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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4화 (14/741)

14화

'살려둘 가치가 없는 것들이야.'

도진은 치환 패거리와 송재익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목숨과 인권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존중한다.

그렇기에 도진은 타인의 목숨과 인권을 유린하는 것들을 경멸하고 또 경멸했다.

타인의 목숨과 인권을 유린하고 부정한 것들의 목숨과 인권은 그 순간 가치를 잃는다.

그러므로 살려둘 필요도 없다.

어리다고? 어려서도 이 정도인데 크면 더욱 큰 패악질을 부리게 된다.

갱생시켜야 한다고? 그 사이 겪게 될 타인의 불행은? 그건 누가 책임질 거지?

이놈들 하나 하나로 인해 적어도 수십, 많으면 수백이 불행을 겪을 것이다.

죽이는 게 훨씬 가치 있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것은 지극히 과격한 사고방식이었고, 이런 면이 위지혁이 도진을 천마에 어울리는 심성을 지녔다 말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공을 쌓고 선(善)으로 이끄는 건 협객의 방식이지. 그건 분명히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은 바뀔 수 없지. 그러니까 패도(覇道)가 필요한 것이고 무심한 하늘 대신 그 패도를 행사하는 것이 천마(天魔)다."

"도진이의 심성이 그렇다는 말씀이시군요, 위 형은."

처음 장호는 정말로 도진이 그런가 확신할 수 없었다.

장호의 눈에 도진은 차라리 도기(道器)에 가까운, 그러니까 무당이나 화산에 어울리는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불행을 한탄하기보다 속으로 삭이는 아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이 더 안타깝고 아파서 가슴을 치는 아이.

상대가 도움이 필요해도 내 코가 석 자니 안 도와줄 거다, 라고 평소에 생각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모른 척하지 못하고 도와주는 아이.

장호가 심상세계에서 본 도진은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검으로써 도를 추구하는 무당이나 화산에 어울린다 생각한 것이다.

천마에 어울리는 심성을 가졌다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한데 오늘 보니 알 것 같았다.

장호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과거에는 그 불행과 불합리를 원하는 방식으로 대할 수 없었기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도진은 도기가 맞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큰 패도를 품고 있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위지혁과 장호가 살던 때보다 아득히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그 말은 통용되고 있었다.

그런 불합리가 여전한 세상에서 도진은 주먹으로 주먹을 심판하는 패도를 갈망했다.

과거에는 갈망하되 붙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도진은 갈망을 실현할 힘을 쥐게 되었다.

오래도록 쌓이고 쌓인 짙은 갈망.

앞으로 도진이 성장할수록 갈망으로 벼려진 패도가 더 크게 실현될 것이다.

다만, 그렇기에 아직 품은 패도만큼 성장하지 못한 지금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치환 패거리와 송재익을 죽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뒤에 있을 여파를 도진은 아직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실종. 그 다음엔 조사를 통해 시체가 발견되어 거대 살인사건으로 발전할 것이다.

도진으로 용의자가 좁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윤리, 그리고 감정과 별개로 현실적인 문제가 지금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여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사, 살려 줘……."

고민하는 도진의 아래에 짓밟힌 송재익이 짓눌린 개미처럼 애원했다.

천마기의 경력에 혈도가 걸레짝이 된 송재익은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역시 도진의 눈동자에 담긴 고민을 읽었다.

그 고민이 너무나 평이해서 금방이라도 도진의 손에 들린 자신의 단검이 심장에 박혀들 것 같아 미칠듯한 공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극도의 스트레스에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 버릴 듯했다.

도진의 시선이 송재익에게로 떨어졌다. 그리고 입이 열렸다.

"살려달라고?"

"사, 살려 줘……. 다시는 덤비지 않을게. 제발, 제발……."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제발, 제발……."

"너 흑도에 가입했다면서. 널 놔주면 그 흑도가 엮일 텐데 그럼 피곤해지잖아. 걔들까지 죽이는 수고를 감수할 바에는 지금 여기서 널 묻어 버리는 게 효율적이지 않아?"

효율적. 사람을 묻어 버리는 데 나올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현실감이 있었다.

송재익은 이를 따닥거리며 억지로 말했다.

"아, 아니야. 그거 거짓말이야. 내가 일방적으로 가입시켜달라고 따라다니던 게 그렇게 소무, 소문난 거 뿐이야! 난 아무것도 아닌 새끼야."

"글쎄. 그걸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지, 진짜야! 진짜라고!!"

-참이로구나.

장호가 심상세계에서 도진에게 송재익의 말이 사실임을 알려 주었다.

암살자의 정점에 섰던 장호는 여러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 심문, 그리고 심문을 통해 나오는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기술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장 스승님.

판단을 내리기 위한 근거 하나가 생겼다.

다만 이것만으로 결정을 내리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더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죽여."

옆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리니 죽은 듯 엎어져 있던 상미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귀기 어린 눈동자가 도진과 마주했다.

피칠갑을 한 얼굴로 상미가 다시 말했다.

"다 죽이라고."

원한 서린 목소리였다. 도진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이 자리의 모두에게 향한 원한.

그래서 도진은 물었다.

"다 죽이라고? 왜?"

"전부 다 죽여 버려야 될 새끼들이니까."

그러면서 비척비척, 커다란 돌 하나를 들고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그 돌로 송재익을 내리쳤다.

빠아악!

"으아아아악!!"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태의 송재익이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평범한 중학생 여자아이가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돌의 무게엔 한계가 있었기에 뼈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힘껏 내리친 돌에 얻어맞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빠아악! 빠아악!

"아아아아악! 말려! 말리라고 김도진!!"

송재익이 허우적거리며 외쳤지만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헉, 허억. 허억."

상미가 지쳐 스스로 돌을 놓을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기분 풀렸으면 이제 이유를 말해 봐."

"……."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송재익이 곤죽이 될 때까지 기다린 도진의 모습에, 상미는 털퍽 주저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 새끼들, 원조 교제로 돈 벌고 있어."

치환 패거리는 원조 교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가출한 아이들부터 시작해 온갖 협박으로 끌어들인 여학생들을 원조 교제하게 만들었다.

개중 만만한 남자들은 사진을 찍는 등 협박 재료를 만들어 또 돈을 뜯어내곤 했다.

중학생이라고는 믿기 힘든, 도를 넘어선 짓거리들.

이들의 마수에 상미가 걸리고 만 것이었다.

"우리 개같은 애비 새끼 때문에."

상미는 윗동네에 살았다. 한부모 가정이었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집안이 망하면서 엄마가 도망갔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는데 충격 때문에 아버지는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상미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밥을 굶기가 일쑤였다.

그나마 집에서 뭐라도 먹는 아버지가 남겨 놓은 것들로 연명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상미를 때리기 시작했다.

꼴보기 싫다고. 엄마를 닮아서 화가 난다고.

그렇게 맞고 살면서 중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반항할 수 없을 만큼 아버지는 힘이 셌고 아버지가 아니면 기댈 곳도 없었기에 억지로 집에 달라붙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좀!!"

그 말에 눈앞에 번개가 치는 듯 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 무작정 집을 나왔고 정처없이 밤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가, 치환 패거리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그리고 강제로 '원조 교제 예비군'이 되었다.

상미가 '평범한 여학생'이었다면 즉시 끌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미가 지극히 불행한 삶을 살았기에, 정말로 뼈밖에 없는 앙상한 몰골이었기에 강치환 패거리는 '상품성'이 없다는 소리를 하며 뒤로 미루었다.

"그때부터 막장이었던 거야. 여기서 더 개같아질 것도 없었지."

한푼없이 가출했는데 잘 곳이 생겼고 처먹으라고 주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엄두도 내지 못했던 화장이라는 것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지옥 같았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한계에 이른 정신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다를 것 하나 없는, 혹은 더욱 끔찍한 지옥이었음에도 말이다.

마치 살이 오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처럼 살이 찌면 원조 교제에 끌려갈 처지였다.

장난스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삶.

그래서 자포자기하며 살게 됐다. 말 그대로 막장 인생이 되었고 그러다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도진의 시선에서 오래 무단 결석을 하다 다시 나타났던 사이의 공백에는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 치환 패거리에 합류를 한 게 아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결국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일진이 된 게 아니라 오히려 목줄이 조여진 채 끌려다닌 것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첫날밤을 서비스 받을 애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송재익의 말에 끌려가 이게 무슨 뼈다귀냐며 얻어맞다 또 여기까지 짐승처럼 끌려온 것이었다.

"용서해 달라고 안 해. 그냥 다 죽여 달라고. 넌 그럴 수 있잖아. 나까지 그냥 다 죽여 줘. 무릎 꿇고 빌게."

그러면서 정말로 털퍽, 무릎 꿇고 빌었다. 다 죽여 달라고.

나까지.

"……."

도진의 기세가 바뀌었다.

살기(殺氣). 그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잘못 했어!"

"살려 줘!"

무릎 꿇고 있던 패거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공포를 넘어선 생존 본능이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빠악!

빠각!

"으아아아악!!"

도주 시도는 단번에 수포로 돌아갔다.

번개처럼 움직인 도진이 다리를 걷어차 바닥을 기게 만든 것이었다.

작정하고 움직인 도진의 속도는 사방으로 메뚜기처럼 튀어나간 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잡아냈다.

그렇게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기는 치환 패거리를 걷어차 모은 도진은 다시 송재익의 앞에 섰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거 같아. 죽이는 게 낫겠는데?"

"안 돼, 안 돼. 아니야, 아니야!!"

송재익이 발작하며 미친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놈들의 심성이 으레 그렇듯 송재익도 살고 싶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친듯이 돌아가던 머리가 문득 떠올린 단어 하나를 발악하며 내뱉었다.

"자수! 자수할게! 자수할게!!"

갑자기 나온 그 단어에 도진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수?"

송재익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그래. 자수! 자수할게! 자수해서 죗값을 치를게! 그러니까 죽이지 마, 제발!!"

"……."

자수. 그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선택지였다.

애초에 도진은 공권력이란 걸 그닥 믿지 않았다.

그건 결코 모두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약자는 외면하고 오히려 있는 자들을 위해 더욱 성실한 것이 공권력이다.

당장 전생에서 뺑소니의 범인을 제대로 찾아주지도 않았던 것이 공권력 아니었던가.

그래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송재익의 입에서 공권력에 심판받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도진은 멈춘 채 고민했다. 잠시간 고민한 뒤에 다시 움직였다.

"너희들. 지금 스스로의 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다 내놔 봐. 없으면 죽고."

"여, 여깄어!"

"여기 있어!"

치환 패거리가 허겁지겁 증거들을 내놓았다. 죽고 싶지 않았기에 필사적으로 지금 내놓을 수 있는 증거를 찾아 꺼냈다.

대부분은 휴대폰이었다. 주고받은 적나라한 메시지들, 협박을 위해 찍은 영상 등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거기 있었다.

도진은 그것을 압수해 인터넷에 백업하면서 영상을 추가로 찍었다.

"저, 저는 원조 교제를 시킨 그룹의 행동대장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스스로의 죄를 자백하는 영상을 찍는 족족 이 또한 웹에 백업했다.

송재익도 예외가 아니었다. 송재익은 치환 패거리 이상으로 악랄한 죄들이 줄줄 튀어나왔다.

그렇게 작업이 끝난 다음 도진은 상미에게 다가갔다.

상미는 말없이 도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슥-

다가간 도진이 상미의 어깨와 축 늘어진 팔을 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었다.

뚜둑.

"……."

고통이 적지 않았을 텐데 상미는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에 올 때부터 탈골되었던 어깨를 맞춰준 도진은 가장 두터워 보이는 패딩 하나를 가져와 상미에게 주었다.

"입어."

"…왜 다 죽이지 않는 거야?"

상미는 도진이 걸쳐준 패딩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물었다.

그 물음에 도진은 여전히 여상스런 얼굴로 답했다.

"나중엔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방금 떠올린 게 더 좋은 방법 같아서."

"……."

"그리고 너. 정말로 이 새끼들이랑 같이 죽으면 만족해? 나라면 억울할 거 같은데."

"……."

대답하지 않는 상미에게 도진이 이어서 말했다.

"죽는 것보다 더 좋은 삶, 살아볼 생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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