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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2화 (2/741)
  • 2화

    하늘이 보였다.

    "……."

    아직 멍했던 도진은 그 하늘을 늘어져 바라보다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런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공장 안에서 술을 마시다 뻗었다. 하늘이 보여서는 안 된단 말이다.

    심지어 깔고 앉은 바닥은 흙과 풀이 느껴지는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왜?'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장에서 저도 모르게 이동했다면 사장이 잠든 그를 옮겨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경우 말고는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영문을 모를 곳에 널부러져 있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던 도진은, 이윽고 가장 경악할 만한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서…… 있어?"

    도진은 동산 위에 서 있었다.

    그래, '두 발로' 서 있었다.

    뺑소니 사고로 인해 도진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치료받을 시기마저 놓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절름발이가.

    한데 지금 도진은 두 발로 오롯이 서 있었다.

    심지어 왼손도 생소하다.

    주먹을 꾸욱 쥐니 부르르 떨릴 만큼 힘이 들어간다.

    '아, 아니 잠깐만.'

    그 시점에서 손을 응시하다 도진은 깨달았다.

    손이 젊다.

    자신의 손인데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데 익숙하다.

    그 모순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이 '어려졌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와서야 도진은 깨달았다.

    "어려…… 졌어?"

    어색한 자신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다.

    '도대체 무슨?'

    하나둘,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 가는데 머리속은 오히려 제곱으로 의문이 쌓인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꿈인가?'

    그런 도진의 뒤에서.

    "쌩쇼는 그만하고 이쪽으로 와라."

    "헉?!"

    너무 놀라 펄쩍 뛰었다.

    그 펄쩍 뛴다는 행위에 일순 기뻐졌다가 상황이 상황이라 뒤죽박죽이 된 머리로 몸을 돌리니 두 사람이 보였다.

    '?'

    무복(武服)을 입은 두 노인이 있었다.

    무공(武功)이란 게 현대 사회의 구성 요소가 되면서 무복을 입은 건 그리 대단한 특징이 되지 못했다.

    특별한 건 오히려 사람 그 자체였다.

    평범한,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그러나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존재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밟고 있는 수많은 풀들 중 하나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상황임에도 경계심을 가지기 힘들 만큼 허허로웠고 존재감도 옅었다.

    반대로, 그 옆의 노인은 세상 그 자체 같았다.

    선풍도골, 신선 같은 풍모임에도 그 기세와 존재감이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졌다.

    "누구…… 세요?"

    도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런 말부터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두 노인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천마(天魔)."

    "사신(死神)."

    "……."

    '…이게 무슨 소리지?'

    *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도 안 되는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이 '사신'과 '천마'라는 두 노인을 통해 들었다.

    "그놈이 네가 잠든 사이 창고를 밀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유독 가스에 소리없이 죽게 만든 거다."

    연탄 난로를 사용함에 있어 환기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도진의 머릿속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자재 창고의 구멍을 꼼꼼히 메우고, 찾아와 술을 주고, 그날 따라 유독 강하게 연탄 난로를 때던 사장의 모습이 차례로 떠올랐다.

    '개…… 새끼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며 선명한 그림이 되었다.

    분노에 몸이 사정없이 덜덜 떨렸으나 도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

    "이곳은 그러니까 심상세계다. 나와 장 제(弟)의 심상이 너의 영혼 안에 구현된 곳이지."

    천마와 사신은 놀랍게도 실존했던 것으로 밝혀진 '고대 무림' 시대의 인물들이었다.

    세계의 역사엔 밝혀지지 않은 '공백'이 있는데 그 공백 중에 무림이 있었다는 이론이 있다.

    갑작스레 무림인이란 게 등장하고 무공이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그렇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시간대 중에 무림이 있었을 것이란 이론이다.

    아직 확정적인 증거가 없어 이론에 머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무림인의 등장과 함께 과거의 무림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서적들 또한 상당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천마와 사신의 무공 수위에 대한 부분이다.

    현대 무림인의 수준은 무협지를 떠올리고 있다면 아주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검강을 뽑아내고 물 위를 달리며 이윽고 하늘마저 날아다니는 그런 무림인은 이 세상에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 '허구'였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것이 허구는 아니었다.

    실제 무림인은 '검기(劍氣)'를 뽑아내 쇠를 자를 수 있었으며 100미터를 5초만에 주파할 수도 있다.

    손꼽히는 고수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이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꽤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러면서 무림인들이 말하길, '무협지는 환상이지만 언젠가 그 환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연마하겠다'고 했는데…….

    "뭔 소리야. 이게 왜 허구야."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허공을 날았다.

    마치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공을 밟아 올라가더니 거기서 발도 박차지 않고 위로 치솟는 등 웬만한 무협지의 고수라도 엄두도 못낼 재주를 보여주었다.

    콰과과과광!!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검강(劍罡)'에 언덕이 초토화되며 뿌옇게 일어난 먼지가 쩌억 벌린 도진의 입 안으로 침투했다.

    무협지는 허구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들은 그런 무협지의 파워 인플레가 일어난 곳에서도 절대 강자로 꼽힐 만한 절대고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절대고수인 천마가 도진에게 말했다.

    "너. 천마가 될 생각 없냐?"

    "네?"

    * * * *

    갑작스런 제안이었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과연 현실은 상상 이상이어서 또 한 번 도진은 놀라고 말았다.

    천마가 될 생각이 없냐니?

    "제가…… 천마가요?"

    "어. 너는 자질이 있거든."

    "자질……."

    한때는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너는 자질이 있다고.

    그래서 무림인이 되기 위해 무림학교에 들어갔다.

    현실은 처참했다.

    자질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자질이 있었기에 더욱 처참했다.

    그는 나름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엔 그런 '나름의 자질'을 보름달 옆 반딧불로 만들 만큼 더 대단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 넘쳐났던 것이다.

    절망했지만 등떠밀리듯 계속 달렸다. 한데 오래 가지 않아 불행한 사고로 그 달리는 것마저 불가능해져 버렸다.

    노인, 천마는 도진의 눈에서 그런 감정들을 읽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네가 생각하는 소위 말하는 '천재'들은 내 입장에서 보면 달팽이 속도 경쟁이다."

    "달팽이…… 요?"

    "그래. 어디까지나 네가 봤던 놈들에 한해서지만 말이지. 그런 것들은 소랑대만 가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아, 참고로 소랑대는 우리 마교의 신병훈련소 같은 느낌이다."

    천마와 사신은 본래 저승으로 가 재판을 받아야 할 영혼들이었다.

    한데 두 사람은 '너희들이 뭔데 나를 재판한단 말이냐!'하고 깽판을 친 뒤 이승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에 도착하며 힘이 다해 소멸할 상황이 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인간들 중 파장이 잘 맞는 인간에게 스며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진이었다.

    그것이 대략 20년 전으로, 둘은 워낙 약해져 있어 그저 도진의 눈으로 세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나이와 시대, 그리고 별호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던 건 그 20년 동안 보아온 것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듯했다.

    "중요한 건 심성(心性)이다."

    "심성."

    천마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천마에 어울리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너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운이 좋게도 너는 더없이 천마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단 소리다."

    "뭐, 나 같은 경우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닌데 너 정도면 불만 없고."

    "……."

    여러가지 생각들이 좁은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천마. 사신.

    그런 별호가 어색하지 않았던 '진짜 무림'을 살았던 절대 강자 두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이으라고,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로또에 당첨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다. 기쁘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저는…… 죽었잖아요?"

    그렇다. 이미 앞서 이야기에서 들었던 대로 그는 죽었다.

    그러니까 장애도 가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일 터.

    이제와서 제자가 되어봐야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도진의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 아버지.

    아버지를 대신하여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삼남매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포기했던 어머니.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스스로의 모든 가능성을 닫고 사회에 뛰어들었던 동생들.

    장남으로서 그 모든 것을 어찌하지 못했고 오히려 짐만 되었다.

    죽어 버린 이제와서는 무림인이 되어 봐야 무엇 하나 해줄 수도 없는데.

    심지어 그 사장놈에게 복수조차 할 수 없는데.

    그런 도진의 모습에 천마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는 죽었지.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예?"

    영문을 모를 소리에 도진이 고개를 들었다. 천마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20년 동안 그저 네 시선만 쳐다보고 있었겠느냐. 당연히 참오하고 또 연구도 했다."

    천마와 사신은 같은 시대의 인물이 아니었다. 각자가 다른 시대에서 죽어 명계에서 깽판을 치고 이승으로 도주한 영혼이었다.

    한데 둘은 아주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이승으로 왔고 동일한 인물에게 깃들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하나의 술법을 만들어냈으니 이름하여.

    "타임머신이다."

    "……예?"

    "타임머신이라고."

    "아니 왜……."

    "왜 술법에 굳이 한자를 써야 되냐. 타임머신 같은 좋은 단어 놔두고."

    "……."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중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도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름 보면 알겠지만 과거로 갈 수 있는 술법이다. 우리가 힘을 회복하는 동안 너는 나이를 먹었고 결국 사고까지 당하고 말았지. 우리는 시간을 되돌려야 할 필요를 느꼈고 결국 술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너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또 육체는 함께 갈 수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를 네가 전혀 인식할 수 없었다는 거였지."

    도진은 환청처럼 들리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몇 년에 한 번씩, 혹은 제정신이 아닐 때에나 착각처럼 짧게 들렸기에 정말로 환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청이 아닌 천마와 사신의 영혼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도진과 천마의 시선이 마주했다.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너는 과거로 갈 수 있다. 과거로 가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다."

    후회와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삶이었다.

    그 삶을 다시 살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여기에.

    "하지만 그저 다시 사는 것만으로 만족할 테냐? 그걸로 정말 만족할 수 있느냐? 너는 더 많은 걸 바라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을 내가 주겠다."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주겠다는 존재가 있었다.

    "김도진. 천마가 되어라."

    천마와 마주한 도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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