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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3화 (13/741)

13화

"……너!"

송재익이 경악으로 두 눈을 치떴다.

칼이 두려워 피하기 급급하던 놈이 맨손으로 그걸 잡아 버린다고?

닳고 닳은 무림인이 목으로 파고드는 칼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고서야 시도조차 못할 미친짓이다.

심지어 놈의 눈에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날붙이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었다.

한데 어떻게?

거기에 대한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도진이 그것을 극복한다고 결정했으니까.

-여기서 무너질 테냐?

찰나의 순간 위지혁이 물었다.

거기에 대한 도진의 답은 하나뿐이었다.

-이깁니다.

이길 것이다, 이겨야 한다가 아니다.

이긴다.

그를 위해서는 날붙이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야 했다.

무섭다. 두렵다. 피하고 싶다.

지긋지긋한 감정이었다.

도진은 더 이상 무서워하고 싶지 않았고 두려워 하고 싶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수련을 해오지 않았던가.

육체와 정신이 보내는 지독한 경고를 무시하면서 거듭 한계를 넘어왔다.

그 경험이 물러서려던 도진의 다리를 굳건히 했고.

콰악!

독사처럼 틈을 파고들던 시린 날붙이를 서슴없이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힘과 결단력을 주었다.

부르르르-

여력이 남은 송재익의 단검이 떨렸지만 도진의 손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뚝. 뚝.

단검을 쥔 도진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송재익은 반사적으로 단검을 회수하여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아, 안 빠져……!'

아무리 힘을 주어도 도진의 손에 잡힌 단검이 빠지지 않았다.

날카롭게 벼린 칼날은 살을 찢고 뼈를 긁으며 빠져 나와야 했다.

평생 손을 쓸 수 없는 병신이 될, 손이 망가지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고통에 도진이 비명을 내지르며 힘을 풀어야만 했다.

한데 도진은 단검을 쥔 채 흔들림 없이, 사냥감을 금방이라도 찢어발길 듯한 맹수의 눈동자로 송재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송재익이 패닉에 빠진 사이 도진의 정신은 깨달음을 얻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야말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

한계를 거듭 넘어서는 수련의 경험이 도진이 원하는 순간 공포를 극복할 한걸음을 내딛을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수련을 통하여 단련된 육체가 날붙이를 막아낼 정도로 성장했음을 지금 알게 되었다.

뚝. 뚝.

피는 흐르지만 그것은 피륙의 상처였다.

잘 벼린 단검을 맨손으로 잡았음에도 도진의 손은 깊게 상처입지 않았다.

그것은 한계를 넘어서며 망가지고 회복되기를 반복한 육체가 더 단단해지고 질겨진 덕분이었으며 또 내부를 세차게 내달리는 천마기의 보호가 더해진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상처입지 않은 근육은 천마기의 보호를 받아 칼날에 전혀 베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꽉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여기 서 있구나.'

공포를 극복했다.

그리고 스스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무림인'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경지가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도진은 진정한 의미에서 무림인이 되었다.

슥.

도진은 단검을 놓았다.

"헉?!"

안간힘을 쓰고 있던 송재익이 스스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도진은 그런 송재익을 굳이 노리지 않았다.

"…무슨 수작이지?"

허겁지겁 일어난 송재익이 허세를 부리듯 인상을 쓰며 물었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덤벼 봐."

"…뭐라고?"

"덤벼 보라고."

"개새끼가!!"

발끔한 송재익이 달려들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가오'다.

이런 상황에서 겁을 먹고 얕보이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송재익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슁!

여전히 날카롭고 빠른 공격이 독사처럼 날아들었다.

아직이라 생각하는 순간 날리는 공격은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고 일방적인 공격이 된다.

그러나 도진은 그것을 읽었다.

뒤로 물러나는 대신 오히려 한 걸음 나서며 상체를 작게 틀어 아슬아슬하게 단검을 피하며 자신의 거리를 확보했다.

'……!'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되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 또한 분명하게 인식한다.

무림인이라면 필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

이 한 번의 회피에서 송재익은 도진이 그것을 깨우쳤음을 확실하게 알았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다. 피하는 게 아니라 맞선다.

도진은 멀찍이 물러나는 대신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오히려 거리를 좁혔고, 그렇게 좁혀진 간격은 도진의 주먹이 닿는 간격이었다.

'안 돼!'

다급하게 거리를 벌리기 위해 보법을 밟았다. 그러나 늦었다.

빡!

"컥."

눈에서 불이 번쩍였다.

이미 투로를 읽고 과감히 거리를 좁혔던 도진의 공격은 송재익이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쏘아졌던 것이다.

머리가 흔들리며 감각도 흔들렸고 시야도 잃었다.

찰나지만 너무나 치명적인 빈틈.

끝이다.

송재익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음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

조심스레 눈을 뜬 송재익은 담담한 얼굴로 다시 거리를 벌린 도진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해 봐."

"…뭐, 라고?"

"다시 해 보라고. 제대로."

송재익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개…… 새끼가."

도진이 자신을 농락하고 개무시했다 생각한 것이다.

"오냐, 그래. 제대로 해주마!!"

짐승처럼 소리치며 다시 송재익이 달려들었다.

기회를 노리는 뱀처럼 주위를 낮게 맴돈다. 그러다 비스듬히 상체를 틀더니 가려졌던 왼손을 번개처럼 쏘아냈다.

적사탐혈.

다시 한 번 그 초식이 발현되었다.

이미 본 초식. 그것이 그대로 펼쳐졌기에 도진은 어렵지 않게 한 발을 움직여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슉!

송재익의 왼손이 본래 그래야 했던 것처럼 회수되며 오른손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은사섬교(隱蛇閃咬).

적사탐혈에서 이어지는, 송재익이 익힌 무공인 편사단검공(鞭蛇短劍功)의 구명절초(求命絶招)였다.

적사탐혈은 허를 찌르는 지극히 빠른 수법이다.

특성상 쉽게 보여줘서는 안 될 비장의 한 수.

그러나 무림에서 그 수를 영원히 감출 수는 없기에 편사단검공은 또 하나의,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쓸 수 있도록 비장의 절초를 준비했으니 그것이 은사섬교였다.

적사탐혈은 빠르고 치명적이지만 혼신의 일격은 아니다.

무공을 만들 때 많은 참고를 했던 권투의 잽과 비슷하다.

단지 그 잽이 내공에 힘입어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얻었을 뿐.

은사섬교는 여기서 착안하여 만들어졌다.

적사탐혈을 알거나 보여준 상대에게 더욱 치명적인 초식이 되도록 의도했다.

상대가 적사탐혈을 의식하도록 만든 뒤 실제로 적사탐혈을 시전한다.

상대는 적사탐혈에 의식이 쏠리고, 하다못해 여기에 큰 힘을 실었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은사섬교에 앞서는 적사탐혈은 정말로 잽이 된다.

치명적이지만 큰 힘을 싣지 않고, 그렇기에 아주 쉽게 회수할 수 있다.

이렇게 회수한 힘을 그냥 버리지 않고 회전을 통하여 증폭, 오른손에 전달한다.

발경의 묘리가 담긴 것이다.

이렇게 발경의 묘리가 더해진 강력하고 빠른 오른손의 공격이 상대의 치명적인 요혈을 노리는 은사섬교다.

비무가 아닌 실전에서 정말로 상대를 죽일 목적으로 존재하는 절초.

송재익은 이 비장의 절초가 도진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어쩌다보니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자신이 더 강했으니까.

더 강한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최후의 절초를 찔러 넣었다.

방심한 중삐리 따위가 막아낼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을 본 송재익은.

'……어?'

쏘아낸 우수를 이미 알고 대비하는 도진의 모습에 순간 이해가 따라가지 못했다.

'어떻게?'

머릿속 가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금방 증발했다.

뻐어억!!

우수를 피하며 품으로 파고든 도진의 주먹이 송재익의 명치에 깊숙이 박혔기 때문이다.

"꺼."

입이 쩌억 벌어지고 침이 질질 흐른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극통.

그리고 마치 주먹을 통해 면도칼이 흘러들어 와 혈도를 난도질하는 듯한 고통이 내부에서부터 폭발했다.

천마기의 경력이 송재익의 내부를 휩쓴 것이다.

"끄으아아아아아아악!!"

둔중한 극통에 이어 날카로운 극통이 퍼지자 뒤늦게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도진은 그런 송재익을 담담한 얼굴로 내려다 보았다.

편사단검공은 분명히 수준 높은 무공이었다.

근대화, 과학화되며 권투와 펜싱 등을 접목시키고 실전성까지 챙겼다.

특유의 민첩한 보법과 거리 재기는 까다로웠고 비장의 한 수는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무흔잠영을 익힌 도진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상대와 나의 위치, 그리고 '시선'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무흔잠영의 묘리는 편사단검공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여기에 은밀하고 치명적인 한 수 또한 사신의 무공인 무흔잠영에 댈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도진은 이성을 잃은 송재익의 구명절초를 읽어내고 한발 먼저 움직여 역공을 꽂아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슬아슬했어.'

이겼지만 어려웠던 싸움이었다.

내공의 양, 무공의 숙련도 등 송재익은 도진보다 강한 무림인이었다.

다만 천마기와 무흔잠영까지 질에서 도진이 앞섰고 기세를 잡았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게 고등반 상위권의 수준.'

천마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자만한 적은 없었지만 송재익과의 싸움으로 도진은 더욱 자신을 채찍질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등반 상위권은 강했다. 그러나 고등반에는, 이보다 더 위에 있는 '진짜'들이 있다.

'자, 그럼.'

다짐을 새기며 도진은 송재익을 밟은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모여서 무릎 꿇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굳어 있던 치환 패거리가 그 나직한, 그러나 힘 있는 목소리에 흠칫했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의 숲.

군데군데 피칠을 한 악마가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

"……."

춥다. 시리도록.

그것은 한겨울밤 숲에 내린 냉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여 앉아 무릎 꿇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바닥에 엎어진 송재익을 짓밟으며 앉아 있는 도진이 주는 공포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그 말에 얼어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피 묻은 단검을 들고 송재익을 내려다보는 그 얼굴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지, 본능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거창하게 살기(殺氣)를 느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본능이 경고하는 것이다.

저 괴물이 너희를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똑같은 중학생인데 그것을 고민하는 도진의 얼굴은 너무나 평범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너무나 두려웠다.

죽이는 걸 고민하는데 거기에 대한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먹은 순간 너무나 쉽게 그들을 죽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벌벌 떠는 그들은 공포에 몸이 굳어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런 공포를 선사하는 도진은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죽이고 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건 그 생사를 판단하는 것이지.

스승 위지혁이 해준 말대로였다.

죽이거나 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판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때문에 꽤 긴 시간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돌연 변수가 발생했다.

"죽여."

"……."

"다 죽이라고."

피칠갑을 한 상미가, 귀기 어린 얼굴로 일어나 도진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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