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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65화 (1,566/1,567)

1565화. 그때와는 달라. (5)

“큭!”

무게만 백 근에 이르는 언월도가 바람을 찢으며 휘둘러졌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다.

하지만 아무리 상식 이상의 속도를 낸다 해도 언월도는 언월도일 뿐.

파아아앗!

독기 오른 독사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남궁도위의 검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콰득!

남궁세가 가주를 상징하는 창천신검(蒼天神劍)이 단숨에 흑룡왕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우드득!

몸에 박히자마자 콱 비틀어 돌려진 검은 흑룡왕의 단단한 몸뚱이를 한 움큼 뜯어내어 버렸다.

“으하앗!”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지른 흑룡왕이 이를 악물며 언월도를 재차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남궁도위는 거리를 주지 않고 흑룡왕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휘이이이이잉!

막대한 경기를 실은 도가 허공을 갈랐다.

언월도는 날이 봉의 끝에 붙어 있는 무기다. 아무리 강한 힘을 싣는다고 해도 날이 닿지 않는 안쪽에는 그 힘이 전해질 수 없다.

우드드득!

그럼에도 전해진다.

등 뒤를 스쳐 지나간 기운의 여파에 등판의 피부가 터졌다.

남궁도위의 등의 살이 검게 죽으며 새하얀 무복이 검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

서걱!

남궁도위의 검이 다시 한번 흑룡왕의 텅 비어 버린 어깨를 베어 낸다. 서로 간의 거리가 좁은 탓에 검을 크게 휘두를 수 없으니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다. 일격에 저 몸을 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곳이라면 그의 검은 흑룡왕에게 닿고, 흑룡왕의 언월도는 그에게 닿지 않는다.

어느샌가 잊고 있었다.

검 끝에 강렬한 내력을 실을 수 있게 되면서, 그의 힘으로 모두를 짓누를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

그리고 지금에야 다시 떠올렸다.

애초에 무(武)란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울 방법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

“이놈이!”

쿠웅!

순간 흑룡왕이 바짝 달라붙은 남궁도위의 가슴을 어깨로 콱 들이받았다.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어설픈 공격이었지만, 강대한 몸뚱이는 얼핏 실린 내력의 여파만으로도 남궁도위의 내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남궁도위의 입에서 검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의 몸이 걷어차인 돌멩이처럼 날아가려던 그 순간, 기이하게 구부러진 남궁도위의 손가락이 흑룡왕의 어깨를 꿰뚫으며 움켜잡았다.

콰드득!

마치 암벽에 들러붙은 것처럼 흑룡왕의 어깨를 움켜쥔 남궁도위는 곧장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흑룡왕이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피했지만, 제 몸에 아예 달라붙은 이가 내지르는 검격을 완전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서걱!

결국 남궁도위의 검이 그의 가슴을 길게 갈라 냈다.

과거 매화도에서 청명이 종으로 새겨 넣었던 깊은 상흔 위로, 남궁도위가 횡으로 그어 낸 상흔이 덮였다.

“으!”

흑룡왕의 두 눈에서 진노가 솟구쳤다. 살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

흑룡왕이 경기를 뿜으며 어깨를 강하게 뒤틀었다.

전력을 다해 들러붙어 있던 남궁도위의 몸이 깃대 끝에서 펄럭이는 깃발처럼 휘둘러졌다.

“죽어라!”

그새 언월도를 짧게 고쳐 잡은 흑룡왕이 맹렬하게 도를 횡으로 그었다. 허리를 끊어 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은 몸뚱이마저 부숴 버리겠다는 기세로!

하지만 그 순간 남궁도위의 입가가 비틀렸다.

우우우웅!

남궁도위의 창천신검이 거친 검명을 터뜨렸다. 동시에 새하얀 검기……. 아니, 검강이 남궁도위의 검을 순식간에 휘감고 돈다.

콰아아아앙!

또다시 검과 도가 충돌한다.

사파를 대표하는 패도(覇道)의 화신(化身)과 정파를 대표하는 정도(正道)의 검가(劍家).

그들이 쌓아 올린 무의 정화가 단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남궁도위의 상완 근육이 단번에 투두둑 터져 나간다. 내장이 진탕되고, 팔이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입으로 새어 나오던 피가 이제는 폭포처럼 주르륵 쏟아졌다.

아무리 남궁도위라 해도, 흑룡왕과 정면으로 힘을 겨루었으니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였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른 덕에…… 남궁도위는 포탄처럼 튕겨 나가려던 제 몸의 방향을 흑룡왕 쪽으로 다시 뒤틀 수 있었다.

쿠웅!

남궁도위가 어깨로 흑룡왕의 텅 빈 쪽 어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렇게 생긴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그는 좌수로 다시 흑룡왕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과 새파란 원독이 철철 흘러넘치는 그의 눈빛에서는 도무지 세상 사람들이 아는 남궁도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얼굴을 강제로 얼핏 보게 된 흑룡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으아아아아아!”

이런 놈쯤……!

팔만 멀쩡했어도 이미 이놈의 복부에 장력을 수십 번은 박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쪽 팔밖에 남지 않은 그로서는 들러붙은 놈을 언월도를 쥔 채로 상대할 방법이 요원했다.

잃은 것은 잃은 것. 아무리 절규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서 오는 조바심과 분노는 어쩔 도리가 없다.

“노오오오오옴!”

증오 서린 고함을 내지른 흑룡왕이 손으로 남궁도위의 옆구리를 힘껏 갈겼다. 다급한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언월도를 놓아 버린 것이다.

콰드드득!

남궁도위의 갈비뼈가 부러져 나갔다.

흑룡왕의 어깨에 파고들었던 남궁도위의 손은,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놔라! 이……!”

콰아아앙!

흑룡왕의 장력이 다시 한번 남궁도위에게 틀어박혔다.

언월도를 놓아 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그는 권사. 이만한 거리라면 검을 든 이보다 오히려 이점이 있다.

남궁도위가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만큼 바짝 들러붙은 이가 검을 내리치기란 쉽지 않은 일.

하나 그 순간.

빙글!

남궁도위의 검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마치 활대 밖으로 삐져나온 화살촉처럼 흑룡왕의 목을 겨누었다.

덥석!

그리고 동시에 남궁도위는 검의 손잡이가 아닌, 검날 중간 부분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적세광.”

그 순간 흑룡왕은 보았다.

거의 핏덩어리 같은 남궁도위의 얼굴이 갈라지는 듯 입이 벌어지고, 그의 흰 치아가 드러나는 광경을.

파아아아아아앗!

뇌리에 불길한 경보가 채 울리기도 전에 남궁도위의 검이 쏘아진 강전(强箭)처럼 흑룡왕의 목으로 내리꽂혔다.

콰드득!

검이 흑룡왕의 피부를 뚫는다. 살을 찢어 낸다. 아무리 내력을 집중하며 저항해도, 남궁도위의 모든 내력을 실은 검은 그 모든 반탄강기를 종잇장처럼 찢고 연약한 살을 물어뜯었다.

콰드득!

흑룡왕이 제 목에 파고든 검을 콱 움켜잡았다.

“으으!”

살짝 질린 듯한 흑룡왕의 눈빛과 광기 어린 남궁도위의 눈빛이 하나의 검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맞닥뜨렸다.

얼핏 정과 사가 뒤바뀐 것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이라면 누구든 인정할 것이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사냥을 당하고 있는 쪽은 명백히 흑룡왕 적세광이라고.

우둑! 우두두둑!

검이 살을 파고드는 소음이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 이상으로 흑룡왕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섬뜩한 것은 바로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 사이로 선득하게 빛나는 남궁도위의 눈이었다.

“으으……. 으아아아아아아!”

흑룡왕이 파고들어 오던 검을 콱 뽑으며 단번에 휘둘러 던졌다.

그러자 남궁도위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텅 소리와 함께 튕겨 올랐던 몸은 다시 바닥에 형편없이 처박혔다.

“후욱……. 후욱! 후욱…….”

흑룡왕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으로 제 목을 움켜잡았다. 손끝의 감각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 검이 목을 적어도 한 치 이상 파고들었었다는 것을.

불과 반 치만 더 꿰뚫렸더라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을 터였다. 고작 남궁세가의 소가주 따위에게 그가 유명을 달리할 뻔한 것이다.

‘대체…….’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상체를 적시며 흘러내린다.

흑룡왕은 그 목을 눌러 지혈하는 대신, 손을 내려 가만히 응시했다.

선명하게 붉은 선이 가 있다. 맨손으로 검을 움켜잡은 덕분에 하나 남은 그의 손에 긴 상흔이 남겨진 것이다. 이 검이 목이 아닌 손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면?

흑룡왕의 턱 끝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질린 눈이 나가떨어진 남궁도위에게로 향했다. 죽은 듯이 나동그라져 있는 그에게로.

수많은 싸움을 겪었다.

그중 태반은 흑룡왕에게 원한을 가진 이였고, 또 다른 태반은 어떻게든 그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이를 드러내던 들개였다.

하지만 그 어떤 원수도, 그 어떤 짐승도 저놈처럼 악착같지는 않았다.

“네놈은…….”

그 순간, 남궁도위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힘겹게 몸뚱이를 밀어 올린다. 기어코 몸을 일으켰다 싶은 순간 균형을 잃고 다시 고꾸라지며 처박힌다.

흑룡왕은 기가 질린 채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못 느꼈던 한기가 등허리로 엄습한다.

“흐…….”

피에 젖은 얼굴은 이제 흙까지 엉기며 엉망진창이었다.

남궁도위는 그 상태로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검을 쥔 쪽 팔은 피가 쉴 새 없이 흐르고, 뜯겨 나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상체는 피부 곳곳이 검게 죽었다. 뼈가 숱하게 부러졌다는 증거다.

봉두난발 사이로 보이는 처참한 얼굴을 보고, 과연 누가 그 본래의 준수함을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달라지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흑룡왕을 주시하는 남궁도위의 눈빛.

“이…….”

그 눈빛에 일순 짓눌리고 만 흑룡왕이 발작적으로 이를 갈아붙였다.

“미치광이 같은 놈…….”

이 한 번의 교환으로 이득을 본 건 사실 누가 뭐래도 흑룡왕이다. 그의 몸에도 분명 남궁도위가 새긴 상흔이 남았지만, 그건 치명적일 수 있었던 상처이지,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니까.

반면 남궁도위는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큰 부상을 입었다.

본래 서로가 가진 전력을 고려하면 이미 승부가 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남궁도위는 물론 흑룡왕도 알고 있다. 이 싸움은 절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남궁도위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궁금했던 적이 있지.”

흑룡왕에게 건네는 말인지, 이미 정신을 반쯤 잃은 그가 뇌까리는 혼잣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싸워야 하냐고. 왜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싸워야 했냐고.”

알 수 없는 말에 흑룡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멍청했지. 그렇게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야. 그렇게밖에 싸울 수 없었던 거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약자라면, 져서는 안 되는 나약한 이라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던 거야.”

그그극.

바닥을 긁은 남궁도위의 검 끝이 느리게 들어 올려졌다.

늘 한 몸처럼 지고 다니던 검의 무게마저 힘겹다는 듯 겨우 바닥에서 세 치 정도 들어 올린 그 상태로, 남궁도위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흑룡왕을 노려보았다.

동경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타고나기를 다른 사람이라 여겼으니까. 그러니 아무리 그를 흉내 낸다 해도, 결국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는 타고난 강자고, 남궁도위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

남궁도위의 두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안다.

그자의 방식은 오히려 약자이기에 취할 수 있었던 방식이다. 절망적일 만큼 큰 적을 상대로 몸부림쳐야만 하는 약자의 검이다.

그러니 남궁도위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남궁도위는 명백한 약자이자, 저 강대한 적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어야 하는 나약한 짐승이니까.

“넌 개새끼에게 물려 죽는다, 장강의 흑룡.”

웃음을 흘린 남궁도위가 절뚝이며 흑룡왕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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