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8화 계획은 그럴듯했어. (3)
쇄애애애애액!
황금빛을 띤 작은 새가 더없이 푸른 창공을 가르며 나아갔다.
“아니! 뭔 새가 저렇게 빨라!”
“새는 원래 빨라 인마!”
“스님! 뭐 어떻게 좀 해 보십시오!”
“아, 아미타불? 갑자기 왜 저한테?”
“아니! 같은 황금색 아닙니까!”
“조걸 도장. 미치셨소?”
조걸처럼 개소리를 해 대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의 얼굴도 일그러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사람이 새를 따라 달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것도 평범한 새도 아닌 영물을?
“사형! 사형! 그냥 제가 날개에 침 꽂아 버릴 테니까 전서만 탈취하면 안 돼요? 말만 하세요! 새 꼬치를 만들어 줄 테니까!”
“지금 전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새가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다니까? 침 꽂으면 못 날잖아! 그냥 따라가!”
“그걸 못 따라가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맞아.”
“저걸 대체 어떻게 따라가라는 거예요?”
“음……. 어떻게 잘하면 되지 않을까?”
“사고! 이 사람 미친 사람이에요!”
“알아.”
죽는소리를 뱉어 대는 오검들을 본 청명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저 혜연의 머리마저 흘린 땀으로 반짝거리는 걸 보니, 그저 엄살로 치부할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도 숨이 슬슬 가빠져 온다. 무슨 수를 내긴 내야…….
“아악! 좀 떨어져 이 새끼야!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키이이이이이이이!”
“내려가라고! 아 진짜 환장하겠네! 하는 짓이 제 주인이랑 똑같냐 어떻게! 하다 못 해 어깨에라도 붙으라고!”
“오?”
청명이 필사적으로 조걸의 머리에 달라붙은 백아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사형! 그거 이리 줘 봐!”
“엉?”
청명이 순식간에 조걸의 옆으로 달려들더니 그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백아를 낚아챈다.
“아악! 내 머리카락! 놔라! 인마! 놔! 혜연 스님 된다! 머리카락 다 빠진다고!”
“……당신은 꼭 지옥에 떨어질 거요. 조걸 도장.”
혜연의 입에서 불자답지 않은 원독에 찬 말이 흘러나왔다.
“키이이?”
그 와중에 청명에게 목덜미를 잡힌 백아가 기성을 내지르며 청명을 바라본다. 그 눈에서 ‘뭘 하려고?’라는 의미가 줄줄이 뿜어졌다.
그 초롱초롱한 눈을 본 청명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다녀와라!”
“키이?”
“으라차아아아아아아아!”
청명이 바닥을 쾅 하고 밟더니 손에 들린 백아를 있는 힘껏 하늘로 집어 던졌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차마 들을 수 없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새하얀 백아의 몸뚱이가 푸른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
“와, 비 오나? 뭐가 떨어지는데?”
“눈물이야, 눈물…….”
“아…….”
모두의 숙연함 속에 백아의 몸이 그어 낸 새하얀 선이 하늘을 가르고 있는 황금빛 선과 겹쳐진다. 날고 있는 만리금구의 바로 앞까지 날아든 백아가 그 와중에도 짧은 앞발을 힘차게 휘저어 만리금구를 움켜잡으려 시도했다.
“짹?”
하지만 작은 머리를 살짝 내려 솟아오르는 백아를 확인한 만리금구는 몸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허무하리만큼 쉽게 백아의 앞발을 피해 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슬쩍 돌려 허탕을 친 백아에게 무심하게 ‘짹’소리 한 번을 날려 준 뒤, 그대로 앞으로 가속해 날아갔다.
“카아아아아악!”
백아의 입에서 거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머리만 한 크기의 새에게 농락당하다니,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명을 닮은 그 성질머리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키?”
솟아오르던 백아의 몸이 느릿하게 멈춰진다. 동시에 찌푸려졌던 백아의 눈이 이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이내…….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제아무리 영물이라 한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한 백아가 눈물을 줄줄 뿜으며 짤막한 팔다리를 격하게 휘저었다.
“아이고 백아야아아아아!”
“받아! 받아! 저거 그대로 떨어지면 진짜 죽는다!”
영물이고 자시고 간에 저 높이에서 떨어지고 무사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기겁한 오검들이 젖먹던 힘을 다해 백아가 추락하고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린다.
“멀다!”
“야 이 미친놈아! 저걸 던져서 잡는 게 말이나 되냐?”
“어떻게든 받아!”
그러나 사람이 손으로 던진 걸 무슨 수로 사람이 달려가 받겠는가? 저 멀리 낙하하는 백아를 본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미타불.”
“엥?”
조걸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본다. 그의 눈에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더없이 자애로운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는 혜연의 모습이 들어왔다.
“스님?”
서, 설마?
“가시오! 도장! 오오오오오오!”
“야 이 미친 중 새끼야아아아아아!”
파아아아앗!
혜연이 있는 힘껏 조걸을 앞으로 집어 던진다. 감정이 살짝 실린, 아니 감정밖에 안 실린 그 투척에 조걸의 몸이 검은 빛줄기가 되어 앞으로 쏘아졌다.
포탄처럼 날아간 조걸이 몸을 빙글 돌려 추락하는 백아를 제 배로 받아 낸다.
“오!”
“스님! 최고!”
쿠웅! 쿠우웅! 쿠우우우웅!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조걸의 몸이 바닥이 수면인 양 물수제비처럼 튕겨 댔지만, 이미 다른 오검들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작고 하얀 족제비는 무사할 테니까.
“아미타불. 도장의 희생 잊지 않겠소. 편히 잠드시오.”
“안 죽었어요! 거, 재수 없게!”
“가 보자!”
급히 다가간 이들의 눈에 조걸이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 광경을 본 모두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아이고! 백아야!”
“안 다쳤니?”
“저 새끼 배가 좀 단단해야 말이지.”
“어디 보자. 괜찮아?”
모두가 호들갑을 떨며 조걸의 배 위에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백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백아를 번쩍 들어 올려 토닥인다.
그 와중에 그들의 발길질이 만들어 낸 먼지구름이 쓰러진 조걸의 얼굴에 가만히 덮여 갔다.
“키이이이이이!”
정신을 차린 백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곤 당소소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그 짧은 앞발에 조막만한 분노를 한껏 담아 격렬하게 누군가를 삿대질해 댔다.
“줘 봐.”
청명이 백아의 목덜미를 확 잡고 끌어당긴다. 백아가 양손을 휘저어 청명의 얼굴을 할퀴겠다고 악을 써 댔다.
“기억했지?”
“카아아악!”
“기억했냐고!”
“……키이?”
“냄새 말이야. 냄새! 너 한 번 맡은 냄새는 만 리도 따라간다며?”
“…….”
흰 족제비가 그 말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쭉 빼 새까만 코를 움찔움찔한다.
킁킁. 킁킁.
한참을 코를 벌름대던 백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키이!”
이내 만리금구의 향을 맡았는지, 백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 씨익 웃으며 그런 백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좋아. 앞장서!”
“키이!”
백아가 몸을 한쪽으로 획 돌리더니 섬전처럼 앞으로 뛰어나갔다.
“따라붙어!”
“알았다!”
“오! 그렇네. 굳이 새 꽁무니를 따라갈 필요가 없었네.”
“이 새끼 한 번씩 보면 머리가 진짜 기차게 돌아간다니까?”
“가자, 백아야! 살살 좀 달려라.”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앞으로 달려나간다.
한 발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혜연의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
‘저 족제비 아까까지는 달리기 싫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었나?’
영물이니 뭐니 해 봐야 결국 짐승은 짐승인 모양이었다. 그새 그걸 까맣게 잊은 걸 보니.
“허허.”
그런데…….
왜 그도 뭔가를 잊은 것 같을까?오검들이 땅을 박차며 멀어진 곳에서 구름처럼 일어난 먼지구름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저 개…….”
그 먼지구름 속에서 거품을 문 채 쓰러진 조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새끼들.”
조걸의 두 눈에서 맑디맑은 눈물 한 방울이 또로록 흘러내렸다.
❀ ❀ ❀
“사람을 두고 가?”
“걸아……. 그 말 벌써 열 번은 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을!”
“……이제 열 한 번이네.”
윤종이 손가락으로 제 귀를 막았다. 잘도 정신을 차리고 따라붙은 조걸이 쉬지도 않고 화를 쏟아 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람인데! 어떻게 짐승보다 못합니까?”
“아니지, 걸아. 거꾸로 생각해야지.”
“예?”
“사람은 제 일을 알아서 하는 거고, 짐승은 챙겨 줘야 하는 거란다. 우리가 너를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할 수는 없지 않으냐?”
“…….”
윤종이 조걸의 어깨를 감싸며 빙그레 웃었다.
“이제 이해했니?”
“그냥 뒈지십쇼.”
“에이. 안 통하네.”
두 사람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백천이 주변을 돌아본다.
“그런데 대체 어디까지 온 거지?”
“글쎄요?”
“이쪽 지형은 잘 몰라서. 하남 잘 아는 사람 없나?”
그 말에 모두가 혜연을 돌아보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부터 계속 동쪽으로만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예. 그렇죠.”
“이렇게 계속 가면……. 아마 거기가 나올 겁니다.”
“거기?”
“개봉(开封).”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개봉이라면…….”
“예.”
혜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개방의 총단이 있는 곳입니다.”
“음.”
백천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급히 따라오느라 확인하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을 보고 전서를 날릴 이들은 당연히 개방 사람들일 테고, 그렇다면 그 전서가 향할 곳은 당연히 개방의 총단일 것이다.
그럼…….
“청명아!”
“응?”
“설마 네가 가려는 곳이 개방의 총단이냐?”
그 말을 들은 청명이 피식 웃는다.
“내가 뭐 병신도 아니고, 개방 총단이 개봉에 있는 줄 몰라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겠지.”
“그렇지?”
그렇기에 도리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적이 개봉이라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니까.그럼 지금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그럼 여긴 왜 온 건데?”
“이미 말했잖아. 오려고 온 게 아니라니까? 와 보니까 여기였던 거지.”
“……엥?”
백천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이건 또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아, 그러니까!”
청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딱히 등잔 밑을 뒤져 보려고 했던 건 아닌데, 막상 더듬대다 보니 거기가 등잔 밑이었다. 이거지.”
“아.”
백천이 단번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네가 찾으려는 곳은 총단이 아니었는데, 그게 바로 개봉에 있다?”
“어. 그렇지!”
“아아. 뭔 말인지 알겠다.”
백천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런 상황이라면 이해가 간다. 생각보다 간명한 일이다.
청명이 찾으려고 하는 곳은 총단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개봉에 있다. 그저 그 두 가지가 우연히 겹쳤을 뿐이다.
“그럼 총단은 무시하고 계속 쫓아가면 되겠네.”
“어 맞아. 간단하지.”
“응. 간단하…….”
백천의 얼굴이 순간 뒤틀렸다.
“잠깐만.”
“응?”
“……네가 굳이 저 전서구를 쫓아온 걸 보면, 저 전서구가 가는 위치는 개방에서도 숨기려는 곳 아니냐?”
“그렇지!”
“보통은 그 근처에 누가 오는 걸 절대로 막으려 들 거고?”
“히야! 우리 동룡이 다시 똑똑해졌네. 땀을 좀 흘려서 그런가?”
청명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백천은 지금 그 말에 호응해 줄 여력이 없었다.
“어, 그래. 그렇지. 그렇다는 건 그러니까…….”
그 순간, 산을 달리던 백천의 두 눈에 저 멀리 커다란 도시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우리가 그 개방이 숨기려 하는 곳을 개방의 눈을 피해 진입하면 된다는 거지?”
“어! 바로 그거야.”
“개방 총단이 있는 개봉에서?”
“…….”
“……거지가 양민보다 많다는 개봉에서, 개방 거지들의 눈을 피해, 개방이 숨기는 심처에 잠입하겠다고?”
“어…….”
모두의 발이 천천히 멈춰졌다. 심지어 꽁지가 빠지도록 달리고 있던 백아마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청명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받은 청명도 발을 멈춘 채 생각에 빠졌다.
그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더니, 이내 어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
“뭐 할 말이라도?”
“사실 이게 그, 어…….”
청명이 환히 웃었다.
“계획은 그럴듯했어.”
그 담백한 말을 들은 백천도 청명처럼 환하게 마주 웃어 주었다.
“그냥 죽어. 미친놈아.”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