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0화. 계획은 그럴듯했어. (5)
개봉성 중앙에 있는 개방 총단.
이곳을 제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세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그 총단이 ‘개방’이라는 거지들의 집단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드높다는 것. 두 번째는 그 전각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낡아 빠졌다는 점이다.
높고 거대한 전각은 실로 웅장하나, 군데군데 빠진 기와나 썩은 목재, 자욱하게 쌓인 먼지 같은 것은 그 규모를 무색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총단 내부에 더러운 거지들이 바글바글 오가는 모습까지 보고 나면 놀라움과 더불어 이곳이 개방의 총단임을 완벽하게 알게 된다.
이곳을 본 이들이 처음엔 놀라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내는 혀를 차는 까닭이었다.
그 총단 최상층, 숱한 전서구가 오고 가는 전각 내부의 작은 집무실 안.
묵직하게 앉은 한 노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움직였다고?”
거지가 쓰는 곳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한 집무실과 노인이 흘리는 기도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여느 거지들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있음에도 대단한 풍채와 묵직한 목소리, 강한 기도를 지니고 있으니 그 누구도 그를 우습게 보지 못할 터였다.
“화산검협 청명입니다. 화산의 오검도 함께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때에?”
“낙양에서 방금 도착한 보고입니다.”
“낙양이라니…….”
노인이 희미하게 침음성을 흘렸다. 눈가가 주름졌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푸른빛 광망이 번뜩였다.
‘그들이 지금 이 상황에 왜?’
노인은 생각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입을 열었다.
“천우맹의 본단을 짓는 데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온 것은 아니냐?”
평범한 무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화산 놈들의 기행이야 워낙 유명하니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낙양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서쪽으로 단번에 이동했다고 합니다.”
“서쪽, 서쪽이라……. 그럼 하남일 텐데.”
노인의 머리에 수많은 것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소림? 소림은 아니야. 방장이 자리를 비운 소림에 가 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지. 그럼 무당? 아니, 무당도 아니다. 무당은 봉문 중이니 그들이 간다고 해서……. 아니, 아니지. 그 화산검협 청명이라면 봉문 중인 문파의 대문을 뜯어 버린 뒤 들어가고도 남을 양반이지.”
작고 빠르게 중얼거린 노인은 단번에 지시를 내렸다.
“무당 주변 인원을 충원해라. 그들이 무당과 접선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
빠르게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노인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무당과 접선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지? 아니, 아니야. 무당만이 아니지. 하남을 지나쳐 북경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럼 관?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확실히 사패련은 무인만의 문제가 아니니…….”
만일 이번 상황에서 관이 갑작스레 개입하여 천우맹과 손을 잡는다면 강호에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야 희박하지만, 존재하는 가능성을 아예 무시할 순 없다.
“북경 주변에도 인원을 배치해라. 놈들이 황궁으로 향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니, 황궁이 아니지. 놈들이 미리 움직였다면 황궁이 아니라 북경의 고관과 먼저 접선할 터, 북경 전체에 경계령을 내려라!”
“예!”
노인은 미간을 빠르게 누르고 뺨을 몇 차례 주물렀다. 생각에 잠길 때마다 보이는 습관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하남을 넘어 절강으로 향한다면 보타암과 접선할 수도 있고, 어쩌면 북상하여 모용세가와 접선할 생각인지도 모르겠군. 팽가? 팽가는…….’
“잠깐!”
“예!”
“팽가 주변을 확실히 감시하라고 해라!”
“팽가 말이십니까? 하지만 팽가는…….”
“팽가 역시 가주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전임 가주의 세력과 일을 꾸미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이행하겠습니다.”
늙은 거지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각나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란 지시를 내렸음에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노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변수 덩어리 같구나.’
정보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예측에는 수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성향, 행적, 목표, 습관, 관계……. 심지어는 그 안에 음습하게 스며 있는 진정한 욕망까지.
하지만 저 화산은 늘 다음 행태를 예측할 수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화산검협 청명이 다음에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다.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가 무엇을 벌일지 모른다는 게 아니다.’
바로 그로 인해 무슨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세상 누구도 무당을 천우맹의 편으로 돌려 놓을 수는 없다. 그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화산검협 청명이 무당에 입성한다면, 그 물이 위로 솟구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실현 가능성? 물론 그건 희박하겠지. 하지만 ‘없다’와 ‘희박하다’는 비슷하되 완전히 다른 말이 아닌가?
그렇기에 개방은 총력을 기울여 화산검협 청명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조차 못 했을 텐데, 이 상황에서 대체 또 무슨 일을 벌이겠다는 거지?”
노인이 입술을 잘근대다 턱짓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판단 내릴 수 있는 게 없다. 그들의 다음 행적을 찾아내라. 지금 어디에 있는지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예!”
“나가라.”
“예!”
보고한 이가 부복하고 빠르게 집무실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잠깐!”
“예!”
나가려던 이가 다시 몸을 돌렸다. 노인이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이곳은?”
“무슨 말씀이신지?”
“개봉은 어떠냐? 놈들이 개봉으로 올 확률은? 아니, 이미 개봉에 와 있을 가능성은? 지금…….”
“그럴 줄 알고 이미 경계령을 내려 뒀습니다. 총단을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그들의 인상착의를 배포했으며, 혹시라도 종적이 발견되면 바로 총단에 보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빠른 판단이로구나. 좋다. 하지만 그들 역시 멍청하지는 않을 터, 노리는 것이 개봉이라면 우리에게 들키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있으면 모조리 보고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특이한 일은 없었나?”
“음, 그게…….”
보고하던 이가 일순 말을 흐리자 노인의 눈이 번뜩였다.
“무엇이냐?”
“……이게 보고를 드려야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전 성문에 종남의 제자들이 들었다 합니다.”
“종남? 그게 왜 이상한 일이냐?”
“이 시기에 종남이 갑자기 나타나니…….”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봉문을 풀었으니 움직일 만도 하겠지. 총단으로 온다더냐?”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문인은?”
“함께 오지 않은 듯합니다.”
“그럼 다행이로군.”
보고한 이의 입술이 살짝 움찔했다. 저 ‘다행’이라는 말 뒤에 숨은 의미를 그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신경 쓸 필요 없다. 자연히 알아서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경계를 철저히 해라.”
“예!”
보고를 마친 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노인은 피식 웃었다.
“종남인을 화산인으로 의심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어쩌다가 중원이 여기까지 와 버렸단 말인가?
노인의 시선이 낡은 책상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엔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오랜 세월 놓여 있느라 생긴 자국이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저곳에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세상은 다시 원래의 흐름을 찾게 될 것이다.
바로 개방이 그리 만들어야 한다.
* * *
거지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오가는 개봉의 대로.
그 중앙으로 새하얀 무복 차림의 이들이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무복의 끄트머리는 창공처럼 푸른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슴에 새겨진 구름 문양.
이 복장을 본 이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종남’이라는 두 글자였다.
대종남파. 천하를 오시하는 구파일방. 그 열 개의 문파 중에서도 소림, 무당과 함께 세 손가락 내에서는 빠지지 않는다는 문파.
물론 냉정히 말하자면, 소림과 무당이라는 강호의 북두와 비견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남이 가진 위상이 줄어드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 대종남의 제자들이 지금 이곳을 활보하고 있었다.
“으음. 헌앙하구먼.”
“종남 제자들의 기세가 과연 보통이 아니로군. 봉문 한 틈에 뼈를 깎은 모양이야.”
“굉장히 눈에 띄는군. 다들 훤칠해서 그런가?”
거지들은 삼삼오오 쑥덕거리다 빠르게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빠짐없이 확인하며, 누군가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게…….”
“…….”
“이게 왜 통하지? 이게?”
대로 중앙을 걷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도 남는 말이었다.
“개방 놈들은 다들 눈깔이 옹이구멍인가? 내가 종남 새끼처럼 보이나?”
“걸아……. 말 살살 해라. 소리는 차단할 수 있는데, 입 모양은 차단 못 한다.”
조걸은 허탈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누차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게 통하다니, 역시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닌가? 이게 정녕 말이나 되는 소린가?
“……종남 옷 입고, 구름 새긴 검 하나 차고, 얼굴에 허접한 수염 쪼가리 좀 붙였다고 우릴 못 알아보는 게 말이나 됩니까?”
“변장했으니 못 알아보지.”
“수염 좀 붙인 게 변장입니까? 복면이라도 쓰면 부모님도 못 알아보겠네?”
“……실제로 복면 쓰면 못 알아보시지 않나?”
“어?”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런데…….
조걸이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스님. 가발 삐뚤어졌습니다.”
“아, 아미타…….”
“아미타불 하지 마십시오. 지금 도사시라니까요?”
“무, 무량수불!”
“그래요, 좀 낫네…….”
혜연은 가발까지 쓰고 연신 식은땀을 줄줄 쏟았다. 조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보십시오. 진짜 안 이상하다고? 세 살짜리 애가 봐도 이상할걸?”
“걸아.”
“예?”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얼굴에 다리를 달고 다녀도 저 양반들은 우릴 의심 안 한다.”
“…….”
“의심할 수가 없잖아, 사실. 안 그러냐?”
윤종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앞으로 꽂혔다.
반 발짝 앞서 걷는 이. 완벽한 종남의 복장을 갖추고, 종남의 검을 당당히 제 허리에 찬 이. 훤칠한 키와, 헌앙한 얼굴, 거기에 살짝 오만해 보이는 입꼬리까지.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들려왔다.
“저 사람이 진금룡이지?”
“듣던 대로 굉장하구나. 성정이 살짝 오만하다던데, 충분히 그럴 만해.”
“듣자 하니 곧 차기 장문인이 된다는 모양이던데?”
“그래서 총단에 온 모양이로군. 총단과 안면을 틀 모양이야.”
“으음. 기도가 굉장하군.”
그 모든 말을 들으며, 앞에 선 그가 천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종남의 젊은 사자가 오연하게 턱을 든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다.
‘……장문인.’
하지만 진금룡으로 변장……. 아니, 솔직히 그냥 대충 머리만 바꾸고 종남 옷을 걸친 백천의 두 눈은 뿌옇게 눈물로 흐려지고 있었다.
‘죽고 싶습니다.’
종남 진금룡의 두 눈에서 화산의 눈물이 반짝반짝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