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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40화 (1,541/1,567)

1540화. 괜찮을 거야. (5)

순간적으로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묻고 싶은 거야 너무도 많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하지만 그 모든 의문을 제쳐 두고, 청명의 입에서 나온 건 단호한 한마디였다.

“가자.”

“예!”

뻔히 알고 있는 길임에도 남궁도위가 안내하겠다는 듯 앞장섰다. 유이설이 청명을 호위하듯 따라붙었다.

파앗.

세 사람이 동시에 땅을 박차며 화음으로 내달렸다. 솟아오른 땅과 울창한 숲을 지나자 넓게 개간된 땅이 펼쳐졌다.

타다닷!

동시에 그들의 뒤로 새하얀 섬전 하나가 따라붙었다. 청명은 그쪽을 흘끗 돌아보았다가 금세 다시 앞을 보았다.

새하얀 족제비가 짧은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백아 덕분에 남궁도위가 청명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급히 청명을 찾아다니던 남궁도위에게 ‘백아라면 청명의 위치를 알 것’이라고 말해 준 이는 아마도…….

“상황은?”

“아직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저 녹림왕이 총사를 모셔 오라 했습니다.”

“알았다.”

“그……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습니다.”

청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에도 그리 침착하다고 할 수 있는 놈은 아니지만, 남궁도위에게까지 다급한 모습을 보일 만큼 허술한 인간도 아니다. 그만큼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겠지.

“서둘러!”

파아앗!

세 사람과 한 영물이 더욱 속력을 올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화음에 도달했다.

“청명아!”

그들을 발견한 조걸이 바둑판처럼 늘어선 전각의 지붕을 훌쩍 뛰어넘어 가며 합류해 왔다.

“사고도 계셨군요.”

“너는?”

“안 그래도 대회의실로 오라는 말을 들어서 가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의 표정을 살핀 조걸이 낯빛을 굳혔다.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건 이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같이 가요!”

마침 저 멀리서 당소소가 빠르게 날 듯이 다가왔다.

탓!

그녀는 착지하자마자 유이설의 옆으로 바짝 달라붙으며 말했다.

“사고! 사패련이……!”

“들었어.”

유이설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당소소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패련이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진정하기 어렵고 마음이 불안한데, 유이설은 도무지 흔들림이라고는 없었다.

그때, 화음의 대로를 질주하는 그들의 시야에 앞서가고 있는 한 사람의 등이 들어왔다.

“사숙!”

당소소가 크게 부르자 달리던 백천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자연스레 보조를 맞춰 그들에게 합류했다.

“사숙도 지금 들으셨습니까?”

“그래.”

입술을 짓깨물던 조걸이 물었다.

“혹시 윤종 사형은……?”

그 대답은 남궁도위가 대신했다.

“윤종 도장은 이미 회의실에 가 있을 겁니다. 제가 먼저 전달했습니다.”

“아.”

조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눈앞에 총단의 회의실이 나타났다.

벌컥!

지체 없이 문을 연 청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아, 총사!”

청명이 들어서니 임소병의 얼굴에 일순 안도의 빛이 스쳤다. 혹시 너무 늦어지면 어쩌나 고민한 듯했다.

이미 천우맹의 중진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각 문의 장문인들과 윤종, 혜연의 모습도 보였다.

잠시 청명과 시선을 마주친 윤종이 담담한 얼굴로 임소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청명 역시 개의치 않으며 착석했다.

“상황은?”

임소병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 개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패련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청명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소한 움직임 정도로 이리 다급하게 굴 임소병이 아니다. 확연히 미심쩍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

“좀 더 정확하게.”

“장가계에서 내내 움직이지 않던 사패련이 드디어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디로?”

“아직 구체적인 목적지까진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동을 시작하자마자 즉시 날아온 정보라, 후속 정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모양입니다.”

당군악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다.

장일소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한번 움직이면 반드시 무언가 일을 저지른다. 평범한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짓을 말이다.

지금 천우맹이 화음에서 단단히 방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놓고 말하자면 결국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쟁이 벌어질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뻔하지 않소.”

그 순간 야수궁주 맹소가 당군악의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었다.

“그놈들이 움직이는 방향이 우리 쪽인지, 아니면 구파 쪽인지.”

대륙은 이미 동과 서로 나뉘었다. 물론 종남과 곤륜 두 문파는 여전히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곤륜은 이름만 구파일 뿐, 그 명맥을 잇는 것도 버거워하는 문파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장가계는 그 동과 서가 나뉘는 지점이다.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크게 바뀐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피해가 더 클 것인지.”

맹소의 뒷말이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을 정확하게 찔렀다.

구파든 천우맹이든 결국 사패련을 물리쳐야 한다는 사실은 같다. 중요한 건, 그 전쟁 안에서 어느 쪽이 힘을 얻고 어느 쪽이 몰락하느냐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가장 끔찍한 건, 그 칼자루가 다름 아닌 사패련……. 아니, 장일소의 손에 쥐여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방의 연락은 아직인가?”

“예. 아직은…….”

맹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해 줄 소식이 없는 거요? 아니면 소식을 전해 주지 않는 거요?”

현종이 화들짝 놀라 야수궁주를 돌아보았다.

“궁주님. 그게 무슨…….”

“개방이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뭔가를 보여 준 적은 없지 않습니까? 그새 구파와 뜻을 나누고 구파 쪽에만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텐데.”

맹소는 신분과 위치상, 중원 내의 권력 관계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관심도 없고. 그러니 중원의 실력자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말을 내뱉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임소병이 말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맹소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뿐, 꽉 닫힌 입술이 완강한 걸로 보아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게 분명했다.

임소병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쨌건 아직 개방의 후속 연락은 오지 않았고,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야수궁주님 말씀대로 개방이 우리를 배제했다. 혹은 그게 아니면 사패련의 움직임을 쉽사리 정의하고 예측할 수 없어 명확한 정보를 특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후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려는 순간, 청명이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개방의 배신은 없어.”

“그럼 하나뿐입니다. 사패련의 움직임이 개방 정보원들의 해석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경우겠지요.”

“그, 그럴 수가 있나요?”

굳은 얼굴로 내내 듣고만 있던 설소백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더듬더듬 물었다. 귀로 듣고는 있는데 상황이 영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그때 설소백을 돕기라도 하듯 당군악이 동의하고 나섰다.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군. 방향을 예측하고 확정하기 어렵다고 해도, 이동하는 이들의 수나 합류한 문파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 정보조차 보내지 않는다는 건…….”

당군악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긴급하던 회의장에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불안감이 모두의 가슴을 누르는 그때였다.

타악.

운암이 탁자를 가볍게 내리쳤다.

그 작은 소음에도 모두가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화산의 장문인이지만 천우맹이 회의를 할 때면 운암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청명도 있고, 맹주인 현종도 있으니까. 그저 자리만 지키리라 생각했는데.

운암은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하지만…… 제 생각에는 주객이 조금 전도된 것 같아서.”

“무슨 말이더냐?”

현종이 묻자 운암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저들에 대한 정보가 있건 없건, 이쪽에서 해야 할 일은 뻔하지 않습니까? 우선은 그것부터 하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현종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맞는 말이다.

사패련이 이곳으로 오든, 구파를 치든 결국에는 싸워야 한다. 사패련의 기동력과 호전성을 고려하면 한시라도 빨리 준비하는 게 옳다.

설사 허무하게 맥이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늦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보다야 헛고생이 낫지 않은가.

“총사.”

현종의 부름에 청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입을 열었다.

“각 문의 문주님들은 즉시 제자들을 소집해 주십시오. 놈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건 간에 바로 대응해야 합니다.”

“알겠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개방의 진정성이야 의심하지 않지만, 그들의 능력만으로 사패련을 파악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청명의 시선이 임소병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임소병이 제 발 저린 도둑이라도 되는 양 말을 늘어놓았다.

“끄응…….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압니다. 산맥마다 퍼져 있는 산적 놈들을 동원하면 의도는 몰라도 움직임은 확실히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임소병은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도장. 녹림 놈들은 한 문파의 이름하에 있지만, 개방같이 유기적이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한 사실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데에 적어도 사흘은 넘게 걸릴 겁니다. 빨라야 사흘이겠지요. 그럼 대처하기에는 너무 늦는단 말입니다.”

“알아.”

“그럼 어떻게…….”

“유령문.”

순간 임소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각 산채는 서로 소통이 잘되지 않고, 보고도 느리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각 산채와 두루 친하고 발도 빠른 이들이 있잖아.”

임소병은 저도 모르게 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확실히 유령문은 녹림의 산채를 숙소처럼 이용해 왔다. 당연히 친분이 쌓였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우맹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전서구를 일일이 날려 대야 할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천하에서 유령문만큼 신속하게 소식을 전해 줄 이들은 없을 것이다.

임소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문주의 허락만 떨어지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적어도 강북 안에서는 놈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허락은 이미 받아 뒀어. 네가 지시만 내려.”

임소병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터 생각했던 걸까? 사천의 사태 이후? 아니면 항주의 마화 이후? 아니면…….

“그리하겠습니다.”

시기야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다. 임소병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여요. 어떤 소식이 날아오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예!”

청명이 단호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그 순간이었다.

“개방에서 연통이 왔습니다!”

“뭐?”

임소병이 버럭 고함쳤다.

“들어와! 아니, 그냥 빨리 말해!”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말을 쏟아냈다.

“십언(十堰)! 십언에서 사파들이 양민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의실 안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십언은 장가계 위에 있는 작은 도시다. 그리고 그곳은 하남보다는 섬서에 조금 더 가깝다.

사패련의 칼날이 이곳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총사!”

청명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소식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맹주님!”

또 한 사람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개방에서 날아든 소식입니다. 현재 석가장(石家庄) 인근에 사파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인근 고을을 공격하고 있다고, 대응이 필요하다 전해 왔습니다.”

“……뭐라고?”

석가장?

“석가장은 하북 아닌가?”

“사파가 왜 거기에?”

“보고합니다!”

머리를 채 굴릴 틈도 없이, 사색이 된 이들이 연이어 박차고 들어온다.

“북경 인근에 사파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합비에 사파가 나타나 문답무용으로 사람을 죽여 대고 있습니다!”

“서안 인근에 만인방도들이 출몰! 지금 종남이 대응에 나섰다 합니다!”

“신양 인근 중소 문파들이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두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여전히 회의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이들이 있다. 모두 새파랗게 질린 것이, 아마 저들이 들고 오는 소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대체…….”

굳은 얼굴로 서 있던 청명의 입술 새로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마치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모두의 등에 한기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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