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9화. 괜찮을 거야. (4)
누구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따로 있다.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아주 드물게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에 두각을 드러내는 이가 있다. 세상은 그런 이를 두고 ‘천재’라고 칭하지만, 깊게 파고들다 보면 그 천재에게도 약점과 한계는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청명의 입에서 끝내 참지 못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으윽!”
“…….”
“어흑!”
청명은 땅에 자라난 풀을 으깨어지도록 콱 움켜잡았다. 핏발 선 두 눈이 그의 발목을 잡은 이에게로 향했다.
형형한 눈동자에 어린 것은 증오와 원한, 그리고 뿌리 깊은 의문이었다.
왜? 대체 왜?
“음…….”
푸욱!
“끄윽!”
짓이겨진 풀을 놓으며 쫙 펼쳐진 청명의 손이 덜덜 떨렸다.
고통으로 희미해진 시야에는 유이설이 있었다. 그녀는 살짝 갈라진 상처 부위에 긴 바늘을 사정없이 찔러 넣고 있었다.
완벽하다.
기운을 밀어 넣어 오염을 말끔하게 제거한 바늘, 그 바늘에 꿰어진 청명의 머리카락까지도.
당소소가 가르친 것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다만…….
푸욱!
“아아아악!”
청명이 악을 썼다.
“아니! 왜 뻔히 보면서 옆에다가 찌르는 건데! 왜!”
청명의 상처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삐뚤빼뚤 꿰매어 있다. 여섯 살 먹은 아이가 장난으로 직직 그었다기에도 민망할 만큼 엉망이다.
“차라리 내가 한다! 비켜!”
“……할 수 있어.”
“아니, 내가 한다고! 내가!”
“가능해.”
도대체 뭐가 가능한데! 바위 파편에 맞아 생긴 상처가 아니라 바늘로 찔려 입은 상처 때문에 뒈질 판인데, 가능은 무슨 놈의 가능!
‘환장하겠네.’
손에 검을 들면 바늘구멍도 대문처럼 꿰뚫는 사람이 대체 왜 바늘만 들면 저러는 걸까?
저, 저! 손 떠는 거 봐라. 저거, 저……!
푸욱!
“끄륵…….”
청명의 눈이 희게 뒤집혔다.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잔뜩 지친 청명이 말없이 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붕대까지 얼기설기 감긴 발목에선 붉은 핏줄기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저 피가 과연 파편에 입은 상처에서 나온 걸까?
청명의 원독 어린 시선이 유이설에게로 향했다.
이가 갈리고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무심한 얼굴에, 이제 사형제들은 그나마 조금 알아볼 수 있는 뿌듯함이 어려 있어서다.
결국 짜증 대신 체념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사실 바늘에 찔린 것으로 따지면 그의 발목보다 유이설의 손끝이 더 많이 찔렸을 것이다. 퉁퉁 부은 꼴 하며…….
그가 앓는 소리를 흘렸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바느질이 어려워?”
청명도 바느질을 못한다지만 솔직히 이 정도는 아니다.
바느질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도 있겠으나, 정교함이란 영역에 있어선 평범한 이와 비교조차 불허하는 유이설이 애를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것도 저렇게나.
그때, 의외로 유이설의 입에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생각이 나.”
“응?”
화끈거리는 발목을 끌어당겨 부여잡고 있던 청명이 고개를 들어 유이설을 보았다. 여전히 속내를 알기 어려운 얼굴로, 유이설이 담담히 부연했다.
“예전에.”
바로 알아듣지 못한 청명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뭔…….
하지만 이내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아…….”
검을 익히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정해진 검로를 정교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검술을 만들어 내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그냥 도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새로운 검을 시간 안에 만들어 내는 수준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검기란 반드시 자신이 예측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력의 흐름과 검로가 불협화음을 이루는 순간, 검은 삽시간에 제 주인을 해치는 무기가 된다. 새로운 무학을 창안하겠다며 폐관에 들었던 이들이 종종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리고 청명은 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시도했던 이를.
무학을 창안할 수준도 되지 못하면서, 감히 제 능력을 한참 뛰어넘는 검술을 새로이 만들어 내려 했던 이를 말이다.
퉁퉁 부은 유이설의 손끝이 눈에 걸렸다. 지금도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희미하게 움찔거리고 있다.
검술을 만들다 상처를 입은 아비를 치료해 줄 의원이 그 깊은 산중에 있었을 리 없다.
검으로 입은 상처니 대체로 자상이었을 테고, 유이설의 아버지는 어찌했을까?
게다가 스스로 꿰맬 수 없는 상처는 결국 누군가가 꿰매 줘야 한다. 아마도…….
‘……미친놈이.’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유이설의 아비 역시 다른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청명의 시선이 유이설에게로 향했다.
새삼 그는 떠올렸다. 이 모든 수련 중에도 유이설이 단 한 번의 우는소리나, 단 한 번의 거부조차 내보인 적 없었단 것을.
엄습하는 과거의 기억에 휩쓸릴 때마다 바늘 끝이 갈 길을 모르고 손을 찔러 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이설은 제게 주어진 몫을 묵묵히 했다. 그리고 엉망진창일지언정 누군가를 치료해 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안 해도 되지 않아?”
청명의 입에서 순수한 의문이 흘러나왔다.
다른 이들이라면 알아듣지 못할, 하지만 유이설이라면 이해할 물음이었다.
“굳이 이런 걸 하지 않아도 사고는 뛰어나. 이것까지 해내야 할 이유는 없잖아?”
“…….”
“아니면 그냥 하라니까 하는 거야?”
그의 시선을 가만히 마주하던 유이설이 입을 열었다.
“해야 하니까.”
많은 것이 담긴 말이다.
‘하라니까 한다’와는 다르다. 그녀가 한 말 그대로, 유이설이 해야 한다.
아무리 당소소가 필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해도, 평생을 검만 휘두르던 검수들이 바느질하는 법을 익히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는 익숙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것에 시간을 뺏길 바에 검이나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낫다고 대부분이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는 당군악조차 그리 생각했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렇기에 백천이 앞장서서 이끌었다. 하지만 사실 백천으로는 부족하다. 백천은 세상이 흔히들 말하는 ‘천재’다. 모든 걸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다른 이들이 겪는 곤란을 겪지 않는다.
그런데 유이설은 다르다.
누가 봐도 이 일에 재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녀가 손가락이 퉁퉁 부어 가며 바느질에 열중했으니, 그 모습만으로도 다른 이들의 불만을 확실하게 내리누를 수 있었다.
유이설이 가만히 청명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못 하게 되니까.”
“응? 뭔 소리…….”
“못한다고 안 하면.”
잠시 멍하니 있던 청명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어렵다고, 익숙하지 않다고, 쉬이 숙달되지 않는다고 안 해 버리면 영원히 할 수 없게 된다.
이건 아마도 그녀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하찮지만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오직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싸움.
청명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로 강하네.’
유이설은 강한 사람이다.
그건 화산에 있는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녀를 겪고, 함께 싸워 본 이라면 누구나.
기이한 건, 그 유이설이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 유이설이 뚱한 목소리로 청명을 힐난했다.
“멍청해.”
“……응?”
“바보 같고.”
“……아니, 아까 다 끝난 거 아냐? 갑자기 왜 또 시비야?”
“해야 할 일이 있어.”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반드시 어떻게든.”
무슨 이야기지? 본인을 말하는 건가?
“상처를 입어도, 내가 아닌 이가 다쳐도 어떻게든 해야 해. 아니면 안 되니까. ‘결과적으로는’ 그게 최선이니까.”
“사고.”
유이설의 시선이 먼 하늘로 향했다.
“그랬어. 내 아버지가.”
순간 청명의 손끝이 움찔했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디선가 조용히 노래하듯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속에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청명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
“뭘?”
“아버지.”
유이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청명조차 조심스럽게 물을 만한 질문이었는데도 말이다.
“화났고.”
“…….”
“슬펐고, 안타깝고, 꼴도 보기 싫고, 하지만 보고 싶고.”
조용히 그때의 소회가 쏟아진다.
청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그 복잡한 감정을 무슨 수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린 유이설에게 아버지는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부가 그녀를 망쳤다. 만일 현종이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유이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망친 것을 현종이 구원했다.
청명에게 있어 유이설은 손끝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잊고 떠들다가도 순간순간 따끔하고 욱신거렸다.
“지금은…….”
유이설의 시선이 동쪽 어딘가로 향했다. 아마 그 어딘가에 그녀의 아버지가 묻혀 있을 것이다.
“안쓰러워. 그저.”
“…….”
청명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유이설의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 게 옳았을까.
그는 유이설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삶의 방식을 부정하진 못한다.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미련 없이 실천하고 말 이가 자신임을 알아서.
유이설의 말대로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설령 어떤 희생을 치른다 해도 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구역질이 치밀었다.
유이설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청명이 느낀 구역감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틀렸음을 알면서도 부정하지 못하는, 끔찍하다고 여기면서도 동정해 버리고 마는 자신에게 느끼는 혐오감.
“달라. 너는.”
그 순간 유이설이 조금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청명이 멍하니 유이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청명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를 거야.”
“사고?”
“내가 사고니까.”
그 순간 청명은 보았다. 단호하게 다물린 그녀의 입매가 희미한 호선을 그리는 것을.
실로 보기 드문 저 미소는, 아마 청명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려진 것이리라.
강하다.
청명의 눈에 유이설은 세상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만 강한 척하는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렇기에 깊은 의문이 밀려왔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을 겪었기에 강해질 수 있었던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상처는 때로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는 사람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부숴 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 청명이 가장 잘 안다.
어쩌면 지금 유이설은 더없이 필사적인 게 아닐까?
그래야 하니까. 그래. 그녀의 말대로 그래야 하니까.
그럼…….
더 이상 강인할 필요가 없을 때는? 아니, 그 강인함으로 지키려던 것을 지켜 내지 못했을 때…… 유이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한번 그녀의 세상이 부서질 때도, 여전히 지금 같은 얼굴로 청명의 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사고. 너…….”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갑자기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청명이 획 돌아보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궁도위의 모습이 보였다.
“군사께서 찾으십니다, 총사.”
청명은 직감했다.
남궁도위의 굳은 표정을 본 순간……. 아니, 평소보다 심각한 목소리를 들은 그 순간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그보다 더 이전. 지금 이 상황이 생각보다 평화롭다는 마음을 저도 모르게 품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남궁도위의 나직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사패련이…… 움직였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피가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 전신을 타고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