무리에 섞여 달렸다.

도진은 묘한 눈동자로 상황을 살피던 중 눈을 크게 떴다.

'어?'

연합을 살피던 중 보았던 학생들 중 기억에 남았던,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이 돌연 발을 헛디딘 듯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지금 교사들은 학생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달리고 있다.

여기서 뒤쳐지면 끝이었다.

한 명을 살리려다 포위당해 모조리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도진은 약간 속도를 늦추었다.

소담과 우정한에겐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괜찮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휘청이던 남학생을 붙잡았다.

"어?"

남학생은 당황한 듯 큰 눈동자가 떨렸지만 도진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속도를 높였다.

지금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달려서 기적적으로 한 명의 낙오도 없이 구명정이 있는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 구명정이다!"

구명정을 두 눈으로 확인한 학생들이 허겁지겁 속도를 높였다.

"침착하게 타라!"

"서두르지 마라!"

교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최소한의 교통정리를 했다.

"놔, 놔! 내가 먼저 타야 된다고!"

그 와중에도 지시를 따르지 않고 결국 본성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다만 수천 명이 타야 하는 크루즈인 만큼 구명정이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있었고 애초에 무려 300인승이 있어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그렇게 탈출을 코앞에 두고 조금은 어수선한 그때, 돌연 복면인 하나가 창을 뚫고 난입했다.

콰창!

"……!"

반응이 늦었다.

경계가 조금 느슨해진 순간. 교사들도 학생들을 신경쓰느라 빈틈이 생기고 말았던 그 순간의 절묘한 기습이었다.

복면인은 무기를 들고 난입하지 않았다.

대신 팔에 감고 있던 굵은 밧줄을 날려서.

"꺅!"

한 걸음 떨어져 있던 한유아를 휘감아 낚아챘다.

"허억!"

"한유아!"

교사들이 경악하며 뒤늦게 반응하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어떤 장치를 한 듯 밧줄은 순식간에 되감겨 버렸고 그 밧줄 또한 보통 물건이 아니었던지 한유아는 그것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한유아가 끌려가려는 순간이었다.

"……!"

복면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밧줄의 끝. 그것을 붙잡고 누군가가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한유아의 근처에 있었던 도진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구명정에 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도진 또한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한유아의 근처에 있었고 밧줄이 날아든 순간 기민하게 반응해 끄트머리를 붙잡았던 것이다.

도진과 한유아의 시선이 마주했다.

드물게도 한유아의 눈동자에 의외라는 감정이 어렸다.

팍!

그리고 한유아가 크게 몸을 튕겼다.

그 탄력으로 도진의 몸이 새총의 돌처럼 복면인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뤄진 쇄도.

복면인의 시선과 도진의 시선이 부딪친다.

그 순간 도진은 무언가를 확신했고, 망설임없이 발을 뻗었다.

빠악!

복면인은 팔목 보호대를 내밀어 그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밧줄을 포기하고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풍덩!

어두운 바닷속으로 복면인이 사라지고 도진은 한유아를 안아든 채 공격의 반동을 이용해 부드럽게 내려섰다.

도진에게 안긴 한유아가 언제나처럼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와, 반할 거 같아."

"아뇨, 그러지 마세요. 아직은 선배님을 위해서 목숨 걸고 싶지는 않거든요."

"쉽지 않은 남자라 더 매력 있네."

진심이 아닌 말에 적당히 대답하며 도진은 한유아를 내려준 뒤 밧줄을 풀어 주었다.

그 모습을 구명정 위에서 오대용이 이를 악물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거기에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습격자들이 더 오기 전에 서둘러라! 배가 가라앉는다!"

채앵!

여기까지 밀려온 복면인들을 막아내는 교사들의 외침에 다급하게 구명정에 탑승할 뿐이었다.

석호필을 포함해 교사들 대부분이 남고 두 명의 교사만이 구명정에 탑승해 시동을 걸었다.

콰아아아아아!!

시동이 걸린 구명정이 바깥으로 사출돼 밤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꼭 금화도로 가야 하나요? 뭍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요?"

탑승한 학생들 중 한 명이 교사에게 물었다.

이 와중에도 어느 정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은지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교사는 그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뒤쪽에서부터 저들이 공격해 왔는데 그랬다간 적진의 포위 한가운데로 파고드는 꼴이다. 연락이 들어갔으니 차라리 금화도의 벙커에 들어가 버티는 게 안전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숭무고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다.

교사의 말대로 금화도에 마련된 벙커에 들어가 조금만 버티면 해군이 출동해 해결해 줄 일이었다.

퍼엉! 퍼엉!

"으아아악!"

뒤에서 들려온 폭발음에 학생들이 몸을 숙이며 비명을 질렀다.

크게 물보라가 치솟았는데, 구명정을 노리고 대포라도 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포에 질린 학생들을 태운 구명정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화도의 뭍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허겁지겁 내려 벙커를 찾았다.

바로 그때.

탕! 탕! 탕! 탕!

정면에서 거대한 조명들이 켜지며 어둠에 익숙해졌던 학생들의 눈을 찔렀다.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가리는 학생들.

그리고 천천히 빛에 적응하며 가렸던 손을 내린 학생들이 경악했다.

거대한 조명 너머. 크루즈를 습격했던 예의 복면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복면인들 중 한 명이 한 발 앞으로 나서 복면을 벗으며 말했다.

"금화도에 온 걸 환영한다. 42기 응시생들."

"……어?"

복면을 벗은 그는, 다름 아닌 숭무고의 교사 중 한 명이었다.

-개꿀잼 몰카로구나.

도진의 안에서 위지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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