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화. 어찌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일단은 좀 앉으십시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천상루주가 자리를 내어주었다.
“차 한잔 드시겠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굳이 거절할 것 없소이다.”
천상루주가 밖으로 신호를 보내자 금세 시비들이 달려와 착석한 화산의 제자들에게 차를 내어주었다. 백천은 내심 감탄했다.
‘대단하네.’
그런 이가 바로 조금 전 세상을 떠났고, 천상루주는 그런 이의 죽음을 겪었음에도 이미 평정을 되찾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내심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이번엔 백천의 시선이 슬쩍 청명에게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주루에서 왜 술이 아니라 차를 주냐고 발작하고도 남았을 놈이 지금은 말없이 차를 받아 들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청명이 훨씬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단 의미가 아닐까, 백천은 조심스레 생각했다.
그 순간 천상루주가 나직이 헛기침하고 말을 꺼냈다.
“스승께서 도우라 하셨으니, 나는 개방의 방주로서 전력을 다해 화산검협을 도울 것이네.”
백천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화산검협이라.’
화산이나 천우맹이 아닌, 화산검협을 돕는다. 이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저, 그런데.”
“음?”
백천의 머리가 살짝 복잡해지려는 찰나, 조걸이 대뜸 입을 열었다.
“저희가 방주님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조걸에게로 집중되었다. 모두가 멍하니 바라보니 조걸이 움찔하며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 말이 좀 이상하게 나왔는데! 그게 아니라, 저 방주님을 뭐라고 불러야 하냐는 말인데, 그게…….”
“……별호를 말함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네. 가장 많이 불렸던 별호는 무흔개(無痕丐)였지. 때로는 난구풍(難拘風)이라 불리기도 했고.”
“아…….”
뻔하지만 잘 어울리는 별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가 없는 개방의 방주에게 딱 걸맞은 별호니까.
“하지만 이왕이면 풍영개(風影丐)라 부르게나. 나는 그게 마음에 드니. 풍영개 이과(李果). 그게 내 이름일세.”
“풍영신개. 바람의 그림자라.”
침묵을 지키던 청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별호로군.”
천상루주……. 아니, 풍영신개가 살짝 무안한 듯 미소를 흘렸다.
“사람에게는 각자 취향이라는 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팔자 좋네, 취향도 따지고. 누구는 어울리지도 않는 별호를 달고 다니는데. 개방 놈들은 좋겠어. 제 별호도 제가 만들어 퍼뜨리면 되니까.”
“저는 잘 어울리는 별호라 생각합니다. 검협.”
청명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조걸이 또 끼어들었다.
“그리고 저, 또 하나 질문이 있는데요.”
“뭔가?”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얼굴을 확 구기며 조걸이 물었다.
“그…… 이것도 말로 꺼내자니 조금 이상한 것 같기는 한데, 왜 저놈에게 존대하시는지……?”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풍영신개가 청명에게 존대하고 있기는 했다.
조걸이 덧붙였다.
“아, 아니, 뭐 사숙이야 장문대리니까 존대한다 치고, 그……. 아니, 생각해 보면 저놈도 천우맹 총사니까 그럴 수 있긴 한데…….”
어째 그게 이유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던진 물음이었다. 그저 조걸이 조리 있게 말하지 못했을 뿐. 풍영신개는 그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딱히 대단한 이유는 아닐세. 스승께서 존중을 보인 이를 하대하는 것은 제자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일세.”
“아니, 그래도 엄연히 배분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오히려 그 배분이 이유라네. 자네는 스승께서 존대한 이에게 하대할 수 있겠나?”
“어…….”
조걸의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안 된다. 증조할아버지가 존대한 사람에게 손자가 반말하는 상황이 아닌가? 더 이상 반박이 어려우니 조걸도 슬그머니 움츠러들었다.
“또 질문 있는가?”
“……아뇨. 없습니다.”
“음……. 그럼 이제 개방 내부의 일을 논의해야 하는데.”
풍영신개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돌아가며 이송백에게 닿았다.
“아…….”
불편한 기색을 빠르게 알아챈 이송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음. 그래 주겠…….”
“있으라 그래요.”
풍영신개와 이송백이 동시에 청명을 돌아보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모른 척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흠. 검협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풍영신개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결국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가 알기로도 이송백은 입이 무겁고 진중한 사내이니 일을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풍영신개는 청명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말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의외로 청명은 슬쩍 뒤로 몸을 물렸다.
이를 본 풍영신개가 눈치 좋게 백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문대리께서도 아시겠지만…….”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지금은 격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니까요.”
“……그래도 되겠소?”
“예.”
풍영신개가 탐색하듯 백천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것보다 더 실리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내심 평가를 내리며.
“알겠지만, 지금의 개방은 지휘자가 없는 상태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방주가 부재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굳이 모습을 감추지 않으셔도…….”
“그렇질 않았네.”
풍영신개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와병을 가장해야 했던 이유는 외부인들을 만나지 않기 위함만이 아니었네. 외려 더 큰 이유는 내부에 있지.”
“그게 정확히 무슨 말씀이신지……?”
“개방도들은 성향이 워낙 자유로워서 못마땅한 게 있으면 상대가 방주라 해도 따져 묻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네. 내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개방은 풍비박산이 났을 터.”
“……없는 방주를 붙들고 드잡이질할 수는 없다는 말이로군요.”
“바로 그렇네.”
백천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풍영신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스승께서 이곳을 만드신 이후로, 역대 방주들은 다들 비슷한 방식을 취해 왔네. 그렇게 불만이 차오르다 못해 넘칠 즈음 되면 뜻을 같이할 만한 후계를 물색하여 적당히 자리를 넘기는 식으로 불만을 억제해 왔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움직일 예정이셨던 겁니까?”
“그렇네.”
“그럼 원래 생각해 두신 후계가 혹시 누구였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풍영신개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시게. 홍대광은 아니니까.”
“이야.”
“그렇지.”
“방주님이 상식적이시네.”
“……불쌍한 분타주님.”
화산 제자들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정은 꽤 들었는데, 홍대광은 애초에 방주 후보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 리 없겠네요.”
“그렇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네. 성향이 맞지 않는 것뿐.”
이 말은 모두가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고나기를 다혈질인 홍대광이 천상루주로 사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렇게 된 거군요. 대충 이해했습니다.”
“어?”
그때 윤종이 움찔하여 백천을 돌아보았다.
“이해했다니요, 사숙?”
“방주께서 앞으로 어찌 하시려는지를 짐작하겠다는 말이다. 이미 개방 내부에선 방주님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을 테니, 이제 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내부 장악에는 한계가 있을 거다.”
“……확실히 그렇겠죠.”
“아마 방주께서는 이 기회에 방주 자리를 후계에게 물려주는 식으로 잃은 권위를 되찾아 오시려는 것 같구나.”
“아.”
윤종도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풍영신개가 새삼 놀랐다는 듯 백천을 빤히 응시했다.
“……듣던 것보다 영민하군.”
“과찬이십니다.”
백천이 작게 고개를 숙이자 화산의 제자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럼 간단하네요. 새로이 방주를 선출하시고, 그 방주가 저희를 돕도록 부탁해 주시면 되잖아요.”
그 말에 당소소가 맞장구쳤다.
“이왕이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면 더 좋을 테고요. 그쵸, 사고?”
“……선대의 명이면 따르는 게 도리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단 생각에 당소소가 환하게 웃었다. 풍영신개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장문대리의 말이 맞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네. 그럼 대부분 문제는 해결될 걸세.”
“간단하네요.”
“그렇지. 간단하지. 다만 조금……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네.”
“문제……라고요?”
화산 제자들의 얼굴에 일순 불안이 스쳤다. 이거 어째 어디서 많이 겪은…….
“그런 얼굴로 볼 것 없네.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니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
“아……. 그렇다면 다행이죠.”
“그 문제가 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백천이 물었다. 풍영신개가 슬며시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최근 강호의 상태가 예상치 못하게 흐르다 보니 개방 내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네.”
“어떤……?”
“이런 긴급한 상황에 방주가 자리를 비운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명목하에, 장로들이 따로 뭉쳐 세력을 만들었지. 사실 그건 그저 표면적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개방 내의 권력을 잡겠다는 목적이겠지만.”
“그, 그런 움직임을 막지 못하신 겁니까?”
풍영신개가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막을 필요가 없었네. 지난 백 년간 흔히 벌어져 온 일이었으니까. 세력이 너무 커진다 싶을 즈음 후계에게 자리를 넘기며 세력을 타파해 버리면 되는 일이었지. 몇 번이고 해 온 일이니 굳이 움직이지 않았고.”
“아아,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다만, 그…….”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듯 풍영신개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여니 백천의 얼굴이 점차 핼쑥해졌다.
“사실 이번에는 경우가 조금 달라졌네. 사패련이 갑자기 저런 일을 벌일 줄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는가.”
“그렇……겠죠?”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 문제가 커졌네.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나와 스승께서 예상하던 것보다 빠르게 뭉쳐 버렸고, 그러다 보니 적절한 개입 시기를 놓쳐 버렸지.”
“…….”
“게다가 이런 위급한 시기에 아직 미흡한 후보들에게 방주 자리를 넘길 순 없으니 저들이 직접 방주 자리를 맡겠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인지라…….”
“반동이네.”
“불순분자네.”
“화산이면 연화봉에 거꾸로 매달았다.”
화산의 제자들이 콧김을 내뿜었다.
“음.”
백천이 무겁게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알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개방 내에 방주께 반발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이 만만치 않으니 어느 정도 불화를 감수해야 한다. 이 말이군요.”
“그렇지.”
백천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리 대단한 문제까지는 아니다. 어떤 문파라 해도 후계를 정할 때는 이런 문제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문제였다.
“저희가 최대한 방주님을 도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겠는가?”
“네. 그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만, 세력의 규모가 개방 내에서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음. 이 할 정도 되네.”
“이 할이라.”
적지 않은 세력이지만 그리 위협적이지도 않다. 나머지의 불만만 어느 정도 잠재우면, 이 할 정도야 짓밟아 버리면 그만일 터.
“알겠습니다. 그럼 그 이 할의 세력을 견제…….”
“아니, 그게 아니라…….”
“예?”
풍영신개의 얼굴에 살짝 민망한 기색이 스쳤다.
“……우리가 이 할일세.”
“예?”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적을 수도 있고…….”
“……예?”
“하지만 뭐, 사소한 문제지. 세력의 규모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다시 찾아오면 그만인데.”
“……자, 잠시만요? 방주님 측이 이 할이라고요? 그 이 할로 팔 할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요?”
“아, 팔 할까지는 아닐세. 중립도 있으니.”
“그럼 얼마나 됩니까?”
“한, 육 할쯤?”
내내 침착하던 백천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아, 아니, 방주님. 상황이 이러한데 대체 뭘 돕겠다는 겁니까? 그…… 신개께서 엄청 자신만만하시던데?”
풍영신개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야, 누군가의 능력을 믿으신 것 아니겠는가?”
“…….”
“같은 일이라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 법이니 말일세.”
이 할로 육 할을 이기기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할을 이끄는 자가 저 전설의 ‘매화검존’이라면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된다.
그러니 현풍신개가 마음 편히 영원한 안식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그런 스승의 믿음을 따를 뿐이네.”
부드럽고 단호한 풍영신개의 말에, 모두가 청명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음에도 청명의 입가에는 미소가 또렷하게 맺혀 있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중얼거린 청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풍영신개에게 다가갔다. 풍영신개는 기대 어린 눈으로 그런 그를 응시했다.
청명이 말했다.
“그러니까…… 방주를 따르는 이 할 정도의 세력을 잘 이용해서 이미 개방을 거의 장악한 장로들의 연합을 때려 부수고, 당당하게 우리 편을 방주 자리에 앉히면 된다 이거잖아.”
“정확합니다.”
“방법이야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하고?”
“예.”
“그렇구나. 하하. 잠깐만.”
“예?”
딸깍.
청명이 풍영신개가 앉아 있는 책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아까 풍영신개가 움직였던 기관이 다시 작동했다.
“응?”
끼기기기긱!
둔중한 소음과 함께, 다시 열릴 일 없다고 생각했던 위층의 문이 열렸다. 계단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기관은 왜?”
“청명아?”
“너 뭐 하려…….”
그 순간, 청명이 눈을 새하얗게 까뒤집었다. 그의 몸이 흡사 빛살처럼 계단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이 노망난 늙은이가! 입은 잘도 털어 대더니!”
“잡아!”
“막아!”
계단이 내려올 때부터 뭔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잽싸게 몸을 날려 위층으로 뛰어오르는 청명을 단숨에 덮쳤다.
“놔! 이거 안 놔?!”
“뭐, 뭐 하려고, 인마!”
“저 영감탱이 내려와 보라고 해! 뭐, 믿음? 믿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친!”
청명의 발이 연신 허공을 걷어찼다. 발끝에서 뿜어진 풍압이 애꿎은 천장만 쿵쿵 때려 댔다.
“안 일어나? 어?”
“청명아! 도, 돌아가셨다니까!”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 확실해? 확인해 봤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청명의 두 눈이 무섭게 희번덕거렸다.
“죽었으면? 그래서, 뭐? 뒈지면 끝나?”
“그럼 끝나지!”
“안 끝나! 안 끝나! 나도 그런 줄 알았어! 놔 보라고!”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청명은 이제 아예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
“어쩐지 뭐가 잘 돌아간다 싶었다! 야, 이 미친 늙은이야! 나와 보라고! 으아아아!”
청명이 내지르는 처절한 고함이 천상루를 뚫고 널리널리 울려 퍼졌다.
그 시절 인간치고 제대로 된 놈은 없다.
그 사실을 잠시 잊었던 대가를 이토록 처절하게도 치르는 청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