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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2화 (22/741)

22화

기다랗고 새하얀 예쁜 손가락을 따라간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금발의 미녀였다.

아까 전 헤어졌던 서소담마저 넘어서는,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주목을 끄는 미모였다.

그것은 이 미녀가 그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소담이 은은한 향기로 서서히 빠져들게 만든다면 그녀는 그 머리카락 색과 같은, 밝으면서도 짙은 허니 블론드(Honny blond)와 같은 농밀한 꿀처럼 사람을 잡아끌었다.

그 강렬한 유혹에 끌려 발을 들이면 다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끈적함에 매몰되어 버릴 것만 같은 퇴폐적이면서도 강렬한 미모다.

도진은 이런 미모를 가진 인물을 이미 알고 있었다.

'…금봉(金鳳).'

금봉. 황금의 봉황이란 별호가 붙은 숭무고 2년생의 후기지수였다.

후기지수로 꼽힐 만큼 압도적인 무공을 익혔으며.

그 대단한 무공이 가려질 정도로 강렬한 미모를 가졌다.

심지어 그 태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금화(金華)의 회장이 유독 아끼는 혼혈의 손녀딸이다.

그야말로 세상의 불합리의 집합이면서 그렇기에 세상의 히로인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한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

그런 사람의 손이 지금 도진의 손과 맞닿아 있었다.

'이게 무슨…….'

그러나 도진이 당황한 건 그런 대단한 인물과 손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 대단한 사람이 던진 말이 도진을 흔들었다.

'한 입만 주지 않을래?'

-뭐야. 한입충이었어?

-스, 스승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한데 생각지 못했던 습격으로 감각이 날카로워진 도진이 무슨 술법에 당하지 않고서야 말을 잘못 들을 리가 없다.

심지어 산통을 다 깨는 위지혁의 말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현실감이 강렬해진다.

그러므로 방금 들은 말은 착각이 아니라 진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금봉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한 입 달라는 말을 했다고?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도진의 시선에 금봉, 한유아는 사파이어를 닮은 눈동자에 장난기를 담으며 싱긋 웃었다.

"강한 침묵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나 하나 줄 거지?"

그러면서 대답은 필요없다는 듯 맞닿아 있던 손을 기묘한 선을 그리며 빼더니 오른손의 봉투를 다시 노렸다.

슥-

안 그래도 가까웠던 두 사람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며 달콤한 냄새가 도진의 코끝을 간질였다.

하지만 도진은 그 향기에 매혹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롭게 기세를 벼리며 왼손을 움직였다.

선은 이미 그려졌다.

이대로 강하게 쳐내 자세를 무너뜨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손이 맞닿는 순간 그 즉시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틱!

'……!'

반발이 없었다. 빗맞은 것처럼 타점이 어긋났다.

그렇게 도진의 왼손을 빗겨낸 한유아의 손이 봉투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팍!

도진은 그것을 빗겨나간 왼손을 강하게 뿌리는 것으로 막아냈다.

'아니, 물러나 준 거야.'

의도대로 되었지만 도진의 기분은 가라앉았다.

한유아가 그냥 물러나 주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선이 분명히 이어졌는데 한유아의 손은 선을 다 그리지 않고 중간에서 물러났다.

"너무하네. 하나도 못 줘?"

그래놓고 능청스럽게, 그 푸른 눈동자를 일렁이며 상처받았다는 듯 말한다.

뭇 남자들을 단번에 홀려 버릴 모습이었지만 도진은 그래서 더욱 표정을 굳혔다.

-도진아, 혹시 꼬리 아홉 개 숨겨 놓진 않았나 확인 좀 해 봐라. 요즘 세상이 이래서 서양 구미호도 없다곤 확신 못하지 않겠느냐.

도진은 봉투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도진 또한 오른손잡이였다.

"얍!"

한유아의 손이 다시 쏘아졌다.

마치 독수리의 발톱처럼 구부러져 있었는데, 다름 아닌 조법(爪法)이었다.

조법이란 손가락과 손을 적극 활용하는 무공으로, 상대를 잡아채고 쥐어뜯고 꺾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 특성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초근접거리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탁. 타닥! 타타타탁!

한유아의 손이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도진의 손가락을 훑고 손목을 비튼다.

조법은커녕 무공 자체를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가녀리고 예쁜 손임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그 손이 스쳐갈 때마다 마치 사포에 갈려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워낙 지근거리라 선을 잇고 대처할 시간이 촉박하다.

애초에 투로를 파악하기가 힘들 만큼 빠르고 변화무쌍했다.

진심은 아니라는 듯 내공을 싣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라는 데에서 그녀가 과연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봉황의 별호를 받은 강자라는 걸 톡톡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쇄애액!

구부린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찢긴다.

정면에서 맞상대하지 않고 선의 시작점이자 변화의 근원이 되는 손목을 노렸지만 도진이 그렸던 선을 따라 쇄도하던 한유아의 손이 갑자기 나선을 그리며 오히려 도진의 손을 몇 번이나 꼬집고 때리고 비틀었다.

'큭!'

'어때. 내가 이겼지?'

지근거리에서 마주한 눈을 통해 그런 말을 들은 듯 했다.

그것이 도진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콱!

지금껏 펴진 채 한유아를 상대하던 도진의 손이 강하게 쥐어졌다.

주먹을 쥔 것이다.

동시에 도진의 손을 누비던 한유아의 손이 튕겨져 나갔다.

호수 같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렁였다.

그 찰나의 틈을 노려 도진의 주먹이 주먹을 쥘 때의 탄력을 이용하여 쏘아져 나갔으나.

슥-

"와, 깜짝 놀랐어."

그 주먹은 한유아의 오뚝한 코앞에서 멈춰졌다.

튕겨나갔던 한유아의 손이 어느새 도진의 가슴팍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유아는 도진의 주먹에 톡, 코를 한 번 갖다대고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올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알았어, 알았어. 공짜로 달라고 안 할게."

그러면서 씨익 웃고선 말했다.

"내가 스무 배 비싸게 한 박스 살게. 어때?"

"…스무 배요?"

"응. 그거 5만원이지? 백만 원에 산다!"

"……."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겁니까.

스윽-

"여기요."

…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돈이었다.

망설임없이 한 박스를 봉투에서 꺼내 건네는 도진의 모습에 이번엔 오히려 한유아가 멈칫하고 말았다.

"뭡니까. 거짓말이었어요?"

"아니. 너무 상남자 같아서 잠깐 반할 뻔 했어."

그러고선 휴대폰을 꺼냈다.

"계좌번호 뭐야. 계좌로 쏴 줄게."

다행히 통장을 만들어 두었기에 도진은 그 통장의 계좌번호를 알려 주었다.

"자, 부쳤어. 확인해 봐."

인터넷 뱅킹과 문자 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기에 한유아의 휴대폰 화면에 뜬 송금 완료 문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응. 그럼 나중에 입학하면 또 봐."

"네, 그러도록 할게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한유아에게 꾸벅 인사한 뒤 도진은 미련없이 떠나 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한유아는 받았던 치킨 박스를 어느새 곁에 선 여학생에게 건넸다.

똑같은 2학년임에도 마치 호위처럼, 혹은 비서처럼 한유아를 보필하는 모습이었다.

"관심 목록에 담아 줘."

"알겠습니다."

여학생이 치킨을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한유아 또한 한가득 몰려든 구경꾼들을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가르며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그녀의 틴트를 바른 매력적인 입술이 싱긋, 미소를 그렸다.

'이번 신입생들은 재밌는 애들이 많네.'

* * * *

"와 피자다!"

"치킨도 있어!"

저녁. 도진은 치킨에 피자까지 한아름 먹거리를 사들고 돌아왔다.

동생들은 당연히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먹고 운동해야 된다. 알겠지?"

"응!"

"응, 형아!"

이제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이 되는 유진이와 호진이는 당연히 무공을 배우고 있다.

집안 내력인지 나름 자질이 있다고 하니 도진은 가능하면 두 동생들도 무림학교 고등반까지 진학시키고픈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나서서 무공을 가르쳐주진 않았는데, 아직은 도진이 그럴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보다 어려운 게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침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으면, 배우는 사람은 거기서부터 완전히 길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만다.

'1년 정도 뒤에 해도 문제없겠지.'

지금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반 무공을 열심히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반 무공이 고유 무공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반 무공이란 광범위한 무술과 무공을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발전시킨 검증된 무공이다.

기초를 다지기에는 오히려 고유 무공보다 나은 면이 있는 게 일반 무공이었으니까.

배불리 먹고 소화를 시킨 뒤 수련까지 마친 동생들이 잠들고 밤이 깊어 서정원이 돌아왔다.

서정원은 따로 덜어둔 약선 치킨과 피자까지 보고선 도진에게 말했다.

"너 필요한 데 쓰지……."

오늘 약선 치킨을 살 때 도진이 꺼냈던 5만원 두 장은 다름 아닌 서정원이 준 용돈이었다.

숭무고에 가는데 용돈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굳이 아들에게 쥐어주었던 돈이다.

도진이 습격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도 약선 치킨이 바로 그 돈으로 산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정원의 말에 도진은 씨익 웃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덕분에 좀 큰 불로소득이 생겼거든요."

"불로소득?"

"네. 그러니까 드세요. 이게 그 유명한 약선 치킨이라는 건데, 몸보신에 딱이래요."

그러면서 고기를 데우더니 뜨거운 것도 아랑곳않고 맨손으로 죽죽 찢어 건넨다.

서정원은 못 이기는 척 그것을 받아 먹었다.

아들이 정성스레 살을 발라 건네는데 어찌 어머니가 그것을 거절할 수 있을까.

"맛있네."

아들의 손맛이 깃들었기 때문인지 치킨은 평생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이게 한 마리에 5만원이나 하는 거거든요. 치킨계의 명품이죠."

"……뭐?"

* * * *

새벽.

운동을 마치고 심공 수련까지 마무리한 도진은 심상세계에서 엎어져 있었다.

조금씩이나마 익숙해지는 천마군림의 성취만큼 위지혁의 공세도 거세졌다.

덕분에 심상세계에서 널브러져 있는 게 너무나 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아버지도 드셨으면 좋았을 텐데…….'

약선 치킨을 맛있게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니 절로 당직으로 고생하고 있을 아버지의 얼굴도 함께 떠오르는 도진이었다.

그것이 가혹한 수련을 견디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어서 떠오르는 건 오늘 '친구'가 된 서소담이다.

서소담.

전생에선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실제로는 볼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서소담과 갑자기 친구가 되어 버렸다.

회귀했을 때보다 더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동경하던 아이돌이 갑자기 나타났고 사이가 좋아지는 꿈을 꾼 것만 같다.

'…이번엔 죽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데.'

만약 과거와 마찬가지의 인생을 산다면 서소담은 1년 뒤 겨울에 죽게 된다.

역시나 전생에선 뉴스로만 접할 수 있었던 대사건.

도진은 이번엔 그 사건의 중심에서 함께 해 서소담을 살려주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서소담이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오늘 만남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살리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금봉.'

서소담에 이어 역시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금봉도 떠오른다.

'한 입만 주지 않을래?'

뜬금없었던 그 말.

지금 생각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부러 접근한 거야.'

금봉이 정말로 치킨이 먹고 싶어서 한 입만 달라고 했을 리가 없다.

그저 도진을 혼란시키면서 접근할 구실로 사용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그 접근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거물 중의 거물이 굳이 접근하면서 관심을 보였다는 게 입꼬리가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도진은 더 이상 엑스트라, 아니 엑스트라조차 되지 못하는 '배경의 일부'가 아니었다.

주연이 될 것이다.

주연을 넘어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리 다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사부님. 슬슬 시작하시죠."

"호오, 의욕적이구나. 좋다."

내일부터 입학 시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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