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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7화 (7/741)

7화

도진이 순식간에, 압도적으로 똘마니 둘을 제압했음에도 앞으로 나선 치환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인연이 닿아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게 된 그는 말 그대로 '클라스'가 다르다.

성적이 변변찮아 아직도 기초무공에 허덕이느라 이렇다 할 초식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도진 따위는 위협거리조차 아니었다.

방금 한심한 두 놈을 제압한 움직임은 기억과 다르게 꽤 빠르고 강한 힘이 실려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다.

"안 나댔으면 그래도 몸은 성히 갔을 텐데. 이제 어쩌냐. 동생들 앞에서 뒈지게 쳐맞을 텐데."

딴에는 무슨 성취가 있어 나선 모양인데 치환의 입장에서 이렇다 할 초식을 구사하지 못하는 도진은 여전히 무림학교의 '밥'이었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기, 나 쟤 좀 데리고 놀아도 돼? 재수 없어서."

옆에서 나선 것은 상미였다.

상미가 가리킨 건 유진이였다.

흙투성이임에도 예쁜 인형 같은 아이. 그게 스스로와 대비되어서 미웠다.

"안 될 거 없지."

상미에게 대답하며 치환은 다시 한 번 진각을 밟았다.

쿵!

내공을 실은 진각을 중심으로 둔중한 울림이 퍼져 나간다.

그것은 치환이 내공을 초식에 실을 수 있는 경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나이대의 학생들이 딴에는 무림인이라고 자칭하지만 대부분은 간단한 초식을 실전에서 구사하는 수준일 뿐 제대로 내공을 다루지는 못한다.

그저 가진 내공이 소위 말하는 '패시브'처럼 육체를 강화하고 있을 뿐.

하지만 치환은 '철중권(鐵重拳)'이라는 제대로 된 권법을 익힘으로써 초식에 내공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초식의 투로를 따르는 것으로 내공을 실을 수는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커서, 일반인과 종합격투기 선수가 겨루는 것만큼이나 압도적인 격차를 가져온다.

그것이 치환이 가진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덜덜덜.

유진과 호진이 벌벌 떨었다. 내공을 담은 기세는 그 자체로 공포가 된다.

치환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 마. 니들 오빠 안 죽여. 그냥 존나게 패 버리는 거 뿐이야."

슥-

치환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도진이 한 발 나섰다. 그 순간 동생들에게 향하던 치환의 기세가 차단되었다.

도진은 고개를 돌려 동생들에게 웃어 주었다.

"그러고보면 너희들한테 내가 무림인다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구나."

무림학교에 입학한 도진을 동생들은 '무림인'이라 생각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정작 동생들 앞에서 한 번도 무림인다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다 눈깔을 돌리고 있어!"

콰앙!

내공이 실린 치환의 거대한 주먹이 폭발적인 기세로 쏘아졌다.

철중권의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인 초식인 관철(貫鐵)이었다.

내공이 실린 그 일격은 결코 함부로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는 초식이었음에도 치환은 망설임없이 그것을 내질러 버린 것이다.

그러나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에 한 번 보여줄게."

지척까지 치달은 치환의 주먹을 도진은 그림처럼 피해냈다.

유진과 호진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남매가 이해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꽝!

남매의 오빠이자 형이 어느새 내지른 왼쪽 주먹에 커다란 괴물이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는 것.

그 모습이 그야말로 남매가 상상하던 무림인의 모습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남매의 오빠는 진짜 무림인이었다는 것.

콰아아아앙!!

* * * *

치환의 정권이 쏘아지기 직전.

도진의 정신은 현실이 아닌 심상세계에 있었다.

"이건 조언만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구나."

"그렇습니까."

이유는 지금의 도진이 위지혁의 조언만으론 치환의 주먹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를 최대한으로 가속했다. 주먹이 너에게 닿기까지 대략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찰나를 무려 10분으로 늘렸다.

그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대가가 없지는 않았다.

"과도한 심력과 정신력의 소모로 되돌아가면 극도의 피로가 널 덮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조잡한 정권 한 방에 안면이 함몰되는 꼴이 되는 것보단 낫겠지?"

"물론입니다."

도진은 치환을 '무림인답게' 이기고 싶었다.

동생들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똘마니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해 준 위지혁의 조언에 감사하며 그대로 따랐다.

치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역겨운 그놈에게 단 한 대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넘어 '무림인답게' 압도적으로 이기고 아가리를 찢어 놓겠다는 선언을 지키고 싶었다.

"앞의 허접한 두 놈이야 지금의 너로도 충분했지만 이놈은 꼴에 잡무공이나마 익혀서 그냥은 대처가 안 된다."

위지혁은 절대고수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능력을 보여 주었다.

말이 '조언으로 허접한 두 놈을 상대하게 했다'지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재주였다.

도진의 정확한 역량과 움직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하는 건 물론이고 상대의 움직임 또한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예지를 넘어 예지한 것을 초정밀 컴퓨터 수준으로 파악하는 것과 같다.

위지혁은 이것을 그 자리에서 해낸 것이다.

도진이야 오래 봐와서 그렇다고 억지로 납득한다 해도 오늘 처음 본 똘마니들을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파악한 건 경이롭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도진이 조언을 듣고 움직이는 것까지 감안하여 완벽한 타이밍에 조언을 했다.

이게 가능한 것이 천마 위지혁이었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능력으로도 안 되는 것을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초식빨이라고는 하나 내공을 운용하는 놈을 지금의 네가 단순한 몸놀림으로 쓰러뜨릴 순 없다."

물론 방법 자체는 얼마든지 있다.

위지혁은 손가락 하나로도 아무런 힘 들이지 않고 가능하다.

하지만 도진은 그럴 수 없었다.

초식은커녕 아직 몸조차 만들지 못한 도진이 사량발천근이니 이화접목이니 같은 걸 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그래서 심상세계로 정신을 불러왔다.

"어찌해야 하나요?"

"반격 한 방에 끝내야 한다. 지금의 너에겐 그 방법밖에 없다."

파괴력, 지구력, 초식의 숙련도까지 도진은 치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천마기는 극소량만으로도 치환의 내공을 압도하겠지만 도진이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인성과 별개로 치환의 재능은 진짜였으며 배운 무공 또한 진짜였으니까.

때문에 한 방이다.

도진은 이 심상세계에서 그 한 방을 배워야 했다.

"지금부터 너에게 발경을 가르칠 것이다."

발경(發勁).

무공의 파괴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로 배워야만 하는 기술.

진각을 시작으로 발생한 힘을 온몸을 이용해 회전력을 만들어 고스란히 확보·증폭하며 내뻗은 주먹 한 점에 집중시키는 것이 요령이다.

순수한 육체만으로도 철판을 우그러뜨릴 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본래는 그 파괴력만큼이나 육체를 손상시키는 기술이지만 내공이라는 전에 없던 요소가 육체를 보호하면서도 오히려 더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흔한 발경이지 사실 발경은 고등 수법이다.

재능 있는 학생이 최소 10년 이상을 고련해야 실전에서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다.

여기에 내공까지 자유자재로 싣는 건 진짜 권법의 고수 정도나 가능한 일이다.

위지혁은 그것을 단 10분만에 도진에게 해내라 하고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도진은 한 치의 의문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한 일을 위지혁이 말할 리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니까.

"발경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위지혁이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쿵!

진각을 밟은 왼발에서 발생한 힘이 발목을 타고 허리로, 허리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주먹으로 이동하는 동안 회전력에 의해 몇 번이고 증폭되었다.

그리고 그 힘의 종착지는 내뻗은 왼 주먹이다.

쿠아아앙!!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뻗은 왼 주먹에서 발생한 경력(勁力)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굉음이었다.

심지어 이것은 내공을 사용한 것도, 빠른 회전력을 담은 것도 아니었다.

"어떠냐.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줬는데."

"…모르겠습니다."

도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진각을 내뻗은 순간 이미 귀를 때리는 굉음이 터졌다.

보긴 봤는데 무얼 본 건지 머릿속에 남지를 않았다.

그것은 도진의 재능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느리게 사용했음에도 위지혁의 발경이 일반인의 인지를 초월할 정도로 고등한 무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지혁은 충분히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호가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존재감은 물론, 그 존재 자체가 머릿속에 남지 않을 만큼 희미한 장호다.

"전과 마찬가지로 너에게 위 형의 발경을 주입할 거다. 따끔할 테지만 참아라."

말과 동시에 쿡, 하고 다시 한 번 도진의 이마에 장호의 손가락이 닿았다.

'흡!'

천마군림을 전수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컴퓨터의 데이터를 옮기듯 엄청난 양의 정보가 도진의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진각을 밟기 위해 필요한 근육 한 올 한 올의 움직임부터 시작해 회전력을 싣기 위한 요령, 내공의 움직임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정보가 되어 도진에게 때려박혔다.

용량으로 따지면 몇 테라는 될 정보량이 사람의 뇌, 아니 영혼에 단번에 때려박혔으니 백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경험이 있었기에, 이것 이상으로 압도적인 정보량을 받아들이며 영혼의 확장을 경험했기에 고통을 감내하며 온전히 발경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감사…… 합니다."

몸을 추스르며 도진이 인사했다.

장호는 고개를 끄덕여 그 인사를 받고선 다시 사라져 버렸다.

"자, 방법은 알려 주었다. 이제 할 수 있겠지?"

가장 기본이 되는 발경은 특별한 무리(武理)나 깨달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세만 정확하면 구사할 수 있는 수법이다.

그리고 지금, 도진은 그 정확한 자세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네. 몇 번만 연습하고 가겠습니다."

"좋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 * * *

후욱!

커다란 주먹이 쇄도한다.

맞았다간 평생 지고 살아야 할 상처가 남을 위력이 담겨 있다.

그러나 맞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강하든 의미가 없다.

도진은 찰나의 순간 진각을 밟았다.

쿠웅!

지금의 도진으로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무리를 그저 영혼에 때려박힌 대로 실행했다.

진각을 밟은 순간 주먹은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핏!

풍압 때문에 볼에 생채기가 났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진각에서 발생한 힘을 발목에서부터 시작해 허리로 온존하며 회전을 통해 증폭시키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증폭한 힘을 허리에서부터 어깨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깨에서 주먹으로 두 번 더 회전을 통해 증폭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미한 내공이나마 더해지며 도진의 육체를 보호하고 증폭된 힘을 안정적으로 때려박도록 해 주었다.

여기까지가 찰나. 그 찰나의 시간동안 멍한 눈빛의 도진을 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던 치환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고.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졌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 엄청난 소리와 함께 치환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만약 콘크리트 바닥이었다면 온몸이 으스러졌을 텐데 놈에겐 다행스럽게도 흙바닥이라 전신골절은 면했다.

거기에 또 하나.

도진의 발경이 완벽하지 못했기에 내공으로 보호받던 가슴이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찰나였지만 도진은 깨달았다. 발경이 완벽하지 못했음을.

발경을 구사하기 전 진각을 밟기 위한 한 걸음에 담긴 무리를 정확히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상세계에서는 연습했지만 현실의 육체는 처음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완벽한 발경이었다면 치환은 내부가 곤죽이 되어 즉사했을 테니까.

도진은 뻗었던 주먹을 회수하고 몸을 돌렸다.

자그마한 두 동생이 입을 헤 벌린 채 서 있었다.

"와! 오빠 진짜 무림인이었구나!"

"멋있다!"

눈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입을 다무는데 곧 반짝이는 눈으로 꺄꺄 떠들었다.

도진은 씨익 웃어 주었다.

"니들 설마 지금까지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실망인데?"

"아, 아니거든!"

"맞아! 아니거든!"

"하하하."

웃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런 믿음을 주고 싶었다.

울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힘주어 참았다.

겨우 이딴 걸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서는 안 됐으니까.

다시 시작한 삶에서 도진은 더 멀리, 더 큰 것을 이뤄낼 생각이었다.

'자, 그럼.'

도진은 다시 몸을 돌렸다.

우선은 내뱉은 말을 지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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