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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8화 (28/741)

28화

조금 과했다.

도진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뉴스 무림탭의 댓글 많은 뉴스 1위는 다름 아닌 도진의 장애물 달리기 신기록에 관한 기사였다.

-[종합] 숭무고 관문 시험 '장애물 달리기', 8년만에 신기록 나와

다른 곳도 아닌 명문 중의 명문 숭무고의 관문 시험에서 8년동안 깨지지 않던 기록이 깨졌으니 이슈가 되는 게 당연했다.

안 그래도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무림의 일, 그것도 신기록이 나온 이슈였으며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기사에 집중되었다.

-300미터 19초대 실화냐;;

-와 속도 봐랔ㅋㅋㅋㅋㅋ

-저거 완전 씨바 아무도 나를 막을수없으샘 아니냐 ㅋㅋㅋ

도진의 질주는 그야말로 '불도저'였다.

장애물들 중 무엇 하나 도진의 발목을 붙잡지 못했다.

움직이는 장대는 도진이 즈려밟는 순간 기긱거리며 움직임이 잠시 멎어 버렸다.

마지막 갯벌 코스는 아예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헤집어졌는데 정작 원인이 된 도진은 워낙 기세가 강해 그 난리통에도 옷에 진흙 한 점 묻지 않았다.

속도가 전혀 줄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시원시원하고 거칠 것 없는 질주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다면 댓글 많은 뉴스 1위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저거 그냥 어거지로 돌파한 건데 왜이리 난리냐.

-그러게. 속도만 빨랐지 섬세함도 없고.

-? 배아파서 장이 뒤틀림?

-그래서 님 학교가?

-그님학?

부정적인 댓글에 또 댓글이 달리고, 거기에 반박이 달린다.

그리하여 아주 활활 타오르며 댓글이 수천 개나 달리는 콜로세움이 열렸던 것이다.

-아니 우정한을 봐라. 저런 게 바로 '무예(武藝)'라는 거다. 걍 무식하게 달리는 게 무예가 아니라.

-무림출도녀도 그렇지. 니들이 봐도 존나 예술적이지 않냐.

-다른 건 모르겠는데 무림출도녀가 존나 예쁜 건 반박불가지.

-그래서 저 김도진이 19.98 찍은 건 인정을 못하시겠다?

-대단하긴 대단한데 솔까 우정한이나 무림출도녀도 맘 먹고 달렸으면 19초 찍지 븅들아;;

'뭐, 그건 맞지.'

도진은 댓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의 기록은 분명히 신기록이었고 대단한 것이었으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우정한도, 서소담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 하면, 관문 시험 다음에 있는 본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관문 시험의 통과가 숭무고에 입학하기 위한 최소한의 능력을 보는 시험이라면 본 시험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배틀로얄'이었다.

관문 시험을 통과한 인원을 추려 최소 60명, 최대 100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을 만들고 숭무고 소유의 무인도에서 배틀로얄을 벌인다.

그것이 바로 숭무고의 본 시험이다.

평균 80명이 한 조가 되어 각 포인트에 혼자 배치된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되면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배틀로얄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죽을 일은 없다.

아직 고등반이 아닌 학생들은 날붙이가 아닌 목검 등의 비살상 무기만 허용이 되었고 전투 불능이 되면 탈락, 공격이 금지된다.

교사들이 배치되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모니터링도 꼼꼼히 하기 때문에 큰 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 배틀로얄은 규칙 자체는 간단하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려운 시험이었다.

제압한 상대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을수록 가산점이 붙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연합을 할 수도 있고 기습을 할 수도 있으며 눈앞의 적을 상대하다 기습을 당할 수도 있다.

실력은 물론 상황을 읽는 능력, 연합을 짜고 그것을 관리하는 능력 등 종합적인 '무림인으로서의 능력'을 보기에 아주 적합한 시험이었던 것이다.

조기에 탈락하더라도 교사들이 만족할 만한 활약을 했다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합격을 위한 점수를 벌기 위해서는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이 시험을 미리 대비했고 아예 전문적으로 관문 시험부터 배틀로얄까지 플랜을 짜 주는 플래너와 학원이 성행하고 있을 정도였다.

무림의 격언 중에 힘의 삼 할, 그러니까 30% 정도는 숨겨 두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딱 여기에 적용된다.

관문 시험에서는 밑천을 다 드러낼 필요가 없다.

관문 시험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자격을 보는 것이고 채점 비중도 20%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합격할 만큼만 보여 주는 게 이득이다.

돋보이면 괜히 경계당하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니까.

밑천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배틀로얄에서 불리해진다.

때문에 우정한은 후기지수로서 주목받고 경계당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능력만큼은 가늠하기 어렵도록 일부러 천천히 장애물 달리기를 통과한 것이었다.

소담 역시 마찬가지다.

미모 때문에 주목받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 차라리 쉽게 볼 수 없도록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게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른 응시자들도 알고 있을 테니 어차피 경계할 것 오히려 더욱 경계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도진의 '폭주'는 조금 과한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른 응시자들은 분명히 연합을 할 것이다.

연합은 금지 사항이 아니었으니까.

숭무고에 입학할 정도면 집안이든 학연이든 뭐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을 테고 그만큼 연합이 쉽다.

그렇게 연합을 한 무리들은 도진을 노릴 것이다.

관문 시험에서 대단한 실력을 보여줬는데 별 거 없는 학교를 나온 외톨이였으니 탐나는 사냥감이지 않은가.

실력자를 처치할수록 받는 점수가 올라간다.

여기에 '그 정도나 되는' 실력을 보여줬는데 무언가 더 대단한 걸 감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금 더 상향 평가하여 준비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다른 걸 다 떠나서 경계 대상 1호인 도진이 나타나면 싸우다가도 서로 연합해서 도진을 노릴 것이다.

그러나 도진은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슈는 반짝 하고 말 테지만 그때의 선택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로 인해 느꼈던 해방감과 쾌감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또한.

"형!"

"오빠!"

도진이 돌아오자 도도도, 달려 나와 맞이해주는 동생들의 선망의 눈빛을 받을 수도 있었다.

"나 티비 봤어!"

"나도!"

"그래. 멋있었어?"

"응!"

"진짜 진짜 멋있었어!"

늦은 밤 돌아온 어머니의 미소와 뿌듯함 또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들. 티비 나오더라."

"자랑 좀 하셨어요?"

"그러엄. 다른 아줌마들이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더 자랑하셔도 돼요."

"호호. 그래야지."

오늘도 돌아오지 못했지만, 분명히 회사에 계실 아버지에게도 힘이 되었을 거라 도진은 생각했다.

의문투성이인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믿어주는 부모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렸다.

이거면 배틀로얄에서 조금 불리해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감수라는 말은 맞지 않았다.

도진 또한 모든 걸 보여준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호오, 재밌는 게임이로구나.

-외딴섬에서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운다라…… 그리운 방식이로군요.

도진에게도 심상세계에 '1타 강사'들이 머물고 있었다.

* * * *

늦은 밤. 도진이 현실세계에서의 단련을 마치고 슬슬 심상세계로 가려 할 때였다.

-자?

휴대폰이 울리며 메시지가 왔는데 다름 아닌 오늘 전화번호를 교환한 소담이 보낸 것이었다.

3일이나 시간이 있었지만 굳이 길게 끌 일이 아니었기에 도진과 소담은 파죽지세로 오늘 다섯 관문을 모조리 통과해 버렸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첫날 관문 시험을 끝내고 배틀로얄에 대비하는 게 보통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관문 시험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전화번호를 교환한 것이다.

소담의 메시지에 도진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수련 중이었어.

-그렇구나. 나는 공부 중이었는데. 수학 너무 어려워 ㅜㅜ

'아.'

수학. 도진도 쥐약인 과목이었다.

무림학교도 '학교'인 만큼 당연히 무공만이 아니라 공부도 한다.

무공은 육체뿐 아니라 머리도 중요한 운동이었고 무림인 또한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만큼 최소한의 교양과 지식은 갖춰야 했으니까.

무림학교의 학생들은 무공을 익힐 정도 되는 머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공부 또한 대체로 잘 해내는 편이었다.

머리를 타고난 데다 무공을 익히며 얻게 되는 집중력과 체력, 오성(悟性)의 증가까지 겪은 학생이 오히려 공부를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조기 교육까지 받으니 더더욱.

다만 그렇기에 무림학교의 진도와 교육 수준은 빡빡했다.

무공을 익히기도 바쁜데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학……. 난 그냥 외워서 최소점만 노리기로 했어.

-나두.

그래도 전생보단 공부가 수월했다.

심상세계에서 자투리 공부를 하는 편법도 쓸 수 있었고 무공을 익히면서 집중력과 체력이 대폭 증가했다.

거기에 동기가 확실하고 강력하니 머리가 더 잘 돌아갔고, 그것이 확실한 결과로 나타나며 더욱 탄력이 생겼다.

-이해가 힘들면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통째로 외워버려. 그게 낫더라.

-응. 그래야겠어 ㅜㅜ.. 그럼 수고! 시험날 보자!

-그래. 시험날 보자.

도진은 포기했던 과목 수학을 극복한 비법을 소담에게 전수해 준 뒤 심상세계로 들어갔다.

"어서 오너라, 제자야."

"안녕하세요, 스승님. 장호 스승님도 안녕하세요."

"오냐."

오늘은 평소와 달리 위지혁만이 아니라 장호도 함께 있었다.

장호는 일이 없다면 정말로 없는 것처럼 볼 수가 없었으니 오늘은 일이 있어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이 된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도진의 물음에 장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 시험이 재밌는 방식이더구나."

"예. 숭무고의 명물 중 하나입니다."

단순한 배틀로얄이 아니라 최첨단 장비들과 초일류 교사들이 동원되는 무인도에서의 배틀로얄은 한국을 넘어 세계에 소개될 정도로 대단한 시험이었다.

"나도 소싯적에 그런 훈련을 했었지."

"스승님이요?"

"그래. 나 때는 말이야……."

그러면서 드물게도 길게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아주 숲에 내장이 줄줄이 걸릴 정도였지."

그 길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압축하자면, 특급 살수를 뽑는 훈련을 으슥한 숲에서 몇 번이고 치렀는데 수십 명을 도륙내고 결국 살아남았다는 내용이었다.

일부러 시체를, 피를 뿌려서 기척과 냄새를 감추고 어쩌고…….

"오랜만에 그리운 추억을 떠올려서, 그때의 경험을 네 무흔잠영에 더해줄까 한다."

"그,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현대인의 감성과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 뒤에 나온 말이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결론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다.

굳이 피를 볼 건 아니었지만 이런 서바이벌류의 장르에서 전설적인 살수였던 장호가 가진 기술들은 현대의 무림인들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말 그대로 숭무고 본 시험을 대비한 전설적인 강사의 1:1 맞춤 교육이었다.

"너는 수석을 노리고 있지 않느냐. 당분간은 장 제와 수련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리하여 도진은 본 시험에 앞서 맞춤식 집중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더욱 자신 있게 본 시험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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