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3화. 네가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 (3)
“잠깐 놀다 가세요!”
“형제님! 오늘 얼굴에 운수가 보입니다! 혹시 그 운을 여기에서 확인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황궁에서 일하던 숙수가 오늘 저희 주루에 오셨습니다! 무려 황제와 같은 요리를 드실 기회입니다!”
화려한 불빛으로 수놓인 좁은 길, 수많은 이들이 빽빽하게 서서 열심히 호객하고 있다.
그리고 길 중앙, 이런 광경과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한 무리의 무인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와…….”
“이런 데가 있었구나?”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바쁘게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끔뻑였다. 사방을 둘러싼 건물에선 형형색색의 불빛이 새어 나와 저마다의 화려함을 뽐냈다.
거기에 사방에서 풍겨 오는 향긋한 주향과, 진귀한 음식 냄새는 또 어떤가. 그 무엇 하나 쉽사리 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머, 이분 너무 귀엽게 생기셨다!”
지나는 이들을 바라보던 여인 중 하나가 혜연을 보더니 환히 웃으며 손뼉 쳤다. 혜연의 얼굴이 삽시간에 홍시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아미…….”
턱!
조걸이 섬전처럼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커다란 눈을 뒤룩뒤룩 굴리던 혜연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도 모르게 반쯤 흘러나왔던 불호를 꿀꺽 삼켰다.
“거, 조심하시라니까.”
“죄, 죄송…….”
조걸은 고개를 내젓더니 주변을 보는 데 다시 몰두했다.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진짜 별세계네요, 사형.”
“그러게나 말이다. 세상에 이런 데가 다 있었구나.”
“여기가 이 정도면 항주는 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거야?”
화산의 제자들이 감탄 반, 호기심 반으로 연신 주위를 보던 그때였다.
“눈 돌리지 말고 앞만 보십시오.”
“……죄송합니다.”
등 뒤에서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앞으로 고정했다.
이를 갈아붙인 이송백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생각했던 그의 역할은 분명 이들의 방종을 모른 척해 주는 것까지였는데…….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종남을 사칭하는 무도한 악적(?)들과 일행이 되고 말았다.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대책 없는 작자들을 이 밤거리에 그대로 풀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동행하는 조건으로 꽁꽁 묶이는 신세는 면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했다.
“후우.”
심호흡으로 마음을 애써 안정시킨 이송백은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 가며 말했다.
“아무 일도 벌이지 마십시오. 말도 섞지 말고, 시선도 마주치지 마십시오. 딱 목적만 이루고 그 즉시 돌아가는 겁니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다들 말씀이나 못하면…….”
이송백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쯧쯧. 여하튼 애송이 놈들.”
하지만 청명은 혀를 끌끌 차더니 옆에 선 이송백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자자, 너무 그렇게 울상짓지 말라고. 다 좋은 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도장.”
“거, 사내놈이 배포가 이리 작아서야. 걱정하지 마. 내가 아무도 사고 안 치도록 확실하게 단속할 테니까.”
청명이 큰소리 탕탕 치며 호언장담한 그때였다.
“아이고, 대협! 대협께만 알려 드리는 건데, 지금 저희 주루에 좋은 술이 들어왔습니다! 항주에서만 취급하던 소흥주가 지금 딱 세 병 있습니다! 어떠십니까? 호걸님들에게 딱 어울리는 술 같은데!”
“뭐? 진짜? 지금 가면 되냐?”
호객하는 점소이 쪽으로 청명이 슬그머니 발을 옮겼다. 이송백이 경기를 일으키며 청명의 팔을 덥석 움켜잡았다.
“도자아아앙!”
“……술만 사 오면 안 되냐?”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아, 저거 진짜 입에 착착 붙는데…….”
“오늘 저희 업소에서 열리는 골패대회에서 우승하신 분께는, 북경에서 어렵게 구해 온 고봉황주(高峰皇酒)를 상품으로 드립니다.”
“뭐? 그건 못 참지! 지금 간다!”
“아, 앞만 보시라고요!”
“아니, 들어 봐. 저건 진짜 죽인다니까? 네가 맛을 아직 못 봐서 그래! 내가 먹어 봐서 아는데, 이건 놓치면 안 돼!”
“알았으니까 고개 돌리시라고!”
청명이 아쉽다는 듯 연신 입맛을 다셨다. 이송백은 제 얼굴 가죽을 거의 잡아 뜯을 기세로 벅벅 문질렀다.
‘장문인이 아시면 나를 죽이시겠지.’
아니, 장문인까지 갈 일도 아니다.
진금룡으로 변장한 백천의 수작에 동조했다는 것만 알려져도, 진금룡이 이송백의 껍데기를 벗겨 조사전 앞의 발 털개로 쓸 것이다.
이리된 이상, 어떻게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빨리 끝내고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이송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멀었습니까, 아직?”
“쯧. 잠깐만.”
청명이 제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빼꼼 내민 백아가 다시 한번 코를 쫑긋거렸다.
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으로 가득 찬 움직임으로, 작은 손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이란다.”
“확실합니까?”
“거참, 의심도 많아 가지고. 얘가 하필 화산에 와서 비상식량 취급을 당하는 거지, 실제로는 남만야수궁에서 알아주던 영물이라니까? 지금 당장 어디에 내다 팔아도 천금은 더 나올…….”
말을 하던 청명이 슬그머니 백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네? 생각해 보니 이놈이…….”
물론 강한 저항이 돌아왔다.
키이이이이이!
“정신 차려!”
“네가 정녕 사람 새끼냐, 이 새끼야?”
“팔 게 따로 있지, 어디 동료를 팔아먹어!”
“누가 진짜로 판다고 했냐?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청명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더니 백아가 가리킨 곳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가자. 이러다 길에서 날밤 새우겠다.”
“그런데 청명아.”
“응?”
그때, 백천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청명에게 물었다.
“보통 환락가라는 건 대문파 주변에는 잘 안 생기는 거 아니냐?”
“보통은 그렇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니까.”
“그런데 여기는 엄청 거대한 것 같은데?”
“음, 뭐…… 아무래도 거지 소굴이라 그런 거 아닐까? 도사님들이나 스님들 옆에다가 환락가 장사하는 것보다는 눈치가 덜 보일 거고.”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가만 듣고 있던 조걸이 슬쩍 말을 얹었다.
“에이, 사숙. 그게 왜 이상합니까? 거지들도 평범한 집에서 밥 얻어먹기는 쉽지 않으니 주루에서 남는 음식을 얻어먹는 거겠죠. 이만한 거지들을 먹여 살리려면 주루가 보통 커야겠습니까? 당연한 거죠.”
“……한 번씩은 네가 상인 집안 출신이라는 게 이해가 가긴 해.”
“칭찬이죠?”
“그렇게 생각하든가.”
조걸과 백천이 틱틱대며 아웅다웅하는 와중, 주변을 둘러보는 청명의 눈빛이 슬쩍 가라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원래 이랬었나?’
과거에는 개봉에 거의 들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모습도 특별히 기억에 없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잠깐 고민하던 청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기야 개봉에 있는 환락가가 커지든 말든 그게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개봉의 환락가가 그의 기억보다 거대해졌다는 게 아니다. 그가 찾으려 하는 이가 바로 이곳에 있다는 점이다. 청명에게는 그 부분이 더 신경 쓰였다.
“뭔가…… 갈수록 더 화려해지는 것 같은데.”
“……이젠 솔직히 좀 무섭다.”
“엄청 무서운 형님들이 아까부터 자꾸 보이는데, 진짜 사파 사람 아니야?”
사파 분쇄기로 전 강호의 공증을 받은 화산의 제자들이 뒷골목을 드나드는 어깨들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이송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그 순간.
키이!
움찔하며 튀어나온 백아가 코를 쫑긋거리더니 청명을 획 올려다보았다.
키이!
“찾았냐?”
키이!
“오!”
청명이 반색했다. 많이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결국 만리금구의 목적지를 찾아냈다.
“어디냐!”
힘차게 묻자 백아가 지체 없이 앞발을 쭉 뻗어 앞을 가리켰다.
“여기?”
키이!
“그래, 여기라고?”
키이이이!
확신으로 가득한 그 작은 손이 가리킨 곳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다.
“……어…….”
“……여기라고?”
일행의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무려 칠 층에 달하는 전각이었다. 지금까지 길을 걸으며 보았던 전각들을 모조리 초라하게 만들 만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천상루?”
“이름은 제법 무난하네.”
“생긴 게 무난하지 않아서 그렇지.”
한눈에 보기에도 웬만한 이들은 발도 못 디딜 것 같은 고급 주루였다.
“어……. 여기?”
“백아야. 진짜 여기가 맞냐?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데?”
키이익!
“어? 아니라고?”
백아의 울음에 묘한 짜증이 섞였다. 이곳이 아니란 말에 모두가 살짝 화색을 띠었다. 그럼 그렇지, 여기일 리가…….
백아의 앞발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어?”
왜 발이 올라가…….
우뚝.
마침내 멈춘 앞발이 가리킨 건, 다름 아닌 천상루의 가장 높은 곳. 다른 층보다도 훨씬 더 화려해 보이는 최상층이었다.
일행 사이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말없이 백아의 앞발과 천상루의 최상층을 번갈아 보던 화산의 제자들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꼭대기네.”
“어, 꼭대기네요.”
“하필 또 꼭대기야.”
삐질삐질 배어나기 시작한 식은땀을 훔치며, 백천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화려해 봐야 결국 주루 아니냐. 이제 우리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니, 일단 들어가 보…….”
백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마침 주루의 열린 창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던 화려한 궁장 차림의 여인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녀는 그들을 보며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우아하고도 고혹적인 그 손길을 보자마자 백천이 일행에게로 빙글 몸을 돌렸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우리 목적은 새가 어디로 가는 건지 확인하는 거였잖느냐?”
“네, 네! 확인했어요. 확인!”
“목적은 달성한 거 아닐까요? 거기에 의의를 두는 걸로 하죠.”
“그렇지. 자, 그럼 돌아가자꾸나. 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청명이 손을 뻗어 백천의 뒷덜미를 잡아채었다.
“어딜 가?”
“놔, 인마! 저길 어떻게 들어가? 한눈에 봐도 그냥 주루도 아니구만!”
나머지 제자들도 극렬히 저항했다.
“아까부터 궁장 입은 여인들만 왔다 갔다 하잖아! 저런 데 들어가면 장문인께서 우릴 찢어 죽이실 거다!”
“우리가 아무리 껍데기만 도사라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아, 아미타불. 차라리 날 태워 죽이시오. 못 가오! 못 가!”
“이것들이 단체로 실성했나!”
청명이 혜연의 엉덩이를 뻥 걷어찼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자고?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도, 도장! 그렇지만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소.”
“아니고 말고는 너희들이 결정할 게 아냐. 그리고 뭘 그렇게 걱정을 하고 그래? 어차피 들어가도 종남 새끼들이 들어가는 건데.”
“어?”
사색이 된 이송백이 무어라 외쳤지만 청명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루를 향해 성큼 걸음을 뗐다. 그곳에서 새어 나온 화려하고 붉은 불빛이 청명의 얼굴에 드리웠다.
“최상층이라…….”
최소한 어디 건물 지하에라도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숫제 대놓고 나를 찾아와라 외치는 수준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환대한다면, 꼭 확인을 해 줘야지. 어디 가 보자고. 귀신이 나올지, 괴물이 나올지.”
청명이 일행을 향해 짧게 말했다.
“가자.”
“처, 청명…….”
성큼성큼 가는 청명을 차마 잡지 못한 백천은 마른침을 삼키며 높은 주루를 올려다보았다. 온몸에 핏기가 가셨다.
‘어…….’
여길 들어가야 한다고?
“사숙, 어떻게 합니까? 이거…….”
“……전 진금룡인데요?”
“아니, 사숙도 미치셨나?”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는데 청명이 짜증 치민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뭐 하고 섰어? 빨리 와!”
결국 체념한 화산의 제자들이 얼굴을 가리듯 감싸며 그런 청명의 뒤를 따랐다.
“……원시천존이시여.”
“엄마야. 나 기절할 것 같아.”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런 그들의 뒤에 홀로 남겨진 이송백은 망연히 중얼거렸다.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거지?”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서글픈 목소리는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밀리며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