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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화 (5/741)

5화

당황스러웠다.

전신의 혈맥이 터졌다.

그것은 육체의 거죽을 제외한 내부가 박살이 났다는 소리였다.

한데 위지혁의 허공섭물로 인해 일으켜진 몸은 멀쩡히 땅을 딛고 섰으며 팔도 움직였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 버릴 정도였던 극통도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여기가 심상세계이기 때문이다."

도진을 일으켰던 위지혁이 말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닌 심상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다른 법칙이 적용되지."

지금 도진이 서 있는 곳은 도진의 영혼 안에 위지혁과 장호가 만들어낸 '마음으로 구현된 세계'다.

"근간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것보다 앞서는 하나의 법칙이 있으니 심상이 그 어떤 법칙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위지혁의 설명을 한 마디로 요악하면 그것이었다.

심상세계. 심상으로 구현되어 있기에 그것이 절대적인 법칙이 된다.

"네가 심상을 명확히 할 수만 있다면 죽어야 할 상처도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도진은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위지혁의 일어나란 말과 허공섭물로 인해 강제로 일으켜진 순간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했고 몸이 거기에 따랐다.

이어지는 당황 속에서 상처를 잠시 잊었고, 그것은 정말로 없었던 것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

도진은 이 순간 많은 것을 이해했다.

어째서 위지혁이 천마신공부터 시작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힐 것인지까지도 말이다.

"너에겐 이미 천마군림의 모든 것이 전수되었다. 그것을 몸으로 생생하게 체감하며 익히기만 하면 된다."

무공이란 등산과 통하는 면이 많다.

차근차근, 꾸준히 정상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아득한 정상을 향해 가기 위해선 체력이 필요하고 또 가파르고 험한 산을 오르기 위한 기술과 인내도 요구된다.

욕심이 난다고 해서 바로 정상에 설 수 없고 서두르다 실족하여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수준에 맞는 길을 따라 등반해야 한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가 고수(高手)인 것이다.

높은 곳에 있을 수록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다.

처음엔 산을 오르기 바빠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무림인이다.

한데 도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산을 오르게 되었다.

아득히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방법이 이미 주입되었다.

몸은 오른 적이 없는데 머릿속에는 이미 그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 방법을 알아도 실행할 수 없다.

체력도 기술도 갖춰지지 않은 몸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시도해봐야 죽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 심상세계에선 다르다.

죽지 않는다.

불구가 되지도 않는다.

몇 번이고 시도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경험을 무수히 반복하는 것으로 너는 극한 상황에서 한계를 거듭 초월해 천마군림을 체화할 수 있다."

흔히 무협지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여 깨달음을 얻는 건 의외로 논리적인 장면이었다.

극한의 상황, 그것도 죽음 앞이라는 더 없을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위기를 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 한계를 극복하려 하니까.

'죽지 않는다'는 걸 인식했으니 도진은 그 정도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에도 기필코 죽음에 이르기에 할 수 없는 시도를 무수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메리트였다.

그렇게 우선 높은 곳에 오른다. 그리고 역으로 되짚어 나가는 것으로 부족한 재능과 시간을 메꾸는 것이 위지혁의 의도였다.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아령을 1kg으로 시작한 사람이 5kg으로 바꾸는 건 힘든 일이지만 시작부터 20kg을 든 사람이 5kg을 드는 건 지극히 쉬운 그런 느낌이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의지다. 할 수 있겠느냐?"

"하겠습니다."

"좋다."

위지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가 아니다.

한다.

그것이 되는 것이든 되지 않는 것이든 관계없다.

해야한다면 무조건 한다.

그 의지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푸학!

도진은 몇 번이고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고 쓰러졌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수련을 계속했다.

푸학!

* * * *

"……."

눈을 떴다.

길고 긴 꿈을 꾼 듯 현실감이 옅다.

그러나 도진은 금방 그 현실감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독히도 긴 시간을 심상세계에서 보낸 느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도진은 아주 많은 시간을 심상세계에서 보냈다.

현실에서는 하룻밤을 잘 동안 심상세계에서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수련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현실에 비해 아주 느리게 흐른다.'

위지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가능한 것 또한 '심상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건 아니다. 단지 사고, 그러니까 정신이 가속하는 것이다.

한계까지 사고를 가속하는 것으로 같은 시간을 몇 배나 길게 쓸 수 있었다.

육체가 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심상세계에서는 오직 영혼, 정신만이 활동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필요한 술식은 장호가 준비했다.

그렇게 길어진 시간동안 온몸을 무수한 면도칼로 난도질하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없이, 계속해서 천마군림을 운용했다.

어떻게 보면 무식하기 짝이 없는, 그러면서도 의미없는 시도의 반복.

도진은 그것이 정말로 무식하고 의미없는 시도가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통 속에서 궁구했다.

천마군림에 담긴 무리(武理)와 이치를 탐구하고 온전히 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부족하고 또 필요한지 실패 속에서 되새겼다.

정답은 이미 머릿속에 있었기에 부족한 것을 알고 채우기만 하면 됐다.

단지 그 과정이 마치 하늘에 닿을 듯 높고 아름다운 탑을 맨손으로 쌓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들 뿐.

물론 그것은 문제가 되지 못했다.

해야할 일이었으니까.

그러므로 답은 할 것이다, 해내야 한다가 아니라 '한다'뿐이다.

꾸욱.

피로함을 느낀 도진이 주먹을 쥐었다.

육체는 쉬었지만 정신은 쉬지 못했기에 피로한 것이었다.

그러나 도진은 참기로 했다.

"일어났니, 아들."

"네."

바깥으로 나가니 도진의 어머니, 서정원이 출근 춘비를 하고 있었다.

번듯한 양복이 아닌 추레함을 겨우 면한 옷차림.

들고 있는 다 헤진 핸드백 안은 역시 낡은 지갑과 오래된 휴대폰 정도가 채우고 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여기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식당이다.

교통이 불편했기에 오전 열 시가 조금 넘은 지금 나가지 않으면 출근 시간인 열한 시를 맞출 수 없었다.

"냉장고에 반찬 해놨으니까 먹어. 아, 그리고……."

서정원이 핸드백 안에 둔 그대로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도진에게 건넸다.

"저녁에는 이걸로 동생들이랑 닭 시켜 먹어. 우리 아들 무림인인데 든든히 먹어야지."

"……네."

돈을 받아든 도진에게 웃어준 뒤 서정원은 출근했다.

"……."

도진은 돈을 받아든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몸 관리 해야 해서 기름진 거 먹으면 안 좋아요.'

그럴싸한 명분도 떠올렸다.

하지만 겨우 짜낼 수 있는 건 한 단어뿐이었기에 네라고 답하며 돈을 받아들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못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서.

도진은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안다.

어릴 땐 몰랐지만 커서 알게 되었다.

동생들이 용돈 투정을 하면 며칠 뒤 어머니는 만 원, 이만 원이나마 동생들에게 쥐어 주셨다.

그것은 본래 11시에 퇴근하는 어머니의 택시비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아껴 모아 동생들 용돈으로 준 것이었다.

그 늦은 시간. 그것도 불량배들이 돌아다니는 달동네를 혼자서, 고된 노동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르며 아낀 돈.

지금 도진이 손에 쥔 것은 바로 그런 돈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소중히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뒤 머릿속으로 말했다.

-스승님.

-오냐.

-무엇부터 하면 될까요?

피곤했다.

그러나 미칠듯이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 * * *

도진이 스쿼트 자세를 취했다.

이어 푸시업 자세를 취한 뒤 팔굽혀펴기를 하고 다시 일어나선 점프 후 처음의 스쿼트 자세로 돌아왔다.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현실에서의 육체단련이었다.

-예전 무림에선 마보(馬步)가 유행했지.

마보. 말타기 자세, 혹은 오토바이 자세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자세다.

육체 단련을 위해 취하던 자세.

그러나 위지혁은 마보를 시키지 않았다.

더 좋은 게 있었으니까.

-8버피라니. 이 얼마나 좋은 운동이냐. 유산소와 무산소를 겸하며 단시간에 압도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전 압축 단련법. 가장 완벽한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구나.

위지혁은 도진이 심상세계에서 배운 무공을 적용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질 수 있도록 '기초 공사'에 들어갔다.

-심상세계와 다르게 이곳에서의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그러니까 넌 극한까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만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8버피였다.

단시간내에 폭발적인 운동량을 보장하며 또 한계에 다다르는 게 가능하다.

"허억, 허억."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60개를 넘어서는 순간 이미 자세는 무너졌다.

그나마도 도진이 무림학교에 다니기에 이 정도인 것이지 체력 없는 일반인은 10개도 하기 힘들 정도로 고강도 운동이다.

-계속해라.

도진은 위지혁의 말에 이를 악물고 계속 움직였다.

한계인 것 같지만 한계가 아니다. 이것은 '힘들다'는 생각이 보내는 거짓 신호다.

애초에, 겨우 이딴 걸로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순간이 이 이상으로 힘드실 텐데.

다만 부족한 육체는 아직 마음을 따라주지 못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었다면 분명히 토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어거지로 멈추려는 육체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이내 육체가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몸의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부서져 내리는 듯하다.

정말로 한계가 온 것이었다.

명백한 오버 트레이닝. 오히려 몸을 망가뜨리는 영역임에도 위지혁은 멈추라 하지 않았다.

털퍽!

이윽고 도진의 몸이 의지를 벗어나 무너졌다.

한계를 넘어 버린 것이었다.

육체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젊음으로 보완한 것이다.

아직 왕성한 생명력, 선천진기(先天眞氣)가 손상된 부위를 지탱하여 괜찮아 보이지만 나이와 함께 선천진기가 약해지면 이내 그 파탄이 드러난다.

이런 위험 때문에 오버 트레이닝을 경계하는 것이지만 '무림인'은 예외였다.

바로 내공(內功)의 존재 덕분이다.

인간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내공은 초월적인 회복력 또한 부여했다.

이를 통하여 무림인은 한계를 넘기 위해 육체를 혹사하고 또 치유하는 것으로 초월적인 육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천마심공(天魔心功)의 구결에 따라 운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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