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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1화 (11/741)

11화

심상세계.

위지혁과 장호가 도진이 스스로 치환의 패거리가 모인 아지트를 향해 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 형."

장호의 물음에 위지혁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고전하겠지."

그 대답은 도진과 함께 걷고 있는 만곤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에 장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아직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과거로 돌아와 치환과 그 똘마니들을 물리치긴 했지만 그건 위지혁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기에 온전한 실전이라 할 수 없다.

하물며 그때는 무공 초식 하나 배우지 못했던 때이니 더더욱 그러하다.

그날 이후에나 장호에게 무흔잠영이라는 현실에서 쓸 수 있는 무공을 배워 이 주 정도 수련했다.

그나마 천마군림의 깨달음을 적용하고 심상세계에서의 수련까지 더해 무흔잠영의 1성, 입문은 해냈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 도진이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건 천마심공으로 형성된 극소량의 천마기와 아직 실전에선 운용해 보지 못한 무흔잠영의 기본들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지트에는 무려 열일곱이나 되는 놈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 열둘은 일반인이라지만 각목, 야구방망이 등 흉기를 들고 있었고 치환을 포함한 무림학교의 일진들도 무기를 꼬나쥐었다.

경지에 이른 무림인은 홀로 수십을 상대한다고 하지만 그건 자유로이 내공을 운용할 수 있을 만큼의 고수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나마도 자신보다 몇 수나 낮은 하수들을 상대할 때나 가능한 일.

중학생에겐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내야지."

위지혁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인(武人)이란 그런 것이라고 천마 위지혁은 생각했다.

도산검림(刀山劍林)을 걷는 무림인에게 항상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날 리가 없다.

위혐하고 또 위험한,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무림인이다.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만이 고수, 강자로서 살아남는 곳이 무림이지 않은가.

하물며 도진은 그냥 무림인이 아니라 천마가 되어야 할 몸.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은 지극히 당연하게 뛰어넘어야 할 작은 시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도진 또한 치환의 패거리를 마주하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할 리가 없어.'

과거라면 벌벌 떨며 고개조차 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진은 지금껏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흘렸던 피와 땀을 믿었고 그것을 해낸 스스로의 의지를 믿었다.

그리하여 가지게 된 육체와 내공, 그리고 기술을 믿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승리하는 것이다.

"죽여 버려!!"

치환의 외침과 함께 패거리가 달려들었다.

시작은 무공을 모르는 놈들이었다.

도진은 천마기를 돌려 육체와 정신을 활성화하며 놈들의 시선에 집중했다.

'무흔잠영의 시작은 점과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대의 눈이 시작이다.

그리고 닿는 곳이 끝.

그 두 점을 이으면 바로 선이 되며 이 선이 시선(視線)이다.

'그 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잠영'의 기본이니라.'

천마기에 의해 활성화된 시력과 감각이 찰나의 순간 달려드는 놈들의 시선을 그려낸다.

그렇게 그려진 선들은 정직하게 도진에게로 이어져 있었고, 도진은 선들을 피해 움직였다.

핏.

미미한 소리만을 남기고 찰나에 급가속한 도진의 움직임을 달려들던 놈들은 쫓지 못했다.

'시선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시선을 피하며 '나'를 숨길 수 있어야만 무흔(無痕)이지.'

시선을 숨김과 동시에 기척, 소리까지도 숨겨야만 한다.

그 두 가지를 해낼 수 있어야만 '무흔잠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궁극의 무흔은 숨기는 게 아니라 동화하는 것이지만 지금의 도진에겐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숨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도진은 그동안 수련했던 두 가지를 구사했고, 달려들던 놈들은 시력은 물론 감각으로도 잡아내지 못했기에 하나같이 도진이 귀신처럼 사라진 것으로 인식했다.

"뭐, 뭐야!"

뻐억!

"꺽."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틈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시선의 사각을 밟아 단번에 한놈의 명치를 가격, 무력화시켰다.

"어헉!"

"죽여!"

빠악!

바로 옆의 놈이 크게 놀라 야구방망이를 휘둘렀지만 일반인의 막무가내로 휘두른 공격은 오히려 아군을 후려갈겼고, 경로에서 벗어난 도진은 유유히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틈이 훤히 드러난 놈의 명치를 찍었다.

"꺼어……."

이대로만 가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훅!

뒤에서 날카롭게 찔러들어오는 공격이 있었다.

치환의 똘마니, 무림학교에 다니는 놈의 공격이었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초식이었으나 가진 내공이 최소한으로나마 위력을 증폭하고 징 박힌 장갑까지 꼈다.

도진은 그것을 감각으로 느끼고 피했으나 거기에 집중하느라 모든 시선을 그리지 못했고 무흔잠영에 실패했다.

빠악!

"……!"

시야에서 놓쳤던 놈 중 하나가 휘두른 각목이 도진의 어깨를 후렸다.

도진의 표정엔 변화가 없는데 오히려 맞춘 놈이 당황했다.

뻐억!

그 당황한 놈을 걷어차 무력화시켰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씨발 별 거 아니잖아!"

"죽여 버려!!"

겁을 집어 먹었던 치환 패거리의 기세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처음 이 자리에 나타났을 때의 도진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악마처럼 보였다.

그러나 각목에 얻어 맞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이 새끼도 다구리치면 결국 쓰러지겠구나'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자신감이 소극적으로 몸을 사리던 무림학교의 똘마니들이 공세로 전환하게 만들었고 도진이 시선을 그리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무공을 배우지 못한 놈들의 시선을 그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놈들의 시선은 지극히 정직했으니까.

아주 정직하게 눈이 향하는 방향으로, 직선으로 그으면 된다.

심지어 그 선을 따라 공격이 느리게 들어오니 여유가 있다.

그러므로 열 개에 가까운 선을 그려야 함에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무공을 배운 똘마니들이 추가되면서 난이도가 폭증했다.

놈들의 시선은 직선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교차하기도 하며 꺾이기도 한다.

비록 그것이 한두 번의 간단한 '변초(變招)'라 해도 몇 개가 동시에 겹치면 지금의 도진으로선 채 다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퍼퍽!

그렇게 모든 시선을 처리할 수 없게 되어 무흔잠영이 깨지는 순간 공격을 허용해야만 했다.

셋을 쓰러뜨렸지만 지켜보고 있는 치환을 제외하고도 열셋이나 되는 놈들이 남아 도진을 둘러싸고 공격하는 상황이다.

따로 합격술을 배우지 않았다고 하나 도진 역시 사방을 모두 커버할 만큼의 초식을 구사하지 못하는 만큼 공격을 채 다 막아내지 못했다.

공세로 전환하지 못하고 급소만큼은 허용하지 않으며 버티기에 급급했다.

뻐억!

하나 둘. 그렇게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놈들의 움직임이 거침없어지고 기세가 치솟는다.

도진은 그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궁구(窮究)했다.

거듭 한계를 넘어서며 수련했던 육체는 천마기에 힘입어 결코 무너지지 않고 도진이 궁구할 수 있도록 버텨 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입문 단계인 무흔잠영을 완벽하게 구사하여 승리하는 건 힘들 거라고.

그러나 이렇게까지 파탄이 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심지어 치환은 참가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만 먹으면 '개싸움'으로 상황을 뒤집는 건 가능했다.

그러지 않은 건 도진은 무림인이며 이것이 '무림인으로서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림인으로서 무공으로 승리하지 않고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래서야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민하는 도진에게 지켜보던 장호가 말했다.

-선이란 점과 점을 이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점은 움직이며 하나로는 선이 될 수 없지.

무뚝뚝한 선문답 같은 말.

'아……!'

그러나 도진은 좁아졌던 시야가 확 트임을 느끼며 깨달았다.

'맞아.'

지금껏 도진의 무흔잠영 수련은 상대를 중심으로만 하여 진행되었다.

지나가는 행인, 도진이 은밀히 뒤쫓았던 양아치들.

상대의 시선. 상대의 움직임에 맞추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이란 건 점과 점의 연결이다.

즉, 움직일 수 있는 건 상대만이 아닌 나 또한 포함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이제서야 깨달음의 영역에서 깨우쳤다.

그 당연한 이치의 깨달음이, 도진을 무흔잠영의 2성으로 이끌었다.

선들이 이어진다. 이번에도 채 다 잇지 못했으나 상관없었다.

이어진 선들을 피할 수 있는, 그리고 동시에 상대의 점이 나의 점과 만나지 못하는 곳을 밟았다.

부웅!

점은 결코 홀로 선이 될 수 없다. 굳이 잇지 않고서 내가 피해도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도진의 선택지가 몇 배로 늘어났다.

그리하여 생겨난 여유는 또 다른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보인다.'

상대의 시선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선들이 보였다.

그것은 상대의 '투로(鬪路)'였다.

시선의 끝을 향해 이어질 것이 자명했기에 파생되는 선의 끝, 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이었구나.'

도전은 선을 피하고 선을 끊는 귀신 같은 걸음을 이어나가며 환희에 떨었다.

'아 존나 병신 같네.'

비웃음을 흘리며 도진을 농락하던 천재들이 있었다.

'이 새끼 봇 같지 않냐?'

'푸흡. 비유 존나 쩌네. 낄낄.'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도진의 공격을 피하고 또 피하며 농락했다.

당시엔 그저 절망하기만 했다. 이것이 천재와 범재의 넘을 수 없는 벽이구나, 하고.

이제 알았다.

그 천재들이 보던 것이 무엇인지. 그 천재들의 시야가 어떤 것인지.

이것이었다.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공격이 어떻게 뻗어오는지 '예측' 할 수 있었다.

이것이 투로. 무공이 경지에 이르면 상대의 투로를 읽고 한발 앞서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의 도진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실행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도진은 투로에 눈 떴다.

선이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점으로도 선이 이어졌다.

상대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향해 그어지는 또 다른 선, 투로.

선이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한 단계 경지가 상승한 도진은 그것을 충분히 감당해냈다.

자를 것은 자르고 남은 것들은 피해낸다.

동시에 '이미 알고 있는' 투로를 빗겨나며 무흔잠영에 속한 체술을 구사하여 도진을 놓친 적들을 한 수에 하나씩 무력화한다.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도진에게 일반인과 무림학교 똘마니들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 모든 투로를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퍼퍽!

남은 열셋을 무력화하는 데 열세 수 이상은 필요치 않았다.

"너 하나 남았네?"

"으, 으으……."

치환은 벌벌 떨었다.

겁을 집어먹었다는 걸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딴에는 정식으로 무공을 수련한 무림인이었기에 이해한 것이다.

지금 도진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음을.

그리고 그 차이가 결코 뒤집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거리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어두운 숲길을 천천히 걷는 도진의 기세가 치환에게는 마치 거대한 맹수가 자신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으, 으아아아아!!"

이성이 뚝, 끊어진 치환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무림학교의 무림인이 아닌 추해 빠진 겁쟁이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뻐어억!

'봇 같은' 치환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주먹을 고개를 젖히는 것만으로 피해낸 도진의 주먹이 치환의 배에 깊숙이 박혔다.

파고든 주먹에 깃들어 있던 천마기의 경력이 치환의 내부를 파고들었다.

통제되지 않는 맹수는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주인이 아닌, 하찮아 빠진 존재의 내부를 거칠 것 없이 달렸고.

"끄으아아아아악!!"

혈도를 면도칼로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고통에 엎어진 치환은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도진은 그렇게 벌레처럼 나뒹구는 치환을 내려다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을 기는 치환과 그의 패거리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뭐야 이건."

비릿한 피냄새가 묻어나는 목소리가 치환의 비명을 뚫고 공터에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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