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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1화 (21/741)

21화

무림출도(武林出道).

그러니까 무림에 출사표를 던졌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예전에 특히 많이 쓰였던 말로, 과거엔 그렇게 무림에 '뉴페이스'가 등장하여 파란을 일으키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무림출도란 말은 사어(死語)가 되어 가고 있었는데, 현대 무림의 환경이 이 무림출도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정지해 있지 않는다. 항상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흐름에서 제외되어 도태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무공 또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공이었다.

압도적인 관심과 자본,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 무공은 연구를 거듭하여 발전·보완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류에서 벗어나 산골에 박혀 다양한 무공을 접하지 못하고 도태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 '고수'로 대접받을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더더군다나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는 거대 자본, 그리고 무공을 보유한 세력이 대부분의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 외따로 무공을 익히다 나와 파란을 일으킬 만큼의 신진 고수가 등장할 일은 요원한 것이다.

이런 세상이기에 숭무고 입학 시험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기득권 중의 기득권인 소림의 속가 제자를 패배시킨 '미녀 고수'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미모를 지닌 신비 고수.

벌떼가 달려들어도 그보다 거세고 많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과 관심이 몰려들었다.

-그다지 알려진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관심을 끌었는데도?

-예. 그래서 더 인기가 있었죠.

스스로에 대해 거의 밝힌 게 없었다.

그저 대대로 전해 내려온 가전 무공(家傳武功)을 익혔고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뛰쳐나왔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에 머물렀고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교우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밝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고 주위에서는 평가했다…… 고 도진은 알고 있었다.

사족으로, 가전 무공을 익혔는데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뛰쳐나왔다는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알고 보니 대단한 집안의 여식이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말이지?

-네. 그런 사람이 많았었죠.

어쨌든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으며 후기지수에 꼽히고 '비봉(秘鳳)'이라고까지 불렸던 그녀는 어느날 겨울,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변사체라고?

-네. 온몸이 난도질당한 끔찍한 모습이었다…… 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어진 사건이었다.

후기지수가, 그것도 특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비봉이 온몸이 난도질당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기에.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게 다음날 밝혀졌죠. 비봉의 사인(死因)은 자살이었다, 고.

가족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사건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임의로 부검에 들어갔다.

그리고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

그녀의 사인이 자살이었다는 것이었다.

난도질당하기 전에 이미 그녀는, 스스로의 검으로 심장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었고 사건이 종결된 뒤에도 논쟁이 있었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찔렀다는 명확한 흔적과 외부의 힘이 개입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검로(劍路)였다는 등 대부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많았기에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석연치 않구나.

-예. 워낙 충격적이고 대대적으로 보도된 사건이라 전담 조사반이 대규모로 조직되어 조사에 나섰습니다.

조사 결과, 비봉은 흑도들의 세력 싸움에 휘말렸을 거라는 '추측'만이 남았다.

-한국의 조폭들, 그리고 일본에서 흘러들어온 야쿠자 세력이 격돌했는데 거기에 비봉이 끼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비봉이 자살하자 야쿠자들이 화풀이로 난도질하여 길거리에 버렸다…… 로 결론난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도진은 비봉에 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하나 제대로 조사된 게 없구나.

-예, 그렇죠.

비봉이 자살한 '모종의 이유'는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는지, 그 조폭과 야쿠자 세력은 어떤 세력인지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었다.

다만 더 나오는 게 없었기에 대한민국을 넘어 해외까지 퍼져 나갔던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무림이란 하루가 멀다하고 자극적인 사건이 터져 나오는 곳이었기에.

-한데 사부님.

-응?

-저한테 깃든 게 열다섯 살 무렵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그럼 사부님도 이 사건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그랬다.

위지혁과 장호가 도진에게 깃든 건 전생의 열다섯 무렵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도진이 말한 내용을 위지혁과 장호 또한 알고 있어야 했다.

한데 위지혁은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도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영혼의 힘이 다하여 소멸할 위기에 처했기에 너에게 깃들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시 우리는 힘을 회복하는데 전념하느라 바깥을 살필 여유조차 없었지. 느긋이 바깥을 볼 수 있게 된 건 3년 정도 지나서였느니라.

-그러셨군요.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멸의 위기에 처했던 두 사람, 아니 영혼이 도진에게 깃든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고보면 치환 패거리나 송재익에 대해서도 스승님은 전혀 모르셨지, 하고 도진은 생각했다.

그렇게 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득 도진과 그녀, 서소담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

찰나의 순간 도진은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 정신이 팔려 자신이 서소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라도 시선을 돌리려 했는데 돌연 서소담의 눈이 이채를 발하더니 싱긋 웃으며 도진에게 다가왔다.

'이건.'

-호오.

그리고 도진 또한 서소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안녕, 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안녕 이후 잠시의 공백은 존댓말을 해야 하나 고민한 흔적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읽어내곤 웃으며 마찬가지로 인사했다.

전생에서 들었던 대로 밝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는 걸 인사만으로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

"혹시 여기에 입학 지망하신 분이에요?"

"네, 맞습니다.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말할 뻔 했던 도진은 말꼬리를 흘렸다.

그러자 소담이 웃으며 말했다.

"서소담이에요. 소담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저는 김도진입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우리 동갑같은데 말 놔도 되나요? 존댓말하려니까 좀 어색하네요."

"응. 그러자."

도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소담은 낡은 무복을 걸쳤음에도 빛이 날 만큼 대단히 예쁜 사람이었지만 도진은 전혀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며 가지게 된 자신감 덕분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를 대하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고마워!"

소담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편하게 대해주는 도진의 모습에 자신도 부담을 내려놓았다.

"사실 여기 오는 게 처음이라 친구도 없구 낯설어서 좀 그랬거든."

"응, 나도 그래. 척 봐도 여기랑 안 어울리잖아?"

"그건 나도 여기랑 안 어울린다고 돌려 까는 거지?"

"어, 들켰네."

"뭐야?"

짐짓 화내는 얼굴로 소담이 도진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물론 전혀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낡은 무복을 입은 두 사람은 화려하고 깨끗한 사람들로 가득한 이 공간과는 조금 유리되어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당당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도진이 너도 혼자 온 거야?"

"일단 그렇지. 담당 선생님이랑 같이 오긴 했는데 여기 지원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니까."

"그렇구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꽤 시간이 흘렀다.

선생님의 차를 타고 돌아가려면 슬슬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따로 간다면 안 그래도 되지만.'

그리고 도진은 따로 갈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조금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서소담은 전생의 도진에게 있어 팬심을 가지고 있던 아이돌과 같았다.

전혀 생각지 못하게 서소담과 인연이 이어진 지금 굳이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볼 데가 있어서 먼저 갈게."

"아, 그래?"

한데 저쪽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왔다.

도진이 아쉬워하니 소담이 웃었다.

"괜찮아. 내일부터 시험이니까 내일 다시 보면 되지."

"아, 그런가."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도진아."

"그래. 내일 보자."

내일 보자는 약속을 하며 훈훈하게 헤어졌다.

-녀석. 아주 입이 귀에 걸리겠구나.

-스승님도 좋아하는 아이돌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래. 그러고보니 너 성공하면 나중에 아이돌들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빨리 성공하도록 해라.

위지혁과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도진은 조금 더 학교를 거닐었다.

오형구에게 학교를 좀 더 둘러보다 돌아가겠다고 문자를 해 둔 상황이라 급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포장마차 거리까지 오게 되었다.

입학 시험 기간동안 숭무고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공개가 되는데, 이 포장마차 거리는 그 일반 대중을 상대로 먹거리 장사를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아, 그러고보니.'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는 곳을 둘러보던 도진은 문득 든 생각에 걸음을 빨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이 찾던, 유독 줄이 긴 포장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약선 치킨'이란 이름의 포장마차는 다름 아닌 치킨을 파는 포장마차였다.

한데 이 흔한 치킨이 사실은 흔하지 않은 치킨이라 숭무고의 명물로 여겨지는 유명한 가게였다.

약선(藥膳).

약재를 넣어 조리한 음식이란 뜻으로, 그 이름처럼 치킨에 온갖 약재를 넣어 보약이라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치킨을 내놓는 가게다.

튀기는 게 아니라 특별한 기술로 굽는 치킨.

기력을 돋워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데 심지어 맛도 환상적으로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돈 주고도 못 먹을 만큼 장사가 잘 됐다.

본래는 예약을 받아 예약된 만큼만 판매하는 주문 판매를 하는데 특별히 숭무고 축제 기간동안은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그 정보를 기억해낸 도진은 부모님께 드리면 좋겠다 싶어 이렇게 약선 치킨 포장마차를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될 것 같네.'

천마기까지 운용해 시력을 강화하여 재고를 확인해 보니 딱 도진까지 구매가 가능할 듯 보였다.

조리하여 내놓자마자 팔고 있으니 줄이 길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아 갓 조리한 치킨을 구매할 수 있을 듯했다.

-호오, 무공을 익혔구나.

-네, 그러네요.

기다리고 있는 동안 위지혁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세 남녀를 보며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공을 익히고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하오문(下午門)의 문도들이겠구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오문. 무협지에서는 흔히 정사 중간에서 정보를 취급하며 개방과 비견되는 정보 관련 단체의 양대 산맥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현대에 실존하는 하오문은 그런 무협지에서의 하오문의 후예를 자처하는 정보단체였다.

그 진위는 알 수 없지만 후예를 자처할 정도로 능력만큼은 확실한 대단한 조직이었다.

'그래서였구나.'

약선 치킨이 왜 장사도 잘 되는데 굳이 숭무고의 입학 시험 시즌에 포장마차를 내나 했더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다.

"이것 딱 두 마리만 남았는데 괜찮으세요?"

"네. 그걸로 주세요."

계산대로 치킨은 딱 도진이 두 마리를 구매하는 것으로 동이 났다.

도진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흩어졌다.

도진은 주머니에 들어 있던, 5만원 권 두 장을 건네고 치킨이 든 봉투를 받아들었다.

묵직한 봉투를 받아드니 기분이 좋다.

동생들, 그리고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진이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쉬익-!

'……!'

날카로운 기세가 담긴 손이 뒤에서 덮쳐들었다.

도진은 대번에 몸을 긴장시키며, 그 손의 도착점인 봉투를 든 오른손을 빼며 왼손으로 공격을 막았다.

탁-!

도진의 손과 부딪친 습격자의 손은 가늘고 고운 새하얀 손이었다.

고개를 돌려 습격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도진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당신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습격자. 그 습격자가 웃으며 말했다.

"한 입만 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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