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원조 교제 사업' 벌인 중학생들 구속!]
한 폭력 클럽의 중학생들이 원조 교제를 알선해 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역할을 나눠 사업을 하듯 원조 교제를 알선해 왔으며 여기에는 가출 여학생들은 물론, 같은 학교 여학생들까지 협박하여 강제로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
무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통탄할 만한 사건이었지만 한 소협(小俠)의 활약으로 이들이 일망타진되었다는 부분에서 강호의 도리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특히 김 군은 현상수배가 걸려 있던 흑도의 악질까지 붙잡아 더욱 미래가 기대된다.
* * * *
경찰서 내에 임시로 마련된 감찰단의 조사실.
감찰단 소속의 무인이 건너편에 앉은 도진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신원을 알 수 없는 은거 고수분께 무공을 사사받았단 말입니까?"
"네."
"그리고 그 은거 고수께서는 지금 만날 수 없는 곳에 계시고?"
"네."
"배운 무공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줄 수 없구요?"
"독문무공(獨門武功)을 캐묻는 건 실례입니다."
"…그렇지요."
밀폐된 '조사실'에서 무려 감찰단의 무인과 단둘이 독대를 하고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도진의 태도에 정원진은 오히려 자신이 말리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이런 촌동네의 삼류 무림학교 중등반 학생이, 그것도 낙제생이 해결했다기엔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당연히 조사가 있었다.
혹시 '도핑'을 한 건 아닌지, 문제가 되는 사공(邪功)을 익힌 건 아닌지 말이다.
도핑이란 말 그대로 위험한 약물 등을 사용하여 일시적으로 무공을 증폭하는 것이다.
부작용이 없으면 당연히 '도핑'이란 말이 붙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맛이 가는 정도면 다행이고 주화입마에 걸려 미쳐 날뛰는 살인귀가 될 수도 있다.
일반인도 칼을 들고 설치면 위험한데 무림인이 그러면 그 자체로 재앙이 된다.
사공을 익혔으면 더 심각하다.
도핑으로 인해 정신이 망가지고 내공이 폭주하는 건 대부분 일회성이지만 사공을 익히면 이성적으로 미친 악마가 되어 지능적으로 꾸준히 범죄를 저지르는 '마두(魔頭)'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이 마두로 인한 사회 문제가 보통이 아닌 만큼 이해하기 힘든 실력의 향상을 보인 도진에 대한 조사는 필수였다.
그래도 무림인이었던 만큼 도진도 이에 관한 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사에 성실히 협조했다.
결과는 당연히 정상이었다.
도핑은 당연히 한 적이 없고 도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천마기는 신공(神功)의 기운이다.
고대 무림처럼 무공 수준이 높지는 않으나 그만큼 발달한 현대 과학의 분석법으로도 삿되고 저급한 반응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 도진으로선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상대가 미성년인 도진에게 존댓말까지 쓰며 예의를 갖추니 도진도 예의를 갖추긴 했으나 밝히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칼 같이 철벽을 친 것이다.
'아저씬 아직 너무 젊네요.'
감찰단에 소속되었으니 나름 실력이 있겠지만 정원진은 아직 파릇한 새싹이었다.
이제 20대 초반. 은은히 기세를 풍기면서 표정도 굳히고 있지만 그 어린 나이에 걸맞는 얼굴을 도진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어른이지만 더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앳된 얼굴이 보인다.
당장 진각을 밟았던 그때 바로 나서지 못한 것만 봐도 이곳에 파견된 감찰단이 모두 경험 부족한 신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음. 수고하셨습니다."
조사실을 나온 도진은 휴대폰으로 치환 패거리와 관련된 기사 하나가 많이 본 기사 랭킹 8위에 진입한 걸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란 게 사회의 일부가 되면서 그만큼 터지는 사건의 스케일도 커졌다.
때문에 서울 구석에서 일어난 이번 일은 딱 이 정도, 인터넷 뉴스 랭킹 순위권에 오르고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지만 며칠 못 가 사그라들 정도의 관심밖에 받지 못할 것이다.
아직 감찰단의 조사를 받기 전이었기에 사진도 실리지 못했던 도진 또한 큰 관심을 받지 못할 테고.
설령 사진이 실렸다 해도 도진을 알아보는 사람은 이쪽 일에 지극히 관심을 가지고 기억력 좋은 사람 정도로 국한된다.
말 그대로 금방 증발할 휘발성의 관심이다.
지속적인 관심은 이 정도론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명성을 쌓은 무림 고수들, 그리고 '무림 금수저'인 후기지수(後起之秀)들에게 집중되니까.
이번 일로 퍼질 도진의 명성은 이 동네 정도가 한계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사건이 엄정하게 처리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송재익의 집안은 그래도 나름 힘 좀 쓴다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감찰단이 개입하고, 그 감찰단이 개입한 상황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기자들까지 있는 상황에서는 송재익을 빼내기 위한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감찰단이나 언론 둘 중 하나만 있었다면 어떻게 비벼 보겠지만 둘 다 있는 상황에서도 힘을 쓸 수 있을 만큼 대단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면 기자들은 그냥 사건 몇 줄 쓰는 정도로 관심을 끊었을 텐데 중요 인물이었던 도진이 인터뷰를 해줌으로써 후속 기사까지 쓰기 위해 계속 사건을 주시한 것이다.
속어로 '잔바리'라 불리는 신입 기자들이지만 그 신입 기자들이 쓴 기사가 정식으로 올라갔으니 언론사 자체와 연결되어 버렸다.
빠져 나오지 못한 송재익은 살인죄와 강간 등 온갖 패악을 저지른 흉악 범죄자로 무공이 전폐당하고 감옥에서 최소 30년은 썩게 될 것이다.
치환 패거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무림학교 학생들은 단전이 파괴되어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으로 소년원에 갈 것이고 일반 학생들 또한 소년법이 폐지된 지 오래이기에 그냥은 넘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며칠에 걸친 조사가 마무리되고 경찰서를 나오면서 도진은 생각지도 못했던 큰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현금으로 무려 800만원이나 되는 돈이었다.
"이건?"
"송재익한테 걸려 있던 현상금이다."
송재익은 수많은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증거를 남기지 않고 잡히지도 않았다.
대표적인 게 여학생을 강간하고 암매장한 짓이다.
이 근방엔 CCTV가 촘촘하지 않고 수사력도 집중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사건들 몇 개에 현상금이 걸렸는데 이번에 송재익이 실토하며 여러 사건이 해결되었고 현상금이 해결 당사자인 도진에게 주어지게 된 것이었다.
범인이 무림인으로 추정되었기에 액수가 꽤 컸다.
임 경사는 현상금을 건네주며 당부했다.
"들고 다니지 말고 바로 계좌 만들어서 넣어두는 게 좋을 거다."
"네, 그러죠. 감사합니다."
800만원. 지금 도진에게 있어선 아주 큰 돈이었다.
잠시 멈춰서서 생각을 정리한 뒤 바로 근처의 은행으로 가 통장 세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으니 왜소한 체구의 여학생, 상미가 나왔다.
"가자."
"……."
도진은 자연스럽게 상미에게 다가가 말했고 상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걸어 번화가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화려함이 사라지고 낡은 건물들, 흙, 무성한 풀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문월동.
산 중턱에 자리잡은 달동네.
그 달동네의 가장 높은 끄트머리에 상미의 집이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자그마한 단독 주택.
털컹!
상미가 힘주어 미니 녹이 슨 붉은 문이 그냥 열려 버렸다.
겉으로 보기엔 닫힌 것 같았으나 사실은 잠금 장치가 고장나 있었던 것이다.
"다녀 와."
쓰레기마저 뒹구는 난잡하고 좁은 마당에서 도진이 멈춰 서 기다리는 동안 상미는 안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왔다.
채 15분도 걸리지 않아 다시 나왔는데, 작은 가방 하나 채 다 채우지 못할 옷가지 몇 개가 챙길 것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집이라 불리던 곳에 있던 상미의 물건은 그게 다였다.
"다 챙겼어?"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상미를 데리고 도진은 그 집을 나왔다.
아마 상미가 다시 이 집에서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상미를 데리고 도진은 번화가로 되돌아갔다.
경찰서로 가는 게 아니었다. 이 근방에 위치한 아울렛으로 가는 것이었다.
문성 아울렛.
이 동네 유일의 아울렛이었다.
유일한 아울렛인만큼 유동 인구가 많다보니 상미가 움츠러들었다.
이런 곳에 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금 상미가 걸치고 있는 패딩은 그날 도진이 걸쳐 주었던, 몸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도진은 그런 상미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다 똑같은 사람이야. 아무도 널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러니까 그냥 돌아다니면 돼."
내부는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만큼 공을 들인 것이다.
도진은 우선 지하로 향했다.
"여기가 세일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야. 둘러보고, 입어보고 사야 돼. 괜히 입어보기 그렇다고 그냥 사가면 낭패볼 거야. 특히 신발 같은 게 그렇지."
"……."
"돈 주고 샀는데 입지도 못하거나 입어도 불편하면 그렇게 속 터질 일이 어딨겠어. 그러니까 꼭 입어보고 신어보고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돼. 알겠지?"
"…왜 그런 걸 말해주는 거야?"
상미는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묵묵히 따라왔지만 이런 곳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해주는 이유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런 상미의 의문에 도진이 답했다.
"아무도 너한테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을 테니까."
"……."
"이런 건 자연스럽게 살면서 배워야 하는 건데 너는 그렇지 못했을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알려주는 거야."
"……."
상미는 다시 침묵했다.
그런 상미를 데리고 도진은 여러가지를 알려 주면서 쇼핑을 했다.
옷 몇 벌, 신발도 하나 샀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속옷까지도 샀다.
"제가 남자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얘 속옷은 어떻게 사면 돼요?"
민망할 법도 한 상황인데 오히려 당당하게 직원에게 질문을 하고 조언을 구하기까지 했다.
"잘 들어 둬. 니가 알아야 될 거니까."
세련된 모습의 여직원은 싱긋 웃으며 동생이에요, 하고 물었고 도진은 담담히 네라고 답했다.
그렇게 양손 가득 쇼핑이 끝나자 이번에는 미용실에 들렀다.
"긴 머리 좋아해?"
상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단발로?"
이번엔 끄덕였다.
"보기 좋게 단발로 쳐 주세요."
"네에."
젊은 헤어 디자이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찰칵.
"어머, 머리카락 진짜 곱네."
붙임성 좋게 칭찬을 해 주는데 상미는 눈을 감은 채 반응이 없었다.
"애가 좀 무뚝뚝해요. 누나가 좀 이해해 주세요."
"남녀 바뀐 거 아니야? 오빠는 되게 붙임성 좋은데?"
"뭐, 사회 생활 하다보면 이렇게 되는 법이죠."
"뭐야? 호호호."
깎지 않아 정리되지 않은 채 길었던 머리가 단정하게 목덜미 어림에서 짧아졌다.
머리까지 정리를 마치자 점심 시간이 되었다.
"너 순대국밥 먹어봤어?"
도리도리.
"그래. 한 번 먹어보자."
그리고 근처의 순대국밥집으로 갔다.
2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 온 맛집이었다.
"이모님. 여기 순대국밥 2인분 주세요."
능숙하게 자리를 잡고 주문까지 했다. 상미는 그런 도진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상이 차려졌다.
깎두기 등 간단한 밑반찬이 나오고 오래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순대국밥이 놓였다.
"그냥 먹어도 괜찮은데 새우젓 넣어도 괜찮아. 먹어보고 결정해. 새우젓 싫으면 소금으로 간 맞춰도 되고."
그러면서 이렇게 먹으면 된다는 걸 보여주듯 먼저 한숟갈 뜬다.
"뭐 나는 햄버거 같은 거 좋아하는데, 너는 밥 자주 안 먹었을 거 아냐. 그리고 넌 살도 좀 쪄야 하니까 국밥 든든하게 먹는 게 나을 거 같아서."
"……."
상미가 도진을 따라 순대국밥을 한숟갈 떴다.
조심스레 한숟갈 먹고서는.
주륵.
마치 그 온기에 녹아내리듯 하얀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