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어느날 아침.
문월동을 담당하는 지구대에서 이관된 어떤 사건으로 인해 경찰서가 뒤집어졌다.
"…중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원조 교제 사업을 벌여? 이런 미친."
"무림학교 학생들까지 연관되어 있다고?"
"싯파. 며칠 집에 못 들어가겠네."
아직 아침도 먹지 못한 경찰들은 달동네 지구대에서 넘어온 어마어마한 사건 덕분에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중학생들로 이뤄진 폭력 클럽이 가출 여중생들을 동원하여 원조 교제 사업을 했단다.
심지어 일반 여학생들까지 강제로 동원했다.
더더욱, 이 폭력 클럽을 주도적으로 운영한 게 무림학교 학생들이어서 일이 몇 배로 커져 버렸다.
무림인이 관련된 사건은 그 자체로 이슈이기에 여론의 관심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따로 제정된 '무림특별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렇다.
커다란 경찰서에 스무 명 가까운 학생들이 우르르 끌려왔다.
흙투성이에 엉망이 된 몰골들.
개중엔 피칠갑을 한 학생들까지 있어 과연 비주얼부터 보통이 아니었다.
정보를 입수하고 입구에 진을 친 몇 명의 기자들을 뚫고 경찰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려온 건 무림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감찰단(監察團)'이다.
무림인들의 조직인 '무림맹(武林盟)' 전속이며 정부와 협업하여 무림의 범죄자들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일의 경중에 따라 범죄를 저지른 무림인이 협조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사살할 수도 있다는 특징 때문에 끌려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음?'
그렇게 흉악 범죄를 저질렀으나 결국 중학생인 놈들이 하나 같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담담한 얼굴을 한 학생이 하나 있어 임 경사의 시선을 끌었다.
피로 물든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었다.
피가 묻고 주욱 찢어진 오른 소매 안의 팔을 붕대로 감았으며 그 외에도 여기저기 찢기고 피가 묻은 옷을 입은 게 몇 번이고 칼에 베였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모습.
패딩으로 몸을 가렸으나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은 여학생과 함께 단연 눈에 띄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황에도 전혀 압박을 받지 않는 듯해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쟤가 이번 사건 주인공입니다, 선배님."
스윽 다가와 속삭이는 건 이제 1년차인 이정호 순경이었다.
열정적이며 그만큼 열심이라 아끼는 후배인데 이 후배는 특히나 소문,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임 경사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언제나처럼 알고 있는 정보들을 술술 뱉어냈다.
"이름 김도진. 저기 저 폐급 양아치 새끼들이랑 같은 문월동 출신입니다. 거기 산동네요. 무림학교에 진학했으나 뒤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실력이 좋지 않았는데 폭력 조직을 소탕하고 저기 저 요주 인물인 송재익까지 때려잡아서 데리고 왔답니다."
"…팩트야?"
"예, 놀랍게도 팩트입니다."
임 경사는 허어,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사실 중등반 무림인은 말이 무림인이지 상위 10%를 제외하고서는 제대로 된 무림인으로 보기도 힘들었다.
그만큼 실력의 편차가 심한데 뒤에서 10등 안이면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랬던 '낙제생'이 일진이라 거들먹거리는 상위권의 학생 다섯과 일반인이라고는 해도 열둘이나 되는 수를 한꺼번에 상대해 때려눕혔다고?
이건 상위 10%가 아니라 전국 단위에서 노는 상위 1%는 되어야 말이 되는 실력이다.
더욱 믿기 힘든 건 이놈들뿐만 아니라 요주 인물로 등록되어 있는 송재익까지 때려잡아 왔다는 거다.
송재익. 추후 흑도 가입이 확실시되던 악질 중의 악질.
비무랍시고 몇 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병원으로 보내 버렸으며 일반인의 피해 사례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신고하는 피해자가 없어 심증만으로 붙잡지 못해 이를 갈고 있던 놈.
중등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등반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이라 일반인인 경찰들로서는 속수무책인 그놈을, 중등반 낙제생이 때려잡아 온 것이다.
'뭐야. 정말 어디 무협지처럼 기연이라도 얻었다는 거야?'
워낙 믿기 힘든 일이라 절로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들었다.
기연. 무협지에서는 흔히 나오는 거지만 사실은 결코 흔하지 않다.
무협지에서도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에게나 찾아오는 거지 사실은 희소한 것인데 이 현대 무림에서는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영약'이란 건 기득권이 독점했고 그나마도 찾지 못해 부르는 게 값이다.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쪽은 온갖 값비싼 재료와 현대 과학의 정수까지 깃들어 있어 효과는 떨어지는데 오히려 더 비싸다.
어디 동굴에서 절대 고수의 무공을 잇는 건 무협지에나 있는 사례고.
"많이 이상하잖습니까. 그래서 감찰단도 벼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임 경사의 속내를 짐작한 듯 이정호 순경이 한 마디 더 넌지시 흘렸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니 동생들 납치하려는 거 막다보니 이렇게 됐다는 거지?"
"네."
조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조사관을 마주한 도진은 일체의 흔들림없이 조사에 임했고 명백한 증거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기에 사실상 재확인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증거가 명백하니 뒤늦게 발뺌하려는 시도도 나오지 않았고.
"저 증거를 오기 전에 쟤가 다 모아왔답니다. 진짜 인생 2회차인가 싶을 정도네요."
이 순경의 말대로였다.
저 나이 또래에 그 상황에서 증거를 꼼꼼하게, 미리 다 수집해서 올 만큼 계획성이 있다니.
정말로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시선을 집중시켰던 학생이 있었으니 온갖 상처를 입고 피칠갑을 한 모습 그대로의 여학생이었다.
"최소한의 치료만 받고 일부러 그때 모습 그대로 유지했답니다. 증언해야 된다고요."
귀기 서린 얼굴로 당했던 것들을 막힘없이 나열하는 모습은 비쩍 마른 중학생을 대하고 있음에도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아들! 우리 아들 어딨니?!"
"소란 피우지 마십시오."
"당신 누구야!"
"무림맹에서 나온 감찰단입니다."
"흡!"
아이들의 부모가 찾아와 소란이 일어날 뻔 했지만 이쪽도 감찰단이 살벌한 기세를 일으키며 제지하니 바로 잦아들었다.
이후 빼도박도 못할 영상 증거까지 보여주니 털퍽 주저앉는 학부모가 속출했다.
'편하구만.'
보통 이런 사건에서 보면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흠씬 두들겨 패고 싶은 보호자란 것들이 많았다.
한데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있고 소란을 용납하지 않는 감찰단까지 있으니 일이 참 수월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도진이 시선을 받았는데.
"도진아!"
"어머니."
뒤늦게 도진의 보호자, 어머니가 찾아온 때였다.
쿠웅!
"헛!"
"!!!"
도진이 갑자기 진각을 밟았다.
단순히 발로 땅을 내리찍은 게 아니라, 경력을 실어 땅을 진동시켰단 말이다.
그런 돌발행동에 감찰단이 나서려는 순간 도진은 말했다.
"어머니. 사실 저 고수였습니다."
"뭐?"
"……?"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제가 사실은 실력을 숨긴 고수였다는 거예요."
"……."
경찰서 내부가 조용해졌다.
워낙 뜬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중 2병 과시?'
이정호 순경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다.
이는 도진이 의도했던 상황이었다.
'많이 놀라시겠지.'
붕대를 감고 피 묻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부모님이 놀라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크게 걱정하실 테고, 어쩌면 눈물을 보이실지도 모른다.
도진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진각을 밟고 실력을 숨긴 고수였다는 소리까지 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린 것이다.
그 노력 덕분에 서정원은 처음엔 놀랐으나 곧 진정할 수 있었고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다친 아들의 모습에 걱정하고 마음이 아픈 건 어머니이기에 어쩔 수 없었으나 그래도 자초지종을 듣고 웃을 수 있었다.
"장하다, 우리 아들. 진짜 무림인이네."
"……네."
도진은 울컥, 울음이 나오려는 걸 삼키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유들유들하게, 좀 멋있게 있어야 되는데 칭찬을 들으니 눈물이 튀어나올 뻔 했다.
'하 씨.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
그런 상황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외따로 떨어진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상미였다.
"…아버지가 연락이 안 되는구나."
"그 새끼 돈 못 내서 전화 끊겼을 걸요."
"……."
서슴없이 아버지를 그 새끼라 부른다.
그러나 임 경사는 그것을 지적하지 못했다.
상미의 아버지란 작자가 어떤 인물인지 들었으니까.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무리하게 사업하다 집안을 말아먹고 아내는 도망갔다.
이후 알콜중독자가 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상황에서 번 돈을 술로 탕진하기 바빠 상미는 굶기가 일쑤였다.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가출하여 이 지경까지 오게 됐으니 그 새끼는 욕도 되지 못했다.
"애초에 오지도 않을 걸요. 나 같은 건 어찌되든 상관없고 오히려 귀찮아 하니까요."
그건 너의 오해야.
으레 중학생들이 부모에 대해 험담하면 이런 말을 해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미의 말이 정확한 현실이었기에 무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진이 다가왔다.
"얘는 보호소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해 주세요."
"보호소?"
"네. 상황이 이러니까 적어도 1년 정도는 지원 받으면서 머물 수 있겠죠. 접근 금지 처분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말종은 자식이 자기 물건이라고 생각하니까 찾아와 행패 부릴 수도 있으니 그 부분도 고려해 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네요. 필요한 서류는 여기서 작성하면 될 테고."
"……."
무슨 어른 같이 말한다.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다.
분명히 컴퓨터에 표시된 개인 정보는 열여섯 중학생인데 세상 쓴 맛 좀 본 어른 같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조사는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끌려왔던 패거리의 세 배가 되는 학생들이 모였다.
공범, 그리고 피해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중 죄질이 불량한 학생들은 구치소에 들어갔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아이들은 불구속 상태로 조사가 진행된다.
무림학교에 소속되어 무림인으로 분류되는 녀석들은 감찰단의 감시 아래 당연히 구속 수사를 받게 된다.
이쪽은 무림특별법으로 인해 몇 배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도진은 중요 참고인 자격을 포함한 여러가지 이유로 감찰단 몇이 호위로 붙게 되었다.
상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하여 임시로 경찰서 빈 방에 감찰단의 보호를 받으며 머물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감찰단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가는 길.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명의 기자가 바깥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저녁도 복도에서 때운 듯 은은히 중국집 음식들의 냄새가 떠돈다.
"나, 나왔다!"
"김도진이다!!"
도진이 나오자 감찰단의 호위를 받고 있음에도 벌떡 일어나 셔터를 눌러대며 한 마디 좀 해달라고 달라붙는다.
무시해도 될 일.
실제로 도진은 사진 찍히는 걸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도진은 방향을 바꿔 기자들의 앞에 섰다.
눈부신 셔터를 그대로 받으며 도진이 입을 열었다.
"인터뷰 좀 해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