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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7화 (17/741)
  • 17화

    천천히 순대국밥을 다 비우고서 도진은 상미와 함께 강가로 왔다.

    하천 공원으로 만들 거라는 이야기가 이미 몇 년 전부터 나도는 곳인데 도진이 서른 다섯이 될 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인 곳이었다.

    '재개발 확정 되고부터서야 확정되었지.'

    덕분에 지금은 수풀만 무성해 어린 아이들이 물놀이 할 만한 곳을 제외하고선 반쯤 버려지다시피 한 곳이다.

    그나마도 겨울이라 황량한데다 요즘 세상에 애들이 모여 물놀이 하는 일이 뜸해지면서 양아치들의 집합소 비슷한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양아치들이 얼마 전 대규모로 잡혀 들어가면서 지금은 조용해졌고.

    도진이 굳이 이런 곳에 상미를 데려온 건 조용히 줄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받아."

    내미는 건 다름 아닌 통장과, 오늘 내내 결제에 사용했던 한 장의 체크 카드였다.

    "이건……?"

    통장을 받아든 상미는 안에 든 금액을 확인하고선 두 눈을 크게 떴다.

    무려 367만원이 넘는 돈이 찍혀 있었다.

    "이번에 받은 포상금의 절반을 넣은 통장이야. 오늘 이것저것 사는 데 써서 그 정도 남았네."

    "이걸 왜 나한테……?"

    오늘 있었던 일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큰 돈을 나에게 줄까.

    그런 상미의 의문에 도진은 나란히 앉은 채 시선은 앞을 향하고 말했다.

    "나는 사람은 고쳐 쓰기 힘들다고 생각해."

    두근!

    상미는 그것이 자신을 가리키는 거란 생각에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 상미에게 도진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가능성?"

    "그래. 나쁜 새끼는 갱생시키기 힘들지. 대부분은 갱생시킨답시고 놔둬서 괜히 피해자만 더 늘어나기도 하고. 그런 새끼 하나 갱생시킬 노력이면 훨씬 더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잖아?"

    "……."

    "사람이란 게 그래. 본성이라는 건 정말로 바꾸기 힘들거든. 탄소가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만큼 힘들지 않을까. 그러니까, 원래는 착한 사람도 쉽게 그 본성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말이지."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말. 그러나 상미는 도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애들의 증언에서 너한테 돈을 빼앗겼다거나 맞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 내가 아는 너의 잘못은 유진이, 내 동생한테 그런 말을 한 것뿐이었어."

    상미의 본성이 나빴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미의 본성은 나쁘지 않았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자포자기까지 했으니 얼마든지 나쁜 쪽으로 물들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까 상미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로서 조사를 받고 나온 것이었다.

    거기서 도진은 가능성을 보았다.

    유진이에게 나쁜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마저 용서하지 못하는 건 너무 가혹한 잣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건 투자란 말이지."

    그러면서 가방에서 공책 하나를 꺼내 건넸다.

    상미가 공책을 펼치자 그 안이 한자와 한자의 주석, 그리고 해석으로 그득했다.

    도진이 직접 쓴 것이었다.

    "무공…… 서?"

    "맞아. 무공서야. 한천검공(翰天劍功). 고유 무공이지."

    두근!

    상미의 심장이 또 한 번 크게 뛰었다. 고유 무공. 그것이 준 충격 때문이었다.

    이건 아까 받은 통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현대 무림의 무공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정형화되고 교육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일반 무공.

    그리고 다른 하나가 소위 말하는 독문 무공, 고유 무공이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일반 무공과 그렇지 않은 고유 무공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이 천지 차이다.

    특히 그 고유 무공이 강력할수록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지게 된다.

    "왜 이걸…… 나한테?"

    "말했잖아. 너한텐 가능성이 있다고. 이 무공을 주신 사부님이 그러시더라. 너는 무공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고. 나랑은 비교도 안 될 천재라고 하시던데?"

    송재익과 치환 패거리를 자수시키고 조사가 진행 중일 때 위지혁이 도진에게 말했다.

    -제자야. 저 아이, 거둘 생각은 없느냐?

    -상미를요?

    갑작스런 말이었다. 거기에 대해 위지혁이 설명을 해 주었다.

    -저 아이, 심성이 나쁘진 않구나. 거기에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으니 네가 거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음…….

    -내가 보니 무골(武骨)을 타고난 데다 대단한 무재(武才)까지 가지고 있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거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렇네요.

    도진은 앞으로 큰일을 해야만 했다.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많은 인재를 모아야 했는데 위지혁은 그 첫 걸음으로 상미를 거두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정보를 모아본 결과가 지금 이 투자였다.

    "내가 말했잖아. 죽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볼 생각이 있냐고. 그 수단으로 무공을 익히라는 건데 혹시 무림인이 되는 건 싫어?"

    상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무림인이 되는 건 싫냐고? 아니, 그 반대다. 상미는 커서 멋진 여협(女俠)이 되고 싶었다.

    그 갈망은 커 갈수록, 그리고 현실이 비참해질수록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이룰 수 없기에 포기하고 만 꿈이었다.

    학비 지원은커녕 밥조차 쉽게 먹을 수 없는 집안 환경이 무림학교 진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궁창에 처박힌 꿈을 다시 꺼낼 수조차 없었다.

    한데 갑자기 그 꿈이 성큼 다가와 버린 것이었다. 더없이 반짝이며.

    "그래, 다행이네. 그럼 열심히 익히도록 해."

    "왜 나한테 이런 것들을 주는 거야?"

    몇 번이고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말했잖아. 이건 투자라고. 그러니까 공짜가 아니야. 잘 들어."

    도진은 고개를 돌려 상미와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통장이랑 카드는 내 명의로 만들었어. 보호소에 들어가는데 네 명의로 큰 돈 쥐고 있으면 혹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었어. 비상금으로 쓰고 내 전화번호 줄 테니까 혹시 필요하면 문자해. 알겠지?"

    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장 정리 꼬박꼬박하면서 가계부를 써. 내가 얼마를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기록해.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습관을 들여. 그래야 앞으로 돈을 벌었을 때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물건 사는 법은 알려줬으니까 그것도 까먹지 말고. 무조건 싼 거 사지 말고 제대로 된 걸 사서 오래 쓴다는 마인드가 나는 더 좋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게 무조건 정답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배우면 될 거야. 너한테 준 돈이 큰 돈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울 만큼은 될 거라 생각해."

    "나중엔 그 정도 돈은 푼돈처럼 쓸 날이 오겠지만 그때도 이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준 무공을 꾸준히, 아니 빡세게 익히면서 단련하도록 해. 귀찮아도, 먹기 싫어도 밥 꼬박꼬박 먹으면서 좀 튼튼해지고."

    "너 이제 열여섯 살 되지? 보호소에서는 아마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열일곱부터는 머물기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무공을 수련해서 숭무고(崇武高)에 입학해."

    "숭무고?"

    "그래, 숭무고. 나는 거기 들어갈 거니까 따라오라고."

    숭무고. 명문 무림고였다.

    무림학교라고 해서 다 같은 학교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엄격하게 '급'이 나뉜다.

    급이 떨어지는 무림학교를 졸업하면 그저 그런 인생을 살고 최상급의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의 엘리트가 된다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그런 만큼 명문 무림고는 엄격한 기준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입학할 수 있다.

    자격이 되는, 선택받은 천재가 그득한 곳. 그곳이 명문 무림고이며 숭무고는 유명한 명문 무림고 중 하나다.

    도진은 너무나 여상스럽게 거기에 들어갈 것이며 따라오라고 상미에게 말한 것이다.

    "입학 시험에서 수석이 되면 전액 장학금이 나와. 심지어 용돈도 나오지. 기숙사 생활도 보장되고.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잖아? 그러니까 선택지는 없어. 무조건 숭무고에 지원하고 수석으로 입학해."

    심지어 그런 곳을 수석으로 입학하라고 말한다.

    "나는 네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투자하는 거야. 그러니까 무조건 수석 입학하도록 해. 그리고 나랑 함께 해줘야겠어."

    "함께……."

    "그래. 앞으로 내가 해야 될 일이 좀 많고 규모가 크거든. 투자한 만큼 일해줘야겠어. 알겠지?"

    이제 열여섯이란 나이에 무공에 입문해 명문 무림고에 수석으로 입학하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을까?"

    "응."

    도진의 너무나 간결하고 여상스런 대답이 상미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한다가 정답이야."

    "응. 할게."

    "그래. 1년 뒤에 꼭 후배로 들어와라."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로로 나가니 이정호 순경이 다가왔다.

    "그래, 볼일은 다 끝났니?"

    "네."

    이 순경은 지금까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조용히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제 갈 시간이 되자 다가온 것이었다.

    "그럼 가볼게."

    도진은 손을 흔들고 쿨하게 몸을 돌렸다.

    그 뒤에서, 상미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오빠. 꼭, 꼭 만나러 갈게요."

    도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더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그 도진의 안에서, 바깥과는 다른 분위기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녀석. 폼을 잡는구나.

    -아 이럴 때는 폼을 좀 잡아줘야죠.

    -그래. 뭐 대사는 좀 더 연습해야겠다만 잘했다.

    반쯤 농담처럼 말했지만 위지혁은 진심이었다.

    -수장이란 줄 때는 과하다 생각하는 만큼 주어야 하는 법이다.

    위지혁은 도진에게 그런 조언을 했다.

    본래 주는 사람은 그것을 아까워하는 법이다. 그러다보니 1을 주어야 할 때 0.5를 주곤 한다.

    그것은 실책이다. 줄 거면 제대로 줘야 한다. 그리고 내 사람을 만들려면 3을 줘야 한다.

    2가 아니라 3. 이렇게까지 줄 필요가 있을까를 넘어 이만큼이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래서 도진은 그 조언에 따라 상미에게 포상금의 절반을 준 것이다.

    그리고 무공을 주고 목표까지 주었다.

    여기에 마음까지 담은 결과, 상미는 도진의 사람이 되었다.

    '솔직히 좀 아쉽긴 하지만…….'

    도진의 집도 지금 한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절반이나 되는 돈을 상미에게 주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었다.

    도진은 앞으로 지존(至尊)이 되어야 했으니까.

    가족을 우선해야 하지만 지존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도 포기해선 안 됐다.

    하물며 그 인재는 선택받은 무림 금수저들 못지 않은,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 투자로 마음을 얻을 수 있는데 아까워하는 건 어리석은 소인배의 마음가짐이다.

    '그래. 대범해져야지.'

    상미를 보내고 나니 동생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놀이터로 가니 아이들과 놀고 있던 유진이와 호진이가 벌떡 일어났다.

    "형!"

    "오빠!"

    후다닥 달려오는 동생들을 받아 주었다.

    여느 때보다 더 격렬하게 반겨주는 건 함께 놀던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있어 동네에 파다한 '17:1의 전설'의 주인공인 도진은 선망의 대상이자 무림의 영웅 그 자체였으니까.

    그 무림의 영웅이 내 오빠고 형이라고 자랑하고 싶어했다.

    "그래. 잘 놀고 있었어?"

    "응!"

    슬쩍 둘러보니 더 이상 동생들이 따돌림 당하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또래의 중심이 된 모양이다.

    "애들이랑 놀아줘서 고맙다."

    "아, 아니에요."

    웃으며 말해주니 아이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이거 먹을래?"

    "네!"

    "먹어도 돼요?"

    "그럼."

    오면서 사온 따끈한 붕어빵 한 봉지를 건네주고 동생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른 한 봉지의 붕어빵을 꺼내 하나씩을 먹었다.

    "밥 먹어야 하니까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저녁에 간식으로 먹자."

    "응, 형!"

    집에 도착해서는 씻고 저녁 준비를 했다.

    "먼저 쌀을 씻어야 돼."

    "그렇구나."

    "이 정도가 되면 손이 잠길 정도로만 물을 받아서 넣고 취사를 누르면 돼."

    "그래."

    도진은 유진이에게 밥 짓는 법을 배웠다.

    계란프라이 만드는 법도 배웠다.

    함께 저녁을 차려 먹게 되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다음엔 청소를 하고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저녁이 깊어 동생들이 잠들고 열한 시가 넘었을 즈음 서정원이 퇴근해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곁에, 도진의 아버지 김서우가 함께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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