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6화. 이제 내 차례야. (1)
“기회라……. 무례가 도를 넘었군.”
남해태양궁 궁주 진평(陳)의 눈에 불쾌감이 어렸다.
“하찮은 사파 수괴 따위가 내게 기회를 준다? 어디 계속해 보거라.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
눈앞에 있는 이는 왕족이고, 천면수사가 있는 이곳은 그 왕족의 나라다. 궁주가 마음을 먹는다면 아무리 천면수사라 해도 몸 성히 살아 돌아갈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천면수사의 두 눈에 어린 건 공포심이 아니었다.
‘세상에 무의미한 건 없군.’
장일소의 화려한 사치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는데, 거기에 익숙해진 덕을 지금 톡톡히 보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든 광경에 크게 주눅 들기는커녕 감흥조차 없다는 점이 그랬다.
“말씀대로 감히 사파의 수괴 따위가 궁주께 기회를 드릴 수는 없지요. 이곳에서 제왕처럼 군림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태양궁주가 대답 없이 천면수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궁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고작 이 임읍의 제왕은 아니시겠지요?”
“하하하하.”
태양궁주의 입에서 별안간 쩌렁쩌렁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자부심을 모독하려는 것이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그저 미루어 짐작했을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손에 쥔 것보다 더 큰 것을 원하니까요.”
“나는 그런 이가 아니다.”
“글쎄요……. 누구 덕분에 저도 이제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을 조금쯤 이해한 것 같습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에 어울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많은 걸 쥐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가 있기도 하지요.”
태양궁주의 눈썹이 꿈틀한다.
“이미 궁주와 제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부터가 이를 증명하지 않겠습니까. 그 유창한 한어(漢語)를 취미로 익히지는 않으셨을 테고.”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태양궁주의 눈가가 좀 더 굳어졌다. 이번에는 굳이 천면수사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궁주. 저는 그저 련주의 말을 전할 뿐입니다.”
태양궁주의 눈썹이 꿈틀했다.
“패군이?”
“예.”
“……뭐라 하더냐?”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천면수사는 태양궁주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허리를 자르듯 단호하게 말했다.
“……의미는?”
“글쎄요. 저 같은 무지렁이가 감히 련주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짧은 소견으로 짐작해 보자면 이런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계속해라.”
“사패련이 이기든, 구파가 이기든, 어느 한쪽이 승리하는 순간 남해태양궁이 중원에 발을 들일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태양궁주 진평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굳어졌다.
“그럴 수밖에요. 일통된 강호를 태양궁이 홀로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을 터. 그렇게 되면 궁주께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편히 천수를 누리시면 됩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안빈낙도를 즐기시며 말입니다.”
“으음.”
이 말로, 태양궁주의 얼굴에 덧씌워져 있던 가면이 모두 깨지고 말았다. 굳어진 얼굴은 두말할 것 없이 그의 본의다.
화려한 안빈낙도.
누군가에게는 그게 극락의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태양궁주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삶이다.
“내게 줄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운남 진출?”
“아닙니다. 운남의 지배권입니다.”
그 말에 태양궁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미 점창은 정리가 끝났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야수궁이 있을 텐데?”
“물론입니다. 하지만 야수궁의 정예들은 궁주와 함께 중원에 있습니다. 사천을 넘을 수 없는 강북에.”
중원이라는 두 글자가 나온 순간 태양궁주의 눈빛이 슬그머니 빛났다.
“대단한 전력도 되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 봐야 잔챙이들입니다. 설마 그 정도도 태양궁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흐음.”
“운남을 드리겠습니다.”
태양궁주가 살짝 어둑한 눈빛으로 나직이 물었다.
“운남만이라……. 사천은?”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입니다, 궁주.”
“그저 물은 것이다.”
살짝 입술을 핥은 태양궁주가 검지로 제 태사의를 톡톡 두드렸다.
천면수사의 말이 옳다. 구파일방이 이기든, 사패련이 이기든 한쪽이 승리하고 중원을 일통해 버리면 남해태양궁의 중원 진출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운남이라…….’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물었다.
“다른 하나는?”
“안전입니다.”
안전? 부연을 요구하는 태양궁주의 눈빛에 천면수사가 입을 열었다.
“남해태양궁이 협력할 경우, 련주께서는 남해태양궁의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다 할 기별도 없이, 태양궁주의 몸에서 순간 가공할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그의 진노가 대전을 뒤흔들었다.
“감히 내 앞에서 그딴 망발을 지껄여!”
당장이라도 천면수사를 찢어 죽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천면수사는 일말의 동요 없이 말을 내뱉었다.
“패군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궁주의 자리에 오른 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만일 과하게 노한 모습을 보인다면 우위를 잡기 위한 연기일 뿐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순간 대전을 뒤덮었던 열기와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태양궁주가 천면수사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운남과 안전인가?”
“그렇습니다.”
태양궁주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어렸다.
“사천의 절반……. 아니군. 목을 작두에 들이미는 짓이지.”
“…….”
“운남과 안전이라…….”
되뇌던 태양궁주가 쿡쿡 웃었다. 객관적으로야 대단한 조건이지만 감히 남해태양궁을 수족으로 부리기엔 하찮다.
그럼에도…….
“그럼.”
태양궁주의 두 눈이 태양처럼 불타올랐다.
“이제 우리가 뭘 해 주면 되는 건가?”
천면수사 담여해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피어났다.
* * *
“어찌 될 거라 보십니까?”
“쯧쯧. 가명아. 내가 묻고 네가 대답하는 게 순리에 맞지 않겠니? 요즘은 아주 네가 나를 부려 먹는구나.”
“송구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십니까?”
“끄응. 도통 말을 들어 먹질 않으니.”
공연히 투덜거린 장일소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받겠지.”
“그는 왕족입니다. 아니, 오히려 왕보다 더 대단한 위세를 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받을 거란다.”
“……왕족이기에 받는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중원을 통일하는 자는 북방을 평정하려 들고, 북방을 평정한 이는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나는 법이야.”
“…….”
“알겠니? 사람에게 만족이란 없단다. 왕과 같기 때문에 거절하는 게 아니라, 왕과 같기 때문에 받는 거지. 쯧쯧. 이 당연한 이치를.”
호가명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라면…… 놈은 분란의 싹이 될 텐데요.”
“글쎄. 확실히 놈은 반역이라는 꽃을 피울 씨앗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씨앗은 싹이 터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거란다.”
붉은 입술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호가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뜻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남해태양궁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지난 한 달의 지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 막대한 이득입니다.”
“그렇게 금칠할 것 없다. 겨우 손해나 안 본 정도란다. 고작 태양궁 하나로 유난은.”
고작 태양궁이라. 세상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장일소 말고 또 있을까?
“점창을 무너뜨리신 것도 이 계획의 일환이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 겸사겸사.”
장일소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호가명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구파일방 중 하나인 점창을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사파의 역사에 다시 없을 업적이다. 그런데 장일소는 이로써 남해태양궁이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마저 확보했다. 그러니 태양궁주가 사패련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을 당연하다 여기는 건 련주님밖에 없을 겁니다.”
“하나 더 있잖니. 심통 난 도사 놈 말이다.”
매화검귀 청명, 그자를 말함이다. 호가명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
“이쯤은 그놈도 예상했겠지. 어쩌면 우리가 점창을 친 순간부터 알고 있었을 거란다.”
“……그가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저리 동분서주하는 거 아니겠니. 거지 놈들까지 끌어들여 가면서 말이야. 하하핫.”
장일소가 깔깔 웃었다. 매화검귀가 개방을 박살 내 놓았다는 게 생각할수록 웃기고 유쾌한 모양이었다.
“내 종적을 놓쳤던 일이 꽤 뼈아팠던 모양이지? 거지 놈들을 저리 구박해 대는 걸 보니.”
호가명은 굳이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천우맹이 개방의 분란을 해결하며 그들을 끌어들인 일을 두고 ‘매화검귀가 개방을 혼냈다’라고 정리해 버리는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저 호가명은 잠시 멈칫하다 다른 말을 했다. 어쩌면 주제넘은 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련주님. 같은 개방이라도 그게 매화검귀의 손에 들어간다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다르겠지.”
장일소 역시 순순히 인정했다.
원래 정보란 건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그 정보를 쥐고 조합해 내는 자의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어설픈 개방의 정보력이라 해도, 그걸 휘두르는 자가 화산검협 청명이 된다면 분명 위협적일 터.
하지만 장일소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니, 달랐을 수도 있겠지.”
“…….”
“그가 나를 몇 해만 먼저 경계했더라면. 하다못해 오 년만 더 빨리 천우맹을 만들었다면 말이다.”
다른 사패련도들이 들었다면 기겁할 만큼 대단한 인정이고 칭찬이다. 그러나 장일소를 가장 숭배하고 추앙하는 호가명은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늦었단다. 파도가 밀려드는 와중에 어떻게든 성을 지어 보려는 속셈이겠지만, 그래 봐야 모래성.”
장일소의 손이 천천히 허공으로 뻗어졌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외관을 꾸며도 모래성의 본질은 모래란다.”
콰득.장일소의 손이 허공을 움켜쥔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차디찬 귀기가 스쳤다.
“무너지겠지. 가볍게.”
으드득.
뼈마디에서 울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호가명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느슨하게 늘어졌다.
“이제 곧. 그래, 이제 곧.”
중얼거리던 그가 문득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구나.”
“예?”
아이 같은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그 모래성이 무너질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다.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불타는 그 지옥에서 어떤 비명을 질러 댈지. 정말이지…… 두 번은 못 볼 귀한 광경이겠지.”
“…….”
“정이십삼(丁二十三) 호에게 시작하라고 명을 보내렴.”
“……태양궁이 합류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애초에 합류를 기다릴 생각도 아니었잖니?”
그 말에는 호가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 뻔히 예상할 때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다. 녀석들이 예측하지 못할 때, 들이닥쳐야 의미 있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장일소가 느리게 대답하며 반지가 주렁주렁 달린 손을 펼쳐 내려다보고 살폈다.
“마음껏 지켜 보라고 하렴. 나는 빼앗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두 눈만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스산했다.
호가명은 잠시 눈을 감았다.
련주의 말이 옳다. 이미 안배는 시작됐다. 어리석은 저들은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때가 되면 꺼진 재 속에서 다시 피어난 불꽃이 이전보다 더 지독하게 타오를 것이다.
‘매화검귀.’
호가명은 그를 인정한다. 세상 누구보다. 하지만…….
‘네 불행은 하필이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겠지.’
바로 패군이 지배하는 시대에.
* * *
“엥? 그, 그게 뭔 소리냐?”
“뭘 어쩐다고?”
모두의 눈이 동전처럼 동그래졌다. 심지어 윤종마저도 그랬다.
“안 지킨다고.”
모두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안 지킨다고? 여길?“그럼 총단은 왜 만들었는가? 그것도 이렇게 열심히!”
당군악이 제기한 의문은 당연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설상가상으로 돌아오는 대답도 이상했다.
“총단이 있으면 지켜야 해요?”
“당연하지!”
“왜요?”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임소병을 눈으로 찾았다.
“일단 병법에는 없는 얘기입니다.”
임소병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번엔 백천에게로 향했다. 청명학 권위자에게도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짜증 나서 하는 개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은 진심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두 감별사의 의견을 들어 본 모두가 다시 청명을 멍하니 보았다.
“그…… 좀 더 그 자세하게……. 아니, 이해하기 쉽게 말해 보거라. 뭘 어쩌겠다고?”
“몇 번 말해요? 여길 안 지킨다고요.”
“아니, 그러니까 왜?”
“말했잖아요. 여긴 보급창고고 대피소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어, 그랬지.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자, 잠시.”
임소병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청명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음에다 병력과 유민을 받고, 군량을 쌓고, 거기에 주변을 감시할 눈까지 얻었잖습니까.”
“그렇지.”
“화음은 화산에게도 우리에게도 더없이 익숙한 땅이고요. 반대로 저놈들에게는 더없이 낯선 땅이지요. 지형상으로도 우리가 확실히 유리하다는 겁니다.”
“그렇지, 잘 아네.”
“그럼 여길 바탕으로 수성을 하는 게 옳지 않습니까? 놈들은 쳐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공격보다 수비가 유리하다는 건 이제 처음 병서를 편 애도 아는 사실입니다.”
“안 옳은데?”
“예?”
“누가 공격보다 수비가 유리하대?”
“그야 모든 병법가가…….”
“그건 걔들 얘기지. 나는 아닌데?”
“예?”
“나는 공격이 편해.”
아……. 그러시다면 뭐. 허허…….
“그리고 병법이니 뭐니 논할 상황이 아냐. 겪어 봤잖아.”
“뭘 말입니까?”
“저 새끼가 공격하는 거 다 막을 수 있어? 이 자리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임소병의 얼굴이 굳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장일소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내기 위해서는 그가 꾸미는 계략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이미 뼈저리게 실감하지 않았던가?
청명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형상의 이점? 수성의 이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 올지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여기에 웅크려서 덜덜 떨고만 있자고? 우리가 아니라 구파를 먼저 때려 주길 원시천존한테 기도라도 올리면서?”
임소병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애초에 놈이 바라는 게 그거야. 그놈이 왜 저기에 웅크리고 시간을 보낸 거 같은데?”
청명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던 임소병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성을 흘렸다.
금방이라도 쳐들어갈 듯 턱 밑에 자리 잡은 놈들. 그놈들이 굳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뭘까?
웅크려라. 막아라.
놈들은 저곳에 자리한 것만으로도 구파와 천우맹의 움직임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제가 놓쳤군요…….”
“놈은 사람을 홀리는 게 장기야. 그리고 나는 수비에 약하지.”
“…….”
“내 약점으로 적의 강점을 상대하면 털릴 수밖에 없어. 또 뒤통수나 처맞겠지. 이제 그런 건 지긋지긋해.”
청명의 입꼬리가 못마땅하게 뒤틀렸다. 가만 듣고 있던 현종이 침중하게 물었다.
“청명아. 구체적으로 생각해 둔 게 있더냐?”
“그야 뭐 뻔하죠.”
청명이 제 허리춤에 찬 검을 느릿하게 꽉 움켜잡았다.
“우리가 지은 건 모래성이에요.”
“…….”
“그런데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모래성이라면 사패련은 거꾸로 올린 탑이에요.”
청명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사패련은 기형적으로 강하다. 본래의 전력으로는 낼 수 없는 힘을 실제로 발휘하고 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장일소라는 존재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거꾸로 말하면…….
“그러니 우리가 공격해야 할 것도 명확하죠.”
“청명…….”
“놈을 죽일 겁니다.”
그 단호한 한마디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전율케 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청명의 새하얀 이가 섬뜩하게 드러났다.
“이젠 내가 공격할 차례예요.”
그의 두 눈이 맹수처럼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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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가입니다.
항상 화산귀환을 지켜봐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죄송하게도 화산귀환이 6월 5일부터 6월 13일까지 휴재 기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기간의 휴재는 처음이라 저 역시 부담이 되지만, 향후 내용의 점검과 떨어진 체력의 회복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이에 깊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더 좋은 내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