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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4화 (24/741)
  • 24화

    "밥 먹으러 가자."

    도진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그러나 따라와야 할 소담이 우두커니 서 있자 다시 돌아와 자연스럽게 손목을 붙잡고 이끌었다.

    "아……."

    가볍게 잡힌 손목이다.

    풀려면 얼마든지 풀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담은 도진이 이끄는 대로 따라 걸었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소녀처럼.

    도진이 그렇게 소담을 이끌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어제 약선 치킨을 샀던 포장마차 거리였다.

    숭무고 입학 시험 기간에만 볼 수 있는 명물.

    그 거리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소담이 저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켰다.

    도진이 그 순간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소담이 넌 밥 좋아해, 햄버거 좋아해?"

    "아, 응! 나는…… 밥?"

    "밥?"

    "응."

    "알았어. 그럼 밥 먹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거기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소담을 이끌었다.

    그렇게 북적이는 포장마차 거리를 헤치며 나아가 도진은 어느 백반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소위 말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꽂히는 곳에 발을 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음…… 제육볶음 한 상으로 2인분 주세요."

    "4만원입니다."

    "여기요."

    2인분에 4만원. 백반집 2인분 가격으론 과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그 숭무고'에 포장마차를 낸 가게 중 하나다.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고 하지만 애초에 기준 자체가 다르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엄격한 선별을 거쳐 뽑힌 가게의 음식은 가격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했다.

    그것을 검색을 통해 알고 있던 도진이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느낌 따라 가게를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와아……."

    윤기가 나는 흰 쌀밥에 아낌없이 재료를 푼 된장찌개.

    소박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정성이 깃들어 있는 6개의 반찬과 중간에 놓이는 그릇 그득한 제육볶음까지.

    테이블 위에 놓이는 음식들은 백반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주장하는 듯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웠다.

    "먹어."

    "…먹어도 돼?"

    "응? 왜 묻는 거야?"

    소담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공짜로 얻어먹기가 미안해서……."

    "친구 사이에 밥 한 번 사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미안해 하면 어떡해. 우리 남남이었어?"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고개를 붕붕 젓는 소담. 그리고 이내 결심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나중에 네 부탁 한 번 꼭 들어줄게."

    "부탁을? 안 그래도 되는데."

    도진이 밥 한 번에 뭐 그렇게까지, 라는 감정을 담아 말했지만 소담은 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그래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그 말에 도진은 결국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부탁 1 스택 적립해 둘게. 나중에 재밌는 거 시킬 거야."

    짓궂게 말하고서 도진은 먼저 수저를 들었다. 소담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후륵.

    "오, 맛있다. 먹어 봐, 빨리."

    "응."

    도진이 재촉하니 소담도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제육볶음을 하나 밥에 얹어 하압, 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사슴같은 눈망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맛있다……."

    "그렇지?"

    "응. 근데 도진이 너도 아침 안 먹고 왔어?"

    "나? 먹긴 먹었는데 네 시에 먹은 거라 소화 다 됐지. 그리고 밥은 같이 먹어야 더 맛있잖아."

    "응, 그렇구나……."

    -감동먹은 얼굴이구나, 제자야. 너 모태 쏠로였던 주제에 꾸냥(姑娘)들 꼬시는 스킬이 보통이 아니구나.

    -추억 속 아이돌한테 조공 좀 하겠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요 근래 특훈을 하며 도진은 길게 잔 적이 없었다. 두어 시간씩 끊어 자며 기상해서 심상세계에서 배운 것들을 체화하는 훈련을 병행했다.

    때문에 오전 4시에 조용히 준비해 두었던 밥을 먹고 훈련, 그리고 심공 수련을 하고 조금 일찍 나온 게 오늘 아침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조용하던 포장마차 내에 불쾌한 소란이 일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와 씨바, 존나 긴장되네."

    "뭐 먹을까."

    "존나 단 거 땡기는데."

    무리지어 들어온 학생들의 무복에는 '檀波'란 두 글자가 크게 금갈색 실로 수놓여 있었다.

    도진은 그 한자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단파문.'

    일반 학교에도 특성화 학교가 있듯 무림학교에도 특성화 학교가 있다.

    단파중학교는 바로 그 특성화 학교 중 하나였다.

    나름 방귀 좀 뀐다는 단파문이 세운 중학교로, 중학생 때부터 단파문의 제자들을 육성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모든 교육은 단파문의 문도가 되기 위해 특화되어 있었고 단파문에 입문할 목적을 가진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존 무림학교보다 더 엄격한 사제, 그리고 선후배 관계.

    그런 만큼 단결력이 높고 몰려다니는 경우가 잦았다.

    문제는 그 행태가 문파의 문도들이라기보단 양아치 집단에 가깝다는 거다.

    단파문은 굳이 따지자면 흑도(黑道)에 가까웠다.

    톡 까놓고 말하면 '합업 사업하는 조폭' 비스무리한 성향이란 소리다.

    다만 철저하게 선을 넘지 않고 여기저기 소위 '기름칠'을 잘 해 두는 등 처신을 잘해서 눈 밖에 나지 않을 뿐.

    허나 그것도 사회의, 무림 세계의 일이라 아직 학생인 문도들은 그닥 품행이 바르지 못했다.

    바로 지금처럼.

    "와, 존나 예쁘네."

    "어디 애야? 시발 저런 애가 있었어?"

    "숭무고 클라스 오지네. 예쁜 애 존나 많다야."

    "존나 합격하고 싶어졌다 지금."

    목소리를 줄일 생각도 안하고 떠벌이기 바쁘다.

    도진의 표정이 슬쩍 굳었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소담은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예쁜 사람은 자신이 예쁜 줄 안다.

    그 예쁨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 살면서 수없이 겪게 되기 때문이다.

    소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노골적이고 강렬한 환경에서 자랐다.

    때문에 이런 일을 담담하게 흘려 넘길 수 있을 만큼 단련되어 있었다.

    "신경쓰지 마, 도진아."

    "…그래."

    천마기가 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도진은 그것을 지그시 억눌렀다.

    소담이 괜찮다는데 도진이 나서서 상을 엎어 버리는 건 소담에 대한 실례였으니까.

    그러나.

    턱!

    "야, 나도 좀 같이 먹자."

    소담의 옆에 더러운 똥파리가 앉는 상황에서까지 가만있을 순 없었다.

    스으으-

    도진에게서 날카로운 기세가 한 올 한 올 흘러나왔다.

    그 기세에 소담의 옆에 앉았던 학생, 도슬구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엉? 뭐야. 밥 좀 같지 먹자는데 불만 있어?"

    "밥 먹는데 똥파리 새끼가 앉으면 당연히 기분 더럽지."

    "…너 지금 뭐라고 씨부렸냐?"

    "가자, 도진아."

    도슬구에게서도 난폭한 기세가 피어오르자 소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채 절반도 먹지 않았는데.

    "넌 또 어디 가냐. 앉아."

    소담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앉으라고!"

    버럭 소리치며 도슬구가 손을 뻗었으나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헛손질이 되었다.

    '……뭐야?'

    도슬구는 단파문의 중등반 '대사형'이다.

    그러니까 단파중학교에서는 가장 강한 학생이란 소리다.

    초급 수준이나마 단파문의 고유 무공까지 익힌 그가 '헛손질'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건 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쁜 애가 보법을 밟아 피했다는 소리가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잠깐 경계심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도 똥파리가 따라올 기세네."

    그렇게 말하며 소담의 앞에 서는 도진의 모습에 꾸물거리던 경계심이 확 끓어오르는 감정에 증발해 버렸다.

    "이 새……!"

    빠악!

    '……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찰나, 눈 깜빡할 사이에 도슬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렸다.

    무언가 번쩍였고 다음 순간 몸이 붕 뜬 것 같았다.

    아니, 붕 뜬 게 아니라 실제로 붕 떠 있었다.

    콰당탕!

    "컥!"

    커다란 충격, 그리고 그 충격보다 더 큰 통증이 안면에서 느껴져 도슬구는 순간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러야 했다.

    "서, 선배님!"

    "저 새끼가!"

    뒤에서 지켜보던 단파중학교의 학생들이 바닥을 구르는 도슬구의 앞으로 몰려나왔다.

    그것이 마치 형님이 당하자 우르르 몰려 나오는 양아치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와! 나오라고 이 새끼들아!"

    그런 학생들을 거칠게 밀치며 도슬구가 걸어 나왔다.

    한껏 일그러진 얼굴이었으나 온통 벌겋게 되어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너 이 새끼가……."

    도슬구는 흉악하다고 해야 할 만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는데,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명문 중학교 학생의 한 수에 당했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진이 입고 있는 무복, 그러니까 교복이 '문월중'이란 것이 이토록 도슬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문월중학교.

    속된 말로 '따라지 학교' 중의 따라지 학교다.

    말만 무림학교지 사실상 구색만 갖춘 보잘 것 없는 쓰레기 학교.

    도진은 그런 학교의 학생이었다.

    거기에 소담은 학교가 표시되지 않은 무복을 입고 있어 더욱 경시했다.

    시험 응시자는 무조건 재학 중인 학교가 표시된 무복을 입어야만 한다.

    여러가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이는 절대적인 규칙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도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월중의 따라지.

    여기에 소담은 무림학교 출신조차 아닌, 어제 언뜻 소문으로 들었던 '무림출도녀'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예전이야 그게 낭만처럼 여겨졌지만 요즘 무림출도했다고 하면 개무시와 비웃음을 사게 된다.

    시대에 뒤쳐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산골 출신 삼류 무림인 취급을 받는 것이다.

    도슬구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소담과 도진이 함께 있는 자리에 거침없이 가서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둘이 명문 단파문의 대사형인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기세만으로도 찍어누를 수 있을 테니까.

    한데 이게 무슨 개같은 일인가.

    방심하다 되지도 않는 기습에 당해 바닥을 굴러야 했다.

    쪽팔리게.

    그래서 도슬구는 제대로 내공까지 끌어올리며 흉악한 기세로 도진의 앞에 다시 선 것이다.

    이번엔 방심하지 않는다.

    특기인 봉을 쓸 것까지도 없다.

    두 주먹으로 아주 흠씬 두들겨 패 줄 생각이었다.

    중학생이라고는 해도 무림인은 무림인. 두 사람의 '대결'이 된 이상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쾅!

    계산을 끝낸 도슬구가 땅을 박차며 쇄도했다.

    꼴에 남자라고 무림출도녀를 뒤에 세운 문월중 따라지는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

    역시. 이게 정상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내뻗었는데.

    '……어?'

    도진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라졌다'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도슬구는 무흔잠영을 그렇게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다음 순간 훅 나타난, 시야를 가득 채우는 주먹 또한 인지할 수 없었다.

    '어?'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이해가 따라가질 못했다.

    그래서 맞아야 했다.

    뻐어어억!!

    달려들며 스스로 만들어낸 가속도까지 더해진 충격이 안 그래도 벌겋던 도슬구의 면상을 완전히 작살내 버렸다.

    두 번째로 허공을 난 도슬구는 이번엔 아예 정신을 잃은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서, 선배님!!"

    "저, 저 새끼가!!"

    반원을 그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단파중학교 학생들이 다시 한 번 몰려나왔다.

    그것은 반사적이었으며, 그렇기에 생각이라곤 하지 않는 단순한 행동이었다.

    '결국 중학생이란 거지.'

    무공을 익힐 정도의 머리가 있다 해도 결국은 중학생.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감정에 휩쓸려 움직여 버리고 만다.

    때문에 도진은 십여 명이나 되는 무림중학교 학생들에게 포위당했음에도 편안한 얼굴이었다.

    강치환 패거리를 상대했을 때가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진은 무공이라는 산을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흥분해 버리는 '허접'들이 문제가 될 시기는 이미 지났다.

    시험 전에 가볍게 몸이나 풀자.

    그런 생각으로 도진은 주먹을 들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무슨 소란이지?"

    갑작스레 개입한 숭무고의 2학년 선배들 때문이었다.

    "헉! 집행부다……!"

    누군가 소리침과 동시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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