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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82화 (1,483/1,567)

1482화. 네가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 (2)



‘망했다.’



‘조졌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여기에 있냐고!’



‘내가 무조건 망한다고 했잖아, 청명이 이 새끼야!’



화산 제자들의 전신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서안도 아닌 이 먼 개봉에서 이송백을 마주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떻게 합니까? 지금이라도 튑니까?’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도망을 가!’



‘게다가 마주쳐도 왜 하필 거지새끼들이랑 같이 마주치냐고!’



더 큰 문제는 그 이송백이 다름 아닌 개방의 고수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숫제 역모를 들킨 장소가 황궁 한중간이나 다름없는 상황 아닌가? 얼어붙은 화산의 제자들은 필사적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이들의 당혹감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난데없이 이들과 맞닥뜨린 이송백의 당황스러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대사형?”



이송백은 앞에 선 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검수들이 입은 옷은 분명 종남의 무복이고, 선두에 선 저자는 분명 진금룡이다. 그런데…….



‘누구지?’



그 뒤에 선 이들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종남의 제자 중 그가 모르는 이가 있을 리 있겠는가?



“아니…….”



이송백이 눈만 끔뻑이고 있자니, 이들의 얼굴은 어째 백지장처럼 점점 허옇게 질려 갔다. 그중에서도 뒤쪽에 있는 살짝 키 작은 남자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온몸을 움찔움찔 뒤틀고 있었다.



“어?”



그의 괴상한 수염을 유심히 보던 이송백이 순간 눈썹을 움찔했다. 이내 표정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이 소협. 이분들은?”



“아…… 그게…….”



이송백의 옆쪽에 서 있던 거지가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어 왔다. 이송백은 눈앞에 선 이들을 슬쩍 일별하고는 입을 뗐다.



백천은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검을 꽉 움켜잡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내려앉는 순간…….



“대사형을 뵙습니다.”



이송백이 단정한 자세로 백천에게 포권 했다. 실로 정갈한 예의 앞에, 백천은 저도 모르게 눈을 끔뻑였다.



쿡!



“아!”



뒤쪽에 있는 누군가가 제 등을 찌르며 눈치 주는 걸 느끼고서야, 재빨리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사제. 오랜만이군.”



더없이 진금룡다운 어조로 대답한 백천은 묘한 기대를 담고 이송백을 힐끔거렸다.



‘혹시 속아 넘어갔나?’하긴, 아무리 진금룡에게 익숙한 이송백이라 해도 이렇게 잠시 잠깐 정도는 속을 수도…….



“그런데…… 조금 너무하십니다, 사형.”



“……음?”



“아무리 이 사제가 미덥지 못하셔도 그렇지. 이렇게 말씀도 없이 오시다니요.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신 것 아니었습니까?”



순간적으로 머리를 팽팽 굴린 백천은 냉정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장문인께서 내린 지시다. 네가 이해해라.”



이 정도면 딱 재수 없는 것이, 적절한 대답일 것이다.



“예?”



하지만 대답을 들은 이송백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응? 내가 뭘 실수했나?’



혹시 장문인의 지시라고 한 게 뭔가 앞뒤가 안 맞게 꼬인 대답인 건가…….



“제가 이해하라니……. 사형께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너 따위는 알 것 없는 일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이상하면서도 황송하다는 듯한 이송백의 반응에, 백천의 눈가가 푸들푸들 떨렸다.



‘대체 인생을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 거야, 진금룡 이 미친 새끼야!’



옷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덜 재수 없어서 의심받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직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마까지 식은땀으로 젖어 들려는 찰나, 거지 하나가 말했다.



“그럼 이분이 종남의 진 대협이시군요.”



그들에게는 조금 전의 대화가 딱히 의미 없어 보인 모양이었다. 상황을 주시하던 거지들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어진 게 느껴졌다.



이송백이 말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제가 소개를 해 드려야…….”



“아닙니다. 지금 저희도 갈 길이 급하니, 그 소개는 다음에 정식으로 하지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이 대협께서도 진 대협과 나누실 말씀이 있을 테니, 저희는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도록 하지요.”



“……하실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이제 괜찮습니다.”



거지가 살짝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더니 깔끔하게 포권 했다.



“그럼.”



“아……. 예. 무탈하시기를.”



나머지 거지들도 함께 이송백과 백천에게 포권 하더니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제야 화산 제자들의 입에서 일제히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살았다.’



‘아, 나 좀 지린 듯.



’‘이걸 살아나네. 이제는 지옥에 떨어져도 빠져나올 자신 있다.’



‘진짜 십 년 감수했네…….’



모두가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식은땀 흘리며 이송백의 눈치를 살피던 백천이 최선을 다해 진금룡을 흉내 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는 따로 장문인께 받은 명이 있어, 지금 가야 할 곳이 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러시겠습니까?”



백천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한, 최대한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그래. 그럼 나중에…….”



“네. 그럼 그러십시오, 백천 도장.”



“그……. 어?”



태연하게 몸을 돌리려던 백천이 움찔하며 굳었다. 삐걱대는 고개를 돌리며 이송백을 보니 그는 더없이 밝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시다면, 음……. 거기 청명 도장께서도 바쁘시겠지요?”



“딸꾹.”



웃기지도 않은 수염을 붙이고 있던 청명의 어깨가 순간 들썩였다.



“화산의 다른 분들도 다들 바쁘실 테고?”



모두가 침묵했다. 흡사 사고 치다 훈장님에게 들킨 소동들처럼 어깨만 움츠릴 뿐.



“다시 뵙자고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이리 뵐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그렇지 않으십니까?”



“하…….”



“하하…….”



화산의 제자들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띠었다. 이송백은 빙그레 웃었다.



“바쁘다고 하시니, 얼른 보내 드려야겠지요.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중요한 일일 테니까요.”



그 순간 모두가 이송백이라는 사람의 인품에 감탄했다. 당장 칼을 뽑아 그들의 모가지를 치겠다고 날뛰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라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말입니다.”



“……예?”



이송백이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다시 움찔했다.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이송백의 눈가는…… 미동조차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고 가실 시간 정도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안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쥐어짜 낼 수 있는 모든 진심을 담아, 백천이 격하게 허리를 숙였다.



* * *



“……그렇게 되신 거군요.”



개방의 귀가 닿지 않을 만한 주루의 객실.



이송백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더니 앞에 있는 이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바닥에 납작 붙어 고개를 조아리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청명이 뾰로통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아니, 뭐 죄는 지었다 쳐도 그렇게까지 비굴할 건 없…….”



“넌 좀 닥쳐!”



“주둥아리, 이 새끼야!”



“진짜 내가 너는 언젠가는 꼭 죽인다! 농담으로 듣지 마라! 진짜 죽일 거다!”



살벌한 기세에 눌린 청명이 거북이처럼 움찔 목을 움츠렸다.



이송백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그 공감과 이해의 말에 모두 약속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이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게 대체 얼마 만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셔도, 이렇게 타문의 제자를 사칭하는 건 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쩐지, 갑자기 개방 사람들이 같이 갈 데가 있다고 하길래 저는 제가 뭘 잘못한 줄 알았습니다. 이걸 확인하려 했던 거군요.”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백천은 오늘 제 허리가 얼마나 유연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었다. 이송백이 말을 한 번 꺼낼 때마다 그의 허리가 자동으로 접혔다 펴지길 반복하지 않는가?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걸로도 부족하다. 이송백이 눈치 좋게 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들은 개봉 밖에서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송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종남의 제자로서는 용납해 드리기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입장을 바꿔 제가 화산의 무복을 입고 화산 제자를 사칭하다 걸렸다면…….”



“그 자리에서 패 죽여 버렸지, 어디 종남 새끼가!”



“닥치라고, 좀!”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말을 내뱉으라고, 이 새끼야!”



“누가 저 새끼 아가리 좀 틀어막아!”



혜연이 그 즉시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 청명의 입에 쑤셔 넣었다. 누구도 청명을 동정하지 않았다. 저건 저리 당해도 싸다.



“그래서 제 입장도 참 곤란하긴 합니다만…….”



이송백은 입이 막힌 채 구타당하는 청명을 힐끔 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냥 저는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결국에는…….”



“사실 제가 좀 우둔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백천 도장을 대사형으로 착각했다고 한들, 문제가 커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욕이나 먹고 말겠죠.”



백천은 조금 당황한 눈길로 이송백을 보았다. 하지만 이송백은 그저 망설임도 없이 깔끔한 미소만 보낼 뿐이었다.



“청명 도장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대의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소협……!”



“……물론 방식은 좀 문제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사과와 감격과 사과를 연신 반복하는 백천을 보며 조걸이 작게 속삭였다.



“저러다 사숙 정신병 오겠는데요?”



“……이미 걸려 계실 거야.”



정상일 리 없지. 그동안 겪은 게 있는데.



“여하튼.”



이송백이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가볍게 긁적였다.



“지금 개봉에는 저 말고도 종남의 제자들이 와 있으니, 이 이상으로는 일을 키우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이 더 커지면 저도 더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그럼요, 그럼요.”



백천은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연신 굽실댔다. 이송백은 다소 묘한 눈빛을 띠며 난처해했다.



“……도장. 자꾸 그렇게 사과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 얼굴로 사과를 하시니 제가 자꾸 불편해집니다.”



“…….”



할 말을 잃은 백천을 두고, 이송백은 청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혜연이 마침 청명을 이리저리 꺾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도장.”



“읍?”



“이제 어쩌실 셈이십니까? 개방의 눈은 피했다 한들, 이 상황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실 텐데요.”



“으읍! 으으읍! 으읍!”



……백천이 제 얼굴을 감싸고 중얼거렸다.



“스님. 그 입에 쑤셔 박은 가발 좀 빼 주십시오. 이런 건 우리끼리 있을 때만 합시다.”



남 눈 창피해서 같이 못 살 지경이다, 정말.



“푸하합!”



입에서 가발을 뱉어 낸 청명이 에퉤퉤 몇 번 침을 뱉고 혜연을 뿌리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아아, 그건 신경 안 써도 돼.”



의기양양해진 청명이 제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청명의 턱 아래로 빼꼼 고개를 내민 백아가 빠르게 코를 쫑긋대고는 앞발로 한쪽을 가리켰다.



키이이이이!



“마침 냄새가 향해 있는 곳이 이 인근인 것 같거든. 저쪽이면…….”



청명이 객실 한쪽으로 걸어가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와!”



“우와!”



그 순간 모두가 절로 입을 쩍 벌렸다. 열린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실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해가 진 개봉의 밤거리는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화려하게 거리를 밝힌 붉은 등이 모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다 찾았어. 저기 어디엔가 있다!”



“좋아.”



“운이 좋았네, 여러모로.”



“환락가인가? 좀 민망하긴 하네.”



“그럼 가자.”



목표를 확인한 모두가 시선을 교환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바로 그때.



“잠시만요.”



이송백이 살짝 손을 들어 그들을 잡았다.



“응? 왜? 더 할 말 남았어?”



“……지금 저길 가시는 겁니까?”



“가야지. 저기로 향이 이어졌다니까? 여태 뭐 들었어?”


이송백의 눈이 짧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 옷을 입고?”



“…….”



“이 밤에? 환락가를?”



“어…….”



청명이 제 옷과 바깥의 풍경을 번갈아 보았다.



도박장과 기루, 갖은 환락으로 가득 찬 저 거리를 종남 옷을 입은 제자들이 활보한다면…….



마침내 이송백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청명이 방긋 웃었다.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않을까?”



“개방 분들, 여기 화……. 읍! 읍읍!”



순식간에 달려든 백천과 혜연이 이송백의 입을 틀어막고 그를 제압했다.



“쉬잇!”



“조용히 하시오, 시주. 입 열면 다치오!”



“일단 묶읍시다.”



“음! 어쩔 수 없지.”



화산의 제자들은 허허 실없이 웃었다.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참담한 심정이다.



이젠 숫제 구파 제자를 묶고 협박하네.



‘차라리 사파가 낫지.’



하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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