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도진은 천마가 되기로 했다.
천마가 되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 첫걸음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천마 위지혁의 무공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에게 배우는 건 조금 뒤가 될 게다.'
사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도진은 위지혁과 동산에 마주앉았다.
"지금부터 너는 천마신공을 배우게 될 것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현대 무림엔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무공.
아니, 애초에 실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환상 속의 무공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하다.
다만 무협지에서도 천하제일을 다투는 절대무공인 만큼 그 위상은 말하는 게 입이 아픈 일이다.
도진은 이제 스승이 된 위지혁의 말에 예, 하고 대답하면서 옅은 의문을 흘렸다.
"왜. 기초 무공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의아하냐?"
위지혁은 도진이 흘린 의문을 바로 알아채고선 물었다.
살짝 당황한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초가 없는 무공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격언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의 제가 천마신공 같은 신공을 익힐 수준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무공 또한 단단한 토대 위에 쌓아 나가는 것이다.
그 토대가 넓고 단단할수록 더 크고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토대를 제대로 다지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좋은 자재와 인부가 동원되어도 말 그대로 모래 위에 지은 빌딩에 불과하다.
천마신공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신공일 터였다.
한데 도진은 무협지로 비유하자면 삼류는커녕 동네 도장에 갓 입문한 제자나 될까 싶은 수준에 불과했다.
자질이 부족해 중학교 수준의 무공조차 제대로 된 성취를 보지 못했으니까.
이런 수준으로 천마신공을 익히는 건 도저히 무리라 생각했다.
위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천마신공은 신공이란 이름이 전혀 과하지 않은 절대무학이다. 하물며 지금 내가 전수하려는 건 그 천마신공을 백 년 이상 참오하여 새로이 정립한 천마신공. 사실 이걸 다른 놈이 익히는 게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지."
본래부터 압도적이었을 천마신공. 한데 위지혁은 그걸 백 년 이상 또 참오하여 새로이 정립했다고 한다.
상상도 못할 절대고수, 천마 위지혁이 그 경지에서 백 년 이상 참오하였다면 과연 새로이 탄생한 천마신공은 어떤 무공일까.
도진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너의 눈을 통해 엿본 이 시대의 무공은…… 무공이라 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사회를 격변시킨 무공.
그러나 천마와 사신이 도진의 눈을 통해 본 그것은 무공이라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술(武術)'이 발전을 거듭하고 과학적인 연구까지 거쳐 도달한 아득한 영역의 기술들.
그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기술. 진실로 '무도(武道)'라 할 만한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저 내공이 더해져 한계를 넘어선 힘을 발휘할 뿐이다.
"그나마 그 내공이란 것도 자연지기(自然之氣)의 밀도가 너무 낮은 탓에 제대로 된 성취를 얻을 수 없는 환경이지. 심법의 수준까지 얕아 한 갑자를 꾸준히 운공해도 과거 일갑자의 절반도 채 쌓지 못한다."
고대 무림의 '일갑자'란 60년을 꾸준히 운공하여 쌓을 수 있는 평균적인 내공의 양을 뜻하는 단어다.
한데 현대에선 똑같이 60년을 운공해도 그 평균의 절반조차 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공의 기반이 되는 자연의 기운이 너무나 옅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공을 쌓을 수 있게 해주는 심법(心法)마저 변변찮다.
현대 무림의 수준이 천마와 사신의 눈에는 원시 시대와 다를 바 없게 보이는 이유였으며 '선'을 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면……."
도진은 위지혁의 설명에 자신 또한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재능도 없는데 환경마저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죽을 때까지 수련해도 천마나 사신이 보여준 무위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위지혁은 그런 도진의 기색을 읽고서 씨익 웃었다.
"너는 이 세상의 무림에서 예외가 될 것이다."
"예외…… 라고 하시면?"
"나는 너에게 천마가 돼라고 했지. 그리고 천마란 패도(覇道)로써 군림하여야 한다. 그를 위한 힘을 줄 것이다."
위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일어난 도진을 보며 말했다.
"잘 보아라. 이것이 네가 배울 천마신공의 기본이자 요결(要訣)이니."
위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특별한 자세를 잡지 않았다.
그저 뒷짐을 지고 당당하게 서 있을 뿐.
도진은 자신이 놓친 게 없을까, 재능이 없어 보지 못한 게 있는가 싶어 집중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두웅-!
"허, 억."
재능이 없어도, 설령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라 해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변화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공간 전체가 '천마의 것'으로 바뀌었다.
비유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 공간의 모든 것이 천마의 것이 되었다.
"이것, 은……."
"천마군림(天魔君臨)이라 이름 붙였다. 천마로서 주변을 온전히 지배하는 것이지."
그 지배에는 주변을 가득 채운 자연지기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지기의 밀도가 낮으면 어떠냐. 그렇다 해도 하나의 인간이 행사하기엔 부족함 없이 거대한 기운이 아니더냐. 물아일체(物我一體)하여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면 단전과 내공에 구애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위지혁이 새로이 정립한 천마신공의 시작이며 기본이고 또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요결이었다.
사실 무공에 입문했다 할 수도 없는 도진으로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그러나 그렇기에 아득함만큼은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는 경지였다.
단순히 자연지기만을 행사하는 게 아니다.
이 공간 안에서 위지혁은 신(神)에 다름 아니었다.
딛고 있는 대지, 살랑이는 풀, 심지어 바람까지도 모든 것이 위지혁의 '무(武)'가 되어 대적하는 자를 섬멸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일반 무림인들이 바닷물을 바가지로 퍼 그것을 뿌리는 것으로 싸운다면 위지혁은 아예 바다 그 자체가 되어 덮치는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였다.
'내가 이것을 익힐 수 있을까.'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가능하기 때문에 위지혁이 전수하겠다 선언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럼 부탁하지, 장 제."
위지혁이 도진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불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신, 장호였다.
아무런 기척도 전조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장호는 위지혁의 옆에 서 있었다.
심지어 위지혁은 천마군림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롯이 위지혁의 지배 하에 있는 공간 안에서도 장호는 무색투명한 존재로서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고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두 눈으로 분명하게 보고 있음에도 비치지 않는 것 같다.
눈앞에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 장호가 어느새 도진의 앞에 섰다.
쿡.
그리고 뻗은 검지손가락을 도진의 이마에 찔렀다.
"……!!"
손가락은 이마를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정보의 바다'가 파고들었다.
압도적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양의 정보가 영혼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야말로 바다라고밖에는 형언할 도리가 없는 그 정보는 다름 아닌 천마신공의 천마군림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단시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양도 아니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사신은 손가락을 도진의 이마에 대는 것으로 그 정보를 단번에 때려박아 버린 것이었다.
이대로 영혼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바다를 인간의 안에 담는다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다.
'아아아아아……!!'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아득한 고통이 이어진다.
하지만 도진의 영혼이 터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뻥 터질 것 같던 도진의 영혼이 한계에 이르자 확장한 것이다.
그것은 본래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의 개화였다.
인간이란 하나의 우주다.
가능성을 개화하는 것으로 끝없이 팽창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도진은 말로는 표현할 도리가 없는 고통의 연속에서도 해방감을 느꼈다.
바다는 확장한 영혼에 오롯이 안착했고 도진은 천마신공의 천마군림을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 너는 천마군림을 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위지혁의 말대로였다.
장호는 암살자로서의 경지만큼이나 대단한 재주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술법(術法)이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위한 진법인 '타임머신'의 이론과 술식을 구축한 게 다름 아닌 장호라는 부분에서 그 경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장호의 술법 덕분에 도진은 천마군림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고 있으니 사용할 수도 있다.
"지금부터 천마군림의 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오직 천마군림만을 사용하여 너를 공격할 테니 너 또한 천마군림으로 대응하면 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대련이었다.
위지혁은 실전 같은 대련을 통하여 단순히 알고만 있는 지식을 체화하고 또 깨닫게 만들 계획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도진은 그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두근거렸다.
자연지기가 검기의 폭풍이 되어 몰아칠 것이고 또 비가 되어 쏟아질 것이다.
호풍환우(呼風喚雨).
바람과 비를, 그것도 검기로 불러 일으키는 경이적인 힘을 행사하는 자신을 도진은 상상했다.
그렇기에 힘있게 대답하며 천마군림을 사용했고.
푸학!
"커, 억."
온몸의 혈맥이 터져 버렸다.
그러니까 내부가 곤죽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눈, 코, 입, 귀.
성대하게 피를 뿜으며 도진은 무너졌다.
회생불가의 치명상. 그러나 위지혁도 장호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장호는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모습을 감춰 버렸고 혼자 남은 위지혁이 말했다.
"쯧쯧. 이놈아. 그게 안다고 해서 거저 쓸 수 있는 무학이더냐. 참오하고 또 참오하여 온전히 그 뜻을 이해하여야만 비로소 물아일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부를 면도칼로 모조리 난도질하면 이럴까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런 고통에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중에도 위지혁의 목소리는 또렷이 귀에 박혔다.
방금의 상황은 다른 게 아니었다.
분에 넘치는 무공을 여상스럽게 사용하려다 온몸의 혈맥이 터져 버린 것이다.
쥐꼬리만 한 내공조차 만족스럽게 돌리지 못하는 몸으로 자연지기를 받아들이려 했으니 터질 수밖에.
아는 것과 실행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다만 워낙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천마군림을 온전히 알게 되었던 탓에 도진은 혼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죽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연을 얻어 과거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무공 한 번 시전하려다 혈맥이 터져 죽는다고?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럴 리가 없다.
그렇게 절망하는 도진에게 위지혁이 툭, 말했다.
"뭐하냐. 안 일어나고."
"……예?"
"일어나라고."
안 그래도 없던 어처구니가 대출이라도 받은 것마냥 증폭되었다.
그러나 곧 도진은 위지혁의 허공섭물로 인해 몸이 일으켜지자 입을 떠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안 죽었어?'
곤죽이 된 몸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