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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1화 (1/741)
  • 1화

    쉬고 싶다.

    근래에 도진이 가장 많이 한 생각이었다.

    아침 8시 30분까지 공장에 와서 밤 11시가 되어서야 퇴근하는 생활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낡은 연탄 난로의 독한 냄새를 맡으면서, 그러고도 데워지지 않는 차가운 공기가 얇은 패딩을 뚫고 들어와 앙상한 몸을 떨게 만드는 환경까지 더해지니 도무지 버티기가 힘들다.

    필사적으로 쥐꼬리만 한 내공을 돌려 보지만 사실은 쥐꼬리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내공으로 추위를 몰아내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우리 퇴근할게, 김 과장."

    "예, 들어가세요."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사람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그 수만큼 불도 꺼진다.

    조금은 어두컴컴해진 공장 내엔 도진을 포함하여 몇 명만이 남는다.

    한푼이라도 아쉬운 사람들.

    '야근 수당은 못 줘. 근데 기본 수당은 쳐 줄 수 있거든. 그거라도 더 받을래?'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

    불합리하지만 그 불합리한 돈이 아쉬운 사람들이 이 우중충한 공장 내에서 야근을 한다.

    툭.

    안쪽 구석 재고 창고 겸 포장실에 강 실장이 완성된 도복 무더기를 던지고 간다.

    이곳은 무림인들의 싸구려 도복을 만드는 공장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도진이 하는 일은 완성된 도복을 포장지에 모양 좋게 넣어 포장하는 것이다.

    "……."

    문득 도진은 빤히 접힌 도복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이 도복을 입고, 아니 훨씬 좋은 명품 도복을 입고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지 말자.'

    급히 그런 생각을 털어내고 손을 움직였다.

    생각해봐야 비참해질 뿐이다.

    -쯧쯧.

    '…몸이 허하긴 한가 봐.'

    머릿속에 자신의 것이 아닌 혀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힘든 노동만으로도 잠으로 채 다 회복하기 힘든데 추위까지 체력을 깎으니 요즘은 스스로도 아슬아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우린 간다."

    "예, 들어가세요."

    10시가 되어 뒷정리를 마친 사람들이 퇴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도진이 느릿느릿 혼자 청소와 내부 확인까지 마치고, 연탄 난로의 불이 꺼지지 않게 새로 연탄을 갈고 다 탄 연탄까지 처리하고서야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후우우우웅!!

    부르르-

    겨울밤의 시린 바람이 할퀴고 지나가자 도진의 몸이 절로 떨렸다.

    구멍을 막긴 했으나 그러기 전에 빠져 나간 솜들을 보충하지 못한 패딩은 그의 몸처럼 앙상해 도저히 찬 기운을 막아주지 못한다.

    몸이라도 단련할 수 있었다면 쥐꼬리, 아니 좁쌀만 한 내공이라도 돌려 버텨볼 텐데 도진은 그럴 수가 없는 몸이었다.

    절뚝.

    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으니까.

    왼쪽 손 또한 겨우 움직일 수만 있을 뿐 일정 이상의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인(武人)의 꿈도 접어야 했다.

    꿈과 함께 모든 걸 접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를 지키다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하여 모진 고생을 하며 삼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으니까.

    학교를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았다.

    치명적인 장애를 가진 그를 고용해 줄 곳은 드물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국가 지원의 일자리는 오히려 훨씬 악질이었다.

    그나마 가장 나았던 곳이 지금의 공장이었다.

    공휴일은 당연히 없고 야근 수당도 안 주고 출근은 30분 빠르게, 퇴근은 30분 늦게였지만 최소한 야근에 대한 기본 수당만큼은 주었다.

    때문에 여기서 15년을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집안에 보탬이 되었지만…… 그 이상을 해낼 순 없었다.

    절뚝이며 걷던 도진의 눈에 이제 막 철수하려는 치킨 트럭이 보였다.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꼈던지 중년의 낡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사가실래? 네 마리 만이천 원에 드릴게."

    식어빠진 옛날통닭이다. 그러나 마리 당 삼천 원이면 메리트가 있다.

    요즘 맛있는 치킨은 한 마리에 이만 원 가까운 돈을 요구하니까.

    그래서 도진은 옛날통닭 네 마리를 샀다.

    그거라도 드니 묵직한 느낌에 추위가 조금 가신 것 같다.

    '어차피 집까지 가는 동안 다 식었을 테니까.'

    택시를 탈 수 없어 집까지 가는데 2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따듯하든 식었든 상관없었을 테니 오히려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쯧.

    절뚝이며 집에 도착했을 땐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가니 여동생, 유진이가 뻥튀기를 먹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으나 인사는 없다.

    과거, 오빠를 그토록 따랐던 귀여운 여동생은 세파에 찌들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망가져 버렸다.

    90kg이 넘는 몸무게를 이루는 살들은, 차라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갑옷 같은 것이었다.

    "…치킨이네?"

    "먹을래?"

    "어."

    네 마리 중 세 마리를 주었다. 12시가 되었음에도 동생은 망설임없이 그것을 오래된 전자레인지에 데워 소주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도진은 나머지 한 마리를 어영부영 남은 반찬들로 가득 찬 작은 냉장고에 억지로 공간을 만들어 넣어 두었다.

    그나마 하루 중 위안이 되는 따듯한 물로 몸을 씻고 방으로 들어가니 셋째, 막내가 죽은 듯 자고 있었다.

    집에서 알바를 하시는 아버지, 바깥에서 식당 일을 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고등학교마저 포기하고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 버린 셋째까지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걸 도진은 볼 수 없었다.

    여동생 역시 아침 일찍 나가야 하지만 불면증인 탓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폭식을 하고, 술 기운에 기대 늦게서야 잠이 든다.

    자리에 누운 도진은 머릿속을 채우려 드는 생각들을 억지로 흩으며 잠을 청했다.

    생각을 계속해 봐야 아프기만 할 뿐이다.

    몇 분이라도 더 자야 버티며 일할 수 있다.

    * * * *

    일요일 저녁.

    모처럼 쉬는 날이었으나 도진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집을 내놓게 됐어요. 두 달 내로 비워주세요.'

    '사모님!'

    도진이 살고 있는 곳의 재개발이 확정됐다.

    땅값이 치솟았고 집주인은 집을 내놓았다.

    세들어 살던 도진의 가족은 새 집을 찾아야 했다.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의 말미를 준 것이 그나마 집주인의 배려였다.

    그러나 큰 규모의 재개발로 인해 일대의 땅값이 치솟은 상황에서 그들을 위한 집은 없었다.

    집을 보러 다닐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다.

    가난은 이자가 붙는다.

    도진은 어디선가 보았던 그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돈만 이자가 붙는 게 아니다.

    가난 또한 이자가 붙는다.

    심지어 그들에겐 빚도 있었다.

    그들은 하루를 허덕이며 살기 바빴고, 그 사이 치솟은 물가를 메꾸지 못했다.

    몇 만원하는 이월 패딩조차 사지 않고.

    몇 만원하는 중고 휴대폰을 몇 년이나 쓰고.

    어머니의 임플란트조차 포기했음에도.

    그래서 집을 잃을 상황이 되었다.

    도진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 달 내로 이곳을 떠나야 하게 되었습니다."

    "끙."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어진 침묵. 어쩔 수 없이 도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사장님. 퇴직금은……."

    그 말을 사장이 중간에 끊었다.

    "그래. 절반은 월급날에 바로 입금해 줄 수 있는데 나머지는 1년 동안 나눠서 줘야 할 거 같은데 괜찮겠나? 김 과장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 사정이 좋지 않잖아."

    사정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사장은 볼 때마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러나 도진은 오히려 얼굴이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5년을 일한 만큼 도진의 퇴직금은 생각보다 많다.

    사장이 어떻게 나올지 전전긍긍했는데 그 절반이라도 바로 주겠다고 하니 이걸로 어떻게든 전세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월급날은 바로 일주일 뒤야. 어머니께 집을 알아보시라고 말씀드려야겠어.'

    안정적인 직장을 잃는 건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지금 목돈을 마련할 구멍이라곤 도진의 퇴직금뿐이었다.

    지금 죽을 상황이기에 나중에 죽을 걱정조차 사치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능하다면 다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집을 구하고 다시 찾아와 나머지 퇴직금 절반은 나중에 퇴사할 때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도진은 그런 생각을 했다.

    * * * *

    "김 과장 떠난다니까 이제서야 보수를 하네. 어휴. 사장도 진짜 독하다, 독해."

    소문은 금방 퍼졌다. 데면데면했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사장 욕을 하고 갔다.

    도진이 일하던 재고 창고. 찬 바람이 여기저기서 파고들던 벽면을 뜬금없이 보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심스레 말을 꺼낼 때마다 알겠다고 말만 하고 실행은 않던 일을 몇 년이 지난 지금, 도진이 퇴사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보수를 한다.

    심지어 아주 꼼꼼하게, 물 샐 틈 없이.

    소위 말하는 엿먹이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공사 때문에 이틀 동안 도진은 평소의 자리가 아니라 미싱이 돌아가는 공장 내부 구석에서 일을 했다.

    '그래도 마지막 며칠이나마 따듯하게 일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도진에게 사장이 찾아왔다.

    오늘따라 모두 다 퇴근하고 도진만이 남아 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도진아. 같이 한 잔 하자."

    "네?"

    "갈 날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 잔 같이 하자고. 오늘은 이걸로 근무 대신 하고 집에도 내가 태워 줄 테니까."

    "……예."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 그러니까 얼떨떨 했지만, 그래도 15년간 봐 왔는데 이 정도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마른 안주와 소주를 털어 넣었다.

    바람 새는 구멍을 막고 연탄 난로도 사장이 세게 피워서 훈훈했다.

    "……."

    여기에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셔서인지 어질어질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녀석. 벌써 취했냐. 그럼 잠시 한잠 자라. 있다 갈 때 깨워줄게."

    -하여간 이런 놈들이 더 악질이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진은 엎어졌다.

    머릿속에 모르는 목소리가 떠도는 게 제대로 취한 것 같았다.

    -안타까운 놈이로고…….

    몽롱한 가운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꿈인 것 같았다.

    온몸에 감각이 없고 정신이 점점 멀어지는 게 이제 곧 잠에 들 것 같았다.

    '더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야.'

    퇴직금의 절반이면 그래도 번듯한 전셋집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막내도 태어나 처음 자기 방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이곳에 취직하지 못하더라도 설마 일할 곳이야 없을까.

    그리되면 오히려 다달이 들어오는 퇴직금과 월급까지 더해서 빚도 더 많이 갚고 생활이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였다.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냅둬. 좋은 꿈이라도 꾸는갑지."

    '……?'

    도저히 꿈 같지 않은 목소리에 도진의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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