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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23화 (1,524/1,567)

1523화. 생각해 보니 잘못했네. (3)

“……뭐라 했느냐?”

이건, 단순히 놀라서 되물은 게 아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법정은 조금 전 뻔히 들은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에서도 그 속뜻을 파악하는 경지에 이른 소림의 방장이 담백한 사실 전달을 듣고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실로 드문 일이지만, 사실 그럴 만하기는 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이조차도 몇 번이나 귀를 의심했으니까.

“개, 개방의 난에…… 소림이 개입하여…….”

“소림이라니?”

법정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무슨 헛소문이더냐! 우리가 버젓이 여기에 있는데, 어찌 소림이 개봉에서 벌어진 일에 개입한단 말이냐!”

“그게…….”

법계는 차마 말하기 어렵다는 듯 주저하며 우물거렸다. 속이 탄 법정이 결국 역정을 냈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거라! 그게 대체 무슨 소리더냐!”

“방장……. 그게, 숭산에 있던 이들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법정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난데없이 얼음물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말이다.

“혜방?”

“……예.”

“그 아이가 개방의 일에 관여했다는 말이더냐?”

“상황을 보았을 때 그렇게밖에는…….”

“어떻게?”

“……방장.”

법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는 곧 진노로 폭발했다. 얼굴을 넘어 머리까지 시뻘게진 법정이 소리쳤다.

“고작 일대제자에 불과한 녀석이! 사문 내의 다른 이들마저 이끌고 타문의 일에 개입했다고! 내 명도 없었거늘! 멋대로 소림을 움직였단 말이더냐? 그놈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화를 쏟아내는 법정 앞에, 법계는 희게 질린 채 말이 없었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천년소림의 법도가 지엄하게 살아 있거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

천년소림, 그 길고 긴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혜방이 처음 명을 거역하고 장강에서 이탈했을 때도 법정은 굳이 그를 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가 치솟았지만, 어쨌든 나름의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무승들이 혜방을 따르며 덩달아 법정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이해했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불자의 길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선이 있고,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이번 일은 그 모든 선과 법도를 깡그리 뭉개 버린 짓이 아닌가?

“……사실이냐?”

“…….”

“확실하냐 물었다!”

법정이 다탁을 쾅 치자 법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 전에 숭산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뭐라더냐?”

얼굴을 굳힌 법정이 딱딱하게 묻자 법계는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혜방은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자 스스로 참회동에 들어간다 합니다. 방장께서 오시면 죄를 청하겠다고…….”

으드드득!

법정이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평소라면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을 법계지만, 이번만은 감히 입을 떼지 못했다.

이번 일은 법정의 입장에서는 반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를 알면서 어떻게 진정하란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방장……. 혜방을 어찌…….”

“그걸 말이라고 묻느냐!”

법정이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외쳤다.

“단전을 폐한 뒤, 단근참맥 하고 소림에서 추방한다!”

“바, 방장!”

화들짝 놀란 법계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왜? 과하더냐?”

하지만 법정은 시퍼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대답해 보거라. 소림의 계율원주로서 내가 내린 벌이 과하다고 여기느냐?”

“과할 리가 있겠습니까? 기사멸조에 합당한 벌은 오직 단근참맥뿐입니다.”

“하면!”

“다, 다만, 방장……. 소림 역사상 스스로 참회동에 들어간 이를 끌어낸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파계와 단근참맥은 반드시 당대의 방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법정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말인즉, 혜방을 파계하기 위해서는 법정이 숭산으로 가야 한단 뜻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호북을 떠날 수 없는 처지다.

법계가 눈치를 살피며 다시 입을 뗐다.

“그리고…… 방장.”

“안다.”

법정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말허리를 자르고는 입술을 짓씹었다. 노기는 계속해서 들끓었지만, 그럼에도 철저히 단련된 이성은 감정에 앞서 현실을 일깨웠다.

“그리 행해 버리면, 결국 소림 내에서 내 명에 거역하는 이들이 있단 사실을 천하에 알리는 짓이 되어 버린단 말이겠지.”

“……예, 방장.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법정은 입술을 짓깨문 채로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물론 그의 체면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체면이 손상된다면 소림의 위상도 흔들린다.

더욱이 지금은 절대 그 위상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놈이 여기까지…….”

“그, 그건 아닐 것입니다. 혜방은 본디 그리 계산이 빠른 아이가 아니잖습니까.”

“아니!”

“예?”

“네 말대로 혜방은 계산속이 빠른 아이가 아니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 움직여 개봉으로 갔을 것 같으냐?”

법계가 나직이 탄식했다.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법정이 거칠게 씹어뱉듯 말했다.

“그래! 녀석을 부추긴 이가 있다는 뜻이지!”

그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다.

참으로 골치 아프게 되었다. 소림의 입장에선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음에도 그 일이 새어 나가지 않게 쉬쉬하며 숨겨야 하게 되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번 사건에 관해 물었을 때, 그 모든 일이 법정의 의지였다는 거짓까지 입에 담아야 할지도 모른다.

실로 황망하다. 도대체 이를 어디서 어찌 풀어야 한단 말인가!

“본문에 사람을 보내라.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절을 벗어나는 이는 모조리 파문으로 다스리겠다 전해라.”

“그리하겠습니다.”

거칠게 심호흡하며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킨 법정이 아까보단 조금 정돈된 목소리로 물었다.

“개방은 어찌 되었느냐?”

“방주 측이 난을 진압한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결과다. 화산도 모자라 혜방이 소림의 무승들을 이끌고 참전했다면 그 결과야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지금 법정은 그런 뻔한 답을 듣고자 질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법계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게…… 방주 풍영신개는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모양입니다.”

“물러나? 이런 상황에서? 저 사패련이 당장 전쟁을 벌일 판인데 방주를 바꾸겠다는 것이더냐?”

“예, 그쪽에서 전해 오기로는 그랬습니다…….”

“……허.”

법정은 허탈함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대체 다들 지금의 상황을 뭐라 생각하는 것인가?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럼 다음 방주는 누가 된다더냐?”

“우선은 홍대광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홍대광이라면?”

“예. 과거에 낙양분타주였던 인물로, 낙양괴걸(洛陽怪乞)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한때 후개 후보로 세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리던 자인데…….”

법계의 보고를 듣던 법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속으로 몇 번을 읊조려 보았다. 홍대광. 홍대광. 분명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다.

“혹여 그자가?”

“예. 그…….”

법계가 식은땀을 흘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뭇거리던 그가 어렵사리 답을 꺼내 놓았다.

“현 화음분타주로서, 개방 내 대표적인 친화산파입니다.”

순간 아찔해진 법정이 눈을 딱 감아 버렸다.

“기어코…….”

우스운 일이다.

혜방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을 때는 노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지만, 막상 개방이 천우맹으로 돌아설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에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속으로 예상했으니까.

‘그자’

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화산이 개봉을 방문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고, 운 좋게 그 기회를 잡아챘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을 테지. 그렇지 않다면, 화음을 정비하는 데 정신없을 그들이 갑작스레 개봉에 나타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헛웃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허허.”

“방장…….”

“개방으로 사람을 보내라. 아니, 네가 직접 다녀오거라.”

“예?”

“개방이 천우맹 측으로 돌아서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는 눈뜬장님 꼴이 된다.”

“방장.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실?”

법정이 눈을 치떴다. 잠깐 잠잠해졌던 노기가 일순간 콱 치솟았다.

“화산이 개방의 일에 개입하여 제 꼭두각시를 개방의 방주로 만드는 건 현실적인 일이더냐!”

이 말에는 법계도 입을 조개처럼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사패련이 강북의 턱밑에 비수를 들이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내라. 애원을 하든, 협박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새 방주가 될 이에게서 구파에 대한 지원을 끊지 않겠다는 약조라도 받아 내야 한다!”

법계가 어두운 얼굴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법정은 속을 진정시키려는 듯 몇 번 불호를 외고는 말을 이었다.

“개방 역시 단번에 우리와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 방주에 오를 이가 아직 젊어 연륜이 부족하니, 설령 제 의지가 그렇다고 해도 장로들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언젠가는 그리될 일이라 해도 지금은 아니다. 천우맹이 얻어 가는 것이야 막을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잃는 건 최대한 줄여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생각할수록 허탈하여 법정은 실성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때에 다른 곳도 아닌 개방을 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체 그놈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앉아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이걸 천우맹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제는 새삼 관계의 경색을 논할 것도 없다. 이런 일로 무언가가 달라지기엔, 이미 천우맹과 구파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지 오래다.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는데 법정이 안일했던 게 아니냐 하면, 그 또한 아니다.

소림이 이번 일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천우맹이 날고 긴다고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갈 수는 없었을 텐데, 과연 그 시점에서 숭산에 박혀 있던 놈들이 방장의 허락도 없이 움직일 거라 예상한 이가 어디 있었겠는가.

결국은 소림. 그래, 소림이다.

법정이 소림 안에 반목하는 이들을 만들고,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던 것이 여기까지 굴러 눈사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안일했다 할 수는 없지만, 무능했다는 말은 피할 도리가 없다.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방장…….”

“지금쯤 그는 화음에서 영웅처럼 환대받고 있겠지.”

법정이 눈을 질끈 감았다. 뇌리에 파안대소를 터뜨리는 청명의 모습이 그려졌다.

‘화산검협…….’

염주를 잡은 법정의 손등에 시퍼런 핏줄이 두드러졌다.

* * *

하지만 법정의 예상과는 달리, 청명은 환대도 찬사도 받지 못했다.

“손 똑바로 들어라!”

되레 한쪽 눈이 퍼렇게 멍든 채 벌을 서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지옥의 삼신장(三神將)이 되어 버린 세 명이 이를 갈고 있었다.

“화산 놈이 종남의 옷을 입어?”

현상의 두 눈에서 지옥불이 뿜어져 나왔다.

“종남 행세를 해? 종남? 다른 곳도 아닌 종남?”

사람을 죽여도 연유를 묻고, 건물을 부숴도 이치를 따지는 게 강호.

하지만 옆 산에 사는 다른 문파의 옷을 입는 것은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가 된다.

어쩌겠는가? 강호의 이치가 그런 것을.

“종남 옷이야 입을 수도 있지.”

하지만 현종은 과연 남달랐다.

그는 이런 사소한 데 신경 쓰는 이가 아니다. 화산에 대한 자부심이야 넘쳐나지만, 그 무엇보다 제자의 안전을 더 중히 여기는 이가 아닌가?

“그런데 그걸 입고 개봉에 잠입해? 뭐? 장로들이랑 싸워?”

현종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현상의 꾸짖음에 현종의 말까지 더해지자 화산의 제자들은 무려 안 싸우고 돌아설 수 있는 일을 굳이 키워 싸워 보겠답시고, 종남의 옷까지 입어 가며 날뛴 천하의 빌어처먹을 종자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전표를 다 날려?”

가장 마지막에 선 이의 분노가 가장 극심했다.

악귀가 몸에 씌기라도 한 듯, 현영이 지옥 밑바닥에서 울부짖었다.

“개방쯤 되는 곳을 끌어들였으면 정보고 나발이고 가입금부터 받아야 하는데! 뭐? 총단이 무너지면서 현물이랑 전표가 죄 날아가서 진짜 거지가 됐다고?”

“…….”

“안 그래도 돈 없어 죽겠는데 새로 십만 거지를 끌고 와? 돈은? 돈은 너희가 벌어 오냐, 돈은?”

“현영아. 지금 그건 좀 결이…….”

“맹주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이보다 중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어……. 그, 그래. 여하튼 네놈들!”

“이놈!”

“망할 놈!”

사방에서 빗발치는 꾸짖음에, 청명의 입에선 점점 영혼이 빠져나갔다.

개봉에서 들었던 목소리들이 아련하고 훈훈하게 귓가에 울렸다.

- 검존.

- 검존이시여.

아, 그냥 화산 오지 말고 거지나 계속할걸…….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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