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삼일절 공휴일 다음날인 3월 2일.
전국 대부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무림학교 고등반 입학 시험이 바로 오늘부터 열리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수능보다 중요하고 그 이상으로 성대하게 열리는 것이 바로 무림학교 고등반 입학 시험이었다.
고등반에 진학해야 비로소 무림인이다.
무림학교 고등반에 진학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인생을 나누는 갈림길이다.
무림학교 고등반의 서열은 엄격하다. 그리고 어느 무림학교에서 배웠느냐에 따라 너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더욱 엄격할 것이다.
무림학교 고등반에 대해서는 이토록 노골적인 말들이 떠도는데, 여기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시험이었다.
중정(中庭).
번화가에 위치한 제법 큰 규모의 한식집.
오후 타임이 끝나고 조용하지만 분주하게 저녁 타임 준비를 하는 찬모들이 한창 특별 편성된 숭무고 입학 시험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도진의 어머니 서정원과 함께 일하는 찬모들이었다.
"햐, 진짜 건물 한 번 삐까뻔쩍하네."
"저거 체육관 하나 짓는 데만 천 억 넘게 들었다잖아요."
"천 억? 잘못 안 거 아니야? 무슨 체육관 하나 짓는 데 천 억이나 들어가?"
"우리 아들이 검색해 보고 알려준 거니까 맞을걸요?"
찬모들은 드론을 통해 하늘에서 송출해주는 숭무고의 위용에 감탄했다.
TV만으로도 숭무고가 얼마나 엄청난 곳인지 알 수 있을 만큼 무엇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게 없었다.
난다 긴다 하는, 이름 좀 알려진 전국 무림중학교의 학생들과 인솔자들이 입장하고 간간이 비치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찬모들도 알아볼 수 있는 유명인이었다.
"저 중에 도진이도 있겠네?"
"네, 그럴 거예요."
"합격하면 정말 온 동네가 난리날 텐데 말야."
"무조건 합격할 거예요."
서정원은 그렇게 말했으나 솔직히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TV 너머로 보이는 것만 해도 '다른 세상'임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런 곳에, 함께 가 주지 못한 곳에서 도진은 지금 혼자 시험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주눅들진 않았을까.
혹시 힘들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아들이 제발 후회없이, 가진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시험을 치를 수 있기를 바랐다.
바로 그때였다.
"어어? 저거 도진이 아냐?"
"저, 정말이네?"
다른 찬모들의 말에 서정원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시선이 향한 커다란 TV에는 결코 잘못 볼 리가 없는, 정말로 아들이 비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화려한 빛나는 배경을 두고 낡은 무복을 입었음에도 전혀 초라해 보이지 않는, 오히려 더욱 빛나는 것만 같은 아들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수석을 노려보겠습니다.
아들은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아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화면이 전환된 것이었다.
몇 초 되지 않는 찰나의 인터뷰 장면.
그러나 그 몇 초 되지 않는 장면에 찬모들은 난리가 났다.
"햐, 정말 도진이네."
"아니 그런데 그 옆에 예쁜 학생은 누구야?"
"도진이한테 그런 친구가 있었어?"
정신없이 몰아치는 찬모들의 물음에 서정원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짧은 인터뷰 장면. 서정원도 보았다.
인터뷰하는 도진의 곁에 함께 서 있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쁜 여학생을.
도진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무복을 입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미모가 돋보일 정도로, 연예인보다도 예뻤다.
"저, 저도 처음 보는 아이네요. 저기 가서 사귄 거 아닐까요?"
"어엉? 저기서?"
"햐, 도진이 능력이 대단하네. 저런 여자애를 시험 보러 가서 사귀었다고?"
"에, 에이. 모르는 거죠. 그냥 어쩌다 만나서 함께 찍혔을지도요."
웬만하면 아들 자랑을 할 텐데 여학생이 너무 예뻐서 서정원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황이 잦아들자 곧 웃음이 나왔다.
'아들, 꼭 친해져야 돼.'
번듯한 집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할 텐데 차마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아들이다.
아들 정도면 그런 여학생을 며느리라고 소개해 줄 만큼 성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 * * *
아침.
도진은 심공을 통해 더욱 기세등등해진 천마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찬기가 남은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벽에 걸린 교복이자 무복을 입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빳빳하게 다려진 교복에 깃든 어머니의 정성이 사라진 다리미의 온기를 대신하여 도진을 포근하게 했다.
-어떠냐.
-최고입니다.
요 며칠 밤사이 천마군림의 수련을 줄이고 대신 입학 시험을 위한 특훈을 했다.
심공을 마친 몸 상태도 최상.
도진은 만족스레 웃으며 곤히 자고 있는 동생들을 위해 조용히 집을 나섰다.
시험을 치를 숭무고가 조금 먼 곳에 있었는데 여유 있게 도착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나선 것이다.
삐빅-
아직 일반 학생들이 등교하기엔 이른 시간인 데다 차고지와 가까운 곳의 정류장에서 탔기에 버스는 한산했다.
그렇게 조용한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학생들이 늘어났는데 대부분은 무림학교 학생들이었다.
무림학교 고등반 시험을 치르기 위해 나온 학생들이다.
다만 그 안에 숭무고에 지망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거길 지원할 정도 되는 학생들은 모두 기사 딸린 차를 타거나 최소 전용 버스를 대절할 정도는 되기에 이런 버스를 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버스에 탄 도진은 특별했는데 또 한 명, 생각지도 못했던 특별한 사람이 버스를 탔다.
삐빅-
"어?"
"아!"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은 여학생은 다름 아닌 서소담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낡은 무복을 걸쳤으나 전혀 가려지지 않는 미모에 버스 안 학생들의 시선이 모조리 집중되었다.
서소담은 그 시선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싱긋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 도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
"응, 안녕."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소담이 예쁜 눈동자를 빛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인연이란 게 정말 있나 봐. 그치?"
"그러게."
어디서든 주목을 받는 소담인 만큼 시험장에서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 도진이었다.
그러나 설마 이렇게 버스에서 만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너는 뭐뭐 칠 거야?"
옆에 앉은 소담이 가방에서 작은 책을 꺼내면서 물었다.
다름 아닌 숭무고 입학 시험 안내 소책자였다.
숭무고 입학 시험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그 첫 관문은 여러 개의 시험 중 다섯 개를 골라 합격점을 받는 방식이었다.
어중이 떠중이를 걸러내기 위해 치러지는 시험으로, 숭무고에 입학하기 위한 최소한의 능력을 보기 위한 시험이다.
"일단은 '장애물 달리기'지."
"아, 나도 그거 칠 건데."
장애물 달리기.
말 그대로 장애물을 피하며 달리는 것이다.
물론 '무림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차원이 다른 장애물들이 세팅되어 있다.
전체적인 운동 능력을 보기에 적합한 시험이다.
"그 다음은 철구 피하기."
"어? 나도 그거 칠 건데."
"진짜?"
"응!"
신기하게도 치려는 과목이 하나 빼고 다 일치했다.
소담은 그게 재밌었던지 생글생글 웃었는데 도진은 그 모습에 선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구, 제자야. 정신 차려라.
모태 솔로에겐 너무나 치명적인 소담이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진은 소담과 함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훅, 하고 끼쳐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느낌만이 아닌 실제였다.
숭무고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온갖 엘리트들이 모였다.
그들이 지닌 내공이 기세가 되어 주변을 데우고 있었고 그런 응시자들을 취재하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아직 찬 공기를 데우고 있는 것이다.
그 취재진 중 일부가 도진, 아니 도진과 함께 한 서소담을 주목했다.
처음엔 설마하던 그들은 도진과 소담이 입학 응시자들에게 주어지는 응시자용 통행증을 제시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후다닥 뒤따랐다.
이런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무복을 걸친 여학생.
그러나 그 낡은 무복이 오히려 더욱 부각시켜주는 미모를 가진 응시생이라니, 인터뷰 한 장면 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
"자, 잠시만요!"
"네?"
허겁지겁 달려가 외치니 두 사람이 멈춰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기자와 도진의 시선이 맞았다.
"어?"
"아, 김도진 학생?"
다름 아닌 치환 패거리와 송재익을 처리한 뒤 도진이 인터뷰에 응했던 기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숭무고 시험을 치르러 왔나보군요."
"네."
"그, 이쪽은 아는 사이인가요?"
"새로 친구가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소담이 취재에 응하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인터뷰는 도진과 해야 했다.
다만 한 화면에 들어오는 것까지 거부하진 않았기에 그것만으로도 쫓아온 보람이 있었다.
"그럼 도진 학생. 합격할 자신은 있나요?"
당찬 대답을 바라고 기자, 기석현이 물었다.
거기에 도진은 자신있게 웃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수석을 노려보겠습니다."
"오,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누는 것으로 인터뷰가 끝났다.
-제자야, 의외로 겸손하게 대답하더구나.
-소담이가 옆에 있으니 TV에 나올 확률이 높은데 그러면 부모님이 보실 수도 있잖아요.
사실 내가 수석입니다, 하고 대답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겸손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소담이가 곁에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도진은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오전 8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시험은 9시부터인데…….'
첫 번째 시험은 숭무고 내 곳곳에 마련된 시험장들을 이동하며 치러야 한다.
지각 같은 개념은 없고 오후 6시 이전까지만 완수하면 됐다.
학교가 워낙 넓다 보니 시험장을 도는 순환 버스가 다녀 힘들게 걸어 다닐 일도 없고 대기열이 길면 다른 곳의 시험을 먼저 칠 수도 있었다.
여기에 3일이란 시간이 주어지니 급할 게 없다.
이것은 유료로 방문하는 관람객들까지 고려한 시스템이었다.
무림학교 고등반 시험은 축제인만큼 일반인들도 관람이 가능하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학교 자체는 개방되지만 시험장들은 유료로 관람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시험을 방해하는 등 여러가지 부작용을 방지할 목적이었다.
처음엔 반발이 있었으나 실제 학생들이 관람객이 미어터지는 환경에 불편을 호소하기도 하고 사고도 일어나면서 결국 유료 관람으로 정착되었다.
'부모님도 오셨으면 좋겠지만…….'
숭무고 축제는 가능하면 한 번은 꼭 보라고 할 만큼 특별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도진은 욕심 같아선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비무까지 볼 수 있는 '프리패스권'이 일인당 무려 10만원이나 하지만 어제의 불로소득 덕분에 얼마든지 낼 수 있는 돈이었고 알고 보면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비무대회 관람권만 해도 기본 10만 단위부터 시작하는데 무려 숭무고 입학 시험을 모조리 볼 수 있는 프리패스권이 10만원이면 정말로 최소한의 금액만 받는 것이다.
'나중에 더 좋은 것들 보여 드려야지.'
도진은 하루라도 빨리 더 강해져야지 하고 다짐하며 미리 시험장으로 가려 했다.
한데.
꼬르륵-
바로 곁에서 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소담이 배를 잡고 새하얀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침 안 먹었어?"
"응……."
"어휴. 시험날 아침을 안 먹으면 어떡해."
"어쩌다보니……."
긴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몸을 챙겨야 하는 무인이 힘을 써야 할 중요한 날에 아침을 안 먹다니, 도진은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도진은 우선 소담을 먹거리가 밀집된 포장마차 거리로 데리고 갔다.
그냥 잔소리만 해서야 꼰대가 된다.
'잔소리를 해도 일단 먹이고 해야지.'
하려면 애를 든든히 먹이고 난 다음에 해야지 하고 도진은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도진이 소담에게 뜨끈한 밥에 된장, 제육볶음을 사 주었을 때였다.
"야, 나도 좀 같이 먹자."
두 사람의 테이블에 웬 파리가 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