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20화 (20/741)

20화

무공(武功)은 엘리트 체육이다.

초등학교 의무 교육으로 시작하여 재능 있는 인재를 추리고 또 추려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

더 나아가, 무공의 위상은 '엘리트 체육의 왕'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다.

그것은 실제로 무공이 독보적인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보유한 미식축구 선수들은 초인의 영역에 있으며 보통 이상의 지능 또한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런 미식축구조차 무공에 비할 수는 없다.

아니, 그 어떤 스포츠도 무공에 비할 수는 없었다.

미식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운동이지만 무공은 '인간의 한계를 계속해서 뛰어넘는' 운동이라는 정의에서 오는 명백한 차이 때문이다.

무공을 익히기 위해선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나야 한다.

육체적인 자질만이 아니다. 머리 또한 타고나야만 한다.

무공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존재하는 '극한까지 발전하고 또 발전 중인 운동'이며 이 운동을 이해하고 수련하며 활용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축복받은 육체와 지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천재들 중에서도 천재인 자들만이 고련 끝에 '고수(高手)'라 불리는 영역에 도달한다.

이 고수들은 명백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운동능력을 보여주었고 이들이 선사하는 자극은 기존의 스포츠를 모조리 '재미없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축구, 야구 등은 물론이요 초인들의 스포츠라는 미식축구 선수마저 무림인에는 비할 수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피지컬'이 무림인에 미치지 못했다.

실전성이 없다고까지 평가받는 극한의 기술들이 무림인의 초식 하나보다 초라했고 격렬한 경기의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은 무림인의 대련을 30초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대련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압도적인 격차에서부터 시작된 '스포츠로써의 무공'이 기존 스포츠를 몰락시켰다.

어렵게 갈 것도 없었다. 그저 무림인들의 대련만으로도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압도적인 재주. 압도적인 피지컬.

눈으로 좇기조차 힘들고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차원이 다른 볼거리는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강렬한 자극을 선사했다.

그리하여 무공은 압도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기존의 스포츠는 생활 체육으로 전락하고 무공 관련 스포츠 시장이 주류가 된 것이다.

심지어 무공의 영역은 스포츠로 끝이 아니었다.

무공은 육체 강화, 정신 수양, 체력 증진은 물론이요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보장한다.

돈 있는 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불로초(不老草)에 가까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가진 자들은 어김없이 무공에 후원하길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발전하는 무공을 익히는 건 필수였다.

재능이 있든 없든 필사적으로 익혀야 했다.

무공을 익히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도태되었으니까.

현대 사회에 있어 무공은 그만큼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무공을 배우는 무림학교의 명문 중 명문인 '숭무고등학교'가 가지는 위상 또한 절대적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이요 재벌들의 압도적인 후원을 받아 설립되었고 계속해서 후원을 받고 있는 학교.

그 후원하는 재벌들과 무림의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다니는 학교는 과연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이었다.

한강을 끼고 남산까지 이어지는 130만평 규모의 고등학교가 무려 서울에 설립되었다.

올림픽 주 경기장에 맞먹는 규모의 단련 시설만 다섯 개가 지어졌으며 최고의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무림 전문 트레이너들은 물론 의료 시설과 의료진을 넘어 아예 대한민국 최고의 전담 병원마저 내부에 존재한다.

상위 1%의 학생들에게는 그런 트레이너와 의료진이 개인을 위해 붙을 만큼 전혀 다른 세상이 바로 숭무고였다.

더 기가 막히는 건, 그런 시스템조차 숭무고에 다니는 엘리트들에겐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들에겐 어릴 적부터 전담 코치와 주치의가 당연히 붙어 있었으니까.

'대단…… 하네.'

도진은 그런 온갖 다른 세상 이야기로만 접해온 숭무고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과연 숭무고는 명불허전이었다. 숭무고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들은 허풍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제보다 못한, 이야기꾼들이 겉의 화려함만을 보고 호들갑 떠느라 본질은 이야기조차 못한 것이었다.

느낄 수 있었다.

압도적인 자본과 재능으로 이루어진 장인의 예술품 같은 학교의 아우라를.

그것은 일부러 뽐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대중에게 개방된 정문 너머의 세상과 인간들은 그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도진은 감탄은 할지언정 압도되진 않았다.

씨익-

만족스럽게 웃으며 턱을 당기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한 발을 내딛었다.

눈앞에 있는 세계는 분명히 지금껏 살았던 도진의 세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도진은 그런 세계마저 넘어선 곳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눈앞의 세계는 바라보는 곳을 향해 가기 위한 멋진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안 가시나요, 선생님?"

"아, 그래. 가야지."

도진과 함께 온, 담임인 오형구는 멍하니 굳어 있다 도진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리바리한 모습이었지만 오형구는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닌 정문 앞의 수많은 사람들이 숭무고에 압도되어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웬만큼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도 그러했으니 겨우 삼류 무인이자 삼류 무림중학교의 선생인 오형구가 넋을 놓는 건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정말 김도진 맞나?'

오히려 3년 내내 낙제생을 벗어나지 못했던 도진이 너무나 당당하게, 자연스럽게 숭무고에 녹아들고 있는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오형구는 생각했다.

그저 시설에만 압도되는 게 아니다.

이곳에 모인 무림인들, 관련 종사자들, 그리고 재학 중인 학생들과 관련자들이 내뿜는 기세가 거대한 절벽처럼 방문자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토끼가 호랑이 앞에서 몸이 굳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반응.

한데 겨우 삼류도 되지 못할 무림중학교의 전 낙제생이 너무나 당연하게 그 기세에 동화되어 있다.

마치 이곳에 있는 게 당연한 사람인 것처럼.

오형구는 그것이 너무나 낯설었다.

치환 패거리와 송재익까지 잡아냈다는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그럼에도 오형구는 김도진이 '감히' 숭무고에 지망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다.

겨우 삼류 무림중의 일진 패거리와 흑도를 지망하던 흔해빠진 무림고 학생 하나를 잡아냈을 뿐이다.

이곳을 지망하는 '후기지수'들에게 있어 도진이 해낸 건 명함도 내밀기 힘들 만큼 흔한 업적이었다.

숭무고는 그만큼 다른 세상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도진이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이 아니었을까.

오형구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휘휘!

'내가 미친 거지.'

머리를 세게 저어 상념을 털어내며 오형구는 들고 온 서류 봉투를 챙겼다.

"그럼 원서 내고 올 테니 학교라도 둘러보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혼자 남으란 말을 했는데 역시 일말의 불안감도 보이지 않는다.

오형구는 오히려 자신이 불안해지는 걸 느끼며 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떠나갔다.

그렇게 혼자 남은 도진은 느긋이 걸음을 옮기며 학교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를 산책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무림학교는 일반 학교와 달리 4월이 1학기의 시작이기에 재학생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간간이 보이는 재학생들, 이제 2학년이 될 학생들의 기세는 과연 보통이 아니어서 특히 강한 학생들은 강치환은 물론 송재익마저도 피라미로 보일 정도로 차원이 달랐다.

'이게 숭무고와 일반고의 격차.'

그래도 송재익 정도면 나쁜 의미로 무공에 적합한 심성을 가지고 고유무공마저 익힌 무림인이었다.

한데 그런 송재익이 숭무고의 아직은 1학년인 학생들에 비하면 피라미로 보일 지경이니 과연 '진짜 무림'의 벽이 높음을 실감했다.

'내가 보았던 무림은 입구조차 아니었던 거구나.'

쓰게 웃었다.

그러나 비관하진 않았다. 그런 과거를 느낄 때마다 지금의 삶은 다를 거라는 확신과 다짐 또한 되새기고 있었으니까.

웅성웅성!

"우정한이다!"

"소림 속가 제자다!!"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숭무고는 떠들썩했다. 그런 떠들썩함 속의 고요를 즐기던 도진은, 그러나 차원이 다른 떠들썩함에 고개를 들어야 했다.

'소림 속가 제자.'

원인은 다름 아닌 인파를 몰고다니는 한 명의 '후기지수'였다.

이제 고등학생이 될 학생들 중에서 이미 후기지수로 확정이 난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거기에 있었다.

그 유명한 소림사(小林寺)의 제자.

법의는 걸쳤으나 머리를 깎지 않은 건 정식 제자가 아닌 속가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림'의 이름을 내걸 수 있는 무림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는 명문 숭무고에서도 단연 돋보일 만큼 특별한 학생이었다.

오늘 숭무고를 촬영하기 위해 온 기자들 중 대부분을 몰고 다니고, 방문한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을 만큼.

그 소란은 마치 세상을 나누는 벽처럼 보였다.

우정한은 세상을 이끌어 갈 주인공. 그리고 그 외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들러리들.

그리고 실제로 전생에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2회차'의 이야기가 1회차와 같아선 의미가 없다.

이번엔 조금, 아니 많이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도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떠들썩함이 점점 멀어지면서 비례하듯 주변이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얼마 가지 않아 또 깨지고 말았다.

"와……."

"누구야?"

"설마 '무림출도(武林出道)'야?"

주변이 웅성거린다. 우정한 때와는 다른 성질이었는데, 아까의 것이 매스컴을 포함한 유명인에 대한 떠들썩함이었다면 이번엔 자연스런 주목이란 느낌이 강했다.

도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

그리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미모를 지닌 여학생이 있었다.

낡고 허름한 무복을 걸쳤는데, 그것이 마치 따라올 사람이 없는 미모를 지닌 여배우가 연기를 위해 입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화장기 없는 새하얀 피부에 꾹 다문 분홍색 꽃잎 같은 입술이 청순하면서도 단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 시선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흠. 뭐냐. 반한 거냐?

덜컥 굳어 버린 도진의 모습에 위지혁이 장난치듯 물었다.

거기에 도진이 굳어 버린 그대로 대답했다.

-…이번 숭무고 입학 시험 비무에서 1등을 했던 사람입니다.

-음?

위지혁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도진의 시선을 통해 본 게 전부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소림의 속가 제자'이며 주변의 평가까지 더해보면 우정한이란 학생이 압도적인 우승 후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한데 그런 우정한을 제치고 비무에서 1등을 했다고?

-유명한 무가의 여식이냐?

-아뇨. 완전히 무명(無名)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디 무림 중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었다.

완벽하게 새로운 인물. 그런 사람이 도진의 전생에서 무려 숭무고의 입학 시험 비무에서 소림 속가 제자를 꺾는 대파란을 일으켰었다.

워낙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던지라 도진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분명히 놀라운 일이었다. 위지혁이 활동하던 시절의 무림과 달리 현대의 무림은 그런 식으로 '신진고수'가 나올 만한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로 네가 놀란 것 같지는 않다만, 제자야.

도진이 겨우 그런 사건의 주인공을 만난 걸로 이렇게 굳어 버렸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도진은 물끄러미 그녀, 서소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 1년 뒤에 죽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