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8화. 괜찮을 거야. (3)
애먼 돌멩이 하나가 휙 허공을 날아 흐르는 냇물 위로 떨어졌다.
퐁.
물살 사이로 빠진 돌은 이내 깊숙이 가라앉아 버렸다. 기존에 가라앉아 있던 돌들과 구분이 가지 않으니 이젠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망할…….”
나직이 욕설을 뱉은 조걸이 다시 돌을 주워 던졌다. 자유롭게 솟구쳤던 돌은 다시금 물에 빠지고 깊게 침전해 갔다.
“사숙은 뭐래요?”
“알아서 하래.”
“사숙이요?”
“그렇다니까.”
당소소가 의외라는 듯 조걸을 바라보았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 정말로 백천의 입에서 나왔다고?
‘그 백천 사숙이?’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알아주는 잔소리꾼이 이런 상황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다니. 그녀가 아는 백천이라면 둘의 멱살을 잡든 두들겨 패든 어떻게 해서라도 강제로 화해를 시켰을 텐데…….
당소소가 조걸을 흘끗 보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나, 믿지 않을 도리도 없다. 조걸이 믿음직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라고 하겠지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인가를 물어도 그 대답은 같으니까.
사실 당소소가 조걸을 흘끗 본 것은, 전해 들은 백천의 말이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다. 말을 전하는 조걸의 표정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사형?”
“……뭐가?”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상황이 이런데 표정이 좋게 생겼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조걸이 입을 꾹 다물었다.
-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 셈이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입도 벙긋 못 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입을 꾹 다물고 백천을 바라보다가 냉정하게 날아든 축객령에 몸을 돌리는 것뿐이었다.
‘빌어먹을.’
뭘 어쩌긴 어째. 상상도 안 해 본 일을 어찌할 거냐 물어본들 답이 나올 리 있나.
애초에 그런 건 조걸의 역할이 아니었다. 벌어질 일에 대해 고뇌하고 대비하고 새로운 길은 찾아내는 건 청명이나 백천, 윤종의 역할 아니었나?
조걸은 그들의 판단에 따라 열심히 싸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사형.”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걸이 당소소를 돌아보았다. 그를 가만 응시해 오는 소소의 얼굴은 차게 굳어 있었다.
순간 조걸은 자신이 끌어안은 고민 전부를 당소소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일은 무슨 일.”
조걸은 이내 짜증 난다는 듯 손에 잡힌 자갈을 다시 한번 획 높이 던졌다.
퐁.
자갈은 금세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냥 전쟁이 다가오니 다들 예민해져 가는 거지.”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왜? 그 양반들도 사람이야. 사람이 떼로 죽어 나갈지도 모르는 전쟁을 앞에 두고 속이 편할 리야 있겠어?”
“……그건 맞는데.”
당소소는 영 석연치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조걸은 화제를 돌렸다.
“너는 이러고 있을 시간 있어?”
“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네가 지금 맡은 일이 이렇게 할 일 없는 놈 찾아와 잡담이나 나눠 가며 할 수 있을 만큼 느긋한 게 아니잖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하려던 거나 제대로 해. 아니…….”
말을 하다 보니 조금 엇나간 것 같아, 조걸은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뒷말을 덧붙였다.
“이거 네 꿈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잖아.”
조걸은 안다.
충동적으로 시작된 일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당소소가 의료대와 당가의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오래도록 숱하게 고민해 왔는지 말이다.
스스로 부딪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이 지금 그녀가 하는 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삶의 초년에 벌어지기도 한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당소소의 꿈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의료부대 없이 승리한다면 모두가 그 필요성을 평가절하할 테고, 패배한다면 다신 기회가 없을 테니까.
당소소 역시 이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녀의 입술 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고민하고 끙끙대고 전전긍긍해도 물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마치 이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는 전쟁처럼 말이다.
잠시만 멈출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잠시라도.
“이런 고민 할 시간에 의료대나 더 신경 써라.”
“사형!”
조걸이 자갈을 쥐어 획 내던졌다.
“알잖아. 지금은 들쑤셔 봐야 달라질 거 없어. 화산에서 제일 고집 세고 성격 더러운 세 사람이잖아. 뭐 때문에 꽁한 건지는 몰라도 일단 좀 내버려 두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풀리겠지. 아니,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당소소가 침묵했다. 하지만 조걸은 그 속에 숨겨진 말을 알 수 있었다.
내버려 둘 시간은 있나요?
글쎄. 누가 알겠는가 그런 걸.
“그러니까 네 일이나 신경 써. 이것 때문에 공연히 하던 일까지 망치지 말고.”
당소소는 조걸이 연신 돌을 던져 대던 냇가를 물끄러미 보았다.
조걸의 말이 맞는다. 풀리지도 않을 문제를 안고 끙끙거려 봐야 달라질 건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
“일단 알겠어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걸의 말대로 하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다만, 사형.”
“응?”
당소소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제 꿈이라고 했죠?”
“…….”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제 꿈인 이유는, 이걸 해야 화산 사람들이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말에 조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괜한 말이었네요. 잊어요.”
당소소가 걸음을 옮겨 멀어져 갔다.
그 등에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던 조걸은 이내 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흐르는 물에 힘없이 떨구었다.
미련이다.
벌써 몇 번이고 확인하지 않았는가?
당소소나 당가의 힘으로는 백천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 아마 당소소가 조걸보다 백배 더 치열하게 방법을 궁리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선 안 된다. 당소소라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무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여겼을 테니까.
“하…….”
햇살을 잔뜩 띄운 채 반짝이며 흘러가는 냇물을 보던 조걸은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구름 한 점도 없이 파란 하늘이 눈을 메웠다.
“더럽게 푸르네.”
보기 싫다는 듯, 이내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 *
그날, 늦은 밤.
파아앗!
청명의 검이 눈앞의 바위를 단번에 내찔렀다.
카각!
박혀 든 검이 미세하게 뒤틀린 순간, 커다란 바위가 짧고 빠르게 뒤흔들렸다.
“큭!”
콰광!
검에 꿰뚫렸던 바위가 그대로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쩌적 갈라진 바위의 내부에는 매화 잎 모양의 구멍이 빽빽하게 뚫려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 내부를 응시하던 청명이 입을 열었다.
“……제길.”
흡사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였다.
모자라다.
제대로 된 검격이었다면 바위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낭비 없이 효율적인 검기는 바위의 겉은 그대로 둔 채 그 내부만을 부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국 이 바위는 부서졌다.
바위 내부를 채운 매화 모양의 수백 검흔 중 일그러진 모양새를 몇 개나 확인한 청명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거칠게 훔쳤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답답한 속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지만, 혼란한 마음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하기 싫어 눌러 뒀던 초조함이 슬그머니 다리를 타고 올랐다.
‘이렇게나 멀었나?’
저 멀리 매화검존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강하고, 도도하고, 세상 거칠 것 없는.
그건 청명의 과거이고, 이미 한번 밟았던 경지다. 손에 잡힐 것만 같은데, 도무지 잡히질 않는다.
물론 머리로는 안다.
한번 올랐던 산을 다시 오른다 해서 그 과정이 수월해지는 건 아니다. 더구나 이전에 오를 때는 수십 년이 결렸던 길을 고작 몇 년 만에 오르는 건 아무리 그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콰각.
청명의 검이 지척에 있는 바위에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검 끝에 맺힌 붉은 검기가 검신을 넘실넘실 휘감고 이내 그의 손목까지 뒤덮었다.
콰광!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의 바위보다 더 크게 터졌다. 청명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초조했다.
물론 지금 주위에 산재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굳이 그가 과거보다 강해질 필요는 없다.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손에 쥐었고, 또 과거보다 더 능수능란해졌으니까.
개인의 무력 같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건, 이곳에서 다시 깨어난 이후로 지금껏 일궈 온 모든 것을 무시하는 처사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다시 한번 검을 쥔 손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검이 무거워.”
문득 날아든 목소리에, 그의 시선이 옆으로 획 돌아갔다.
어둠을 뚫고 익숙한 그림자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청명이 검에 둘렀던 검기를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갑게 물었다.
“왜?”
평소라면 여기가 언제부터 동네 사랑방이 되었냐며 농담이라도 던졌을 텐데, 할 수 있는 수십 가지 대응을 두고 청명은 싸늘한 목소리만 내었다.
누구라도 흠칫할 만한 반응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이는 청명의 그런 날 선 반응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을 쓰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유이설의 표정은 항상 그랬으니까.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온 그녀는 청명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침묵 속에 잠깐을 대치했다.
적막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백기를 든 건 청명이었다.
“무슨 일로 왔어, 사고. 평소에 이쪽은…….”
하지만 청명은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이설의 시선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아래로 향했기 때문이다.
시선은 청명의 발목 쪽에서 멈추었다. 발목을 감싼 흰 무복이 어느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위의 파편이 발목께를 스친 모양이었다.
평소의 청명이라면 절대 입지 않았을 상처다. 하지만 오늘은 다친 거로도 모자라 상처를 입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마음이 혼란하단 증거. 청명은 씁쓸하게…….
콩!
“아악!”
눈을 휘둥그레 뜬 청명이 제 머리를 감싸 쥐고 뒤로 화들짝 물러났다.
어느새 유이설이 제 검을 검집째 들고 있었다.
“갑자기 왜 때려!”
콩!
하지만 유이설의 검은 여지 없이 다시 청명의 머리를 내리쳤다.
콩! 콩! 콩!
문답무용으로 쏟아지는 공격에 청명이 머리를 감싼 채 피해 다녔다.
“아니, 이 사고가 갑자기 미쳤나? 왜 이래!”
청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유이설이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멍청해.”
“……응?”
“얼간이.”
“아니. 갑자기 왜 찾아와선 시비…….”
“다리 이리 내.”
“응?”
청명이 슬쩍 제 다리를 내려다본다. 피가 꽤 흐르긴 했지만, 이 정도야 생채기나 다름없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됐어.”
“내.”
“됐다니…….”
스르릉.
유이설의 검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뽑혀 나왔다.
청명은 어색한 얼굴로 상처 입은 제 다리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여기.”
……솔직히 유이설은 그도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