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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10화 (1,511/1,567)

1510화. 말로 해서 될 놈이 있지. (5)

이송백이 헛숨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었다.

“으윽!”

“조심해요!”

그 순간, 당소소의 검이 그의 검을 짓누르던 개방 장로의 단봉을 쳐 냈다. 경계하는 자세 그대로 당소소가 물었다.

“괜찮아요?”

“감사하오, 소저!”

감사를 전한 이송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력이 어마어마해.’

봉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살벌했다. 개방 장로들의 무위가 그리 높지 않은 건 사실이나, 무위와 내력은 다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개방의 장로라 해서 시간이 더 빠르게 갔을 리는 없을 터. 운용이 부족할지는 모르나, 그 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내력은 그들의 무기에, 공격마다 고스란히 어려 있다.

이송백 역시 종남의 정화를 받으며 성장해 온 인재지만, 저들의 내력을 모조리 받아 낼 만큼 정순한 내력을 쌓지는 못했다.

더욱이 이송백의 검은 상대를 정면으로 맞받는 데 특화되어 있다. 이렇게 내력으로 짓누르는 상대와는 상성이 영 좋지 않았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뿌리 깊은 거목이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그의 검은 완전(完全)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하압!”

쇄액!

하지만 이송백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단봉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막아 냈다.

그를 도우며 싸우던 당소소의 눈에 절로 경탄이 어렸다. 철벽(鐵壁)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화산의 검과는 다른, 무겁고 정교한 검은 그 자신을 넘어 당소소에게 쏟아질 공격마저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대단하네.’

객관적으로, 화산의 검수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타문에서 흉내 내지 못할 대단한 영약을 손에 넣었고, 숱한 실전을 겪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산에는 청명이 있다.

하지만 이송백은 그런 특혜도 없이 자신의 검만 묵묵히 갈고닦았음에도 당소소가 감탄할 만한 검을 보여 주고 있다.

얼마나 지독하게 노력해 왔을까? 매번 흔들리는 자신을 수도 없이 다잡으며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강호의 정상에 서는 거겠지.’

그래, 원래는 이런…….

“흐라야아아아압! 뒈져라아아아아!”

그 순간 장로들 사이로 뛰어들어 사방으로 검을 마구 날려 대는 조걸의 모습이 보였다. 경박하고 한심하지만, 그 검기만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형이.

실로 지금의 강호는 괴이하다 할 만했다. 생각해 보면 저 한심한 인간이 이송백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니까.

“……뭔가 잘못됐다.”

“예?”

“아, 아니요! 아무것도.”

죄책감과 슬픔을 뒤로하며 당소소가 검을 다시 잡았다.

한편 등을 맞대고 그들의 뒤를 지키던 풍영신개가 쇄도하며 힘껏 타구봉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날아드는 옥빛 경기를 막아 낸 장로들은 굳은 얼굴로 풍영신개를 노려보았다.

“방주!”

“아직 나를 방주라 부르는 것이냐?”

“……그만 포기하시오. 그러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소. 애초에 그대는 딱히 대단한 무위를 지닌 것도 아니잖소? 그대만 항복한다면 모두를 살릴 수 있소.”

풍영신개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건 틀린 말이다. 내가 항복해도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저 사람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으니까.”

“누굴 말하는 거요?”

풍영신개가 고개를 내저었다.

“말은 필요 없다. 오너라. 방주의 권위를 무시한 너희에게 온당한 벌을 내릴 것이다.”

“어디 능력이 있다면 그래 보시오!”

콰앙!

풍영신개의 타구봉과 장로들의 단봉이 허공에서 맞닥뜨렸다. 충동할 때마다 속이 뒤틀리는 듯한 충격이 엄습했지만, 풍영신개를 진정 괴롭히는 것은 육체가 아닌 마음의 고통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들은 그가 방주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지금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 저 봉에 어린 살기의 의미를 어찌 모르겠는가?

청명이 했던 말이 자꾸만 가슴에 박힌 송곳처럼 아팠다.

‘사부님. 우리가 틀렸습니다.’

개방은 변질했다. 더는 협의를 좇지 않게 되었다. 간악한 이들이 오직 자신의 이득과 안위만을 추구하는 곳이 된 것이다.

다름 아닌 그가 개방을 이리 만들었다.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봉을 휘두르려 할 때, 옆쪽에서 날아든 꼬질꼬질한 단봉이 단번에 풍영신개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앙!

“컥!”

“방주님!”

“이런……!”

풍영신개가 휘청이자 장로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을 퍼붓는다. 이를 악문 이송백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대신 그 봉들을 막아 내었다.

콰앙! 콰아앙!

검을 타고 밀려온 내력이 내부를 휘저었다.

“쿨럭!”

이송백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소협!”

기겁한 당소소가 섬전처럼 검을 뻗어 장로들을 한차례 밀어 냈지만, 이미 이송백은 큰 내상을 입은 후였다.

“지금이다!”

“틈을 주지 마라! 끝낸다!”

기세를 탄 장로들이 악을 쓰며 돌진해 왔다. 그들에게도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결과를 내야 한다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이익!”

풍영신개와 이송백을 지키듯이 선 당소소가 이를 악물고 맞섰다. 그녀의 검도 이제는 당당히 화산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완숙해졌다. 하지만 이 많은 이들을 상대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 소저!”

이 위기를 알아챈 혜연이 단번에 권력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

황금빛 경기가 거세게 내달리며 장로들을 몇이나 튕겨 냈다. 하지만 멀리서 쏘아 낸 권력으로 막아서기에는 상대의 수가 너무 많았다.

“못 지나간다! 저리…….”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단봉을 쳐 내던 당소소가 순간 멈칫했다. 다른 이들을 지키며 싸우려다 보니 얼굴 바로 앞까지 날아든 단봉을 뒤늦게 알아챘다.

‘아……?’

막을 수 없다.

이어질 충격을 직감한 당소소는 눈을 감지 않고 되레 날아오는 단봉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으로 불쑥 날아든 검이 봉을 막아 냈다.

“사고……가 아니라……. 응?”

“너는 사형이란 말을 아예 모르냐?”

“왜 여기에 있어요? 저쪽이 무너지잖아!”

“알 게 뭐야! 빌어먹을!”

당소소의 위기에 급히 달려 온 조걸이 벌컥 성질을 내며 검을 휘둘렀다. 뒤이어 달려온 윤종이 외쳤다.

“침착해라, 소소야!”

“예, 사형!”

당소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검을 꽉 움켜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포진이 깨졌다. 열세에 몰린 마당에 한곳으로 뭉치기까지 하면 포위되는 걸 면할 수 없다.

“큭!”

“아미타불!”

아니나 다를까, 제자리를 지키던 이들이 점차 등 뒤의 견제를 버티지 못하고 주춤주춤 모여들었다.

“이익!”

노기를 참지 못한 조걸의 검이 순간적으로 거대한 살기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때.

“걸아!”

“……제길.”

윤종의 호통이 조걸의 검에 실린 살기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조걸은 다가오는 장로들을 노려보았다. 흡사 독오른 살쾡이 같았다.

윤종이 입술을 깨물며 주위를 살폈다. 상황이 좋질 않았다.

물론 사파를 상대하듯 살수를 쓴다면 이보다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숙…….’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백천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는 것.

지독한 압박감이 윤종과 모두를 짓눌렀다.

“끄륵…….”

또 한 명의 장로가 제 가슴을 움켜잡고 허물어졌다.

청명은 숨을 정리하며 포위된 이들을 흘끗 보았다. 표정이 굳어진 그 순간,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대단하군. 하지만 그대는 몰라도, 저들은 소문만큼 대단하지 않은 모양이야.”

청명이 말없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유가 넘치는 일호신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저놈들이 대단해지는 건 지금부터야.”

“아, 그럴지도 모르지.”

일호신개가 청명의 말을 선선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대단함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지. 그렇지 않은가?”

“…….”

“마음 같아서는 자네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가장 잘 아는 것도 자네일 테고.”

청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뼈 아픈 지적이다. 개방의 방주를 그들의 편으로 만들겠답시고, 장로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 그럼 개방은 결코 천우맹의 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외려 철천지원수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안 그래도 입지가 좁은 풍영신개로는 그 이후의 개방을 수습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계산까지 갈 것도 없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큰 죄를 짓지도 않은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면, 사파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그렇기에 청명도, 오검도 장로들을 죽일 수는 없다. 부상을 입히는 것까지는 각오한다 해도 ‘격살’이 아닌 ‘제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게 지금 모두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다.

“정보를 다루는 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 이길 수 없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들다니 말이야. 무위는 소문보다 대단했지만, 그 영민함은 과장이 과했어. 그대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했네.”

“주둥이 닥…….”

“아악!”

피식 웃으려던 청명이 표정을 굳히며 획 고개를 돌렸다. 포위당한 채로 방어하던 일행 중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신경을 거칠게 잡아채이기라도 한 듯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다. 저들이 절대 쉽게 당하지 않을 거란 걸.

하지만 완벽하게 관심을 끊고 이곳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다. 청명은 더는 과거의 청명일 수 없으니까.

입 안 살을 꾹 깨물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이제껏 그들이 겪어 왔던 싸움과는 다르다. 뚫는 싸움은 일각이 무너져도 누군가가 길을 열면 그만이지만, 지키고 제압하는 싸움은 한쪽만 무너져도 순식간에 연쇄가 일어난다.

상대도 지독히 방어하고 있으니, 청명의 검이 일호신개에게 닿을 틈이 없다. 아군이 죽든 말든 벽으로 활용하며 철저하게 몸을 빼내는 저런 전투 방식은 마교 놈들도 흔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청명이 이를 갈았다.

“수치도 모르는 놈 같으니.”

“수치라.”

일호신개가 피식 웃는다.

“사제에게 방주 자리를 빼앗기고 수십 년간 굽실대며 살아왔던 나인데, 그 많은 수치에 작은 수치 하나 더한다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또 다른 신음이 청명의 귀를 파고들었다.

“크윽!”

순간적으로 혜연의 권력이 솟구친다. 단번에 장로들을 날려 버릴 정도로 대단한 위력의 권격이었지만, 그건 거꾸로 말하자면 그만큼 상황이 다급해졌다는 의미다.

“사숙!”

“오지 마라! 자리를 지켜!”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들이 막다른 길에 몰려 있다는 것을.

“초조한가?”

일호신개가 히죽 웃었다. 청명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벌써 그리 절망할 것 없네. 진짜 절망은 이제…….”

파아아앗!

일호신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명의 몸이 일순 섬전처럼 늘어나며 돌진했다. 일호신개를 지키기 위해 반사적으로 뻗어진 타구봉들 사이로 검이 매섭게 파고들었다.

카가가가강!

봉과 봉 사이를 오간 검이 막아선 것들을 모조리 밀쳐 내고 길을 만들었다. 청명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뛰어든다.

“놈!”

사방에서 다시 한번 단봉들이 날아든다.

막아 내려면 막아 낼 수 있지만, 그러면 또 발목 잡혀 시간을 끌게 된다. 빠르게 판단한 청명은 막는 대신 몸을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날렸다.

콰앙!

콰아앙!

청명의 등판과 어깨로 막대한 공력이 실린 봉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졌다. 울컥 솟은 피가 악물린 잇새로 흘러나왔다.

청명의 눈은 그 순간에도 오직 한 사람, 일호신개를 쫓고 있었다.

파아아앗!

검이 번개처럼 뻗어졌다.

카가강!

가로막혔지만 상관없다.

“하압!”

청명이 드물게도 기합을 내질렀다. 내력이 폭발하며 날아드는 단봉들을 모조리 쳐 내었다. 그 기세를 모조리 실은 암향매화검이 일호신개의 목으로 쇄도했다.

“이야아아아압!”

당황한 와중에도 이 검을 피하기란 역부족이라 여긴 일호신개 역시 전신에서 공력을 내뿜었다.

우우우우우웅!

손끝에서 옥빛 경기가 구름처럼 일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옥빛 장력과, 붉은 기운을 머금은 청명의 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가가각!

비틀리듯 회전한 암향매화검이 일호신개의 장력을 갉으며 뚫고 들어간다.

일호신개가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하아아아아앗!”

그는 필사적으로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 장력에 밀어 넣었다.

콰각!

하지만 청명의 검은 기어코 구름 같은 장력을 뚫고 일호신개의 목을 찔렀다.

콰득!

일호신개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허공에 붉은 호선을 그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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