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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6화 (6/741)

6화

천마심공.

심상세계에서 나오기 전 위지혁에게 배운 것이었다.

현실에서 익혀야 할 심법이고 기초부터 스스로 쌓아나가기 위한 무공이었기에 천마군림과 같은 방법으로 모든 정보를 주입받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쉬었다고 감각이 돌아온, 그러나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운 육체를 억지로 움직여 도진은 가부좌를 틀었다.

천마심공은 자세에 구애받지 않는 초상승의 심공이었으나 그래도 자세를 잡았을 때 가장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도진의 고집이기도 했다.

하루종일을 넘어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스스로 밤샘 당직을 자처한 아버지.

아이들의 용돈 마련을 위해 늦은 밤 추위와 싸우며 집까지 걸었던 어머니.

그것을 떠올리면 이 육체의 고통은 오히려 너무 하찮은 것 같아 화가 나니까.

더욱 채찍질 하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천마심공의 구결에 따라 단전의 내공을 움직였다.

자그마한 웅덩이조차 되지 못하는 단전에 고인 내공은 미미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배운 가장 기초가 되는 심법에 따라 쌓은 내공은 미물이나 다름 없었다.

느릿느릿 움직여 반쯤은 막힌 혈도를 꾸물거리며 통과하는 수준.

그랬던 내공이, 천마심공의 구결에 따라 움직이며 진화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았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고 질주할 수 있는 흉포한 손발톱과 다리가 생겨나 불순물로 좁아진 혈도를 내달렸다.

'컥.'

도진은 입을 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말 그대로 맹수가 몸 속 혈도를 찢어발기며 날뛰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천마심공을 통하여 쌓게 되는 천마기(天魔氣).

과연 도진이 알고 있는 내공에 관한 상식을 대번에 때려 부수는 격이 다른 기운이었다.

마치 하찮은 네가 나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 날뛰는 천마기였으나 도진은 오히려 미소지었다.

언뜻 느끼기에 온몸을 난도질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 천마기가 혈도를 내달리며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상승의 심법을 어릴 적부터 익히고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해야만 가능하다는, '불순물 없는 깨끗한 혈도'가 지금 실시간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 동반되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차라리 더 날뛰어라. 그걸로 내가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도진은 맹수의 고삐를 잡지 않았다.

* * * *

그날 오후는 천마심공의 1성을 달성하는 것만으로 끝이 나 버렸다.

심공의 운용을 위한 길을 개척하고 천마기를 형성하는 데에만 네 시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면 그것만으로 1성의 성취를 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었다.

1성이란 '입문했다'는 뜻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란 소리다.

물론 입문만으로도 목숨을 걸고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으니 분명히 대단한 일이긴 했으나 도진의 목표는 그 너머 아득한 곳에 있다.

그러니 이 정도로 기뻐 날뛰기엔 이른 것이다.

운공을 끝내니 온몸에서 천마기에 의해 분쇄된 노폐물이 배출되어 악취가 심하게 났다.

도진은 그것을 손빨래하여 널어놓은 뒤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동생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이곳 동적산 아이들이 모이는 예의 낡은 놀이터에 들어섰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은 그 장소에 들어선 도진의 눈에, 언제나 같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씨이! 우리 오빠한테 다 이를 거야!!"

"우리 형 무림인이야! 너희 다 죽었어!!"

"……."

동생들이, 유진이와 호진이가 다른 아이들과 대치한 채로 눈물범벅이 되어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그러자 동생들과 대치하고 있던 아이들의 가장 앞에 있던, 머리 하나는 더 큰 아이가 성큼성큼 나섰다.

"이 좀만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동생들이 크게 울면서 머리를 감쌌지만 그 손이 내리쳐지는 일은 없었다.

"누구…… 힉!"

어느새 다가온 도진이 그 손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너는 뭔데 내 동생들한테 손찌검을 하려고 하니?"

"어……."

"오빠!"

"형!"

천군만마를 만난듯 도진에게 매달린 동생들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그 믿음 가득한 반짝이는 눈동자에 부드럽게 미소지은 도진이 그 표정 그대로 손이 붙잡힌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제대로 무공을 배운 듯 하진 않으니 초등학교 6학년생일까.

"쟤들이 우리한테 흙 던졌어!"

"저 형이 우리 때리려고 그랬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하는 사이 뒤에 있던 동생들이 외쳤다.

반박을 못하는 걸 보니 사실인 듯하다.

"왜 그랬어? 사이 좋게 놀아야지."

아이들의 일이란 무조건 윽박질러선 안 되는 법이다.

살살 달래며 물으니 뒤에 있던, 닮은 것이 손이 붙잡힌 아이의 동생으로 보이는 까까머리 아이가 실토했다.

"무서운 형이 쟤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어요."

"…무서운 형?"

"아랫쪽 집에 무서운 형이 사는데, 쟤들이랑 놀면 때릴 거라고 했어요."

"……."

도진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아랫쪽 집.

도진과 같은 무림학교의 동기가 사는 집이다.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친구는 아니었지만 서로 안면이 있었다.

사이는, 결코 좋지 않았다.

'그랬…… 구나.'

그림이 그려졌다.

그 동기는 소위 말하는 '일진'이었다.

그리고 꽤 집요하게 남을 괴롭히는 것이 취미이기도 했고.

그 괴롭힘의 영역이 동생들에게까지 넓어졌던 것이다.

당시의 도진은 이 일을 알지 못했다.

스스로의 일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또 외면했으니 주변의 일이 보일 리가 만무하다.

하물며 동생들은 집에서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았었다.

꽈득.

못난 자신 때문에 동생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

더 화가 나는 건, 동생들이 자신을 믿지 못해 한 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며 말을 해 주었어도 자신은 해결할 도리가 없었다는 거다.

"뭐야. 골목대장 놀이 하냐?"

그렇게 자책하는 도진의 귓가를 때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치, 치환 형."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는 다름 아닌 동생들에게 흙을 던졌던 까까머리 아이의 것이었다.

아이들은 후다닥 도진, 그리고 동생들에게서 멀어져 새로이 등장한 중학생들 쪽으로 붙었다.

거칠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치환은 도진과 같은 동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180이 넘는 키에 아이의 허리만큼 굵은 근육질의 팔뚝.

대놓고 드러낸 기세는 주변의 아이들을 모조리 겁에 질려 얼어버리게 만든다.

강치환. 초등학생 때부터 일진 무리와 어울렸으며 무림학교에서는 도진에게 가장 먼저 재능의 차이를 때려박은 놈이었다.

이 산동네 일진들, 소위 '동적팸'의 대장이었으며 무림학교에서 다시 만난 뒤로 도진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야, 어울린다. 도진아."

치환의 옆에서 그렇게 말한 건 비쩍 마른 왜소한 체구의 여학생이었다.

그 비쩍 마른 얼굴에 과할 정도의 화장을 하여 오히려 거부감을 주는 몰골을 한 아이의 이름을, 도진은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상미…… 였지.'

이 동네에서도 특히 굶주리던 아이였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소심하고 또 약했던 아이.

어쩌다 상미가 동생들과 놀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눠주었던 붕어빵 하나를 허겁지겁 먹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회귀한 지금도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척 봐도 천성이 나쁘지 않았고 남을 괴롭힐 것 같지 않았던 아이.

한데 그 아이가 며칠 무단 결석을 하더니 갑자기 치환 무리에 섞여 있었다.

그래서 또한, 기억에 남았다.

"……."

눈이 마주쳤다. 그 마주친 눈을 통해, 도진은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원해서 이 자리에 섞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자포자기해 될 대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 생각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다.

"오빠."

"형……."

동생들이 불안한 눈동자로 도진을 부른다.

과거, 집으로 도망쳤던 도진은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았었다.

혹시라도 치환을 마주칠까 두려워 떨었었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동생들이 의지하는 눈으로 볼까 특히 두려웠었다.

그래서 밑천이 드러나지 않도록 집에 처박혀 있었었다.

당시의 기억이 도진을 옭아맸다.

다시 마주한 치환의 모습이 그때의 공포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 기색을 읽은 치환의 무리가 비웃었다.

그리고 치환이 말했다.

"야, 도진아. 근데 니 동생 좀 귀엽다. 나중에 내가 따먹어도 되냐?"

"아가리를 찢어줄게."

"……어? 뭐?"

조용한 도진의 말에 웃음소리가 뚝 멎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치환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도진을 노려보았다.

"다시 말해 봐. 뭐라고?"

"아가리를 찢어준다고."

"이런 미친 새끼가!"

치환이 아닌 치환의 옆에 있던 학생 하나가 튀어나와 주먹을 내질렀다.

치환과 어울려 다니는, 사실상 치환의 똘마니 노릇을 하는 놈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실력지상주의인 무림학교에서 일진이랍시고 거들먹거릴 정도는 된다.

그에 비해 도진은 무림학교에서 모르는 학생이 없는, 뒤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낙제생.

결과는 명백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참지 않았다.

참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삶. 과거처럼 한심하게 살지 않을 거라 다짐했으니까.

동생에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순간 도진의 눈에 불이 튀었다.

그 감정에 따라 천마기가 맹렬히 몸 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차기 천마가 이런 모욕을 감내한다는 건 있을 수 없지. 참을 테냐?

-참지 않을 겁니다.

참고 싶지 않다가 아니다.

참지 않는다.

망설임없이 저 더러운 입을 찢어 놓겠다 선언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다. 지킬 수 있겠느냐?

-지킵니다.

-좋다.

주먹을 쥐었다.

쇄도하는 똘마니의 주먹을 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실력차는 명백하다.

천마군림은 쓸 수 없다.

쓰면 100% 죽는다.

육체 능력은 물론 초식의 숙련도까지 아직 도진은 과거 그대로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긴다.

이길 것이다가 아니라 이긴다.

이놈들을 때려눕히고 유진이에게 개소리를 지껄인 치환의 아가리를 찢어 놓겠다.

그 맹렬한 감정이 천마기를 일깨우고 도진의 육체를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차기 천마가 이런 잡배따위에게 몇 수나 쓰는 건 안 될 일이지. 10시 방향으로 좌보를 내딛으면서 중심을 옮겨라.

위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진은 망설임없이 그 지시에 따라 왼발을 움직였다.

-고개를 좌로 살짝 젖히고 오른발로 놈의 내딛은 왼 발목을 강하게 차올려라.

빠각!

"억!"

균형이 무너진 놈이 앞으로 엎어진다.

딴에는 디딤발에 힘을 주었으나 천마기가 깃든 도진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수수깡처럼 무너진 것이었다.

-다음은 알지?

-네.

뻐어어억!!

무릎에 안면을 사정없이 찍힌 놈의 상체가 휙 젖혀지며 뒤로 엎어졌다.

"끄아아아아악!!"

"개새끼!"

엎어져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놈을 뛰어넘어 다른 똘마니가 덤벼들었다.

위지혁은 느긋하게 말했다.

-우로 반보 움직이면서 좌수(左手)의 장저(掌低)로 갈비뼈를 가격.

느긋했지만, 자비는 없었다.

부웅!

기세를 담은 놈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도진의 볼을 스쳐가고 그 순간 도진의 펼친 왼손바닥의 밑이 놈의 갈비뼈를 강하게 타격했다.

빠각!

"꺽!"

놈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도진은 장저를 주먹으로 바꿔 이번엔 명치를 후려갈겼다.

"껙!"

놈은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엎어졌다.

도진의 움직임에 위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공포를 끊어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자비없이 손을 썼다.

위지혁이 원하던 것이었다.

"뭐야. 좀 치네? 어디서 영약이라도 주워 처먹었냐?"

똘마니 둘이 당하자 치환이 앞으로 나섰다.

쿵!

내공이 실린 묵직한 진각이 도진의 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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