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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86화 (1,487/1,567)

1486화. 널 찾아온 게 아닌데? (1)



만리금구의 맑은 울음소리가 고요해진 주루로 퍼져 나갔다.



‘이자가…….’



천상루의 루주. 만리금구의 주인.



지금껏 그들이 찾아내려 애썼던 바로 그 사람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해답에 도달한 순간 백천은 오히려 더 큰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이 사람을 찾으려 했던 거지?’



백천의 시선이 청명에게 막 돌아가려 할 때였다.



“과연.”



“……음?”



“외양만으로는 친인도 구분이 어렵겠군. 확실히 개방의 이목을 속일 만하오.”



백천의 눈썹 간격이 확 좁아진다.



“거기에…….”



천상루주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이송백이 사레가 들린 듯 쿨럭이며 고개를 숙였다.



“종남의 이송백이 이런 외양을 한 이와 함께 있다면 감히 누구도 의심할 생각을 못 하겠지.”



“크흠.”



이송백의 입에서 연신 헛기침이 터져 나온다.



“저는 그…….”



“걱정할 것 없소.”



주루가 딱 잘라 말했다.



“굳이 이 사실을 종남에 알리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굳이 다른 이와 공유할 필요는 없으니.”



“…….”



백천과 이송백의 안색이 동시에 살짝 굳어진다.



소문을 내지 않겠다는 건 기꺼운 일이나, 저 말에서 언젠가는 이 사실을 제 이득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의도가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백천이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 보려 하는데, 루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질문할 차례가 아닌 것 같군.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으니까. 다시 묻겠소. 무슨 일로 나를 찾으셨소?”



“…….”



주도권이 단번에 사내에게로 넘어간다.



약점 아닌 약점을 잡힌 백천은 사내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약점을 잡히지 않아도 어려운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상대의 의도에 휩쓸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손해만 보고 쫓겨날지도 모른다.



하나 그런 위기감이 들기가 무섭게, 백천의 귓가에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



“……이유라기보다는 용무.”



“요오옹무우?”



“…….”



청명의 얼굴이 와락 뒤틀렸다. 그 모습을 본 천상루주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당혹감이 피어났다.



“어이.”



“……예?”



“고작 술집 주인 만나는 데 이유까지 있어야 해?”



무표정하던 루주의 얼굴에 순간 당혹이 어린다.



“뭔 놈의 술 파는 새끼가 이리 거들먹거려? 나 때는 손님이 부르면 십 층 주루 주인도 맨발로 달려왔는데! 여하튼 요새 것들은! 안 그래, 사형?”



“……그거랑은 좀 다른 거 아니냐?”



“뭐가 다른데? 똑같지. 저 양반이 지 입으로 루주라잖아!”



“그래. 그…… 그럼 같은 거지.”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뭐.



“안 그래? 주인 양반?”



청명이 뚱한 얼굴로 쏘아붙이자, 천상루주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를 이 주루의 주인이라 소개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화산의 검협은 자유롭기가 이루 말할 데 없어 평범한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다더니,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오.”



사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오. 천상루니 뭐니 해 봐야 고작 주루일 뿐. 주루의 주인을 찾는 데 대단한 이유 따위는 필요 없겠지. 특히나 그 상대가 천하의 화산검협이라면 감히 일개 루주 따위가 상대할 분이 아니시니.”



“크흠. 뭐 그렇게 치켜세우실 것까진 없고. 헤헤헤. 사숙, 이 양반 생각보단 좋은 사람 같은데?”



“……정신 좀 차려 이 새끼야. 내가 정신이 나가기 전에.”



“어, 그렇지.”



청명이 재빠르게 헤 풀린 얼굴을 다잡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단하게 평가해 주는 건 좋지만, 댁도 일개 루주라고 할 사람은 아닌 것 같군. 개방 거지 새끼들이 개미 떼처럼 우글대는 개봉 한복판에 이런 걸 차릴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그 말은 틀렸소.”



“음?”



“개봉에 이런 걸 세운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이곳이 개봉이기에 이런 주루를 세울 수 있는 거요.”



청명의 눈이 살짝 가라앉는다.



“흐음. 어설픈 사파 새끼들은 개방이 무서워 얼씬 못할 테고, 개방 놈들은 거지라는 신분 때문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인가?”



청명의 말을 들은 루주의 눈에 짧게 이채가 흘렀다.



“정확하오.”



“그렇다 해도 배에 기름 찬 관 놈들은 이런 곳을 그냥 내버려 두려 하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갖다 바친 거지?”



“천만에. 그들에게는 한 푼의 돈도 주지 않고 있소.”



“응? 어째서?”



사내가 담담하게 말한다.



“이곳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오. 화산검협.”



“……여길?”



“그렇소.”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평범한 고관들은 언제나 자신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들킬 수 있다는 걸 걱정하며 살지. 나누는 대화의 무게가 커질수록, 그들의 은밀함에 대한 강박은 병적일 정도로 강해지는 법이오.”



“…….”



“그러니 그런 이들에게는 필요한 법이지. 황궁도 강호도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그냥 인적 드문 곳으로 가면 그만 아닌가? 뭘 그리 멍청하…….”



청명이 말을 하다 말고 피식 웃어 버렸다.



“아아. 그놈들은 거기가 정말 인적이 드문 곳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거로군. 무인이 아니니까.”



“바로 그렇소. 거기에……. 그쯤 되는 이들이라면 인적 드문 곳을 찾아드는 행위 자체가 이목을 끄는 법이오. 그대가 이곳에 드는 것을 철저히 숨기려 한 것처럼.”



청명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인근에 있는 화려한 주루에서 향락을 즐기는 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소.”



“그리고 그 주루에서 우연히 다른 고관을 만나는 것도 딱히 이상할 게 없다. 이거군?”



“정확하오. 그로 인해 얻는 오명 정도야 말을 숨기는 대가로는 저렴하지.”



청명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이래서 고관 놈들이나 부자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한숨을 푹 하고 내쉰 청명이 시큰둥한 눈으로 루주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댁은 그런 양반들이 마음 놓고 말을 하게 만들어 주고, 그 말들을 주워다가 돈을 버는 사람이다?”



“오해가 있는 모양이오.”



“음? 오해?”



“나는 저들의 대화를 듣지 않소. 그저 저들이 대화하게 내버려 둘 뿐이지.”



청명이 히죽 웃었다.



“나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듯이 늘어놓더니, 하나는 잘 모르는 모양이로군. 나는…….”



“앞에 대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겠지. 그것도 뻔히 들킬 거짓말을.”



“…….”



청명이 말없이 루주를 쏘아보았다.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고 있소. 그대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챌 정도라면 정보에 정통한 사람일 텐데, 이 귀한 정보들을 그냥 흘려보낼 리는 없다 여기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뭐하러 이런 곳을 만들겠는가?



“하지만 화산검협. 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얻어 내기 위해서 반드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그게 뭔데?”



“바로 정보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오.”



“…….”



청명이 멍한 눈으로 루주를 바라보았다. 놀라서가 아니다. 그저 이 너무도 뻔한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주는 당연하다는 듯 담담히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곳에서는 정보가 생기지 않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정보가 생겨나오. 이곳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정보가 말이오.”



“…….”



“세상에 더 많은 정보가 생겨날수록, 이용할 수 있는 정보도 더 많아지오. 상인은 곡식을 팔아 돈을 벌지만, 곡식을 키우는 농부가 없으면 상인 따윈 존재할 수도 없는 법이지.”



“그래서?”



청명이 차가운 눈으로 루주를 쏘아보았다.



“그대는 그 정보를 키우는 자다?”



“말하자면 그렇소.”



“하하핫.”



청명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참새를 쫓아오면 어떤 거물이 나올까 싶었더니.”



청명의 입가가 묘하게 뒤틀렸다.



“……이건 숫제 미치광이잖아.”



루주가 대답 없이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담담히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눈빛은 분명히 청명에게 닿아 있었다.



“그 평가는 정당하오. 다만.”



천상루주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 평가가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건 정당하지 못하겠지. 나 이상의 미치광이는 당신일 테니까.”



“…….”



“할 이야기를 나눴으면, 이제는 내 질문에 대답해 줄 때요.”



사내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모두의 시선을 받아 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나를 찾아오셨소. 화산검협?”



모두가 이번에는 청명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건 그들 역시 궁금하던 차였으니까. 하지만 청명은 이번에도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 주지 않았다.



“널 찾아온 게 아닌데?”



“음?”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냥 그 참새의 뒤를 쫓아 온 것뿐이야. 그러면 거지 새끼들을 풀어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 놈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든.”



“…….”



“그래. 그러니까 개방의 분타주쯤 되는 이들을 제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일반적인 개방의 보고선과 다른 보고선을 활용할 수 있는 놈. 내 움직임을 개방의 총단보다 오히려 더 빨리 접수할 수 있는 권력자.”



청명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해하겠어?”



“…….”



루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여기에 오면 그런 놈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내가 알기로는 세상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거든.”



“뭔가 오해가 있는…….”



“개방의…….”



“…….”



“방주.”



천상루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청명을 꿰뚫었다.



개방의 방주.



그 말에 당황한 것은 루주가 아니라 되레 오검들이었다.


“처, 청명아. 그게 뭔 소리냐? 개방주는 지금 와병 중이라 기식이 엄엄하다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응?”



“그 오늘내일하는 영감을 만나러 왔는데, 막상 와 보니 오늘내일하는 영감은 없고, 웬 미치광이가 여기 있는 거지. 나라고 당황스럽지 않겠어?”



“아…….”



청명이 피식 웃었다.



“그럼 결론은 둘 중 하나지.”



“둘 중 하나라니?”



“개방의 방주가 천하를 속이고 멀쩡하게 여기서 신선놀음을 하고 계셨던가.”



“…….”



“그게 아니면 개방이 이미 개방주가 아닌 놈에게 장악되어서 제멋대로 주물러지고 있었던 거지. 저 양반은 그 흑막일 거고.”



오검들의 고개가 격하게 루주에게로 돌아갔다.



“그, 그건 너무 많이 간 거 아니냐?”



“그럼 낙양으로 급파된 개방의 분타주에게 총단과 다른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지?”


“그건…….”



오검들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건 다른 해석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답은 어느 쪽이냐?”



“그건 내가 아니라 저 양반에게 물어야지. 어이.”



청명의 웃음기 어린 눈빛이 루주에게 닿는다. 그 순간 루주의 몸이 살짝 움찔한다. 그 별것 아닌 눈빛에서 강한 압력이라도 느꼈다는 듯이.



“넌 누구지?”



그와 동시에 오검들의 몸에 팽팽하게 힘이 들어간다.



그 대답 여하에 따라 이곳에서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루주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던 루주의 고개가 이윽고 내저어진다. 그건 포기이자 항복의 선언이었다.



“화산검협이라……. 그토록 조심했거늘.”



“…….”



“그대의 말이 맞소.”



“뭐?”



“엥?”



“무슨 의미야?”



오검들의 입에서 의혹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소. 내가 당대 개방의 방주요.”



청명의 입가에 득의의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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