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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9화 (9/741)
  • 9화

    그날로부터 이 주가 지났다.

    도진은 현실과 심상세계 양쪽에서 한계를 넘어서는 무공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위지혁과의 극한 대련을 통해 성취를 보아 천마군림이 2성에 올랐다.

    그 압도적인 무리의 일부를 녹여낸 것만으로도 도진의 무공에 대한 이해가 아득히 높아졌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서의 천마심법 또한 진전을 보았다.

    천마기가 더 흉포해지고 또 강해졌다.

    그러나 도진은 여전히 맹수의 고삐를 잡지 않았다.

    제아무리 날뛰어도 천마기는 도진을 해치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혈도를 내달리는 천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의지력으로 통제할 수 있기에.

    천마심공의 요체 또한 그것이었다.

    맹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지로써 통제할 수 있어야만 천마심공을 수련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한 순간 천마심공의 성취가 2성으로 올랐다.

    두 배 이상 커진 천마기를 담고 있는 육체 또한 회귀 첫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육체 단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가득 채워 했던 덕분이다.

    망가진 몸을 내공 수련을 통하여 회복하는 과정에서 혹사당하고 찢겼던 몸은 더 단단해지고 질겨졌다.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것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천마기가 내달리는 혈도가 찢기고 회복하길 반복하면서 더 많은 내공을 더 빠르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외부의 혹사와 내부의 천마기에 의한 자극이 안팎에서 도진의 육체를 담금질하는 것이다.

    그렇게 도진은 한계를 넘는 것에 익숙해져갔고, 점점 늘어나는 한계를 체감하며 혹사 중에도 미래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강해져야 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지금 도진이 쓸 수 있는 수단은 오직 무공뿐이었다.

    소위 말하는 코인, 암호화폐는 이미 오래 전에 유행과 함께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지나가 버렸다.

    주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장사 수완이나 사업적인 지식 또한 도진에겐 없었다.

    도진이 지금 가진 것은 현대의 것을 아득히 초월한 무공이었고, 지금 세상에서 이것은 충분히 도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무림이 존재하는 현대에서 강력한 무공은 돈이 되고 명예가 되며 또 권력이 된다.

    그러므로 도진은 회귀하며 몇 번이고 했던 다짐을 이루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고등반 수석 입교.'

    무림학교는 중등반과 고등반으로 나뉜다.

    일반적인 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의 시스템으로, 차이가 있다면 시험에 합격해야만 고등반으로 진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등반 3학년인 도진은 이제 고등반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여기서 붙으면 고등반에 진학할 수 있고 떨어지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얄궂게도 꼴찌를 다투던 도진은 고등반 시험에 붙어 버렸다.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고 스스로의 재능에 절망했으면서도 집안 사정을 책임질 만큼 강단이 있지도 않았던 도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등반에 진학했다.

    선택을 회피하고 문제에서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이번엔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수석 입교자는 6개월간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이후 고등반 3년동안 6개월마다 비무를 통해 1등을 한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이 주어진다.

    2등은 70%, 3등은 50%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도진은 그 3년동안 모조리 수석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2등, 3등은 의미가 없다. 오로지 수석이 목표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 집안의 부담을 덜 수 있음과 동시에 '후기지수'로서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거기서부터 다른 미래를 시작해 나갈 생각이었다.

    고등반의 상위권은 '진짜 천재'들의 양보없는 각축장이다.

    과거의 도진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세계.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도진은 그 각축장을 제패하기로 했다.

    이것은 결정 사항이었으며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도진의 시선은 이미 학교를 넘어 전국의 천재들이 격돌하는 '용봉제전(龍鳳祭典)'을 향해 있었으니까.

    * * * *

    천마와 사신, 위지혁과 장호는 심상세계에서 도진의 육체 단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요."

    장호는 한계가 가까워 왔음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버피를 반복하는 도진의 모습에 감탄했다.

    기실 사람이 가진 한계에 이르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계란 본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다.

    때문에 육체, 그리고 정신이 한계에 이르기 전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힘들다. 쉬어야 한다. 고통스럽다.

    그런 요소들이 인간이 한계에 이르기 전에 멈추도록 만든다.

    한데 도진은 그 모든 신호를 무시했다. 처음 며칠간은 자세가 무너지고 후들거리며 억지로 움직이다 쓰러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마치 수없이 두들겨진 쇠처럼 날카롭고 단단해진 정신이 흔들리지 않고 육체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재능이 아닌 심성(心性)과 노력의 영역이다.

    도진은 후회로 점철되었던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었고 그것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이토록 경이로운 고행을 쉼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끌끌. 말했잖느냐, 장 제. 이놈은 더없이 천마에 어울린다고."

    지금의 위지혁에게 있어 후계를 찾는 데 재능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필요한 건 '천마에 어울리는 인재'였고 도진은 그 이상 없을 정도로 딱 맞는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음,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도진이 패도(霸道)를 품고 있는지."

    장호 정도 되는 절대고수의 안목은 신기에 가깝다.

    한데 그런 장호마저도 도진이 패도를 품고 있는가에 대해선 확신을 내리지 못했다.

    위지혁은 씨익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녀석은 본래의 심성을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삶을 살았으니."

    전생의 도진은 결코 풀 수 없는 말뚝의 짧은 목줄에 매인 어린 새였다.

    어릴 적부터 모진 매질을 당하고 온갖 불행 속에서 가진 날개를 펼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작은 목줄로 인해 성장할수록 오히려 목이 졸리게 되어 고통 속에서 결국 숨을 거둬야만 했다.

    하지만 다시 살 기회를 얻었다.

    진창을 벗어날 수 없게 했던 말뚝도 목줄도 없다.

    대붕(大鵬)이 되어 마음껏 날개를 펼치고 포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삶에서, 도진을 막을 것은 없었다.

    위지혁은 그런 도진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예지가 아니다. 동류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기대하게, 장 제. 저놈은 고리타분한 정파의 협객이 아니라 패도로써 악을 처단하는 천마가 될 테니까."

    * * * *

    동적산을 끼고 있는 달동네는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더 높은 곳의, 도진의 집이 있는 윗동네이고 다른 하나가 치환의 집이 있는 아랫동네다.

    똑같은 달동네로 분류되지만 위쪽이 더 가난하고 아래쪽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이다.

    그 아랫동네의 어느 집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

    콰당탕!

    콰직!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고 소리를 지르며 집기를 부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강치환이었다.

    도진에게 발경을 얻어맞고 패배한 강치환은 일주일이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무림인이어서 이 정도지 일반인이었으면 두 달은 입원해 있었어야 했을 거란 말을 들었다.

    몸을 수습해 퇴원한 치환은 그러나 거울에 비친, 앞니 두 개가 없는 자신의 얼굴을 보자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에이 씨발. 개새끼."

    "예지야."

    "차라리 뒤져 버리지."

    거실. 치환의 동생 예지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 어린 얼굴을 감추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예지와 치환의 엄마인 서원은 그저 고개를 떨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를 아들은 이제 통제가 되지 않았다.

    벌써 사고를 몇 번이나 쳐 전세금을 빼 합의금을 주다보니 이런 곳까지 떠내려와 버렸다.

    딸 예지는 저 개새끼와 연을 끊지 않으면 내가 이 집구석이랑 연을 끊어 버리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며 오래 지나지 않아 그것이 현실이 될 거라는 예감을 서원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치환은 동적산 중턱 공터에 얼기설기 만든 아지트에 있었다.

    이곳 출신 일진들의 모임인 '동적팸'의 십여 명은 물론 무림학교의 똘마니들까지 모두 불러 모았다.

    그 안에는 도진에게 따귀를 맞았던 상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진이 그 씨발 새끼를 내일 여기로 데려올 거다."

    "도, 도진이를?"

    "그래. 왜. 쫄았냐?"

    "…아, 아니."

    그날 기세 좋게 덤벼들었다 도진의 무릎을 안면으로 받아냈던, 그 흔적이 남아 아직 엉망인 얼굴의 상두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쫄았다고 하는 순간 치환의 명령으로 자리의 모두에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고 앞으로 비참한 학교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당장의 상황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상두는 분명히 보았다.

    도진이 내공이 깃든 초식을 운용한 치환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것을.

    상미의 따귀를 날리고 치환의 입을 짓뭉개는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주저없이 행하던 악마 같던 기세를.

    이 자리에 열일곱이나 모였다지만 이 쪽수로 도진을 어떻게 하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았다.

    하물며 열일곱 중 열둘은 일반인.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중학생급이라 해도 일반인은 도저히 무림인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 크게 의미가 없는 전력이다.

    치환은 그런 상두의 걱정을 읽고선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걱정 안해도 돼. 그 씨발 새끼를 죽여줄 놈은 따로 있으니까."

    "뭐?"

    "재익 선배가 올 거다."

    "뭐, 뭐라고?"

    "재익 선배?"

    '재익'이라는 이름에 자리에 모인 모두가 술렁였다.

    그 이름은 그만큼의 힘이 있었다.

    송재익. 무림학교 고등반 2학년이며 상위권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중등반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치환을 '따위'라 치부할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 실력 이상으로 유명한 것이 포악한 성격으로, 벌써부터 이 지방에서 유명한 흑도(黑道) 문파에 스카웃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마저 도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들이 일진이라면 송재익은 진짜 조폭. 급이 달랐다.

    그가 온다는 소리에 모두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송재익은 수틀리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손을 썼다. 그의 손에 피떡이 되어 병원에 실려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어떻게 부른 거야?"

    결코 그냥 부탁을 들어줄 인간도 아니었기에 누군가가 물었다.

    거기에 치환이 비죽 웃으며 상미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상미는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넋이 나간 것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리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다.

    "쟤 영업 개시, 재익 선배한테 서비스하기로 했어."

    "아, 그랬구나."

    치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환이 상미를 송재익에게 상납하기로 했다.

    그것으로 송재익을 부른 것이었다.

    "그 새끼, 토막을 쳐 버릴 거다."

    치환이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킬킬거렸다.

    * * * *

    겨울이기에 금방 해가 떨어져 어둑한 다섯 시.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놀이터에 단둘이 있는 유진과 호진에게로 불량한 인상의 중학생 하나가 자루를 들고 다가왔다.

    "…누구세요?"

    유진이 동생의 앞에 나서서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

    결코 좋은 인상이 아니었으며 분위기 또한 아니었다.

    그런 유진의 생각대로 다가온 중학생 만곤은 동적팸의 일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진과 호진을 납치하는 역할을 맡았다.

    도진을 부르기 위한, 그리고 협박하기 위한 미끼로써 남매를 납치하려 한 것이었다.

    '그 새끼는 여섯 시가 다 되어서나 놀이터에 나타나니까 그 전에 가서 데리고 와.'

    만곤은 치환의 말을 떠올리며 성큼성큼 걸어 남매에게 손을 뻗었다.

    놀이터엔 남매뿐이고 주변에 어른도 없다.

    도진이 오려면 한참 시간이 남았다.

    이대로 남매를 붙잡아서 자루에 넣고 아지트로 튈 생각이었다.

    반항하면 배를 걷어차 줄 생각인 험악한 만곤의 기세에 호진은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앙!"

    "호진아, 가서 오빠 불러!"

    유진이 크게 외쳤지만 겁을 먹은 호진은 달아나지 못했다.

    만곤은 인상을 쓰며 망설임없이 발을 들었고.

    뻐억!

    옆구리를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오빠!"

    "혀엉!"

    엎어진 만곤의 뒤로 집에 있어야 할 도진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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